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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보 시집 해설>
山行과 節侯에 따른 詩 창작의식
박 영 교
(시인 ․ 전 한국 시조시인협회 수석부이사장)
심성보 시인의 시집『나의 노래 나의 시』원고를 받아보고 이 시인은 다재 다는(多才多能)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도 나올뿐더러 그의 살아온 발자취가 넌지시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성보 시인의 작품 전체를 읽어보면서 시조, 시, 동시조, 동시 등 시(詩)라는 같은 부문(部門)이기는 하지만 다양하게 접근해 보려는 실험의식이 강하면서 표출(表出)하는 방법적(方法的)인 문제도 생각해 보았다. 시집원고 전 작품을 훑어보면 제1부는 시조편이고, 제2부는 24절후(節侯)에 따른 시편이며 제3부는 자유시 편, 제4부는 동시조(童時調) 편이다.
시인(詩人)이 작품집(作品集)을 낸다는 것은 흔히 처녀가 출산(出産)하는 인고(忍苦)의 아픔을 언급(言及)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결국 시인 당자는 그 아픔이나 그 인고의 세월보다 더한 시인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시인도 있을 것이다.
좋은 시의 출산은 시인이 평생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잘 읽힐 시편은 단 한 편의 시를 남기면 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시인이 살아가면서 그렇지 못한 시인이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시인의 작품은 그 시인이 살아 있을 때 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시인이 죽고 난 후,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많은 독자들에 의하여 회자(膾炙)되면서 살아남게 되는 작품들이 평가(評價)되는 것이다.
시집 해설(解說)을 붙이거나 시 해설을 써서 시 전문지나 문학전문지에 발표하는 것은 한 사람 독자(讀者)의 입장에서 시적(詩的) 감상(感想)을 서술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시(詩)는 언어를 다루는 언어예술(言語藝術)이다. 그러므로 시는 어떤 때에는 작품을 낯설게도 만들고, 어떤 때에는 비굴하게도 표출되기도 하며, 때로는 은유(metaphor)로써 시적 은폐도 시키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그보다 더 어려운 상징적(象徵的) 모험(冒險)도 독자들에게 표현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Ⅰ
큰 추위 지났으니 새 봄이 곧 오겠지
가랑잎 쓸어 내고 언 땅을 헤쳐 보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희미하게 봄 내음 나
Ⅱ
북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바라 보네
아랫녘엔 하마 벌써 새 봄이 왔나보이
못 듣던 산새 소리가 들리는 게 말 일세
― <봄소식> 전문
작품<봄소식>에서 심성보 시인은 겨울 지나 봄을 맞이하면서 가랑잎을 쓸어내고 땅속에서 솟아나는 봄소식을 느끼게 하고 있는 작품이다. 둘째 수에서는 북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면서 남녘(대한민국)에는 봄이 온 것을 느끼는데 기러기 떼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북녘(북한)에는 아직도 겨울이 시작 되고 있구나. 남쪽에는 못 듣던 산새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면서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북녘의 언 땅, 즉 동토(凍土)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도 부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시인의 촉수(觸手)는 살아있어 조그마한 느낌에도 흔들리면서 높게 작용(作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시집을 출간(出刊)한다는 것은 시인이 살아있기 때문이며 살아서 작품을 발표하여서 시인 자신의 입지(立志)를 세워 후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자기(시인) 평생 단 한 편의 시만이라도 모든 독자들에게 잘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가는 해 보내려니 가슴이 허전하다
가지 새 마른하늘 넋 없이 바래다가
빈 마음 추스르려는 데 문득 뵈는 한 마리 새
어느 새 봄 인가요 발그레 움이 돋는
잎도 나고 꽃도 피고 벌 나비도 날아들고
그러다 여름 가을도 덩달아 오겠지요
― <빈 가슴> 전문
작품<빈 가슴>은 한 해를 다 보내는 세모(歲暮)에 서서 보니 세월(歲月)이 무상하게 빨리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시의 뉘앙스(nuance)는 세월이 가는 것에 대한 쓸쓸하고 씁쓸함이 느껴지는 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이나 동물 또는 모든 사물에게는 다 이길 수가 있어도 시간 또는 세월 앞에서는 천하장사(天下壯士)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詩人)은 잘 알고 있다. 인간(人間)의 나이 지천명(知天命)에 달하면 산 정상(頂上)에서 내려가는 것이 되어 누가 뒤에서 내리 밀어주는 듯이 너무나 빨리 세월이 가는 것을 느낀다.
시인이 작품을 창작(創作)할 때에는 어떤 상황의식(狀況意識)에서 모티프(motif)를 얻게 되는데 그 것이 어디에서 얻어지던지 항상 정서적(情緖的)으로 긍정적(肯定的)인 상황(狀況)이면서 오래도록 세월을 두고 읽힐 수 있도록 작품을 써야 한다.
잦아진 새 소리에 게으른 낮후 무렵
연 분홍 꽃잎들이 취한 듯 비행한다
졸리운 눈 거슴츠레 봄볕에 껌벅이다
바람에 쓸려가는 영화로운 꽃잎들아
보내는 안타까움 아쉬운 별리 인사
내 마음 흠신 적시고 무념에 빠뜨리다
― <어느 봄날 하루> 전문
살다가 보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사소한 일인데 본인(시인) 자신은 아주 큰 데미지를 받을 때가 있다.
작품<어느 봄날 하루> 에 생긴 일인 것 같다.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나보다.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떨어지는 꽃잎의 날리는 상황은 안타까움, 이별(離別)의 그 아픔, 그리고 시인의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느끼는 상황을 작품화하고 있다.
머언 먼 고향 땅의 향기로 남아 있다
가슴에 그리움으로 살아 온 여인이여
따스한 네 볼웃음이 문득 보고 싶구나
― <찔레꽃> 전문
작품<찔레꽃>을 보면서 농촌에 고향을 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찔레와 인연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찔레 순이나 찔레꽃잎을 따서 먹어보거나 찔레가시에 찔려서 피를 낸 적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시인이 찔레를 의인화(擬人化)시켜 표현(表現)하고 있으며 그 그리움은 한 여인(女人)을 상상해 보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으며 작품의 은폐를 전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산 속을 쏘다니니 마음이 유여(裕餘)하다
돌부리 풀 한 포기 그 모두 정에 겨워
산에서 살고 싶은 맘 나이 들자 생긴 병
엊그젠 비가 오고 오늘은 날이 개고
담을 그릇 신통찮은 가난한 나의 마음
날 새면 열리는 하루 늘 새로움에 즐겁다
삼성산 관악산 모락산 백운산
어디든 발 딛으면 말없이 나를 반겨
깊은 정 주고 싶어서 쓰레기를 줍는다
― <산이 좋아 > 전문
작품<산이 좋아 >는 시인이 등산(登山)을 좋아하며 모든 산, 그 중 시인이 가보고 싶은 산을 등산하며 그곳의 풍광(風光)을 그린 시들이 많다.
이 작품 첫 수에서는 산을 등산하면서 우리나라 산 속 돌부리, 풀 한 포기 등에 정을 주며 산에서 살고 싶은 맘 나이 들면서 생겨진 병이라고 했다. 즉 나이 들면서 자연에 귀의(歸依)하고 싶어 하는 맘이 생긴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비가 온 뒤에 갠 하늘은 투명(透明)하고 맑으며 거기에 시인의 가난한 마음 한결 좋고 새로운 하루를 늘 새롭게 맞는다. 셋째 수는 관악산, 모락산, 백운산 등 어디든 그 산을 오르면 시인을 반겨주고 그 깊은 정에 시인은 깨끗한 산이 되라고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고 돌아온다.
바람이 없다 해도 들판엔 가지 마라
네 놀 곳은 집 앞의 해 바른 작은 뜨락
고달픈 인생 굽이굽이 네 미소로 웃느니
― <채송화(菜松花)> 전문
<채송화(菜松花)>라는 작품은 시인이 의인화(擬人化) 시켜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채송화를 어린 아이로 취급하는 것 같다. 물론 키가 작고 어리게 보이고 또 다른 식물(植物)에 비해 힘도 없으면서 여린 식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바람을 받으면 쓰러질 것 같은 마음에“바람이 없다 해도 들판에는 가지말라고 명령법(命令法)을 써서 표현(表現)하고 있다. 오직 양지(陽地) 바른 뜨락에서 놀아라. 고달픈 인생살이에 너의 꽃피고 웃는 모습으로 즐거움을 얻는다고 시인은 토로(吐露)하고 있다.
가끔씩 눈을 돌려 하늘을 볼 일이다
지난 일 돌아 보며 무엇을 어찌 할지
인생사 굽이굽이라 바로 가고 있는지
구르다 돌아보니 휑하니 비인 벌판
나설 때 더웠던 눈빛을 생각하니
반굽이 인생 허허로와 눈이 스륵 감긴다
― <무제(無題) Ⅱ> 전문
작품 <무제(無題) Ⅱ>는 인생(人生)을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하늘이나 자연을 보며 여유(餘裕)로움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바른 걸음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무엇을 어찌하면서 사는지, 자신을 뒤돌아보며 걸어가자고 시인은 호소한다. 마치 ‘今日 我行跡이’ 遂作 後人程’이라는 시구(詩句)와 비슷한 시인의 생각이다. 둘째 수는 살아가다 보니 빈 벌판에 내가 서 있고 떠나 올 때는 더웠던 눈빛들이 반굽이 인생을 돌아 와 보니 허허로움만 내 앞에 전개되어 스스로 눈이 감긴다는 인생허무(人生虛無)의 노래이다.
인생은 여럿이 있어 즐거울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처, 자식, 손자 그리고 모든 식구들과 이별 해야만 될 때가 온다. 즉 인생의 종국(終局)에는 자기 혼자인 것이다. 죽음에 이르면 남(他人)이 대신 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혼자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꽃 구름 피어 나는 푸른 산 절애 아래
불어오는 강바람에 더운 몸 맡기는데
쓰르람 목 빼기 소리에 스르르 잠이 든다
― < 매미> 전문
< 매미>는 여름 한 철(1~2개월) 울기위해 애벌레로 땅 속에 들어 간 후에 5~7년 동안 땅 속의 나무뿌리의 즙이나 다른 것들의 즙을 먹으면서 살다가 땅 속에서 드디어 나와서 허물을 벗는다. 허물을 벗는 시간은 약20분쯤 걸리며 매미로 변신한다. 그런 후에 매미는 새롭게 태어나서 약1~2개월을 여름 해에 살다가 일생(一生)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름 햇볕을 받으며 매미는 약1~2개월을 이 세상에 나와 울기위해 땅속을 7여 년 동안 준비를 하여 그렇게 허무한 짧은 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시인(사람들도)은 그것을 알고 그의 노래(울음)를 들으며 그늘을 배경으로 잠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 찌르릉 우는 소리
마음은 고향 하늘 부모님께 절 올린다
자랄 적 속 썩인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
―<백로(白露)> 전문
24절기의 하나인 <백로(白露)>를 지나면 아침이슬이 내리고 논두렁을 걸어가면 바지가랑이에 이슬이 묻어 가랑이가 다 젖어오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백로를 분깃 점으로 해서 모든 벼들은 이삭이 나와야하고 백로 이전에 벼이삭이 다 패야만 곡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로 이후에는 논에 가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여기 심성보 시인은 달빛이 은은한 저녁 무렵에 여치나 곤충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시인의 마음은 고향하늘 아래 부모님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마음의 절을 올린다. 어머님, 아버지의 마음 아프게 한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려지며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문을 막는 것이다. 세월을 이기는 자는 없다고 했다.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현시점에서 부모님께 사죄의 마음 올리는 길 뿐이다.
석양에 기대여서 온 산을 물들이다
쓸쓸히 지는 잎 새 해 보내는 이별의 장
흰머리 주름살 늘리는 새벽 가는 깊은 시름
―<한로(寒露)> 전문
한로(寒露)는 24절기 중 17번째의 절기로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의 절기로서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수확하는 시기이다. 또 산야(山野)의 모든 단풍(丹楓)들이 짙은 빛깔을 내고 제비와 같은 여름새들과 기러기 같은 겨울새들이 서로 교체(交替)가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인은 석양을 바라보면서, 온 산들의 붉어지는 것에 석양이 더하는 붉은 빛들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쓸쓸히 지는 잎 새의 넘어 가는 해, 이별의 장을
느끼면서 흰 머리 주름살 늘어가는 새벽이 지나는 깊은 시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길가에 군밤 장수 하나 둘 늘어나고
찹쌀떡 외쳐 대는 겨울밤 서는 장터
눈마저 펄펄 내리면 세상은 잠에 들고
―<대설(大雪)> 전문
대설(大雪)은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로 시기적으로는 음력 11월, 양력으로는 12월 7~ 8일 무렵에 해당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에 드는 입동(立冬)과 소설,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 그리고 12월의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이라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추분(秋分)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 여긴다.
24절기 중 대설이 있는 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하다.
시인은 작품<대설(大雪)>을 통하여 일어나는 삶속에서 얻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가지고 작품화(作品化)하고 있다. 먼저 길가의 군밤장수, 군고구마장수, 붕어빵 장수들이 속속 늘어나고 찹쌀떡 장사하는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들, 눈마저 펄펄 내리는 대설(大雪)은 온 세상이 하얗게 새로운 세상으로 열리는 것을 시인(詩人)은 노래하고 있다.
이글거리는 욕망,
걷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탐닉하다
굵은 땀 방울
송 송 송,,,,
8월도
따갑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우렁차게 길게 내어 지르는 교성
매암 매암 매암,,,,
적막 산중
한가득 열정으로
새까맣게 태워버린
송이 송이 송이,,,,
―<포도(葡萄)> 전문
작품<포도(葡萄)>는 자유시(自由詩)이다. 3연으로 구성한 작품으로 포도의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서 가을 속에서 까맣게 익어가는 과정을 형상화(形象化)한 작품으로 보인다.
작품의 첫 연에서는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포도를 가꾸는 농부들의 노고를 포도에비유하여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보람으로 치환(置換)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8월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는 매미의 소리를 표출하면서 뜨거움으로 포도가 익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연에서는 적막 산중에서 열정을 다해 새까맣게 익는 포도송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꽃 필 무렵엔
꽃향기에 취해
하늘을 번쩍 들어 올렸다
새 까만 구름이 몰려와
우르릉 쾅! 쾅!
으름장 놓을 땐 두려워서
꽁 꽁 숨어 버렸다
매암 소리 응원 들으며
조심조심 날아오르던
고추잠자리
어느 때부터이던가
좁다며
높이 들어 올린 하늘에 즐거워
철없는 개구쟁이들 마냥
열매들만
신바람에 여물어 가네
―<고추잠자리> 전문
작품<고추잠자리>도 자유시(自由詩)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고추잠자리’를 등장시켜 열매가 익어가면서 푸른 하늘이 점점 높게 떠올라 가을이 다가온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는 가을의 푸른 하늘이 높다는 의미를 심성보 시인은 ‘하늘을 번쩍 들어올렸다’ ,‘높이 들어 올린 하늘’로 나타내면서 가을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며 고추잠자리의 의미도 높이고 있다.
오월 어느 날 하루
그날 그가 갔다
하늘 강에 풍덩!
푸르디푸른 솔향 가득한 오월을
붉게붉게 너울너울 물들이고 그가 갔다
한때
오뉴월 무서리에 찢기고 발기어져
검붉게 물 들였던 강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닮으렸던가
어리게도 너울을 탐하는 사람들
남기고
두려워 꽁꽁 숨으려던 자들 남기고
그가 가고
아카시아
타는 향내, 허리에 두르고
핏빛 물 들였던 강을
하얗게 하얗게 씻고 있다
―<오월의 강> 전문
자유시 작품<오월의 강>은 ‘그’라는 사람이 친구이거나 아는 분이거나 아니면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솔향 가득한 오월을 붉게 물들이고 죽음에 이른 사람, 그는 누구인가.
한때는 검붉게 물들인 강을 그리워했던 그, 너울을 탐하는 자들을 남기고
두려워 숨어버린 자들을 남기고 그가 가버렸다. 이제는 아카시아 꽃 타는 향내를 허리에 두르고 핏빛 물들인 강을 아카시아 꽃향기로 하얗게 씻어 내리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제 4부는 동시조(童時調) 편이다. 심성보 시인은 한 시집 안에 시조를 주축으로 하면서 3부에는 자유시(自由詩) 편의 작품을 싣고 있으며 4부에는 동시조(童時調)를 싣고 있어 한 시인이 다양한 실력을 과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모래밭에 놀다가 조약돌을 잃었어요
짝지가 준 생일 선물 참 예쁜 조약돌
내 바지 앞 주머니에 넣고 놀다 잃었죠
―<선물> 전문
작품 <선물>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려서 짝지가 준 선물인 조약돌을 잃고 친구가 준 성의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그 조약돌을 찾는 길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찾아보면 없고 앞주머니에 넣어놓은 조약돌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이 순수함을 넘어서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숲길을 걸어가다 숲의 말을 엿 들어요
파릇한 녹음 소리 한 바탕 산새 소리
벌레들 놀랄까 쉬엄 가는 바람 소리도 함께요
―<숲 속에서> 전문
작품 <숲 속에서>도 보면 심성보 시인은 너무나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의 심성(心性)이 아주 곱고 때가 묻지 않다는 것을 표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도 독자들로 하여금 찾아볼 수 있어 더욱 이미지가 좋다. 예를 들면 ‘파릇한 녹음의 소리’와 ‘벌레들 놀랄까 쉬엄 가는 바람소리’가 그것이다.
이상에서 심성보 시인의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심성(心性)이 곱고 자연(自然)을 매우 사랑하면서 시조(時調)와 자유시(自由詩) 그리고 동시조(童時調)를 함께 창작하는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 문단에는 장르를 넘나들면서 열심히 쓰는 문인들이 있는데 그 문인(文人)들의 글을 쓰는 에너지는 다른 문인들보다 몇 배를 소모할 뿐만 아니라 생활력(生活力)도 다른 문인들보다 더할 것으로 본다.
등산을 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왜 등산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의 답변은 “등산을 한 번이라도 해보고 질문을 하라.”고 권장하고 있는 말을 듣게된다. 또는 산을 오를 때는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지만 산 정상(頂上)을 정복하고 나면 그 정상에서 쐬는 공기와 내려다보는 기쁨이 일확천금(一攫千金)을 얻은 것보다 더 만끽(滿喫)하게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성보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얻는 기쁨은 시조(時調)의 멋을 얻는 재미와 자유시(自由詩)를 읽어보는 즐거움과 동시조(童時調) 편을 대하면서 동시(童詩)를 쓰려면 시인의 심성이 아이들을 닮지 않으면 결단코 좋은 작품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점을 독자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더욱 훌륭한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