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수도권 지역 12개, 강원도 5개, 충청지역 5개, 호남지역 12개, 영남지역엔 무려 16개소나 됐다. 그런데도 제주에는 하나도 없다. 여러 해 전부터 문학인들이 제주문학관 설립을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행정 당국의 의지 부족이 아닌가 싶다. 새 도정의 문화정책에 기대를 걸어 본다.
지난 5월 말 경, 4.3평화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출판 관계로 서울을 다녀왔다. 그 때 종로구 청운동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기에 찾았다. 야트막한 동산 위의 콘크리트 4각 구조물, 이제까지 보아온 문학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저게 무슨 문학관인가?’라고 의아해 하며 들어섰다.
한 직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기에 제주에서 왔노라 했더니, 먼데서 온 손이라며 친절히 안내해 준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金松)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 생활을 했다. 그는 때로 인왕산에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었다. ‘별을 해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지금도 사랑 받는 그의 대표작들을 이 시기에 썼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종로구청에서는 인왕산 자락 작은 언덕에 버려진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2012년 문학관을 열었다. 그게 윤동주 문학관이다.
가압장이란 느리게 흐르는 수돗물에 압력을 가해 힘차게 흐르도록 하는 시설이다. 윤동주의 시는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는 사람들의 영혼에 활력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기에 윤동주 문학관은 인간 영혼의 가압장치로 형상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1전시실은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이다. 9개의 전시대에는 시인이 살아온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사진 자료와 친필 원고 영인본이 전시돼 있다. 인간 윤동주를 느낄 수 있게 꾸민 것이다.
제2전시실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어 물탱크 윗부분을 뜯어내어 중정을 꾸몄다. 하늘이 환히 보이는 공간, 벽면엔 물탱크에 저장됐던 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끼도록 해 놓았다.
제3전시실은 버려진 또 하나의 물탱크를 이용해 사색의 공간을 조성했다.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휴식 공간 ‘별뜨락 카페 정원’으로 나왔다. 방문객들은 여기에서 차를 마시며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울의 풍경을 조망한다. 이 또한 기쁨의 공간이다. 문학관 뒤로 펼쳐진 ‘시인의 언덕’을 더듬어 오른다. 산책로를 3~4분 걸어 오르니 노송과 어우러진 시비가 청와대를 바라보며 서 있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시비 앞 잔디 위에 앉아 시인 윤동주에 대한 강설을 듣고 있다. 나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잠시 학생이 된 기분이다.
버려진 물탱크를 활용한 조그만 문학관,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어엿한 문학관을 설립한 그 발상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제주에도 이런 소규모 문학관 하나 지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6.25전쟁으로 제주에 피란 와서 제주문학의 씨를 뿌린 사람,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 그와 함께했던 시인 양중해도 소설가 최현식도 이젠 고인이 됐지만, 날마다 찾아와 글 쓰고 문학을 얘기하던 칠성로 옛 동백다방 앞엔 그의 기적비가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도카니 앉아 있다. 그를 기리는 문학관 하나 지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첫댓글 새 도정이 들어서면 제주에도 반드시 문학관이 세워질것이라고 예상 해 봅니다.
이왕이면 큰 문학관으로 건립 되였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