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인간의 마음을 곧잘 알아들었다. 소나무마다 귀신(樹木神)이 있었고, 나랏님의 부르심 받은 소나무에게는 고유제와 산신제까지 지낸 후 대목수가 “어명(御命)이요!”하고 외쳐야 순순히 포박 당했다.
도내의 소나무들이 빨갛게 죽어가고 있다. 대부분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충 확산 조짐, 생태계 교란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그 밖의 원인도 있다. 알만한 도민이면 다 알고 있다. 소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저주였다.
“조림한다고 소나무를 너무 많이 심었으니 더러 죽어야지.”, “소나무만 죽으면 지목(地目)이 달라지지.”, “저 소나무 때문에 땅값이 안 올라…”, “저 소나무만 없으면 명당이지.”, “오름에 소나무를 심어 경관이 망쳤어.” 심지어는 소나무가 나라를 망친다며 소나무 망국론(赤松亡國論)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소나무 죽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몰래 나무를 베어 내거나, 혹은 구멍을 뚫어 제초제를 주입하기도 하고, 혹은 나무 밑둥치 가죽을 한 바퀴 벗겨내기도 했다. 소나무의 죽음을 ‘잘코사니’ 하는 군상들이 소나무를 악랄하게 적지 않게 죽이고 있다.
여기에다 소나무의 어두운 미래를 점칠 수 있는 광경은 또 있다. 애국가를 안 부르고 ‘적기가’를 부르는 인간들이다. 공교롭게도 애국가 2절의 주제는 소나무이다. ‘적기가’의 원곡은 우리에게 ‘소나무’라고 알려진 독일민요 ‘탄넨바움(der Tannenbaum)’이다.
이 곡을 영국에서 ‘레드 플래그(The Red Flag, 6절)’라는 노동가요로 바꿔 불렀으며, 다시 일본인이 ‘아까하타노 우타(赤旗の歌, 5절)’라는 민중혁명가로 번안을 했고, 이 노래가 또 다시 북한으로 유입되어 ‘적기가’(3절)라는 혁명가요로 둔갑했다.
‘적기가’는 1948년 4월 제주4·3사건 때 남로당 사람들이 불러대었던 바로 그 노래다. 4분의 3박자의 못갖춘마디 원곡 ‘소나무’가 가지고 있었던 서정성은 차츰 상실됐고 그 대신 4분의 4박자 갖춘마디로 비장한 행진곡풍의 투쟁가로 변모 됐다. 후렴에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라는 가사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제주도에는 이 노래를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1945년에서 1948년 사이 이 고장에 산 사람 가운데 ‘적기가’를 불러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6·25사변이 일어나자 ‘적기가’는 인민군의 군가의 형태로 재등장했다. 최근에는 종북 좌파들이 애국가 대신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곳곳에 발을 뻗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좌익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공산혁명을 고무·찬양하는 노래겠지만, 적화통일을 고취하는 무섭고 소름끼치는 노래이다.
은연중에 재선충에 감염돼 빨갛게 죽어가는 소나무가 수만 그루에 달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소나무가 50년 뒤에는 남한에서, 100년 후엔 한반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애국가 ‘남산위에 저 소나무…’ 가사도 바꿔야 할지 모른다. 자유민주주의와 소나무의 수호를 위해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나무에 대한 ‘저주’를 먼저 막아야 연쇄적인 환경피해와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청청한 소나무에 대한 당국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