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절정,
그 '삽시간의 황홀'을 찾아서
王孫繪竹意還殊(왕손회죽의환수)
偃葉橫柯衆態俱(언엽횡가중태구)
醉袖翩翻豪士舞(취수편번호사무)
不因風雨廢歡娛(불인풍우폐환오)
왕손이 대나무를 그린 뜻이 남달라서
누운 잎새 휜 가지 온갖 모습 다 갖췄네
취한 소매 너훌너훌 호걸의 한바탕 춤
풍우 때문에 흥겨움 멈출 수 없다는 듯
- 이익 (李瀷, 1681~1763), 『성호전집(星湖全集)』
권6 「난죽첩(蘭竹帖) 3수(首)」중 세 번째 시
해설
위의 시는 성호가 《난죽첩》이라는 화첩을 보고 쓴 것이다.
《난죽첩》이 만들어진 유래는 이러하다. 명나라 신하 주지번(朱之蕃, 1546~1624)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 허균에게 대나무와 난초를 그려 선물했는데, 거기에 화답
하여 종실(宗室) 석양정(石陽正)이 우죽(雨竹)과 풍죽(風竹)을 그려 주었다.
허균이 그 그림을 들고 당대의 명사들을 찾아다니며 시를 지어주기를 청하여 열일곱
장의 시화첩으로 만든 것이다.
허균에게 그림을 준 이 석양정이 바로 한국 회화사에 묵죽(墨竹)의 최고 거장으로
평가받는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이다. 그는 세종대왕의 현손이다.
성격이 원래 속진의 탁함을 싫어했기에, 평생을 공주(公州) 탄천(灘川)의 월선정(月先亭)에
은거했다. 월선정은 달이 뜨고 바람이 불면 어느새 매화 향기와 그림자가 방안에 가득
하고, 고요히 누웠노라면 솔바람과 대숲 바람이 넘실거리는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그는 일생일대의 큰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왜적의 칼에 오른팔이 거의
잘리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화가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이었음에도 고통을 딛고 창작에
몰두하여 드디어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
그의 묵죽을 일러 이항복은 ‘신묘품(神妙品)’이라 극찬했고, 이정귀는 ‘천기묘운(天機
妙運)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찬탄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그의 묵죽이 담긴 8폭 병풍을 뜰에 내놓았더니 까막까치가
날아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탄은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청명한 바람이 불어와 몸을 감싸듯,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상쾌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중국으로 사행(使行)을 떠날 때 그의 그림을 챙겨갔고, 이를 본 중국
문인들도 그의 그림 한 장 얻기를 갈구했다고 한다.
▶ 이정(李霆), <풍죽(風竹)>,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현재《난죽첩》을 볼 수 없으니 이정의 다른 <풍죽(風竹)>을 놓고 위의 시를 감상해보자.
적막한 바위에 뿌리를 박고서 밀려오는 거센 바람 앞에서도 의연히 버티고 선 대줄기와
댓잎들이 보인다. 부러질지언정 휘둘리진 않겠다는 당찬 의지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림을
계속 보다보면 우리는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어느덧 대나무가 바람과 하나되어 너훌너훌 춤추고 있다는 것을. 마치 소매를 펄럭이며
마냥 흥에 겨워 사위를 멈추지 않는 고고한 춤꾼처럼.
“대 그림은 반드시 먼저 가슴에 대를 이뤄야 얻을 수 있다.[畵竹必先得成竹於胸中]”는
소동파의 말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정은 ‘가슴에 천 이랑의 대를 품고 세한(歲寒)에도
푸르름을 지닐 수 있었기에 끝내 청아한 자아를 지켜냈고, 거친 바람을 오래 견뎌내며
온몸으로 품에 안다가 어떤 절정의 황홀한 순간, 문득 해탈의 미소를 머금게 된 초인(超人)’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람’ 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몸에 바람 냄새를 풍기며 바람처럼 살다가
마침내 바람이 된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이다. 그는 가슴에 회오리치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전국을 떠돌다 제주의 바람에 홀려서 바람의 섬에 정착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제주 중산간 들판에서 숨쉬기조차 버거운 바람을 매일 맞으며 바람의
영혼과 바람의 이어도를 오감의 렌즈로 담아내다가 쉰도 안 된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김영갑, 작품번호: C617.1028,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제공
그는 바람과 초목과 오감이 혼연일체 되는 절정의 한 찰나를 ‘삽시간의 황홀’이라고 표현했다.
그때가 바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이 되면 “몸 안의 바람은 어느새 고요
해지고, 변화무쌍하던 바람은 마음속의 번민과 동요를 잠재우며 편안하게 불어온다.”고 했다.
그가 찍은 오름 들녘의 저 나무를 보라. 척박한 돌틈 사이사이에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혹독
한 바람 앞에 서 있는 저 가녀린 나무들의 끝없는 흔들림을, 흔들림 속에서도 싱그럽게 빚어
낸 저 잎새들의 황홀한 푸르름을 보라. 그렇게 또 꽃을 피우고 송글송글 열매 맺는 저 눈물
겨운 ‘존재들의 속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태풍이 물러난 뒤의 파란 하늘과 고요, 그리고 평화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시련임을 알기에,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리라. 그 고통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옮겨놓으며, 삶의 봄을 향한 고행을 오늘도 멈추지 않으리라.” 하루하루 몸이
굳어가는 병석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도 바람이 분다. '바람보다 먼저
웃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야겠다.' 바람과 더불어 천금 같은 나의 하루를 저 댓잎과
나무들처럼 기어이 살아내야겠다.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눈부신 순간의 황홀을 위하여.
글쓴이 이기찬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