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심 며느리는 Jew, 사위는 객가 출신을 보고 싶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내가 살던 Lake forest에서 조금 떨어진 Newport beach에 있는 유대인들의 Synagogue에 토요일이면 우리 애들을 부지런히 데려갔다. 뭐 일부러 아무도 아는이가 없는데 우정 간것은 아니고 그때 큰애의 학우들이 죄다 jew들이라 나는 특정 종교가 없고 하니 친구 사귀라고 데려다 준셈 이었는데 그 부모들은 참 나를 반겼다.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는 그들이 도사들이라 도움도 많이 받은 셈이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살던 Saddleback Valley지역의 교육기관들은 이 Jew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교육감은 물론 영재학교, 일반 국민학교등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심지어 Jew들 명절인 Hanukkah 같은날은 전학교가 공휴였고 학예회때는 Jew들의 노래만 불렀다.
에랜 파이커, 애나 고만, 에랜 샤츠, 데이빗 밴스라이크.... 내 큰애의 어릴때 Jewish동창들은 지금은 전부 훌륭히 자라 모두 전문직의 자기 갈길을 걷고 있다.
비록 Jew는 아니지만 지금 며느리도 부계는 선조가 유럽의 명문이었다. 재작년 바티칸을 가보고 그건물 지을때 기증가문 명단을 보니 기둥뿌리 하나는 내며느리네 선조가 바쳤다는걸 알고 꽤나 내력은 긴집이구나 여기고 있다.
딸 하나 있는것 혼기가 늦어지니 애비로서는 내색은 안해도 걱정 이다. 오는 6월 MBA를 마치니 이제 갈 직장도 결정 되었고 이것 저것 합치면 대망의 6 digit 연봉도 되고 하니 어느놈 나서 줄때도 되었는데 아직 이다.
내가 기왕이면 객가 출신 사위를 바라는건 그까짓 사랑이란 기끗 시효가 한 6개월이면 짝인것 같고 어차피 미국서 대를 잇고 살아야 하니 중국계가 무난하다고 보았는데 한족은 별로고 역시 내 마음에 드는건 이 객가Hakka들이다.
물론 객가도 17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한족이었다. 처음엔 황하 유역에 살다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받고 영가의 난등을 거치면서 광동 복건 강서등에 흩어져 지금은 한 6천만 정도 된다고 하는데 중국인구의 98%나 차지 한다는 한족과는 판이한 문화와 음식과 풍습을 지니고 있는 소수 민족이 되었다.
흔히들 학계에서 이세계를 이끌고 가는것은 Jew, 인도, 중국등 5대 유랑민족 이라고 꼽는데 중국에서 유랑의 세월을 보낸건 이객가가 주류다.
객가란 명칭은 송대宋代에 호적이란게 생기면서 토착민을 주적主籍 유입인을 객적客籍 이라고 표기 한것에서 시작 되었다지만 이들의 언어나 의복 , 토루란 둥그런 주거양식, 전족을 하지않는것, 아주 외향적이고 검소 근면 한것등 그들 특유의 문화를 갖고 있고 족보를 아주 중시 한다거나 성공하면 꼭 고향을 찿아 조상을 기리는 습속등 우리와 참 기질이 비슷한것이 많다. 객가어는 중국 7대 방언중 하나고 내가 보기에는 중국을 이끌어 온 정수가 이들 객가다.
有太陽的地方, 就有中國人. 有中國人的地方, 就有客家人-----태양이 있는곳에 중국인들이 있고 중국인들이 있는곳에 객가들이 있다. 그렇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새로 떠오르는 중국의 핵심에 서 있다.
객가 출신으로 뛰어난 사람을 꼽으려면 한량이 없다. 멀리는 우리 선조들의 신神 노릇을 한 주자朱熹 부터 태평천국의 홍수전, 손문, 송경령 남매,등소평, 싱가폴의 이광요, 대만총통 이등휘, 홍콩재벌 이가성, 태국재벌 陳有漢, 인도네시아 재벌 林紹良, 대만재벌 王永慶, 태국 파타야를 건설 한 謝구泗, 황금유 재벌 胡文虎, 중공군 총사령관 朱德, 현대 중국의 대문호 郭沫若.......
내가 객가에 대해 처음 안것은 역시 우리 큰애의 영재학교 동기인 Richard Hsei네를 알고 부터다. 이들이 謝씨 객가 였다.Kindergarden부터 같이 애를 키우며 그 부모들과도 가까웠는데 아버지는 80년대초 나이키 운동화 공장을 대만에 갖고 있는 기업인이었다. 나는 한족을 아주 싫어 하는편인데 어쩐지 이양반은 다정다감하면서도 대인 풍모가 있었다. 우리는 주말이면 Sun & sail club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Richard는 고등학교를 우리애 다음 2등으로 졸업, 하바드서 경영학을하고 런던서 투자은행에 일했는데 벌써 10년전 년봉이 50만불 넘는다고 했다. 지난 2년동안 크리스마스 때면 스카치 한병들고 우리를 찿아 온다. 아직 미혼인데 내가 물어 보았더니 돈버는 재미에 장가갈 틈이 없다나.
작년 부터 우리 딸애를 따라다니는 객가 청년이 있는데 U Penn을 나와 골드만삭스에 다니다가 MBA를 우리애와 같이 하고 있는데 나이가 안맞다. 두살 어리고 또 너무 미남이라 아무래도 손탈것 같아 속으로 찜찜 했는데 우리애가 묻기에 내가 관상을 좀 연구했다면서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했다.
우리 나이 또래가 다 격는 일이지만 애들 혼사는 우리 마음데로 결정하던 시절은 멀리 멀리 가고 없다. 그저 좋은놈 나서 주길 간절히 기원 할뿐.
Eugene C Kim 씨야 김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