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종 vs 선종
교종은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그것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이에 따라 불교의 진리가 담고 있는 경전과 불교의 교리를 최우선시한다. 이와 달리 선종은 모든 인간이 불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며 수행과 해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곧부터의 성품임을 깨닫고 부처가 되는 것을 강조한다. 교종과 선종 중 무엇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선종이 교종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깨달음은 글이나 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과 말은 내가 표하고자 하는 의미를 온전히 타인에게 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언어 글자로 공유하는 상징 질서에 의해 말은 통하지만 그 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온전한 의미는 통하지 못합니다.
우린 쉽게 '배고프다'라고 하지만 어떤 수식어나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내 배고픈 느낌, 위장의 감각을 다 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종은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통해 깨달음을 말합니다.
경전에는 부처의 말씀과 가르침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말과 글이 온전히 깨달음을 전달 할 수 없기에
그것만으로는 가르침을 다 이해할 수 없어 별도로 말과 글 이외에 따로 전한다 하여 교외별전이라 합니다.
불립문자는 문자로써 가르침을 세우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직지인심과 견성성불은 내 마음을 곧게 가리켜,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선종의 화두를 다룬 책 무문관 21칙 '운문시궐'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어느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운문 스님은 "마른 똥 막대기"라고 말했다. -
오래도록 전해져온 경전이나 부처가 했다는 말씀은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형이상학적이고 어려운 말씀을 이해하고, 외우고, 따르고, 지키면 깨달음에 이를 것만 같습니다.
경전의 문자와 이론을 강조하고 권위를 부여할수록 위계질서에 갇히고 맙니다.
경전에 능통한 사람이 경전에 무지한 사람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됩니다. 아예 부처가 더 높고 부처의 뜻을 배우는 우리는 낮아집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선종에서 말하는 '내 자신이 곧 부처다' 앞에서 해결됩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묻는 질문에는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는 깨달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부처를 찾는다는 것은 권위를 숭배하는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음을, 부처를 찾아 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찾은 깨달음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권위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을 때 곧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내 깨달음이 옳은 방향인지를 확인받기 위해 경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서적 : 강신주. 『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동녘(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