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대축일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40일’의 기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부활을 준비하는 이 40일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순시기의 시작도 처음에는 재의 수요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40일을 계산할 때 옛 성삼일(성금요일, 성토요일, 주일)로부터 역계산하였기 때문에 사순시기의 시작이 주일로 되어서 사순 첫 주일이 되었던 것입니다(7일×5주간+5일〈금, 목, 수, 화, 월〉=40일).
그런데 이 준비 기간 동안 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40일의 계산법이 달라졌습니다. 4세기 말에 로마에서는 일반적으로 3주 동안 재를 지켰지만, 그 후에 사순시기 동안 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일을 빼고(주일은 재를 지키는 날에서 제외되기 때문) 옛 성삼일 전까지 34일 동안 재를 지켰습니다(6일×5주간+4일〈월, 화, 수, 목〉=34일). 그러나 옛 성삼일 중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에는 사순시기 이전부터 재를 지켜 왔으므로 여기에 2일을 더하여 30일 동안 재를 지켰습니다.
그 후 6세기 초에 이르러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40일 간 온전히 재를 지키기 위하여 이미 지켜오던 36일에다 4일(토, 금, 목, 수)을 첨가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순시기의 시작이 주일에서 수요일로 바뀌어 오늘날처럼 재의 수요일이 사순시기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8세기 말의 로마 예식서에 보면 “모든 백성이 팔라티노 언덕 기슭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 모였고 교황은 여기서 전례를 거행한 후 사순시기 첫 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벤티노 언덕에 있는 성녀 사비나 성당으로 행진하여 갔다”라고 이날 전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행진하는 동안 “옷을 바꾸어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파묻혀 단식하며”라는 후렴을 노래하였습니다.
10세기 독일 라인 강 지역에서는 로마에서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던 전례문에 감각적 표현 방식을 덧붙이고자 하였으니 그것이 곧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이었습니다. 참회와 슬픔의 표시로써 머리에 재를 얹는 행위는 구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여호 7,6; 2사무 13,19; 에제 27,30; 욥 2,12; 42,6; 요나 3,6; 에스 4,3), 초세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관행을 자주 개인적으로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참회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이 행위가 그 어떤 전례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11세기에 이 관행이 이탈리아에 들어오면서 1091년의 베네벤토 교회 회의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모두 재를 받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재의 강복과 재를 얹는 예식은, 이 예식들이 처음 생겨났을 때와 비슷하게 1970년까지는 미사 시작 전에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새 미사경본에서는 이 예식을 말씀의 전례를 마친 다음에 배치하였으며, 따라서 이 예식은 참회 예절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를 얹는 예식은 그 도입시기부터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라는 양식문과 함께 행해졌지만, 지금은 이 말씀과 함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는 주님의 말씀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