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빚어 주는 엔돌핀이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인간관계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듣는 이의 마음을 온화하게 해줌은 물론 그 넓이까지 한없이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데 기폭제의 역할까지 해준다. 이의 주인공이 바로 칭찬이다. 그래서 칭찬은 좋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칭찬을 들어서 기분 나쁜 사람이 있는가를. 칭찬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소유하려는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이 소비되지도 않는다. 즉, 비용이 전혀 소요되지 않으면서도 폭발적 효과를 나타낸단 말이다. 효과가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그 여진은 오래 간다. 그래서 칭찬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말이라고 예찬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상대방을 칭찬하면 자기 자신이 손해 보는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기 때문일까. 정정당당하게 상대방과 겨루기보다는 사술을 써서 자기가 원하는 거를 얻으려 하기 때문일까. 적절한 나눔보다는 자신만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 싶기 때문일까. 그래서 칭찬보다는 오히려 험담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인간 세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험담이 인간 세상의 독소라는 것만은 누구나 안다. 모로코 속담에도 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험담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험담을 듣는 사람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험담을 옮기는 사람이다. 참으로 적절한 말이지 않는가. 이처럼 험담은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험담은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는 곧 우리 주변을 청량감보다는 혼탁함이 감도는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현상은 소시민들보다는 오히려 정치인들을 비롯한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한 것 같다. 그들 중에는 이 순간에도 공존보다는 유아독존만을 향해서 가없이 달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직설적으로는 물론 칭찬을 가장한 속임수가 들어있는 거짓 칭찬, 사탕발림 칭찬, 실속 없는 칭찬, 의미 없는 칭찬 그리고 금방 뒤돌아서면서 욕을 해대는 칭찬도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이 권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는 갖가지 아부를 다 해가며 칭찬을 하다가도 그 힘이 사라지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정치모리배를 비롯한 장사꾼들을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더 훌륭한 프로젝트를 고안해 낸 사람도 어둠의 뒷골목으로 몰아가 버리는 어둠의 자식들도 있다. 성황리에 치러지는 남의 잔치도 애써 폄훼해야만 가슴이 편안해지는 족속들. 극한적인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넘나들지 못하도록 아류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안간힘을 써대는 일부 몰지각한 물신주의자들. 이런 쓰레기 같은 부류들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기 때문에 칭찬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호 애재다. 통재로다. 이제부터라도 칭찬을 생활화하도록 하자. 오물투성이 사회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회로 변모해 가기 위해서는. 칭찬은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하자. 사소한 것부터 칭찬해 주자. 누구나 좋아하는 성공의 발밑에는 칭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이처럼 좋은 칭찬을 생활해 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