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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월화드라마 맨발의 청춘 제8회
방송일 1988년 2월 24일 화요일.
씬 1 경춘가도 (밤)
달려오는 혜준의 차...
씬 2 동 차안 (밤)
혜준이 운전대 잡고 있고 옆엔 요석이 타고 있다.
씬 3 국도변 휴게소 (밤)
휴게소에서 반창고과 꺼즈 등 응급약품을 사고 있는 혜준.
혹시 차 안의 요석이 달아나기라도 할까 염려스러운 듯 계속 돌아보며 급히 돈을 치르고 차로 달려온다.
씬 4 동 차안 (밤)
꺼즈로 요석의 이마에 흐른 피를 닦아주는 혜준.대충 됐다고 하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는 요석.
그러나 혜준, 뿌리치고 고개 돌리는 요석의 얼굴을 다시 자기 앞으로 하고 상처를 계속 닦아준다.
그때쯤 요석, 비로소 시선 들어 혜준을 바라본다.혜준, 잠시 손을 멈추고 요석의 시선을 받아 들인다.
그러다가.. 다시 상처를 닦아 나간다.
씬 5 장명석 집 창고 (밤)
천장에 매달린 갓등 하나만 흔들흔들 거리며 커져 있어서 그림자들이 널뛰기를 하듯 하는데,
무릎 꿇고 있는 사내 둘을 앞에 놓고 그 머리칼을 움켜쥔 채 호통치는 방개의 그림자에서 부터
방개(E) 똑바로 말해!!
사도와 털복이가 무릎을 꿇고 있다.이미 적잖이 얻어 터졌는지 얼굴이 엉망인데.
방개 니들 무슨 장난한 거야!너, 사도 이 자식, 평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귀 엷은 사장님한테 무슨 쏙닥질을 한 거야?말 못해?
뒷통수 갈기는데도 고개 떨군 채 입 봉하고 있는 사도
방개 어, 그래? 말 안 해? 좋아, 그럼 너 털복이, 너까지냐?내 승질 알지? 말 안 하면 너 오늘 여기서 네 발로 걸어 나가지 못 해! (턱 움켜쥐고) 니가 누구 직계야? (솥뚜껑 같은 주먹을 턱에 갖다대고) 너 오늘 여기서 말 할래? 아니면 박살이 날래?
털복이 저...., 저어... 형님, 그게 말임다...
방개 어, 그래, 뭐야? 어서 말해!!!
털복이 (울상) 어휴, 미치겄네!
씬 6 장명석의 집 부근 숲길 (밤)
어둡고 조용한 길...저 멀리에서부터 나타는 헤드라이트...앞 유리 머너로 차 안에 묵묵히 전면 보며 앉아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요석, 차에서 내린다.
요석 어서요. 자, 이제 그만 가요 (하고 돌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보며) 여긴 바로 집앞예요.다른 사람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어요. 어서 가요.
하고 가라고 손짓한다.혜준, 끄덕인다.요석, 비로소 돌아 서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로 걸어가 버린다.
차창 너머로 요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혜준...
씬 7 장명석 거실 (밤)
얻어터진 사도와 털복이가 구석에 고개 떨구고 서 있는데,그 앞에 성질 누르며 방개가 버티고 서 있다.
상엽은 난처하고도 화 난 기색으로 소파 상석에 버티고 앉아 있고, 그 옆에 무거운 기색으로 앉아 있는 재식.
상엽 그래서?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방개 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회장님 지금 앓아 누워 계신데, 이런 사실을 알아 보십쇼.거기다 아직 2심 재판도 끝나지 않은 상탭니다.
상엽 그렇다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당해? 우리는 뭐,아무 때나 끌어다가 막 처박아 넣어두 되는 사람들야? 개도 무는 개를 무서워 하는 거야! 알어? 그리구... 우리 아버지를 건드렸어! 난 그것만은 용서 못 해!
방개 하지만 상대가 누굽니까?아무리 손대도 손을 댈 사람이 따로 있는 겁니다! 로타리에서 술집하는 김서방이 아니란 말입니다! 잘 못 하면 우리가 죽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재식 (자르며) 그만!.... 너 언제부터 이렇게 건방져졌어?
방개 아니, 저..., 형님, 그게 아니구...
재식 닥쳐, 이 눔 자식! 아무리 그렇다 해두 어디다 눈을 부릎 뜨구!
방개 (고개 꺾으며) 죄송합니다!
재식 ....됐어. 니들 나가 있어! 어서!
방개 등, 쓰게 입맛 다시며 나가려는데
장명석(E) 아냐, 그럴 필요 없다!
안방문이 열린다.아직 병색이 남아 있는 장명석이 천천히 나온다.
즉시 허리 꺾는 방개와 사도, 털복이.재식도 얼른 일어서도, 상엽도 좀 켕기는 기색으로 일어선다.
상엽 (아버지 노기에 주눅 들어 눈치 살피는데)...!
장명석 (입술 떨리며 노려보고)...!
상엽 (죽을 맛이다)...!
장명석 이...천하에 어리석은 놈!
하다가...철썩!! 하고 따귀를 때린다.그때 현관문 열고 들어서다가... 멈춰 서는 요석.
맞을 볼을 만지다가 들어서는 요석을 발견하고 흠칫하는 상엽.분을 못 이긴 장명석은 또 다시 따귀를 날린다.
장명석 이 단을 말아먹을 놈!!
그리고 계속 휘두르려는데, 재식이 얼른 뒤에서 감싸 안는다.
재식 회장님.
장명석 놔라, 이 눔아!
재식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정 하십쇼! 회장님!
천천히 고개 든 상엽, 장명석을 원망스런 눈으로 본 후...문가에 서 있는 요석을 가쁜 호흡으로 쏘아본다.
그러다가 냅다 현관으로 걸어와서 요석을 떠밀치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장명석 (가슴 떨려 말도 채 잇지 못 하고) 저 놈...,저 어리석은 놈...!
요석 (굳고)...
재식 (끌어안은 손을 무겁게 풀며)...회장님...
장명석 (입술 떨리다가.. 문가에 서 있는 요석을 슬쩍 돌아 본 후...소파에 무너지듯 천천히 앉는다)...
요석 (시선 떨구고)...
장명석 (그렇게 초점 없이 허공 보다가...천천히 무겁게)...봤냐...저게 네 형이라는 위인이다...!
요석 ...
장명석 교복을 가지러 온 모양인데..., 꺼내다 줘라.
요석 (갑갑한 심정으로 허공으로 시선 올리며 외면한다)...
씬 8 장명석 집 앞길 1(새벽녘)
저 끝까지 전혀 인적 없는 고적한 길을 따라 걸어오는 요석...교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
그렇게 묵묵히 걸어오는데...저 앞에서 뭔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장명석의 집 쪽으로 오고 있던 겅장한 체격의 건달 서너 명,
다가오는 요석을 발견하고 처음엔 그저 멈칫하다가..
자기들 부류가 아니라는 눈치로 조금 내키지 않는 기색이 되며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비켜나서 고개를 꺾는다.
그러나 요석, 그 쪽으론 눈길 하나도 안 주고 그대로 그 앞을 스쳐 걸어가 버린다.
요석이 지나간 후, 자기들끼리 슬그머니 얼굴 마주 본 후 저만치 걸어가는 요석의 뒷모습 바라보다가...다시 집 쪽으로 올라간다.
씬 9 장명석의 집 앞 길 2(새벽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휘감고 있는 길을 저만치에서부터 조그맣게 나타나 걸어오는 요석.
선새벽의 텅 빈 길을 그렇게 혼자 걸어오다가...문득 걸음 멈춘다.저 앞에 세워져 있는 혜준의 차.
가 보면... 성에 낀 차장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혜준의 모습.요석을 기다리다가...잠이 들어 있다.
잠 든 혜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는 요석.그러다가...마치 누가 살그머니 부르기라도 한 듯 살며시 눈을 뜨는 혜준.
성에 낀 차창을 사이에 두고 가만히 마주 보고 있는 요석과 혜준.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오르고 있음이 비로소 화면 가득 느껴진다.
혜준, 가만히 손을 들어 창에 낀 성에를 조금 닦아낸다.성에 낀 차장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깊은 O.L-
씬 10 교외의 한적한 가로수 길
저 멀리에서부터 달려오는 혜준의 차
다가오면 요석이 운전하고 있고, 그 옆에 타고 있는 혜준.어떤 의지를 보이듯 굳게 정면만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운명에 둘진하듯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밀고와서...그대로 아득히 사러져 간다...그 멀어져 가는 뒷모습 위에서...
-F.O-
씬 11 대형 빌딩 앞
높이 솟은 호사한 빌딩.주차 위반 딱지가 2장이나 붙어 있는 고급차 한 대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회전문이 열리며, 한 손엔 가죽 가방을 들고 또 다른 손엔 코트를 벗어 걸친 서형도가 빈 틈 하나 없는 표정으로 바쁘게 나온다.
즉시 차 쪽으로 걸어와서 리모콘으로 문을 연다.주차 위반딱지를 발견하고 피식 웃으며 툭툭 떼어내서 조수석 문을 열고 코트,
가방과 함께 그 안에 툭 던져 넣는다.그리고 바쁘게 운전석으로 와서 차문을 열려는데.
승준 (E) 안녕하십니까?
서형도 음? (하다가.. 알아보고) 어이구, 이게 누군가!오랜만이구만! 아냐, 아냐, 우리가 참, 재판정에서두 만났었지?
승준 (웃음기 없이 다가오며)...예에.
서형도 근데 여긴 어쩐 일야?(표정 살피며) 혹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승준 예전에 학교에서 법철학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 우연히 선배님 얘기를 하시더군요.
서형도 호오, 내 얘길? 법철학이면 유만호 교수님?
승준 네에, 대단한 천재성이 느껴지던 학생이었다더군요.
서형도 (쓴 미소로) 그러고나서 뭔가 뒤에 단서가 붙었겠구만?
승준 (O.L의 느낌으로) 네! 법학이 윤리적인 측면에 눈을 감을 때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될 수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구요!
서형도 (차갑게 보며) ..그래, 어차피 법이란 건 본래적인 자연법칙이 아니라, 인간사회를 조화롭게 만들자는 필요의 선물야!그걸 이용해서 내게 유리하게 만드는 건 경쟁사회의 기본 개념이구! 그게 뭐 잘 못 된 건가?
승준 하지만 범죄자들한테 면죄부를 만들어주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서형도 범죄자?...잊었구만.판결은 무죄야.
승준 무죄라구요? 그런 깡패 집단이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서형도 검사 지망이라고 했지?궁금하면 그건 자네가 나중에 밝혀보지 그래.
하고 차문을 열며
서형도 아버지 일은 안 됐네, 워낙 자존심이 꼿꼿하신 분이라서 말야. 하지만 어차피 재판이란 건 법이라는 칼로 다루는 싸움야. (차갑게 씨익) 근데, 내 칼이 조금 더 날카로웠던 모양이지?
하고는 문 탕 닫고 출발한다.남은 승준, 주먹을 부르르 움켜쥔다.
씬 12 장명석 침실
간호사, 링켈병을 갈아주고 있다.재식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장명석 상엽이놈은 들어 왔냐?
재식 회장님께서 먼저 용서를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닻세째 밖에서 헤매고 있는데, ...용서한다고, 전화라도 한 통 해주십쇼.
장명석 (한숨처럼) 한심한 놈..., 거기, 담배나 한 줘.
간호사 (화들짝) 어머, 지금 담배는 안 돼요!
재식 (담배 꺼내며 간호사에게 나직하나 엄하게) 닥쳐, 어떤 놈도 우리 화장님께 안 된다는 말을 쓸 수 없어!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담배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준다. 간호사, 무섭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멍하다.
장명석 그 놈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너무 귀하게만 키웠어.
씬 13 폿켓볼 카페
포켓불 당구대가 놓여 있는 신세대풍의 카페
초미니의 여자 두세 명이 큐대를 잡고 있는데, 그 너머의 소파에 갑갑한 기색으로 걸터 앉아 껌을 씹고 있는 상엽.
가죽바지에 풀어 헤쳐진 셔츠, 그 안에 걸려 있는 패셔너블한 은제 목걸이 등, 화려한 의상이지만 수염이 꺼풋꺼풋 자라 있다.
당구대 근처엔 상엽을 수행해 온 신세대풍의 건달 두세명이 무료한 듯 서성이고 있고,
상엽의 뒷편엔 눈가에 붕대를 댄 사도가 무거운 기색으로 시선 떨구고 서 있다.
수행한 건달들, 당구 치는 초미니들에게 뭔가 말도 건네고 치는 방향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고 하는데...
상엽 (사도에게) 몇 시까지 온다구 했냐?
사도 다시 전화해 볼까요?
하고 핸드폰 꺼내는데.
상엽 아냐, 됐어.
하고 일어서서 당구대 쪽으로 온다.초미니들에게 말을 걸고 있던 건달들, 얼른 뒤로 물러나며 정자세를 취한다.
상엽, 큐대를 받아드는데...이 안으로 돌아서는 서형도.상엽, 큐대를 당구대 위에 툭 던져놓고 다시 좌석으로 간다.
서형도 (앉으며) 오늘은 첨이니까 내가 왔는데, 다음부턴 날 부르고 그러지 마. 용무가 있으면 니가 날 찾아오는 거야! 알았어?
상엽 딴사람 같으면 지금 그 순간 턱이 부러졌을 거란 거, 알구 있수?
서형도 (냉소) 그 정도면 난, 널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하거나, 아님 최소한 3년 정도는 빵에 들어가 있도록 만들 수 있어.
상엽 (씨익 웃고) 가만 보니까, 당신하구 난 대충 통하는 데가 있는 거 같애.
서형도 (냉소) 그래?
상엽 아버진 날 쓰레기라고 하는데,...당신두 그쪽 같은데?
서형도 좋을대로 생각해.
상엽 어차피 술친구가 되긴 틀린 거 같구...용무부터 말 하지.
서형도 ...
상엽 나 좀 도와주쇼.
서형도 ...
상엽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 가볍게 한 번 툭 치고)솔직히 난 이게 좀 딸리는데, 당신이라면 될 것두 같거든.
서형도 (냉소) 왜 하필 나지?
상엽 (일어서서 당구대 쪽으로 가며) 말 했잖수?(여자 엉덩이 툭 치고 큐대 잡으며 슬쩍 돌아보고)...당신하구 난 같은 부류니까. (공을 겨냥하며)내 용건은 그거요.
하고는 대충 겨냥해서 탁 친다.난이도 높은 코스를 타고 들어가서 포켓에 정확히 집어 넣는다.
그런 후에 돌아다 보면, 벌써 일어서서 저만치 가고 있는 서형도의 뒷모습. 사도가 쪽지 하나를 들고 다가온다.
사도 집 전화번호랍니다.
상엽 (보면)
사도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준 거라고 하던데요.
상엽 쓰윽 웃고 그 쪽지를 받아 윗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씬 14 경찰대학 운동장 계단
휴식 시간인 듯, 연병장 계단에 앉아 있는 요석.연병장에선 학생들이 야구를 하고 있다.
음료수 캔 두 개 들고와서 하나를 건네주며 옆에 앉는 경수.
요석 (씩 웃고) 고마워.
그때 타자로 나왔던 지훈이 투수의 공을 강타하여 멋지게 홈련을 만들어 버린다.
경수 지훈이 쟤가 이번에 자치장 선거에 나온 거 아니?
요석 ...
경수 누가 그러드라, 쟨 아마 우리 동기 가운데 제일 먼저 승진할 거구 제일 요직으로 들어 갈 거라구.
요석 아마...그걸 꺼야.
경수 지금부터 벌써 경력 관리에 들어 갔다구 하더라. 자치장 출마도 그래서란 얘기가 있어.
요석 (가만히 끄덕인다)
경수 그리구...너에 대한 얘기두 있어.
요석 (보면)....?
경수 졸업은 아무래도 힘든 거 아니냐고...
요석 (먼 곳 보다가...쓸쓸한 미소로 혼잣말처럼)너두...그렇게 생각하니?
경수 솔직히...나도 잘 모르겠어. 정리가 안 돼...니 입장이면 나두 많이 힘들었을 거야.
씬 15 학보사 (밤)
학보사 기자들, 거의 다 돌아가고 혜준과 편집장만 남아서 작업 중이다.혜준, 맥 없이 손 놓고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고 있다.
편집장 뭐 하냐?
혜준 ...음?
하다가 담배를 맛 있게 피우며 작업 중인 편집장을 물끄러미 본다.
혜준 (그러다가)형...그 거 맛 있어?
편집장 쑥 올려다 본 후 다시 작업 계속 하며) 암, 맛있지! 진미의 구름 과자 아니냐! (쭈욱 빨아서 내쉬며) 어흐, 요 맛!
혜준 (물끄러미 보다가)...그럼 나두 한 번 펴 볼까?
편집장 (피식 웃고 담배갑과 라이타 던져준다)
혜준, 잠시 망설이다가 한 대 뽑아서 엉성하게 입에 물고 불을 막 붙이려는데, 손 하나가 쑥 들어와서 그 담배를 뽑아간다.
혜준 어?
인서 좋은 거 배운다! 형! 얘는 정말 한 번 했다 하면골초가 되는 애란 말예요!가르칠 게 따로 있지!
편집장 (계속 작업 하면서) 흐흐...인생의 맛을 알 수만 있다면 건강정도는 양보할 수도 있잖냐?...야, 빨랑 데꾸 나가! 니들 연애하구 있다는 거, 학보사 내에서 모르는 사람 하나 없어!
인서 어, 형! 누가 그래요?
편집장 아, 시끄러! 나 일 좀 하자!
하고 나가라고 손짓 하고 다시 작업 계속 한다.인서와 혜준, 마주 보며 피식 웃는다.
씬 16 대학교 구내 가로등 아래 (밤)
가로등 아래의 벤취나 길 난간 같은 데에 적당히 걸터 앉아 발끝으로 흙장난을 하는 혜준.
인서는 적당한 곳에 기대 서서 그런 혜준을 보고 있다.
혜준 ...
인서 ...
혜준 (계속 발장난 하며)왜 아뭇 소리 없는 거니?
인서 너 보고 있는 거야.꼭 말을 해야 돼?
혜준 (비로서 올려다 보며)그 날...약속 어긴 거...
인서 (그저 쓸쓸히 빙긋이)
혜준 그리구...고마워.
인서 ...뭐가?
혜준 울 오빠한테, 그 날 새벽까지 나랑 같이 영화 봤다고 거짓말 해 준 거...
인서 (가만히 보며) 그럼...누군지 물어봐두 돼?
혜준 (그저 시선 발끝만 보고)
인서 많이...좋아하는 사람이니?
혜준 (역시)...
인서 (보다가)...가자. 데려다 줄게.
하고 옆에 세워 둔 자전거 끌고 앞장 선다.
혜준, 그대로 있다가...무겁게 일어나서, 자전거 손으로 끌고 몇 미터 앞에 가고 있는 인서의 뒤를 따라간다.
씬 17 주택가 골목(밤)
방법동이 군데군데 켜 있는데.거길 자전거 손으로 끌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인서.
혜준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그런 모습으로 걸어 오다가...혜준의 집 앞에 이르른다.
거기서 혜준, 걸음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결심한 듯 천천히 고개 돌려 인서를 바라본다.
혜준 원하면...대답해 줄 수 있어.
인서 ...
혜준 나 그 사람...좋아하고 있어...사실은 많이 좋아해.
씬 18 언덕진 도로 (밤)
어두운 저 끝에서부터 천천히 자전거 몰고 오는 인서.처음엔 아주 천천히 오다가...., 어느 순간...,
가슴 속으로 배어나오는 눈물을 떨궈내기라도 하듯 이를 악물고 엉덩이 든 채 힘차게 페달을 밝이 시작한다.
가속이 붙어가는 자전거...바람소리 내며 그대로 언덕길을 타 넘어 내리막을 순식간에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씬 19 기숙사 (밤)
룸메이트 네 명 모두 다 책 보거나 컴퓨터 다루며 공부하고 있는데,갑자기 문이 쾅 부서질 듯 열린다.
학생장 지금부터 딱 한가지만 묻겠다! 경찰대학생의 명예를 걸고 사실 대로 대답하기 바란다.
요석 .....?
학생장 (꽁초 하나 들어 보이며) 저기 복도 창문 아래서 이게 발견 됐다! 담배 핀 놈 누구야?
서로 얼굴 쳐다보며 긴장 하는데...
학생장 필터에 묻어 있는 침이 아직 마르기 전야. 그건 피운지 30분도 안 됐다는 얘기다.수사 결과, 그 30분 동안 복도를 출입한 놈은 저기 8호 방에서 2명, 그리고 이 방에서 3명이다! 누구야?
지훈 (긴장)...!
요석 (가만히 그런 지훈을 약간 본다)...!
학생 자진 신고 못 하겠어? 우리 경찰대학생의 양심이 이 정도 밖엔 안 되나?
지훈 (긴장 하다가 결국 뭔가 말 하려는데)...!
요석 (한 발 앞어서 나선다)...접니다.
학생장 허! 장요석! 너야? 넌 흡연장소와 금연장소도 구별 못 하나?아주 제멋대로구만!
지훈 (놀라서 요석을 본다)...
요석 죄송합니다.
학생장 닥쳐! 내일 아침 일조점호 마치구서 연병장에 대기해!
하고 돌아 서려는데
지훈 학생장님!
학생장 (돌아보면)...? 지훈 담배 피운 건...겁니다 (하고 요석에게) 장요석, 니가 뭔데 나서?
학생장 허어, 이 놈들 봐라! 날 아주 가지고 놀아?
지훈 죄송합니다.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자치장 출마는 포기 하겠습니다.
학생장 그건 당연한 얘기다! 작은 규율 하나 못 지키는 놈이 무슨 자치장야?니들, 내일 아침에 둘 다 대기해!
씬 20 경찰대학 연병장(아침)
학생장이 저만치에 버티고 서 있는데, 함께 연병장을 뛰고 있는 요석과 지훈 둘 다 여러 바퀴 돌았는지 츄리닝이 땀에 흥건히 젖어 있다.
요석 자치장 출마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
지훈 니가 상관할 일 아냐.
요석 내가 깡패의 아들이라서? 그래서 내가 나선 게 자존심 상하니?
지훈 알면은 됐어.
하고 앞질러 달려 나간다.요석, 보다가... 바짝 따라 간다.
씬 21 경찰대학 연병장 일각 (아침)
버티고 선 학생장 앞에 땀으로 흠뻑 젖은 요석과 지훈이 서 있다.
학생장 오늘부터 일과 후에 매일 같이 20바퀴다! 앞으로 열흘 간! 이상!
씬 22 주혜란의 카페 (밤)
영업이 끝났는지 의자를 테이블 위로 올려 놓으며 청소를 하고 있다.주혜란, 피곤한 듯 이마의 땀을 훔치며 룸 쪽에서 나온다.
주혜란 아우, 시끄러 음악 끄고, 거기 전표 좀 이리 내 봐.
웨이터 전표 꺼내가 주고 음악을 끈다.
주혜란 도대체, 애들 팁두 굿구 가는 인간들이 누구니?어휴..., 참..!
그때 문 열리는 소리 들린다.
웨이터 영업 끝났습니다.
주혜란 (계속 전표 뒤지고 있는데)...
기성재(E) 맥주 한 잔만 하고 가면 안 되겠소?
주혜란 (홱 돌아본)....!(놀라다가)...부장님
등산복 차림의 기성재가 수염 꺼뭇꺼뭇하게 자란 채 서 있다.
기성재 가라고 그러면...그냥 가구.
주혜란 예? (하다가 얼른 올려져 있는 의자 화급히 내리며) 아우, 아녜요! 앉으세요! (웨이터에게) 너 맥주 몇 병하구, 주방에 얘기해서 안주 될 만한 것 좀 얼른 내오라구 그래! 얼른!
그때 룸 쪽에서 들려오는
나미(E) 웨이타씨! 아유, 나 못 살아! 웨이타씨.빨리 좀 와 보래니까! 미치겠네! 아, 빨랑!
웨이터, 급히 달려간다.기성재, 뭔가해서 돌아다 보면 잠시후, 웨이타의 등에 업혀서 나오는 서형도.
와이셔츠는 반쯤 바지 밖으로 흘러 나와 있고 머리카락은 산발이다.나미가 그의 윗도리와 가방 등을 들고 따라 나오고 있다.
나미 이 인간이 벽에다가 오바이트를 다 해 논 거 있지? 미치겠어! 웨이타씨, 차에다 실어 버리구, 대리 하나 붙여서 빨랑 보내 버려!
그때 웨이터의 등에다가 다시 토해 버리는 서형도.웨이터, 으아! 하며 서형도를 그냥 바닥에 떨꿔 버린다.
웨이터 아우, 뭐야, 이거!
나미 아휴, 정말 미치겠네, 미치겠어!
기성재, 그런 꼴 보다가.. 기가 막혀 천천히 고개 돌려 의자에 앉는다.
기성재 저 사람..., 여기 자주 오는 사람이요?
주혜란 (서형도 보다가 쓴 미소로 돌아 앉으며)...저 사람 여기서 별명이 뭔지아세요? 개예요 (토하고 쓰러진 서형도를 일으켜 세우느라 애쓰는 나미를 보며) 쟤하구 올 초까지두 동거를 했었죠.
결국 난 개한테 졌구나 싶은 느낌에 씁쓸히 미소로 담배 뽑아서 무는 기성재.
주혜란 ...사직서 내셨다는 얘긴 들었어요.
기성재 ...저 사람한테서? 허허, 무용담을 한바탕 떠들었겠구만. 그래서 꼭 한 번 들러 달라구 전화를 넣었던 거였나. (쓸쓸히 미소로) 위로주라도 한잔 사려구?
주혜란 (가만히 보며)....자, 부장님께 늘 죄 지은 기분인 거 아시잖아요? (일어서며) 안으로 들어 가세요. 오늘은 정말 제가 살께요.
기성재 (내려놨던 배낭 다시 집어들며) 아니...다음에...생각해보니까 늦었는데, 아무래도 다음에 정식으로 다시 오는 게 좋겠어.
하고 손 조금 들어 보이고 문가로 간다.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형도를 잠시 내려다 보다가...문 열고 나간다.
주혜련 (무겁게 보다가 버럭) 뭐 하니, 넌! 얼른 일으켜서 내보내든지, 내실에 데려다 눕히든지 뭐 어떻게 해야지!
씬 23 창천 거리
씬 24 강수 사무실
도시락에 담아 온 생선 초밥 하나가 놓여 있는데 거기 놓인 생선 조각을 들추고 그 안에 조금 붉게 한 와사비를 듬뿍 더 얹어 넣는 손길. 그렇게 와사비를 듬뿍 더 얹는 초밥 세개를 도시락 뚜껑 위에 잘 옮겨 놓는 강수.
어?하는 표정으로 눈 크게 뜨고 강수를 보고 있는 메주와 개코.강수, 그 중에 하나를 처억 집어들어 입안에 우겨넣고 씹기 시작한다.
매워서 죽을 지경이지만 뜨꺼운 콧김 푹푹 뿜어가며 악을 써서 씹어 삼킨다.그런 후에 가쁜 호흡 누르며 두 심복을 노려보는 강수.
강수 자아, 느그덜도 하나씩 집어.
메주,개코 예?
강수 하나씩 먹으란 말야!
메주 형님, 지는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리산 깡촌 출신이라서 초밥같이 고급은 스물살 전엔 먹어 본 적두 없구요 또 혓바닥이 워낙 약해 갖고 이런 매운 건...
하는데 뒷통수 탁 때리는 강수.
메주 (즉시) 먹겄습니다.
하고 얼른 집어들고 입안에 우겨 넣는다.그리고 씹어대며 일그러져 버린다.죽을 맛이다.그런 모습 보며 찔끔하는 개코.
강수 (개코에게) 너두.
개코 ....예?
개코, 별 수 없이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 입안에 살그머니 우겨 넣고나서 안 씹고 가만히 있다가 얼른 물을 마시며 그대로 그걸 씹지 않고 "꾸르르-륵 꿀꺽!"
하는 효과음과 함께 통채로 삼켜 버린다.그런 후에 됐다 싶은 기색으로 싸악 회심의 미소 짓는데.
강수 으흥? 아니, 이것이 씹지 않고 그냥 삼켜?
메주 야! 너 그런 법이 어딨냐? 나도 시방 입안이 벌집이 돼 있구만! 어흐!!
하면서 아직도 얼얼한지 허어!하며 입안에 손바닥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 메주.
강수, 즉시 초밥 하나를 집어내서 거기 생선조각을 들추고 남은 와사비 덩어리 하나를 아예 그냥 통채로 얹어 버린다.
강수 먹어!
개코 예? (울상) ...혀, 형님!
강수 먹으라면 먹어! 응?
개코 (죽을 맛이다)...!!
메주 (쓰윽 옆으로 흘겨보며 잘됐다 싶고)...!!
<시간 경과>
먹었는지 입안이 아예 헐어버리기라도 한듯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씨근대고 있는 개코.
메주는 이제 얼얼한 기운이 가셨는지 여유있게 앉아 있다.
강수 지금부터 나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잉...느그덜헌테 그걸 왜 먹인 줄 알겄냐?
메주 (개코 슬그머니 본 후 갸웃)...?
강수 이제부터 우린 서울로 간다.
그때까지 너무 얼얼해서 눈의 초점마저 흐려져 있던 개코,그만 그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다.
개코 예에?
메주 서...서울 말입니까?
강수 (주머니에서 임대 계약 서류 하나 꺼내며) 영등포에...나가 업소 하나를 계약을 해부렀다.
메주 저.. 정말입니까, 형님?
강수 그려. 일단은 쥐새끼 콧구녕만한 데지만 그걸 발판으로 해갖고 커가는 것이여.
메주,개코 (감격) 형님!!
강수 집앞 또랑이야 아무리 뒤져봤자 미꾸라지 밖엔 나올 것이 없는 것이여! 또랑은 파먹을 만큼 파 먹었응께 인자 큰 물로 가야 안되겄냐?
메주,개코 아, 당연하지요!!
강수 서울 생활이 힘들어도 아무려면 아까 먹은 그거보다 더 맵기야 허겄냐? 서울놈들헌티 기 죽지 말고 죽기 살기로 해보는 것이여! 알겄냐?
메주,개코 (허리 팍 꺾으며) 알겄습니다, 형님!!
개코 힘들때마다 저 망할 놈에 초밥을 생각허겄습니다!
씬 25 창천 극장 골방
만보, 고개 무겁게 떨군채 필름통을 정리하고 있다.문가쪽의 벽에 기대 서 있는 수아.
만보 그렇다구... 서울루 짐까지 옮길건 없잖아.
수아 여기가 뭐 통학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할 거리니? 기왕 시작한거 확실하게 해야지...서울에 있는 프러덕션에서 나 계약해 주기루 했어. 메니저도 붙여주구..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밀어주기루 했구.
만보 (천천히 고개 드는데 눈이 이슬 담겨 있다)...수아야.
수아 ...왜 그래...그러지 마.
만보 (눈물 주르르 떨어지며) 넌 착해서 남들한테 쉽게 속아넘어가구 그래...서울에 있는 남자들 아무두 믿지 마...그리구 고강수두.
수아 (울먹)...알어.
만보 ...
수아 ...
그렇게 마주 보는 얼굴에서.
씬 26 서울 시내 도로 (밤)
달려오는 상엽의 차.그 위에 들려오는
상엽 (E) 아버지는 어떠셔?
씬 27 상엽의 차 안 (밤)
사도가 운전하고 있고 뒤에 상엽이 타고 있다.
상엽 (핸드폰) 나에 대해선 아직 다른 말씀 없으시구? ...나 어디 있는지 찾아보란 말씀도 없으셨어? ...(실망) 정말 아무 말씀두? ...(무겁게) 알았어. 아버지 잘 모셔.
하고 전화 끊는다.그리고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는데 지금까지 하늘이고 땅처럼 의지해 온 아버지에게서 걷어차인 안타까움과 서글픔으로 입술 약간 떨린다.그러다가 갑자기
상엽 차 세워.
사도 예?
상엽 차 세우라구!
사도 아, 예!
하고 세우는데 거긴 마침 고가도로 위다.
상엽 너 내려.
사도 예? 여기서 말입니까?
씬 28 고가도로 위(밤)
사도, 얼결에 내려선다.상엽, 뒷자리에서 나와 운전석에 올라 탄다.
상엽 집에 가 있어.
하고는 그대로 차를 몰아 사라진다.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가도로 위에 덜렁 남겨진 사도-
씬 29 방송국 무용단 연습실(밤)
텅 비어 있는데, 예주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렇게 피아노를 쳐나가던 예주, 피아노의 윤기 나는 표면에 문가에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얼비치고 있음을 발견한다.
가만히 보면...상엽이다.피아노 멈추고..얼비치고 있는 상엽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예주 시간에 어쩐 일야? 흐흥, 허긴 깡패들은 야행성이니까, 슬슬 출몰할 시간이긴 하지.
그때 마루 바닥 위로 코믹하게 생긴 인형 하나가 끄떡끄떡 거려 가면서 걸어 온다.
인형효과음 “난 캡이야!” “난 캡이야!” “난 캡이야!”...예주의 발밑까지 다가온다.예주, 그 걸 내려다 보다가...피식 웃고 집어든다.
상엽 내가 차안에 늘 갖구 다니는 거야. 열다섯 살때 아버지 양복을 다려 드리구 2만원을 받았거든. 내가 처음으로 번 돈야. 그걸로 샀어. (하고 피식) 근데, 사내놈이 다 커서 웬 인형이냐구? 예주 (그대로 등 보이며 앉아 있고)...
상엽 아버진 한번두 나한테 그런 걸 사주신 적이 없었어. 초등학교를 들어 가니까, 내가 전교에서 욕을 제일 잘 하는 놈이드라구. 어릴 때부터 친구라곤 이따만한 비계덩어리들 뿐이니, 배우는 게 찌르고 때리고, 조지고, ...이따위 소리들 밖에 더 있었겠어?
예주 (천천히 돌아다 본다)...
상엽 (문가에 기대 선 채 고개 떨구고 있다)...
예주 ...
상엽 그래..., 난 그런 놈야...태어날 때부터 깡패.
씬 30 KBS 별관 매점 앞 로비(밤)
늦은 시각인지 불이 다 꺼져 있어서 어두운데...,자판기 커피 들고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두사람.
상엽 동생놈이 하나 생겼어...엄마가 옛날 영화배우였던 한순임이래.
예주 ...
상엽 닮은 것두 같구..., 안 닮은 것두 같구..., 암튼 나보다 화이바는 잘 돌아가드라구. 아버지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같구.
예주 ...
상엽 어쨌든 그 놈은 나보단 행복한 놈야. 적어도 지 엄마가 누군지 정도는 알잖아.
예주 ...
상엽 난 엄마가 누군지도 몰라... 아버지가 빵에 있는 동안 밑에 놈이랑 눈 맞아서 도망 갔다는 소리도 있고, 아예 첨부터 술집 여자라서 애만 뺏어 왔다는 소리두 있어.
예주 ...
상엽 ...
예주 야..., 장상엽.
상엽 ...
예주 (가슴에 찡한 느낌 담겨 있어 목소리 젖어 있지만 짐짓) 너 오늘 분위기 되게 잡는다. 그래 갖구 뭘 노릴라구 그러니?
하고는 천천히 일어서서 상엽에게로 다가가...그의 얼굴을 자기 가슴에 묻어준다.
예주 (울먹한 느낌으로) 너 만약..., 이런 거 노리구 잔머리 굴린 거면...나중에 나한테 죽어.
그렇게 어둠 속에서 끌어 안고 있는 두사람...
(O.L)
씬 31 서울지검 복도(밤)
어묵한 긴 복도를 발소리 울리며 다가오는 기성재와 승준.기성재는 타이 없는 양복 차림이다.
씬 32 기성재의 방(밤)
문 열고 들어온다.불을 켠다.짐이 모두 정리되고 텅 비어 있다.기성재, 그 안에서 감회 깊은 듯 천천히 둘러본다.
기성재 이 방에서만 10년이다.
승준 예에...
기성재 지나고 나면 아쉽지 않은 세월들이 어디 있겠냐만은..., 난 특히 더 그래. (깊히) 회환과 아쉬움이 너무나 많아.
승준 (그런 아버지 안스럽게 보고)...
기성재 이유야 어쨌건...패장으로 물러나게 되니까 더 그런 모양이다.
승준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
기성재 아냐, 진 건 진 거다...
하며 승준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기성재 이제 이 기성재의 세대는 끝났어. 지금부턴 니가 맡아야 돼.
승준 ...!
기성재 언젠간 니가 이 방을 쓰게 될 테고..., 그땐 나처럼 물러나진 말어.
승준 (결심으로)...!
기성재 (보고)...!
(F.O)
씬 33 강수 사무실
수아, 화사한 옷을 입고 긴장으로 앉아 있다.
강수 뭐 너무 긴장할 건 없어. 거기 프러덕션 사장이 나허고는 아주 그냥 이만저만한 사이가 아니라서 널 아주 친동생처럼 돌봐 주겄다고 허드라.
메주 인자 우리 수아, 복이 터져 부렀고만.
개코 (박박 머리 뒤로 쓸어 넘기며) 나두 실은 배우가 꿈인디...
메주 허이구, 그 인물에? 넌 우리나라 4천만 국민을 인물 순으루 세워 논다고 할 경우 말이다, 아무리 안 돼도 최소한 뒤에서 백 등 안에는 끼는 인물이라고! 차암, 내가 봐도 드문 인물이여!
개코 (째리며) 그러는 너는 몇 등인디?
메주 나야 인물로는 어디 가서두 기 죽지 않는 편이제.
개코 뒤에서 50등인디도?
강수 그만 못 허냐!! 느그덜은 영락없는 건달 인물여! 이마에 딱 써 있다고! (손가락으로 이마 짚으며) 촌수석 건달! 됐냐?
메주,개코 (기 죽어) 예에...
강수 (수아에게) 암튼 마침 일이 잘 되느라고 나도 서울로 진출을 허니께, 인자부터 나가 니 후견인 노릇을 한번 해볼 참이여.
수아 (난 내키지만 별 수 없이 슬그머니 올려다 보고)...
강수 참, 서울선 어디 있을 데가 있냐? 없으면 나가 어디 쪼끄만 디라도...
수아 (자르며) 아뇨, 이모님이 마포에 사세요. 거기루 들어가기루 했어요. (슬그머니 눈치 보며)아주...엄하신 분이거든요.
강수 -잉? (조금 실망) 흠..., 어, 그려? 잘 됐고만...언제 올라가냐?
수아 오늘요.
강수 며칠 기다렸다가우리랑 같이 올라가도 좋을 것인디.
메주 암튼 니가 누구 땜이 1등 먹었는지, 고것만 잘 기억해라잉.
개코 솔직히 그거 아니면 니가 어딜 명함을 내밀어 보냐? 이게 다 형님 덕이제.
수아 (무겁다)
강수 (침 꼴깍 하는 시선으로 쓰윽 보고)...!
씬 34 달려가는 시외버스 안
거의 뒷자리 쯤에 앉아 있는 수아.조금은 들뜬 기색이다.손에 꼬옥 쥔 쪽지를 살며시 펼쳐서 본다.
그 쪽지 인서트-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언납리 한국 경찰대학교"이제 요석이를 만날 기대에 가슴에 들 떠오는 것이다.
씬 35 경찰대학 교정(늦은 오후)
절도 있게 오와 열을 맞춰 지나가는 근무복의 학생들.그 너머, 멀리 연병장에선 츄리닝 차림으로 뛰고 있는 요석과 지훈.
그때 그들 곁으로 다가가는 교관 한 사람.두 사람을 세워놓고 뭔가 얘기를 한다.
씬 36 경찰대학 정문(늦은오후)
발끝으로 흙을 긁으며 서 있는 혜준.그러다가 시선 들면...저만치에 이미 와서 빙긋이 지켜보고 있는 요석.
요석 (빙긋이)
혜준 (마주보며)
씬 37 한적한 도로(늦은 오후)
왕복 1차선의 도로다.거의 차량 왕래가 없는 곳인데, 길 가운데로 나란히 걸어오는 요석과 혜준.
씬 38 시외버스 안(늦은 오후)
용인에 거의 가까이 왔음을 느끼고 들뜬 마음으로 창밖을 두리번 거리면서 앉아 있는 수아.
씬 39 한적한 도로(늦은 오후)
뭔가 얘기를 해가면서 걷고 있는데.그들 뒷편 저 멀리에서부터 점처럼 나타나는 시외버스.
씬 40 동 시외버스 안(늦은 오후)
여전히 들떠서 창밖을 보고 있는 수아.앞 유리창 너머로 저 멀리에 요석과 혜준의 뒷모습이 조그맣게 보이고 있다.
수아는 그것도 모르고 들뜬 시선으로 창밖만 보고 있다.
씬 41 한적한 도로(늦은 오후)
뒤에서 달려오는 시외버스.요석과 혜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피하려고 하는데, 문득 요석이 혜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방향으로 이끈다.
혜준, 순간 멈칫하고 요석을 본 후...그 쪽으로 함께 피한다.수아가 앉아 있는 곳과 반대 방향이다.
씬 42 동 시외버스 안(늦은 오후)
요석과 혜준이 버스의 반대 방향에 있는데, 수아는 계속 창밖과 그 쪽지 만을 들여다 보며 들떠 있다.
버스 뒷유리창 너머로 요석과 혜준의 모습 보인다.금새 멀어 진다.
씬 43 카페 (밤)
촛불 하나 켜 있고, 조명이 많이 어두운 카페다.커피를 마시고 있는 요석과 혜준.
혜준 학교에서...많이 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실은 아까...기합 받고 있는 것두 다 봤어요.
요석 (빙긋이 장난스럽게) 그거, 기합으로 봤어요?내가 우리 1학년 대표로 이번 청람 축제에 마라톤 선수로 뽑힌 거 몰라요?
혜준 (피식) 축제는 가을이잖아요?
요석 ...미리 연습하는 거죠.
혜준, 촛불을 들어 요석의 얼굴을 비춘다.
요석 ....?
혜준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 보려구.
요석 ...
혜준 ...
요석 걱정 말아요. 나 잘 견디고 있어요.
혜준 (미소로 가만히 끄덕인다)
촛불 아래 사랑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들여다 보는 요석.
요석 어? 어휴, 이런 세상에! 점호 30분 전예요! (벌떡 일어나며) 지금 가야 돼요!
혜준 (후다닥 따라 일어서며)점호에 늦으면 어떡해요?
요석 버스만 타면 돼요!
씬44 경찰대학 정문 앞 (밤)
정문 밖 어두운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수아.기다림과 추위에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인데...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시외버스.수아, 얼른 긴장해서 그 쪽 바라보는데.멈춰서자...달려 내려오는 요석.
수아, 반가움에 화들짝 일어서며 달려가는데, 그때 요석은 차창가에 앉아 있는 혜준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걸 보고 멈칫 하는 수아! 혜준, 얼른 들어가라고 손짓하고.버스 다시 떠난다.요석, 다시 손 흔들어 보이고...학교 안으로 돌아선다.
나서려던 수아...그만 얼어붙어 버린다.버스는 그런 수아의 앞을 바로 스쳐 지나간다.
차창가에 앉아 요석에게 손 흔들고 있는 혜준의 모습이 수아의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절망과 충격으로 굳어져 있는 수아.그 사이 버스는 저만치 멀어져 가고.요석도 저만치 가고 있다.
수아, 정문 쪽으로 몇 걸음 무너지듯 옮겨 서서 멀어져 가는 요석의 뒷모습 바라본다.
씬 45 경찰대학 구내도로(밤)
시계 보며 바삐가는 요석.
씬 46 경찰대학 정문 앞 (밤)
어둑한 그늘에 서서 바라보던 수아, 그만 그눈에서 굵게 흘러 내리는 눈물.
수아 (입안에서) 요석아...(그러다가 울음으로 크게)한요석...!!
씬 47 경찰대학 구내도로 (밤)
급히 가던 요석, 얼핏 바람결에 자기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듣고 돌아본다.
그러나 정문쪽은 어둠에 잠겨 수아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갸웃하고 보는 요석.그때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동준이 어깨 툭 치며
동준 뭐해? 점호 5분 전야!
요석 응? ...으응!
요석, 동준과 함께 뛰어 간다.
씬 48 경찰대학 정문 앞 (밤)
그대로 어둠 속에 서 있는 수아.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홀로 서 있는 수아의 자그마한 모습...멀어지며.
-F.O-
씬 49 장명석의 집 외경
씬 50 장명석의 침실
재식이 조용히 들어와서 물컵 등을 살펴본다.잠 든 줄 알았던 장명석이 입을 연다.
장명석 (링겔줄 가리키며) 이거 뽑아라.
재식 예?
장명석 그만 일어나야겠다.
재식 일어나시다뇨?
장명석 난 몸뚱아리 하나로 살아 온 놈야. 언제 누울지 일어날지 정도는 알아...이제 됐다. 재식 ...회장님.
장명석 그리구...기성재한테 전화 넣어. 내가 좀 만나 뵙자고 한다고.
씬 51 IBC 커피숍
창에서 햇살 드는데 텅 빈 커피숍에서 단 둘이 마주 앉아 있다.
장명석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성재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장명석 허허허...세월이 이제 우리들은 그만 뒷전으로 물러나라는 모양입니다.
기성재 허허, 떠날 때를 알아서 떠날 줄을 안다면...그것도 좋은 거지요.
장명석 (깊이 보며) 실은 그래서 뵙자고 했습니다.
기성재 (보고) ...
장명석 긴 세월 쫓고 쫓기면서 어느 하루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태풍처럼 번개치는 언덕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도 우리 사이에 업이라면 업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도 이제 지쳤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만 물러나려고 합니다.
기성재 ...정말이요?
장명석 예에...그래서 우리 시절은 우리로써 마감을 하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나왔습니다.
기성재 무슨 뜻이요?
장명석 (나직하게) 부장님께서 선대로부터 40년간 수집해 오신 우리 신세기파의 자료 말입니다. 그걸 이젠 저희한테 물려 주시지요.
기성재 기밀자료를 돌려달라니...?
장명석 그걸...자식대에까지 넘겨서 뭐 하겠습니까?
기성재 ...
장명석 부장님.. 예에, 검찰의 입장에서 보면 우린 언젠간 격파해야 할 대상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없어진다고 뒷골목이 조용히 지겠습니까? 또 다른 놈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기성재 ...
장명석 어차피 이건 끝나지 않는 싸움입니다...그렇다면 최소한 최악은 피해야 안 되겠습니까?저흰 적어도 최악은 아닙니다.
기성재 최악을 피하기위해 차악을 눈 감는다? 그건 우리의 법정신이 아닙니다.
장명석 부장님.. 염치없이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이제 개업을 하시려면 목돈이 들어 갈 거 아닙니까? 다행히 그 정도는 저한테 여유가 있습니다.
기성재 장회장.. 적어도 당신을 경멸하지만은 않게 해주시오.
하고 일어서며
기성재 분명히 말하지요. 우리가 노후에 기분 좋게 술 한잔 할 방법은 하나 뿐이요.
장명석 ....
기성재 조직을 모두 해체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거요.
장명석 허허허...
기성재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싸움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요.
하고 보다가 돌아서서 간다.장명석, 그대로 눈 감고 앉아서 씁쓸한 웃음 나직히 웃는다.
씬 52 한강변
한강을 바라보고 등짐 진 채 서 있는 장명석.방개가 몇미터 떨어져서 뒤에 서 있고 재식이 천천히 다가가 선다.
장명석 (먼 하늘 보며 혼잣말처럼) ...기성재를 없애야겠어.
재식 .....예?
그대로 강심 보며 서 있는 장명석의 아득한 원경에서.. 스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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