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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1일, 월요일, Merzouga, Auberge la Tradition
(오늘의 경비 US $20: 숙박료 150, 환율 US $1 = 7.6 dirham)
지난 여러 해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 한 가지 얘기를 하겠다.
세계에는 소위 선진국과 후진국들이 있는데 어느 나라는 왜 선진국이고 어느 나라는 왜 후진국인가? 선진국들은 북반구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변두리와 동쪽 끝 변두리 두 곳에 있다. 서구와 극동으로 불리는 지역들이다. 유라시아 대륙밖에 있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도 선진국이지만 그들은 성격적으로 서구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서구 나라들은 영국, 프랑스, 베네룩스 3국,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Scandinavia 나라들이다. 극동 나라들은 한, 중, 일 3국이다.
이 나라들은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을까? 서구 나라들이 선진국인 된 것은 산업혁명 덕택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금의 선진국들과 후진국들 간에 큰 차이는 없었다. 예를 들면 17세기에 서구 나라들, 중국의 청나라, 이슬람 세계의 오스만제국은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선진국들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서구 나라들은 그 힘으로 신무기를 개발해서 군사 강국이 되었고 식민정책을 펴서 아세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나누어 가지고 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과거의 강국 오스만제국도 중국의 청나라도 서구 여러 나라의 신무기 앞에는 힘없이 굴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극동의 한, 중, 일 3국은 늦게나마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일본이 제일 먼저 성공했고 한국이 뒤를 따르고 현재는 중국이 서구 선진국들이 심한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힘차게 나가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어느 미래학자가 서구 세계를 "Culture of Fear" 이슬람 세계를 "Culture of Humiliation" 극동 세계를 "Culture of Hope"이라는 표현을 써서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나라들이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나라들, 남미 나라들, 아프리카 나라들, 남아시아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 후진국으로 남아있다.
왜 그럴까? 종교적인 이유일까? 아니다. 우연일까?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일까? 나는 조심스럽게나 국민의 지능의 차이라는 이유를 제시하고 싶다. 선진국 사람들은 후진국 사람들보다 머리가 좋아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얘기다. 한, 중, 일 세 나라의 국민의 평균 IQ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것은 조심스럽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서구와 극동 나라 사람들은 왜 IQ가 높을까? 나는 과학적인 증거를 댈 도리가 없으나 다시 조심스럽게 인종의 순수함을 증거로 제시하고 싶다. 서구와 극동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변두리 지역이다. 그래서 지난 수천 년 동안에 일어났던 민족의 이동과 그에 따르는 혼혈 현상에 휩쓸리고 않고 비교적 순종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보라. 극동의 조그만 반도 주머니, 그것도 험한 산으로 가득한 주머니 같은 나라다. 일본은 섬 주머니 같은 나라다. 중국도 땅덩어리는 한국과 일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지만 산맥, 사막, 정글 등으로 보호되어 있다. 지역적으로 일본은 영국과 비슷하고 우리나라는 덴마크나 노르웨이에 비슷하다. 한, 중, 일에 비해서 중앙아시아, 중동, 동유럽, 발칸 반도 나라들을 보라. 도저히 민족이동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순종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서구와 극동의 나라들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 같다. 순종의 나라지만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한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순종이라는 것은 선진국이 되는 것의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은 안 되는 것 같다.
아직도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순종의 나라로 남아있었으면 하는데 근래에 한국에 불고 있는 다문화 바람은 좀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오늘 숙소 앞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는데 보니 숙소 이름이 Auberge la Tradition이 아니고 Kasbah Le Touareg이다. 어제 이곳 숙소 주인인 것처럼 나를 안내를 해준 친구가 틀림없이 Auberge la Tradition이라고 했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제 방 가격이 Lonely Planet에는 150 dirham으로 나와 있는데 왜 200 dirham이냐고 물었을 때 Lonely Planet에 나온 Auberge la Tradition은 Kasbah Le Touareg의 별관이기 때문이라고 알쏭달쏭한 얘기를 했었다. 아마 Auberge la Tradition은 옛날 건물이고 Kasbah Le Touareg는 새 건물인 모양이다. 어쨌든 무슨 문제이랴, 더 할 나위 없이 만족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에서 해 뜨는 사진을 찍은 다음에 한 시간 정도 모래 산으로 산보를 나갔다. Sahara 사막의 아침 경치를 찍으려 했는데 실망했다. 모래가 차바퀴와 발자국으로 성한 곳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막 구경을 하러 낙타를 타고 사막 안으로 한참 나가는 것을 이해하겠다. 간신히 모래가 성한 곳을 찾아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래도 낙타를 타고 나가서 하루 밤 자고 오고 싶은 생각은 안 난다. 인도와 몽골에서 해봤는데 별로 즐기질 못했다. 그냥 호텔에서 묵으면서 아침저녁 모래 산으로 산보나 하면서 구경하고 떠날 생각이다.
호텔에는 손님이라곤 나 혼자뿐이다. 외국 여행객이 너무 없으니 좀 쓸쓸하다. 어제 나를 데려온 친구에게 물어보니 손님이 좀 있었는데 3일 예정으로 사막으로 낙타여행을 떠났다 한다. 그리고 지금은 여행 철이 아니라 손님이 적단다. 여름에 손님이 제일 많단다. 그러면서 여름엔 온도가 섭씨 50도란다. 그런 더운 날씨에 와서 어떻게 모래 산 구경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맑은 날씨에 온도가 20도 정도니 그 이상 좋은 날씨가 어디 있겠는가?
호텔은 아직도 미완성인지 한쪽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루 종일 쿵쾅하는 소리가 난다. 호텔은 거의 진흙과 짚으로 지은 건물이다. 문틀은 나무이고 바닥과 지붕은 타일이고 나머지는 모두 짚을 넣어서 만든 흙벽돌이다. 뒷마당에는 계속 흙벽돌을 만들고 있었다. 나도 군대에 있을 때 막사를 짓기 위해서 흙벽돌을 만들던 생각이 난다. 호텔은 조그만 성같이 생겼다. 모로코의 특이한 건축 양식인 모양이다.
뜨거운 물도 나오고 햇볕도 좋아서 빨래를 좀 했다. 더운 곳을 여행할 때는 매일 내복과 양말을 빨아서 입는데 이번 여행은 계속 쌀쌀한 날씨라 양말만 매일 빨고 내복은 이틀씩 입는다. 땀이 안나니 매일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점심은 아침 먹을 때 남겨서 방으로 가져온 빵으로 때웠다. 그럭저럭 저녁때가 되어서 저녁 산보를 나갔다가 오니 하루가 다 갔다. 내일 하루 더 쉬고 떠나야겠다.
Sahara 사막에 동이 트고 있다
시각에 따라서 모래 산의 색깔이 변한다
정오 때의 모습
오후의 모습
늦은 오후의 모습
석양의 모습
해가 막 질 때의 모습
차바퀴와 발자국으로 지저분하게 보이는 모래
아침나절 멀리 보이는 모래 산
여행객들은 멀리 낙타를 타고 가서 밤을 보낸다
발자국이 없는 곳을 힘들게 찾아서 몇 장 찍었다
아, 자연의 아름다움이여
인간은 흉내 낼 수 없어라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호텔 뒷마당에 20여 마리의 낙타가 있다
호텔 안마당
오른쪽 푸른색 철문 위 2층 방이 내방이다
성주가 된 기분이다
이렇게 큰 야자나무들을 어떻게 심었을까?
이 야자나무는 언제나 크려나?
성과 같은 호텔 전경
호텔 건물 전면이다
호텔 정문
흙벽돌 벽에 타일 지붕이다
흙벽돌 조각 같다
나무 문틀과 철창
담도 흙벽돌이다
외부 벽에는 짚이 많이 보인다
내부 벽은 흙으로 한 겹 더 바른 것 같다
내 방 내부
호텔 뒷마당에는 계속 흙벽돌을 만들고 있다
Merzouga 마을 전경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Berber 족 텐트
빨래를 해서 밖에 말리고 있다
2008년 1월 22일, 화요일, Merzouga, Kasbah Le Touareg
(오늘의 경비 US $20: 숙박료 150, 인터넷 5, 환율 US $1 = 7.6 dirham)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책과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수영장 옆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아침을 들었다. 손님이라곤 나 혼자뿐, 성주가 된 기분이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15분 걷는 거리인 Merzouga 마을까지 걸어가서 인터넷을 하고 왔는데 이메일을 한 다음에 고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한글이 안 되어서 전혀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지난 14일에 보낸 글과 사진이 올라간 것은 확인했다. 약 7일 만에 올라갔는데 관리하는 친구가 여행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오후는 다음에 동창회 홈페이지에 올릴 글 준비를 하면서 보냈다. 아주 한가한 오후다. 내일은 아침 일찍 떠나서 다음에 가는 도시 Ouarzazate로 향하는데 하루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Merzouga에서 Rissani와 Er Rachidia를 거쳐서 가는 복잡한 코스다.
오늘 확인한 결과 내가 묵는 곳은 Auberge la Tradition이 아니고 Kasbah Le Touareg이다. 나를 안내한 친구가 모종의 장난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기행문 “Travels with a Tangerine"과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이다. 둘 다 좋은 책이다. ”Travels with a Tangerine"의 Tangerine은 과일 “탠저린”이 아니고 Tangier 사람이라는 뜻이다. 14세기 중반 모로코 도시 Tangier 출신 Ibn Battutah라는 사람이 Marco Polo가 여행한 거리의 3배나 되는 거리를 30년에 걸쳐서 여행하고 쓴 여행기에 나온 여정을 재연해 보려고 쓴 여행기다. Ibn Battutah는 인도와 중국까지 여행했는데 이 책의 저자는 모로코로부터 Istanbul까지만 Ibn Battutah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여행했다. 여기서 “Tangerine"은 말은 Ibn Battutah를 이르는 말이다.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은 작년에 감명 깊게 읽었던 피천득 수필집 “수필” 만큼 감명 깊게 읽고 있다. “수필”처럼 읽고 다시 읽고 하고 있다. 읽을수록 감칠맛이 더 나는 것 같다. 이태준은 193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알려졌던 사람인데 42세 되던 1946년에 월북한 후로는 소식이 끊겼다. 월북을 안 했더라면 더 많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많은 동료와 후배 문인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춘원 이광수 다음으로 제2회 조선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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