https://youtu.be/6K8mBhc-ZUw
본문 열왕기상 8장은 성전의 형태적인 특성과 성전에서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 그리고 후반부에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는 봉헌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성전이 성막이 바뀐 것인데 성전으로 바뀌면서 모든 것이 교체되었습니다만 여전히 교체되지 않은 네가지를 묵상했었습니다. 첫 번째가 언약궤였고 두 번째가 언약궤를 옮기는 방식.. 수레가 아닌 채를 어깨에 매고서 옮기고 세 번째가 언약궤에 꿰어져 있는 채, 그리고 네 번째가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 돌판 ..
세상은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에 대한 접근방식이라는 것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성전의 구조속에서 메시지를 들었다면 오늘 본문 12절부터 나오는 본문은 성전자체에 담긴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2절부터 보시면 하나님이 원래는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하나님이 계실 공간인 성전을 하나님을 위하여 세웠다고 백성들 앞에서 공포하고 있습니다.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되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성막의 핵심적인 기능을 말씀하고 있는데 백성들과 만나고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하나님은 특정 개인에게만 불특정 시간에 임재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성막이 세워짐으로 인해 개인에게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규칙적인 시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문화혁명 가운데 교통 통신의 발달은 그야 말로 급속한 발전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미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급한 일이 있을 때 이는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사일이 날아와도 궤도를 미리 추적해서 공중에서 맞춰서 추락시킬 정도입니다. 교통 통신의 발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진전이 된 것입니다. 성막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소실된 이후에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전처럼 막연한 상태로 돌아갔을 때 세워진 것이 바로 솔로몬 성전이었습니다. 이 솔로몬 성전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2절에 말씀하는 캄캄한 데 계시겠다는 것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하면 죽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그 능력과 지혜, 영광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이것을 사람이 공유할 방법이 없었던 것인데 성막과 성전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첫 번째 기능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성전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성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건물이라고 하는 것은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 불과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 때문에 단순한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는 능력과 역사가 나타남을 얼마나 많이 체험했는지 모릅니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옥에 갇혔는데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베드로가 초자연적인 역사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때 교회가 모여서 기도드린 장소가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당시에 헤롯성전이 있었습니다만 이들이 모여서 합심기도드린 장소는 마가라는 개인이 사용하는 다락방이었습니다. 성전을 놔두고 이곳에서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들으신 이유는 진정한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이 아니라 바로 영으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의 본체라는 것을 말씀해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높이고 찬양하는 곳입니다. 혼자 있을 때도 그 예수께서 역사하시지만 함께 있을 때 그 능력과 신속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힘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모일 때마다 기도하시고 예배드리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본문 22절부터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나옵니다. 성전을 건축한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무려 8번에 걸쳐서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29절 후반절에 나옵니다.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소서’ 라는 것입니다.
30, 31, 33, 35, 38, 42, 44, 48절입니다.
성전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다면 두 번째 의미는 기도의 방향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방향이라고 한다면 굳이 성전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지라도 성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다니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왕의 꿈 해석을 지혜롭게 잘 해 주는 바람에 바벨론 제국의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한데 그런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도 여전히 중단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부터 1000킬로 이상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에 와 있는 것처럼 기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바로 사자굴에서 건져내시고 계속되는 계시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 맞지만 그 제사에 담긴 의미가 결국에는 함께 하심과 기도를 통한 응답이라는 말로 다시 풀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함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요즘 새벽예배 때 주님께서 헤롯 성전에 들어가셔서 채찍으로 장사하는 자들을 내 쫓으시는 장면을 묵상했습니다만 그렇게 하신 이유는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 아닌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본문이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입니다. 주님이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이 무화과나무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차라리 잎도 없고 열매도 없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열매가 있을 것처럼 잎이 잔뜩 많은데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헤롯성전의 외관에 비해 영적인 상태는 완전히 바닥이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열매가 바로 기도라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이 기도의 열매가 없다면 이는 주님이 책망하시고 저주하실만한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전을 세운 의미와 교회를 의미가 같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향이 되기 위해,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합니다.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에도 반드시 메카가 있는 방향을 건물 안에다 표시를 합니다. 키블라.. 호텔에도 발견할 수 있음. 기도 시간이 되면 그 표시를 보고서 메카방향을 향해 기도합니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 분은 자애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비노니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유대인)나 방황하는 자들(기독교인)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
노여움을 받은 자는 유대인을 방황하는 자들은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이들이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무슬림의 코란이 거짓된 경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코란을 보면 표절의 티가 팍팍납니다. 표절도 제대로 하질 않아서 뒤죽박죽입니다.
거짓된 종교 무슬림들도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는데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기도? 포로되었을 때 비가 오지 않을 때 전쟁 중에 있을 때 죄사함을 위해서 ..
마지막으로 성전의 기능은 화목케 하는데 있습니다.
62절, 63절입니다. 이때 드린 제사가 화목제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기름 부위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부위는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함께 먹는 제사를 말합니다. 함께 먹는 것은 식사와 교제를 통한 화목을 이루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원수된 것 자체가 죄이고 불행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모든 은혜와 모든 축복은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요 착각입니다. 교회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 집 떠나면 고생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을 수 있어도 점점 그런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원수가 되면 전쟁으로 이어지고 엄청난 고통이 오는데 하나님과의 관게가 원수가 되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성전은 교회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시는 온유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