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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자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대태양
第十二回 陶恭祖三让徐州 曹孟德大战吕布
제12회 도공조(도겸)가 서주를 세번 양도하고 조맹덕(조조)이 여포와 크게 싸우다.
曹操正慌走间,正南上一彪军到,乃夏侯惇引军来救援,截住吕布大战。斗到黄昏时分,大雨如注,各自引军分散。操回寨,重赏典韦,加为领军都尉。
조조가 황망히 달아나는 사이에 정남쪽에서 한 무리 군사가 당도하니, 바로 하후돈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와서 여포를 가로막고 크게 싸웠다. 황혼 무렵까지 싸움을 계속하다가 큰 비가 쏟아지자 각자 군사를 이끌고 흩어졌다. 조조가 진지로 돌아와 전위를 크게 포상하고 영군도위로 삼았다.
却说吕布到寨,与陈宫商议。宫曰:“濮阳城中有富户田氏,家僮千百,为一郡之巨室;可令彼密使人往操寨中下书,言‘吕温侯残暴不仁,民心大怨。今欲移兵黎阳,止有高顺在城内。可连夜进兵,我为内应’。操若来,诱之入城,四门放火,外设伏兵。曹操虽有经天纬地之才,到此安能得脱也?”吕布从其计,密谕田氏使人径到操寨。操因新败,正在踌躇,忽报田氏人到,呈上密书云:“吕布已往黎阳,城中空虚。万望速来,当为内应。城上插白旗,大书‘义’字,便是暗号。”操大喜曰:“天使吾得濮阳也!”重赏来人,一面收拾起兵。刘晔曰:“布虽无谋,陈宫多计。只恐其中有诈,不可不防。明公欲去,当分三军为三队:两队伏城外接应,一队入城,方可。”操从其言,分军三队,来至濮阳城下。
한편, 여포가 영채에 이르러 진궁과 상의하니, 진궁이 말하기를,“복양성 안에 부호 전씨가 있는데 종이 천백 명에 한 고을의 큰 가문입니다. 그 사람이 은밀히 사람을 조조의 진지로 보내어 서찰에 ‘온후 여포가 잔폭하고 어질지 못하여 민심이 크게 원망하므로 (그들이) 이제 여양으로 병력을 이동하려 합니다. 고순이 혼자 성 안에 머물 뿐이니, 밤중에 진격하면 제가 내응하겠습니다.’라고 쓰게 하십시오. 조조가 온다면 입성하도록 꾀어 사방의 성문에 방화하고 밖에는 복병을 두십시오. 조조가 비록 경천위지의 재주를 가졌다고 한들 여기에 이르고서야 어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여포가 그 계책에 따라 은밀히 전씨에게 사람을 조조 진지로 보내라고 했다. 조조가 방금 패하여 주저하고 있는데 문득 전씨가 사람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가 바친 밀서에 이르기를,“여포가 이미 여양으로 가서 성중이 공허합니다. 만백성이 어서 오시기만 바라며 오시면 마땅히 내응하겠습니다. 성 위에 백기를 꽂고 크게 ‘의’자를 써서 암호로 하겠습니다.”하였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하늘이 내게 복양을 주시는구나!”하고, 찾아온 사자를 크게 포상하고, 한편으로 병사를 수습하여 출동하려 했다. 유엽이 말하기를,“여포가 비록 꾀가 없으나 진궁은 꾀가 많습니다. 그 중에 속임수가 있을까 두려우니 대비해야 합니다. 명공께서 가시겠다면 삼군을 3대로 나눠 2대는 성 밖에서 접응하고 1대만 입성해야 합니다.”하였다.
操从其言,分军三队,來至濮阳城下。操先往观之,见城上遍竖旗幡,西门角上,有一“义”字白旗,心中暗喜。是日午牌,城门开处,两员将引军出战:前军侯成,后军高顺。操即使典韦出马,直取侯成。侯成抵敌不过,回马望城中走。韦赶到吊桥边,高顺亦拦挡不住,都退入城中去了。数内有军人乘势混过阵来见操,说是田氏之使,呈上密书。约云:“今夜初更时分,城上鸣锣为号,便可进兵。某当献门。”操拨夏侯惇引军在左,曹洪引军在右,自己引夏侯渊、李典、乐进、典韦四将,率兵入城。李典曰:“主公且在城外,容某等先入城去。”操喝曰:“我不自往,谁肯向前!”遂当先领兵直入。
조조가 그 말에 따라 군을 3대로 나누어 복양성 아래에 이르렀다. 조조가 먼저 가서 살펴보니 성 위에 두루 깃발을 꽂았는데 서문 위에 ‘의’자가 적힌 백기가 하나 있어 내심 기뻐했다. 이날 정오에 성문이 열린 곳에서 두 장수가 군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전군은 후성이고 후군은 고순이다. 조조가 즉시 전위를 출동시켜 곧바로 후성에게 달려들게 하였다. 후성이 대적하지 못하고 말을 돌려 성 안으로 달아난다. 전위가 쫓아 적교(들어올리는 다리) 가에 이르니 고순도 또한 막아내지 못하고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찌할까) 헤아리는 가운데 어떤 군인이 혼란한 틈을 타서 군진을 넘어와 조조를 만나 전씨의 사신이라고 한다. 밀서를 바치는데 대략 이르기를,“오늘밤 초경 무렵에 성 위에서 징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바로 진격하십시오. 제가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하였다. 조조가 하후돈은 왼쪽에서 군사를 이끌고 조홍은 오른쪽에서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하후연 이전 악진 전위 네 장수를 이끌고 군사를 인솔하여 입성하였다. 이전이 말하기를,“주공께서는 성 밖에 계시고 저희가 먼저 입성하겠습니다.”하니, 조조가 꾸짖기를,“내가 몸소 가지 않으면 누가 기꺼이 앞서겠느냐!”하였다. 마침내 (조조가) 선두에서 병사를 거느리고 바로 들어갔다.
时约初更,月光未上。只听得西门上吹蠃壳声,喊声忽起,门上火把燎乱,城门大开,吊桥放落。曹操争先拍马而入。直到州衙,路上不见一人,操知是计,忙拨回马,大叫:“退兵!”州衙中一声炮响,四门烈火,轰天而起;金鼓齐鸣,喊声如江翻海沸。东巷内转出张辽,西巷内转出臧霸,夹攻掩杀。操走北门,道傍转出郝萌、曹性,又杀一阵。操急走南门,高顺、侯成拦住。典韦怒目咬牙,冲杀出去。高顺、侯成倒走出城。
시간은 초경 쯤이지만 달빛은 아직 비추지 않았다. 다만 서문 위에서 소라고둥을 부는 소리와 딱딱이 소리, 함성이 갑자기 일어나고 문 위에 횃불이 어지러이 비추는데 성문이 크게 열리고 적교가 내려졌다. 조조가 앞다퉈 말을 몰고 들어갔다. 바로 복양성 관아에 이르니 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조가 이것이 계략인 걸 깨닫고 황망히 말을 돌리며 크게 외치기를,“퇴병하라!”하니, 관아 안에서 호포 한 발이 터지더니 사방의 문에서 맹렬한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징소리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면서 강이 뒤집어지고 바다가 끓는 듯이 함성이 일어났다. 동쪽 거리에서 장요가 돌아나오고 서쪽 거리에서 장패가 돌아나와 협공하여 쳐들어왔다. 조조가 북문으로 달아나지만 길 옆에서 학맹과 조성이 돌아나와 다시 한바탕 무찌른다. 조조가 급히 남문으로 달아나니 고순과 후성이 막아섰다. 전위가 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악물고 돌격하니 고순과 후성이 거꾸로 성 밖으로 달아났다.
典韦杀到吊桥,回头不见了曹操,翻身复杀入城来,门下撞着李典。典韦问:“主公何在?”典曰:“吾亦寻不见。”韦曰:“汝在城外催救军,我入去寻主公。”李典去了。典韦杀入城中,寻觅不见;再杀出城壕边,撞着乐进。进曰:“主公何在?”韦曰:“我往复两遭:寻觅不见。”进曰:“同杀入去救主!”两人到门边,城上火炮滚下,乐进马不能入。典韦冒烟突火,又杀入去,到处寻觅。
전위가 적교까지 쇄도하여 고개를 돌리니 조조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돌려 다시 성 안으로 급히 들어가다가 문 아래에서 이전과 마주쳤다. 전위가 묻기를,“주공은 어디에 있소?”하니, 이전이 말하기를,“나도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소.”했다. 전위가 말하기를,“그대는 성 밖에서 어서 군을 구하시오. 내가 들어가서 주공을 찾아보겠소.”하니, 이전은 가버렸다. 전위가 성 안으로 뛰어들어 조조를 찾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성 밖으로 나와 해자 가에서 악진과 마주쳤다. 악진이 말하기를,“주공은 어디에 있소?”하니, 전위가 말하기를,“내가 두번이나 오가며 찾았으나 보이지 않소.”하였다. 악진이 말하기를,“함께 들어가서 주공을 구합시다!”하고, 두 사람이 문 앞으로 가니, 성 위에서 불덩이가 굴러 떨어지므로 악진이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없어 전위가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을 뚫고 돌입하여 가는 곳마다 찾았다.
却说曹操见典韦杀出去了,四下里人马截来,不得出南门;再转北门,火光里正撞见吕布挺戟跃马而来。操以手掩面,加鞭纵马竟过。吕布从后拍马赶来,将戟于操盔上一击,问曰:“曹操何在?”操反指曰:“前面骑黄马者是他。”吕布听说,弃了曹操,纵马向前追赶。曹操拨转马头,望东门而走,正逢典韦。韦曹操,杀条血路,到城门边,火焰甚盛,城上推下柴草,遍地都是火,韦用戟拨开,飞马冒烟突火先出。曹操随后亦出。方到门道边,城门上崩下一条火梁来,正打着曹操战马后胯,那马扑地倒了。操用手托梁推放地上,手臂须发,尽被烧伤。典韦回马来救,恰好夏侯渊亦到。两个同救起曹操,突火而出。操乘渊马,典韦杀条大路而走。直混战到天明,操方回寨。
한편, 조조는 전위가 급히 나가는 것을 보았지만 사방에서 인마가 가로막자 남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북문으로 몸을 돌리는데, 불빛 속에서 여포가 극을 들고 말을 달려 오는 것을 보았다. 조조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채찍질을 해서 말을 몰아 여포 곁을 지나갔다. 여포가 말을 몰고 따라와 극으로 조조의 투구를 한 번 치며 묻기를,“조조는 어딨냐?”하니, 조조가 반대로 가리키며 말하기를,“저 앞에 누런 말을 탄 자입니다.”하였다. 여포가 그 말을 듣고 조조를 놔두고 말을 몰아 앞으로 추격했다. 조조가 말 머리를 돌려 동문으로 달아나다가 바로 전위를 만났다. 전위가 조조를 옹호하며 죽을 힘을 다해 혈로를 찾아 성문 가에 이르니 화염이 극성하고 성 아래로 장작과 건초가 쏟아져 온통 불바다다. 전위가 극을 휘둘러 길을 열고 나는듯이 말을 달려 연기를 무릅쓰고 불을 뚫으며 앞장서 나갔다. 조조가 뒤따라 나왔다. 막 성문 길가에 이르니 성문 위에서 불 붙은 대들보 하나가 무너져내려 조조가 탄 말의 뒷다리 사타구니에 맞아 말이 엎어진다. 조조가 손으로 대들보를 땅으로 밀어 냈지만 손이고 팔이고 수염이고 머리카락이고 모조리 화상을 입었다. 전위가 말을 돌려와서 구하는데 마침 하후연도 도착했다. 두 사람이 함께 조조를 구해내어 불을 뚫고 나갔다. 조조가 하우연의 말을 타고 전위가 크게 길을 열어 달아났다. 혼전 중에 날이 밝아서야 조조가 진지로 돌아왔다.
众将拜伏问安,操仰面笑曰:“误中匹夫之计,吾必当报之!”郭嘉曰:“计可速发。”操曰:“今只将计就计:诈言我被火伤,已经身死。布必引兵来攻。我伏兵于马陵山中,候其兵半渡而击之,布可擒矣。”嘉曰:“真良策也!”于是令军士挂孝发丧,诈言操死。早有人来濮阳报吕布,说曹操被火烧伤肢体,到寨身死。布随点起军马,杀奔马陵山来。将到操寨,一声鼓响,伏兵四起。吕布死战得脱,折了好些人马;败回濮阳,坚守不出。
여러 장수가 절하며 문안하자 조조가 얼굴을 들어 웃으며 말하기를,“필부의 계책에 잘못
빠졌소. 내가 반드시 갚아주겠소!”하니, 곽가가 말하기를,“계책을 빨리 세워야 합니다.”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지금은 다만 장계취계(저편의 계략을 이용하여 이편의 계략을 씀)뿐이오. 내가 화상을 입어 이미 죽었다고 속여서 말하면, 여포가 반드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할 것이오. 내가 마릉산 속에 복병한 뒤 적병이 반쯤 지나기를 기다려 공격한다면 여포를 잡을 수 있소.”하였다. 곽가가 말하기를,“정말 좋은 계책입니다.”하였다. 이에 군사에게 상복을 입혀서 발상하고 조조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금방 누군가 복양으로 가서 여포에게 보고하되, 조조가 온몸에 화상을 입어 진지로 돌아와 죽었다고 했다. 여포가 곧 군마를 일으켜 마릉산으로 달려갔다. 조조의 진지에 이르자 한 번 북소리가 울리면서 복병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왔다. 여포가 죽을 힘을 다해 싸워서 탈출하지만 허다한 인마를 잃고 패하여 복양으로 돌아가서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是年蝗虫忽起,食尽禾稻。关东一境,每谷一斛,直钱五十贯,人民相食。曹操因军中粮尽,引兵回鄄城暂住。吕布亦引兵出屯山阳就食。因此二处权且罢兵。
이 해에 황충(메뚜기)이 갑자기 창궐하여 벼를 모조리 갉아먹었다. 관동 일대에서 곡식 한 곡(10 말) 값이 5십 관이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조조는 군대의 양식이 바닥나자 군사를 이끌고 견성에 잠시 머물렀다. 여포도 병력을 이끌고 산양에 주둔하여 양식을 구했다. 이로 인해 두 진영 모두 당분간 싸움을 그만두었다.
却说陶谦在徐州,时年已六十三岁,忽然染病,看看沉重,请糜竺、陈登议事。竺曰:“曹兵之去,止为吕布袭兖州故也。今因岁荒罢兵,来春又必至矣。府君两番欲让位于刘玄德,时府君尚强健,故玄德不肯受;今病已沉重,正可就此而与之,玄德不肯辞矣。”谦大喜,使人来小沛:请刘玄德商议军务。玄德引关、张带数十骑到徐州,陶谦教请入卧内。玄德问安毕,谦曰:“请玄德公来,不为别事:止因老夫病已危笃,朝夕难保;万望明公可怜汉家城池为重,受取徐州牌印,老夫死亦瞑目矣!”
한편, 서주의 도겸은 나이가 이미 63 세인데, 갑자기 병이 들어 점점 위중해져서 미축과 진등을 불러 의논했다. 미축이 말하기를,“조조의 군사가 물러간 것은 여포가 연주를 습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흉년이 들어 군사를 파했지만 오는 봄에 반드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부군께서 두번이나 유현덕에게 양위하셨지만 당시는 부군께서 아직 강건하실 때이므로 현덕이 받으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병이 위중하니 바로 이런 모습으로 그에게 주면 현덕이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하였다, 도겸이 크게 기뻐하며 소패로 사람을 보내 현덕을 군무를 의논할 게 있다고 불렀다. 현덕이 관우 장비과 더불어 수십 기를 대동하고 서주에 이르니 도겸이 침실로 불러들였다. 현덕이 문안을 마치니 도겸이 말하기를,“현덕 공을 오라고 한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닙니다. 이 늙은이가 병이 위독하여 아침저녁을 (살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만인이 공께서 한나라의 성지(성과 해자)을 가련하게 여겨 서주의 관인을 받아 주기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이 늙은이는 죽어도 또한 눈을 감겠습니다.”하였다.
玄德曰:“君有二子,何不传之?”谦曰:“长子商,次子应,其才皆不堪任。老夫死后,犹望明公教诲,切勿令掌州事。”玄德曰:“备一身安能当此大任?”谦曰:“某举一人,可为公辅:系北海人,姓孙,名乾,字公祐。此人可使为从事。”又谓糜竺曰:“刘公当世人杰,汝当善事之。”玄德终是推托,陶谦以手指心而死。众军举哀毕,即捧牌印交送玄德。玄德固辞。次日,徐州百姓,拥挤府前哭拜曰:“刘使君若不领此郡,我等皆不能安生矣!”关、张二公亦再三相劝。玄德乃许权领徐州事;使孙乾、糜竺为辅,陈登为幕官;尽取小沛军马入城,出榜安民;一面安排丧事。玄德与大小军士,尽皆挂孝,大设祭奠祭毕,葬于黄河之原。将陶谦遗表,申奏朝廷。
현덕이 말하기를,“부군께 두 아들이 있는데 어찌 물려주지 않으십니까?”하니, 도겸이 말하기를,“장자 상과 차자 응은 재주가 모두 (고을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늙은이가 죽은 후에 오히려 명공께서 가르쳐 주시되 절대로 고을의 공무는 맡기지 마십시오.”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저 같은 사람이 어찌 이런 큰 임무를 맡겠습니까?”하니, 도겸이 말하기를,“제가 한 사람을 천거할테니 공을 보좌할 만합니다. 원래 북해 사람으로 성은 손이고 이름은 건이며 자는 공우입니다. 이 사람을 종사(보좌관)로 삼으십시오.”하였다. 또 도겸이 미축에게 말하기를,“유공은 당세 인걸이시니 그대는 마땅히 잘 모셔야 하오.”하였다. 현덕이 끝까지 다른 일을 핑계로 거절하는데 도겸이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죽었다. 모든 군사가 애도를 표하고 곧 관인을 받들어 현덕에게 바쳤다. 현덕이 굳이 사양했다. 이튿날 서주 백성들이 관청 앞에 몰려들어 울고 절하며 말하기를,“유 사군께서 이 고을을 다스리지 않으시면 우리들은 모두 편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하니, 관우와 장비도 거듭 권했다. 현덕이 마침내 임시로 서주의 일을 보겠다고 허락했다. 손건과 미축을 보좌관으로 삼고 진등을 참모로 삼았다. 소패의 군마를 모두 (서주에) 입성시키고 방을 내걸어서 백성을 안심시켰다. 한편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현덕이 상하 군사들과 함께 모두 상복을 입고 크게 상례를 거행했다. 제사를 마치고 황하의 언덕에 (도겸을) 장사지낸 뒤, 도겸의 유표(남긴 상소문)를 조정에 상주했다.
操在鄄城,知陶谦已死,刘玄德领徐州牧,大怒曰:“我仇未报,汝不费半箭之功,坐得徐州!吾必先杀刘备,后戮谦尸,以雪先君之怨!”即传号令,克日起兵去打徐州。荀彧入谏曰:“昔高祖保关中,光武据河内,皆深根固本以制天下,进足以胜敌,退足以坚守,故虽有困,终济大业。明公本首事兖州,且河、济乃天下之要地,是亦昔之关中、河内也。今若取徐州,多留兵则不足用,少留兵则吕布乘虚寇之,是无兖州也。若徐州不得,明公安所归乎?今陶谦虽死,已有刘备守之。徐州之民,既已服备,必助备死战。明公弃兖州而取徐州,是弃大而就小,去本而求末,以安而易危也。愿熟思之。”
조조가 견성에 있다가 도겸이 죽고 유현덕이 서주목이 된 것을 알고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내 원수를 아직 갚지 못했는데 그놈은 화살 하나 쏘지 않고 앉아서 서주를 얻다니! 내가 반드시 유비를 죽이고 도겸의 시체를 육시하여 아버지의 원한을 풀겠다!”하고, 즉시 명령을 전해 기한을 정하여 병사를 일으켜 서주를 치려고 하니, 순욱이 들어와 간언하기를,“옛날 고조(유방)가 관중을 지키고, 광무제가 하내에 웅거한 것은 모두 근본을 튼튼히 하고 이로써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나아가 적을 이기기에 족하고 물러나 굳게 지키기에 족하니, 비록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명공께서 본래 연주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황하와 제수 지방은 천하의 요지로서 옛날의 관중이나 하내와 같습니다. 이제 만약 서주를 공격할 때 여기에 병사를 많이 두면 공격하는데 부족하고, 적게 두면 여포가 틈을 타서 쳐들어와 연주를 잃습니다. 만약 서주를 얻지 못하면 명공께서 어디로 돌아가실 것입니까? 지금 도겸이 비록 죽었다 하나 이미 유비가 지키고 있습니다. 서주 백성이 유비를 따르니 반드시 유비를 도와 결사 항전할 것입니다. 명공께서 연주를 버리고 서주를 취하려는 것은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는 것이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구하는 것이니, 안정된 것으로 위급한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하였다.
操曰:“今岁荒乏粮,军士坐守于此,终非良策。”彧曰:“不如东略陈地,使军就食汝南、颍川。黄巾余党何仪、黄劭等,劫掠州郡,多有金帛、粮食、此等贼徒,又容易破;破而取其粮,以养三军,朝廷喜,百姓悦,乃顺天之事也。”操喜,从之,乃留夏侯惇、曹仁守鄄城等处,自引兵先略陈地,次及汝、颍。黄巾何仪、黄劭知曹兵到,引众来迎,会于羊山。时贼兵虽众,都是狐群狗党,并无队伍行列。操令强弓硬弩射住,令典韦出马。何仪令副元帅出战,不三合,被典韦一戟刺于马下。操引众乘势赶过羊山下寨。
조조가 말하기를,“지금 흉년이 들어 양식이 모자라니 군사가 여기서 앉아 지키는 것도 결국 좋은 계책은 아니오.”하니, 순욱이 말하기를,“진지를 동쪽에서 경영하는 게 낫습니다. 여남과 영천에서 황건 잔당 하의와 황소 등이 고을을 약탈하여 금백과 양식이 많습니다. 이들 도적 무리는 용이하게 격파할 수 있으니 그 양식을 취하여 삼군을 양성하면 조정에서도 기뻐하고 백성도 즐거워할테니 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하였다. 조조가 기뻐하여 따르고, 하후돈과 조인을 남겨 견성 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병력을 이끌고 진지를 거둬 여남과 영천으로 가서 머물렀다. 황건적 하의와 황소가 조조의 군대가 도착한 것을 알고 무리를 이끌고 나와 양산에 모였다. 당시 적병이 수는 많았으나 모두 여우나 개 떼 같이 대형을 갖추지 못했다. 조조가 강한 활과 굳센 쇠뇌로 사격하라 하고 전위를 출격시켰다. 하의도 부원수를 출전시키지만 3합이 안 되어서 전위의 극에 찔려 낙마했다. 조조가 무리를 이끌고 기세를 타고 추격하여 양산을 지나 영채를 세웠다.
次日,黄劭自引军来。阵圆处,一将步行出战,头裹黄巾,身披绿袄,手提铁棒,大叫:“我乃截天夜叉何曼也!谁敢与我厮斗?”曹洪见了,大喝一声,飞身下马,提刀步出。两下向阵前厮杀,四五十合,胜负不分。曹洪诈败而走,何曼赶来。洪用拖刀背砍计,转身一踅,砍中何曼,再复一刀杀死。李典乘势飞马直入贼阵。黄劭不及提备,被李典生擒活捉过来。曹兵掩杀贼众,夺其金帛、粮食无数。何仪势孤,引数百骑奔走葛陂。正行之间,山背后撞出一军。为头一个壮士,身长八尺,腰大十围,手提大刀,截住去路。何仪挺枪出迎,只一合,被那壮士活挟过去。余众着忙,皆下马受缚,被壮士尽驱入葛陂坞中。
이튿날 황소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오는데, 둥글게 진을 친 곳에서 한 장수가 걸어서 출전하는데 머리에 황건을 두르고 몸에 녹색 웃옷을 걸치고 손에 쇠 몽둥이를 들고 크게 외치기를,“내가 절천야차(하늘도 끊는 악귀) 하만이다! 누가 감히 나와 맞서 싸우겠느냐?”했다. 조홍이 그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려 말에서 뛰어내려 칼을 뽑아들고 걸어나갔다. 두사람이 진 앞에서 맞서 싸우는데 4, 5십 합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홍이 거짓으로 패한 척 달아나니 하만이 쫓아갔다. 조홍이 칼을 끌고 달아나다가 뒤돌아서 베는 계책을 써서 몸을 돌려 뛰어올라 하만을 베고 다시 한번 칼을 휘둘러 죽였다. 이전이 기세를 타고 말을 달려 적진으로 돌입했다. 황소가 미처 대비하지 못하여 이전에게 사로잡혀 왔다. 조조의 군사들이 적들을 덮쳐 빼앗은 금과 비단, 양식이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하의가 세력이 외롭게 되자 수백 기를 이끌고 갈피로 달아났다. 가는 도중에 산 뒤쪽에서 한무리 군사가 나와서 막아섰다. 선두의 장사는 신장 8척이고 허리 크기가 열 아름인데 손에 큰 칼을 들고서 가는 길을 막았다. 하의가 창을 꼬나쥐고 나가서 맞서지만 단지 1합에 그 장사에게 사로잡혀 꿰어차졌다. 나머지 무리는 놀라서 모두 말에서 내려서 포박을 받으니 그 장사가 모두 갈피의 보루 안으로 몰고 갔다.
却说典韦追袭何仪到葛陂,壮士引军迎住。典韦曰:“汝亦黄巾贼耶?”壮士曰:“黄巾数百骑,尽被我擒在坞内!”韦曰:“何不献出?”壮士曰:“你若赢得手中宝刀,我便献出!”韦大怒,挺双戟向前来战。两个从辰至午,不分胜负,各自少歇。不一时,那壮士又出搦战,典韦亦出。直战到黄昏,各因马乏暂止。典韦手下军士,飞报曹操。操大惊,忙引众将来看。次日,壮士又出搦战。操见其人威风凛凛,心中暗喜,分付典韦,今日且诈败。韦领命出战;战到三十合,败走回阵,壮士赶到阵门中,弓弩射回。操急引军退五里,密使人掘下陷坑,暗伏钩手。
한편, 전위가 하의를 뒤쫓아서 갈피에 이르렀는데, 장사가 군을 이끌고 나와서 맞이했다. 전위가 말하기를,“너도 황건적이냐?”하니, 장사가 말하기를,“황건적 수백 기를 모두 내가 사로잡아 보루 안에 있다!”고 했다. 전위가 말하기를,“어째서 갖다 바치지 않느냐?”하니, 장사가 말하기를,“네가 만약 수중의 보도를 넘기면 내 곧 바치마!”했다. 전위가 크게 노하여 쌍철극을 겨누어 돌진하여 싸웠다. 둘이 진시(오전8시)부터 오시(12시)까지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으므로 각자 잠깐 쉬었다. 얼마 안 돼 그 장사가 다시 나와서 싸움을 거니 전위도 나갔다. 바로 황혼까지 싸우다가 각자 말이 피곤하여서 잠시 멈추었다. 전위의 수하 군사가 급히 조조에게 알리자 조조가 크게 놀라서 바삐 여러 장수를 이끌고 와서 보았다. 이튿날 그 장사가 다시 나와서 싸움을 걸었다. 조조가 그 사람을 살펴보니 위풍이 늠름하여서 마음 속으로 가만히 기뻐하며, 전위에게 분부하여 오늘은 거짓으로 패하라고 하였다. 전위가 명을 받들고 출전하여서 30여 합을 싸우고서 패주하여 진으로 돌아온다. 장사가 진문 안까지 뒤쫓자 활과 쇠뇌를 쏘아 돌려보냈다. 조조가 급히 군사를 5리쯤 퇴각시키고 몰래 함정을 파고 갈고리 군사를 매복시켰다.
次日,再令典韦引百余骑出。壮士笑曰:“败将何敢复来!”便纵马接战。典韦略战数合,便回马走。壮士只顾望前赶来,不提防连人带马,都落于陷坑之内,被钩手缚来见曹操。操下帐叱退军士,亲解其缚,急取衣衣之,命坐,问其乡贯姓名。壮士曰:“我乃谯国谯县人也,姓许,名褚,字仲康。向遭寇乱,聚宗族数百人,筑坚壁于坞中以御之。一日寇至,吾令众人多取石子准备,吾亲自飞石击之,无不中者,寇乃退去。又一日寇至,坞中无粮,遂与贼和,约以耕牛换米。米已送到,贼驱牛至坞外,牛皆奔走回还,被我双手掣二牛尾,倒行百余步。贼大惊,不敢取牛而走。因此保守此处无事。”操曰:“吾闻大名久矣,还肯降否?”褚曰:“固所愿也。”遂招引宗族数百人俱降。操拜许褚为都尉,赏劳甚厚。随将何仪、黄劭斩讫。汝、颍悉平。
이튿날, 다시 전위에게 1백여 기를 이끌고 나가도록 하였다. 장사가 웃으며 말하기를,“패장이 어찌 감히 다시 오냐!”하고, 말을 몰아서 접전했다. 전위가 몇 합 싸우다가 문득 말을 돌려 달아났다. 장사가 앞만 보고 쫓아오다가 느닷없이 사람과 말이 함께 함정 안으로 떨어지니 갈고리 군사들이 포박하여서 조조에게 끌고 온다. 조조가 장막 아래 나와서 군사들을 꾸짖어서 물리치고 친히 포박을 풀어주고서 급히 옷을 벗어 입히고 자리에 앉힌 뒤 그의 본관과 성명을 물었다. 장사가 말하기를,“저는 초국 초현 사람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저이며 자는 중강입니다. 일찍이 도적이 난을 일으키자 종족 수백 인을 모아 보루를 튼튼히 쌓아서 방어했습니다. 어느날 도적들이 몰려오므로 제가 사람들에게 돌맹이를 준비토록 하고서 제가 앞장서서 돌을 던져 공격하니 명중되지 않는 자가 없어 도적들이 곧 물러갔습니다. 또 어느날 도적들이 몰려왔는데 보루 안에 양식이 떨어져서 도적과 화친하고 농사짓는 소와 쌀을 바꾸었습니다. 쌀을 받고나서 도적들이 소를 몰아서 보루 밖으로 갔는데 소들이 모두 달려서 되돌아오기에 제가 두 손으로 소 두 마리 꼬리를 잡고서 꺼꾸로 백 보를 끌고 갔습니다. 도적들이 크게 놀라서 감히 소를 받지도 않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이로부터 여기를 지키는데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내가 그대의 큰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소. 이제 내게 투항하지 않겠소?”하니, 허저가 말하기를,“진실로 바라던 바입니다.”하고, 곧 종족 수백인 불러서 모두 투항시켰다. 조조가 허저를 도위(군사보좌관)로 삼고 매우 후하게 포상하고 대접했다. 이어서 하의와 황소를 베어버리고 여남과 영천을 모두 평정했다.
曹操班师,曹仁、夏侯惇接见,言近日细作报说:兖州薛兰、李封军士皆出掳掠,城邑空虚,可引得胜之兵攻之,一鼓可下。操遂引军径奔兖州。薛兰、李封出其不意,只得引兵出城迎战。许褚曰:“吾愿取此二人,以为贽见之礼。”操大喜,遂令出战。李封使画戟,向前来迎。交马两合,许褚斩李封于马下。薛兰急走回阵,吊桥边李典拦住。薛兰不敢回城,引军投巨野而去;却被吕虔飞马赶来,一箭射于马下,军皆溃散。
조조가 회군하니, 조인과 하후돈이 접견한 뒤, 간첩의 최근 첩보를 말하였다. 연주의 설란과 이봉의 군사가 모두 나와서 노략질하느라 성읍이 공허하므로 승전한 병사를 이끌고 가서 치면 북소리 한 번으로 함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조가 곧 군을 이끌고 연주로 질러갔다. 설란과 이봉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적이 나타나자 어쩔 수 없이 성을 나와 맞서 싸웠다. 허저가 말하기를,“저 둘을 제가 잡아서 주공을 뵌 예물로 삼고 싶습니다.”하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곧 그를 출전시켰다. 이봉이 화극을 들고 앞으로 나와 적을 맞이했다. 말이 엇갈리고 두 합만에 허저가 이봉을 베어서 말에서 떨어뜨렸다. 설란이 급히 진으로 달아나는데 적교 옆에서 이전이 막아섰다. 설란이 감히 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거야로 가는데, 다시 여건이 나는듯이 말을 달려 뒤쫓아서 활을 쏘아 한 발에 맞혀 말 아래 떨어뜨리니, 그 군사들이 모두 무너져 흩어졌다.
曹操复得兖州,程昱便请进兵取濮阳。操令许褚、典韦为先锋,夏侯惇、夏侯渊为左军,李典、乐进为右军,操自领中军,于禁、吕虔为合后。兵至濮阳,吕布欲自将出迎,陈宫谏:“不可出战。待众将聚会后方可。”吕布曰:“吾怕谁来?”遂不听宫言,引兵出阵,横戟大骂。许褚便出。斗二十合,不分胜负。操曰:“吕布非一人可胜。”便差典韦助战,两将夹攻;左边夏侯惇、夏侯渊,右边李典、乐进齐到,六员将共攻吕布。布遮拦不住,拨马回城。城上田氏,见布败回,急令人拽起吊桥。布大叫;“开门!”田氏曰:“吾已降曹将军矣。”
조조가 연주를 다시 얻자, 정욱이 곧 요청하기를 복양으로 진격하여 빼앗으라고 하였다. 조조가 허저와 전위를 선봉으로 삼고, 하후돈과 하후연을 좌군으로,이전과 악진을 우군으로 삼으며, 조조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우금과 여건에게 후미를 맡겼다. 병력이 복양에 이르자, 여포가 자신이 나가 맞서려 하자 진궁이 간하기를,“출전해선 안 됩니다. 여러 장수가 모이길 기다린 뒤에 출전해야 합니다.”하니, 여포가 말하기를,“내가 누가 온다고 두렵겠소?”하고, 곧 진궁의 말을 듣지 않고서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더니, 극을 빗겨들고 크게 욕을 했다. 허저가 곧 출격하여 2십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조가 말하기를,“여포를 혼자서는 이길 수 없소.”하고, 곧 전위를 보내어서 싸움을 돕게 하니 두 장수가 협공했다. 왼쪽의 하후돈과 하후연, 오른쪽의 이전과 악진도 일제히 달려와서 여섯 장수가 함께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가 견디지 못하고 말을 돌려서 성으로 돌아갔다. 성 위에서 전씨가 여포가 패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급히 적교를 걷어올리게 했다. 여포가 크게 외치기를,“문을 열어라!”하니, 전씨가 말하기를,“나는 이미 조 장군에게 항복했소.”하였다.
布大骂,引军奔定陶而去。陈宫急开东门,保护吕布老小出城。操遂得濮阳,恕田氏旧日之罪。刘晔曰:“吕布乃猛虎也,今日困乏,不可少容。”操令刘晔等守濮阳,自己引军赶至定陶。时吕布与张邈、张超尽在城中,高顺、张辽、臧霸、侯成巡海打粮未回。操军至定陶,连日不战,引军退四十里下寨。正值济郡麦熟。操即令军割麦为食。细作报知吕布,布引军赶来。将近操寨,见左边一望林木茂盛,恐有伏兵而回。
여포가 크게 욕하고서 군사를 이끌고 (장막이 있는) 정도로 달아났다. 진궁이 급히 (복양성) 동문을 열고, 여포의 노소 가족을 보호하여 성을 나갔다. 조조가 마침내 복양을 얻고 전씨의 전날 죄를 용서했다. 유엽이 말하기를,“여포는 바로 맹호이니 오늘 곤핍하다고 작은 틈을 줘선 안 됩니다.”하니, 조조가 유엽 등에게 복양을 지키도록 하고, 스스로 군을 이끌고 정도로 뒤쫓았다. 이때 여포가 장막 장초와 함께 모두 성중에 있었는데, 고순 장요 장패 후성은 해안 지방을 따라서 곡식을 구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조조의 군사가 정도에 이르렀으나 여러 날 싸우지 않으므로 군을 이끌고 4십리를 물러나서 진지를 세웠다. 마침 제군의 보리가 익었으므로 조조가 군사에게 영을 내려 보리를 베어서 식량으로 했다. 간첩이 이것을 여포에게 보고하니, 여포가 군을 이끌고 추격하여 조조의 진지 가까이 갔으나, 왼쪽에 수목이 무성하여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서 돌아갔다.
操知布军回去,乃谓诸将曰:“布疑林中有伏兵耳,可多插旌旗于林中以疑之。寨西一带长堤,无水,可尽伏精兵。明日吕布必来烧林,堤中军断其后,布可擒矣。”于是止留鼓手五十人于寨中擂鼓;将村中掳来男女在寨内呐喊。精兵多伏堤中。
조조가 여포의 군사가 돌아간 것을 알고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여포가 숲속에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였으니, 숲속에 깃발을 많이 꽂아서 (더욱) 의심하게 만들어야 하오. 진지의 서쪽 일대에 긴 둑에 물이 없으니 정예병을 모두 매복시킬 만하오. 내일 여포가 반드시 와서 숲에 불을 지를테니 둑에 숨은 군사가 그 뒤를 끊으면, 여포를 잡을 수 있소.”하였다. 이에 고수 5십 명만 진중에 남겨서 북을 두드리게 하고, 마을에서 남녀들을 잡아와서 진중에서 함성을 지르게 했다. 많은 정예병들은 둑 속에 매복하였다.
却说吕布回报陈宫。宫曰:“操多诡计,不可轻敌。”布曰:“吾用火攻,可破伏兵。”乃留陈宫、高顺守城。布次日引大军来,遥见林中有旗,驱兵大进,四面放火,竟无一人。欲投寨中,却闻鼓声大震。正自疑惑不定,忽然寨后一彪军出。吕布纵马赶来。炮响处,堤内伏兵尽出:夏侯惇、夏侯渊、许褚、典韦、李典、乐进骤马杀来。吕布料敌不过,落荒而走。从将成廉,被乐进一箭射死。布军三停去了二停,败卒回报陈宫,宫曰:“空城难守,不若急去。”遂与高顺保着吕布老小,弃定陶而走。曹操将得胜之兵,杀入城中,势如劈竹。张超自刎,张邈投袁术去了。山东一境,尽被曹操所得。安民修城,不在话下。
한편, 여포가 돌아와서 진궁에게 알려주니 진궁이 말하기를,“조조는 속임수가 많으니 가볍게 맞설 수 없습니다.”하였다. 여포가 말하기를,“내가 화공을 써서 복병을 깰 수가 있소.”하고, 진궁과 고순은 머물러서 성을 지키게 했다. 이튿날 여포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멀리서 보니 수풀 속에 깃발이 있으므로 병사를 몰아서 크게 진격하여 4면으로 불을 지르지만 끝내 한 사람도 없다. 진지 안으로 돌입하려 하자,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스스로 의혹이 일어서 가라앉지 않는데 갑자기 진지 뒤에서 한 무리 군마가 출현하니 여포가 말을 몰아서 추격했다. 호포 소리가 들리더니 둑 속에서 복병이 모두 튀어나왔다. 하후돈 하후연 허저 전위 이전 악진이 말을 몰아서 쇄도했다. 여포가 감당할 수 없다고 헤아리고서 황망히 달아났다. 뒤따르던 성렴이 악진의 화살 한 발을 맞고 죽었고, 여포의 군사 중 3분의 2를 잃었다. 패한 군졸이 진궁에게 돌아가서 알리니 진궁이 말하기를,“성이 비어서 지키기 어려우니 급히 떠나는 게 좋겠다.”하고 곧 고순과 함께 여포의 가족을 보호하여 정도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조가 승리를 거둔 병력을 거느리고 성 안으로 쇄도하니 파죽지세였다. 장초는 자살하고 장막은 원술에게 갔다. 산동 일대가 모두 조조의 차지가 되었다. 백성을 안정시키고 성을 수리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却说吕布正走,逢诸将皆回。陈宫亦已寻着。布曰:“吾军虽少,尚可破曹。”遂再引军来。正是:兵家胜败真常事,卷甲重来未可知。
한편, 여포가 달아나다가 여러 장수가 모두 돌아오는 것을 만났다. 진궁도 역시 찾아왔다. 여포가 말하기를,“우리 군사가 비록 적지만, 아직 조조를 격파할 수 있소.”하고, 다시 군사를 이끌고 왔다. 이야말로, 싸우다보면 이기고 지는 것은 늘 있는 일이라, 갑옷을 걷고 (행군하여) 다시 오니 아직 (승패를) 모르겠네.
不知吕布胜负如何,且听下文分解。
여포가 이길지 질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