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1991년 10월 말경에
금릉방면 김재목 선감이 콤바인을 한대 구입하여 도장에 올리자 도전님께서 "너가 왜 왔어! 거기 수임선감 없어?"하시며 받지 않으시므로 김재목 선감은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전화를 했다. 김재목 선감이 하는 말이 "제가 콤바인을 구입하여 도장에 올리려고 하는데 박 선감께서 오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 꼭 오셔서 콤바인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상도 박성구 선감이 여주 본부도장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곡동 총무부 사무실 신승희와 김재목 선감을 대동하고 도전님을 배알하여 함께 절을 하였는데, 신승희와 김재목 선감은 절을 한번하고 앉았으나 상도 박성구 선감은 절을 두 번 하므로 두 사람은 앉은 채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고, 도전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절을 받으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께 "콤바인을 농사짓는데 써주십시오."하고 말씀을 올리자 도전님께서 "선교감들을 시켜서 추수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 콤바인이 있으니 올해는 콤바인으로 추수를 해야겠다."하시며 받아주셨다. 그리고 금릉방면 김재목 선감을 보시면서 "그래 너희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화합을 해야 돼!"라고 교화를 하신 후 내려가도록 분부하셨다.
28. 시간이 흘러 존영을 모셔 올린지 17개월이나 지난 1992년(壬申年) 7월까지도, 상도방면 임원들이 화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도전님께서는 상도 방면 박성구 선감과 오연자 선감, 부전방면 주훈재 선감을 불러서 물으셨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하시자, 오연자 선감이 "금릉방면 김재목 선감을 교감으로 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주훈재 선감이 "그러면 안됩니다."라고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박성구 선감 의향은 어떠냐?"고 물으시자, 박성구 선감이 "각 방면을 내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도전님께서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나 그리하면 죽는데! 참 우리 도(道)는 죽는 게 없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박성구 선감이 "청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아뢰니 도전님께서 "그래, 뭐냐?"하시자 "광주에 회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요."라고 상고드렸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알았어!"라고 말씀하신 후 물러가 있으라고 하셨다.
그런 연후에 상급임원들 전원을 회관 5층에 모이게 하셨다. 그리고 도전님께서는 상도방면 임원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시고 "서교방면 선감과 속초방면 선감은 앞에 나와서 의자에 앉아라!"하셨다.
그 자리에서 각 임원들을 호명하셔서 바로 방면을 나누니 흥해, 덕수, 월성, 오천방면을 내고 금릉방면은 여수, 중흥, 선산, 석촌, 여천, 원평방면의 6개방면과 이문, 유성방면 2개방면으로 나누어, 모두 방면을 내어 주신 것이다. 그런 후 도전님께서 박성구 선감에게 "지방에 회실이 어디 어디에 있느냐?"하시니 "예! 광주에 회실 하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도전님께서 "그러면, 너를 따르는 도인이 있느냐?"하시니 "예! 선사 세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럼 됐어! 네 앞으로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도전님께서 "상도(上嶋)라는 이름을 어떻게 가졌지?"하고 물으시니 박성구 선감이 "예, 상도동(上嶋洞)이므로 상도방면이라고 올렸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도전님께서 "도자(字)가 무슨 도자(字)지?"하고 물으시니 박성구 선감이 "예, 섬도(嶋)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렇게 되었느냐?"하시고는 "그러면 속초방면과 서교방면은 없애고 모두 상도방면으로 합쳐서 한 방면으로 해 나가라!"고 분부를 내리신 후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살아!!"라고 말씀하셨다.
방면이 모두 난 후, 도전님께서 일어서시며 말씀하시기를 "박선감이 잘못된 것이 뭐 있어!! 나를 받들려고 한 것이 좀 지나쳤을 뿐이지!!"하시고는 창 쪽으로 돌아서시면서 "나를 천사라 하던가? 나를 천사라 했지?"하시면서 웃으셨다.
29. 1992년(壬申年) 11월 17일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금릉방면 몇 방면으로 나누어져 있지? 9개 방면, 먼저 저 먼저 달이냐? 뭔 얘긴지 모르겠더라. 여기 나와 봐. 누가 금릉선감이야? 얘기해 봐. 합쳐 달라는 거야 뭐야. 왕래를 못하기 때문에 …. 그게 아니지. 서로 간섭하지 말라했지. 합친다고 하면 금릉선감의 지시를 받아야 되고, 그 다음은 또 그 밑에 선감 지시를 받아야 되고…. 9개 방면이면 선감이 9명인데, 아홉사람 성격이 다 달라. 한 사람이 그 성격 다 못 맞춰. 그러다 보면 또 문제가 생겨. 합해서 하게되면 좋긴 좋지. 그러나 그거 어려워. 싫다는 것은 아니야. 좋긴 좋은데 금릉선감한테 다 모이면 어떡할거야. 방면 전부 없애고 금릉방면으로 해요. 금릉방면 합치면 안 좋아. 합치려면 각서를 써놓고 해. 앞으로 일 생기면 그땐 … . 해봐, 각서는 필요없어. 대중들 앞에서 했으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유규용 선감을 가리키시면서 "저 사람, 학교 어디 나왔어?"하고 물으시니 옆에서 "예! 대학교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우리는 국민학교 나왔어도 안 그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너! 몇살이야?"하고 물으시니 유규용 선감이 "예! 서른 아홉 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도전님께서 "마흔 살이구만! 여기(금릉방면) 아니잖아! 어디야?"하고 물으시자, "예! 안희철 교감 직계였는데, 안 교감은 박성구 선감 직계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렇지, 딴 줄이지! 너는 세 번 배신하는 거야! 거기서 나올 때 배신했고, 박성구 배신했고, 이것도 배신이여! 알어!! 너는 박성구 배신한 것이 아니고 나를 배신한 거야!!"라며 진노하시고는 "금릉방면 너희들 아직 죄 안 풀렸어!! 그때 너희들이 한 것은 박 성구를 들어낼려고 했던 것이지! 박성구 말을 안들은 것이 아니고 내 말을 거역했어!! 아직 죄가 있는 거야!! 김경인(순감)을 그래서 내보내지 않는 거야! 뭘 몰라!!"라고 말씀하셨다.
30. ①1993년 도전님께서 강원도 속초에 도장부지를 매입코자 임원들을 시켜서 알아보게 하셨다. 그르던 중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한곳이 소개되었는데 그곳을 둘러보시고 매우 흡족해 하시며 그 땅을 매입코자 하셨다.
도장으로 환궁하셔서 임원들과 의논을 하려고 하셨으나, 출근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이 아무도 없자 도전님께서는 몹시 언짢아하셨는데, 치성때도 늦게 들어오니 도전님께서 진노하셨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길 "앞으로 절후치성에는 도장 안에 있는 순감과 종사원들과 치성을 드릴 것이다. 선 • 교감들은 일체 참석시키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도 정성 드린다면 3일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하는데, 우리는 바빠서 그렇게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날만은 정성 드리는 날이다. 치성 때 2시간만 참석한다는 것은 불경이다. 불경은 죄다. 죄짓는 것이다. 딴것하고는 달라서 정성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정신을 어떻게 뜯어고친단 말인가? 정성, 치성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②그 후에 그 도장부지를 매입코자 흥정을 하자 처음에는 평당 4만 5천원 하던 땅값이 계속 올라가서 7만원, 9만원, 나중에는 13만원까지 올라갔다. 이때 도전님의 분부를 받고 부동산 소개소와 매입흥정을 한 사람은 김찬성 선감과 박원균 선감이었다. 나중에 도전님께서 13만원을 주고라도 매입하라 하셨으나 매입치 못했다.
그 당시 박원균 선감이 계약을 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인 윤모씨와 서울에서 지주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윤씨가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속초에서 서울로 향하던 중, 양평 근방 대로변에서 차 타이어가 펑크 나서 수리하느라 3시간이상을 지체하게 되어 결국 그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전해지는데, 이후에 박원균 선감이 이 일로 속초에서 윤씨를 찾고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그 땅을 매입치 못하자 도전님께서는 그곳은 그만두고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명하셨다. 얼마 후 다른 한곳이 소개되었는데 성천리였다. 이때 도전님께서 유경문 선감, 권종진 선감, 전정석 교감을 대동하고 그 부지를 알아보러 가셨다.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산 고개를 두 군데를 넘으시면서 두루 살펴보셨으나 "배산(背山)의 고가 너무 낮아서 지형이 별로 좋지 못하다."하시고는 그만두셨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학산방면 김남식 선감을 불러 고성쪽으로 도장부지를 알아보게 하셨는데 김남식 선감이 고성 송지호수 뒤에 있는 오봉산을 소개했다. 이때 도전님께서 정인식 선감, 신용덕 총무부장, 한만수 선감, 김찬성 선감, 유경문 선감, 박원균 선감, 박춘균 선감, 김남식 선감 등을 대동하고 가셔서 두루 둘러보셨는데 도전님께서 세번이나 둘러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산세와 전망이 정말 좋다. 내려오기가 싫을 정도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 농부가 올라와서 그 산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산의 전설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옛날 옥황상제께서 여기에 내려오셔서 쉬시던 곳이며, 선녀들이 거문고를 치고 놀던 곳이라 전한다."며 주위의 옥녀봉, 노적봉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날 신기한 것은 동네에 소가 50여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가 울자 온 동네 소가 일제히 따라 울었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산 이름이 오봉산인데, 오봉은 궁상각치우로 오행의 기운이 다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오봉산은 예로부터 궁상각치우의 오현음률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곳이라 하여 오음산이라 불려지기도 한 곳인데, 도전님께서 이곳을 여러 차례 납시어 둘러보시고, 자로 일일이 척수를 재어 보셨다. 그리고 김남식 선감에게 지시하여 "지주들을 알아보고 군청에서 허가가 며칠만에 나올 수 있는지 알아 보라."하셨다. 그리고 "빨리 매입하라."하시며 재촉하셨는데, 지주들 11명이 모두 동의하여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서만 쓰면 될 시점에서 한가지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이 부지를 매입할 수 없게 되었다. 서울방면에 속초 도인 한 사람이 은행돈 3000만원을 횡령하여 유공을 했다고 강원일보에 보도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의 여론이 돌아서서 반대운동을 벌임으로써 오봉산 부지는 매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는 굉장히 근심하셨다.
그 후 송지호수 앞에 있는 인정리와 동해 망상 등 몇 군데를 더 알아보셨으나 모두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③그 무렵인 1994년 1월초에 속초에 상도방면 정춘자 선사가 부동산 소개소에 포덕하러 갔다가 일전에 매입코자 하다가 성사되지 못한 토성면 인흥리 도장부지 매입에 관한 색다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중개인 한 명이 '정춘자 선사가 대순진리회에 있다'고 하자 꼭 좀 만나자고 하여 만나게 되었다. 다방에서 만난 사람은 세 사람이었는데 지주와는 4촌지간이었고,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대순진리회에서 땅 매입하려는 그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이더라. 평당 4만원에 내놓은 땅을 두고 '이 땅은 10만원이라도 주고 구입해야 하니 계약서에는 7만원을 적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지주들은 그자들이 장난치고 다니니 그 사람들하고는 거래 안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지주들은 대순진리회에서 땅을 매입하려는 주인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거래를 하고 싶어한다. 당신이 대순진리회에서 땅을 매입하려는 주인을 알면 소개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정춘자 선사가 "나는 알기가 어려우니 잘 아는 사람을 연락해서 통보해 주겠다."고 하고 연락처를 받아두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정춘자 선사가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보고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박성구 선감은 이것을 두고 '지주를 먼저 만나보고 도전님께 보고 드리느냐? 아니면 도전님께 바로 보고를 드리느냐?'하는 것을 최해경 선감과 의논을 하였는데 '지주부터 먼저 만나서 상황을 충분히 알아보고 도전님께 보고 드리자.'고 결론을 짓고, 오연자 선감을 시켜 정춘자 선사와 함께 서울에 올라가 지주를 만나보고 상황을 충분히 알아본 후, 도전님께 이 사실을 보고 드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땅값을 평당 4만원정도에 살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라고 하였다.〈당시 상도 박성구 선감은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일체 거동할 수가 없었으므로 직접 올라가서 보고 드릴 수가 없어서 상도방면 오연자 선감으로 하여금 도전님께 이 사실을 상고드리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연자 선감과 정춘자 선사가 서울에 올라가서 땅주인을 만났다. 이때 오연자 선감은 옆에서 관망하고 있었고, 정춘자 선사가 지주들을 대하게 되었다. 지주들이 "대순진리회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정춘자 선사가 "아니다"라고 하자, 지주들이 하는 말이 "대순진리회에 그 사람들 흥정은 4만 5천원을 하고 계약서에는 7만원을 적어 달라고 하며 몇 번을 오고 해서 그 중간사람들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 이제는 대순진리회에서 땅을 살려는 주인이 오면 만나지 중간에 개입된 사람들하고는 안 만나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춘자 선사가 "아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왔다. 부친이 땅이 필요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땅을 평당 4만원에 매매할 수 있느냐고 하자, 지주들이 평당 5만원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알았다 하고 헤어진 후, 오연자 선감은 곧 바로 이 사실을 도전님께 보고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상도 박성구 선감이 이 일을 최해경과 먼저 의논하고 도전님께 보고 드렸으므로, 도전님께서는 이 사실로 인해 도장부지 매입에 대한 말씀은 계시지 않고 몹시 언짢아 하셨는데, 상도선감은 이것이 불충임을 얼마 후에 깨닫게 되었다.
오연자 선감은 도전님께서 언짢아하시므로, 죄송 스런 마음에서 보고를 드리고 물러나는 자리에서 "속초 연락소에 정춘자 선사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가겠습니다." 도전님께서 "그것 뭣하게?"하시자 "도인이니까 일시키면 되지 않겠습니까?"하자, 도전님께서 "내가 일시켜도 되겠어?" 오연자 선감이 "도전님 도인인데요!" 도전님께서 "그래 다 내 도인이라고 말은 해도 안 그렇더라"하시자, 오연자 선감이 "소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직접 연락하셔서 불러 쓰십시요."라고 하였다. 오연자 선감이 시봉에게 "전화번호 받아 적어두시지요"하였으나, 시봉이 가만히 있자 도전님께서 "뭐하냐? 전화번호 받아 적어라 하잖아."하시니 시봉이 받아 적어 두었다.
④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인 1994년 7월경, 상도 박성구 선감의 몸이 많이 회복되어 1년만에 처음 도전님께 인사드리러 올라가는 날, 도전님께서 속초 상도방면 정춘자 선사에게 직접 전화를 하셔서 도장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은 1993년 5월경 척추를 다쳐서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일체 거동을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임원들이 도전님께 보고를 하였는데, 김찬성 선감이 "상도 박성구 선감이 중풍이 걸려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답니다."라고 말씀 드렸던 것이다. 도전님께서 이 사실을 보고 받고 오연자 선감을 불러 "박성구 선감의 병에 대해 CT촬영을 하고, MRI사진을 찍어보내라."고 하시고, 1년에 걸쳐 계속 시료를 받게 하셨다. 이때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평생 불구자가 된다."라 하였으나 상도 박성구 선감은 수술을 하지 않고 오직 도전님의 시료를 믿고, 사시기도로서 치료를 하여 1년이 지난 94년 7월경에는 거동할 수 있을 만큼 몸이 나아졌다. 그러자 상도 박성구 선감이 "내일은 도전님께 인사 올리러 가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5시에 출발하여 도전님께 인사를 드리러 올라가게 되었다.〉
바로 그 날 아침 7시 30분경에 속초에 사는 상도방면 정춘자 선사에게 도전님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정춘자 선사는 처음에는 목소리를 듣고 상도 박성구 선감인 줄 알고 "어른이십니까."하니 도전님께서 "응, 어른이야."하시면서 집안 안부를 물으셨다.
정춘자 선사가 그때야 도전님이신 것을 알아듣고 "잘못했습니다. 제가 목소리를 잘못 알아들었습니다."라고 하자, 도전님께서 "아냐 내가 어른이야"하시고는 "차가 있어?"하셨다. 정춘자 선사가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도전님께서 "그러면 도장으로 오겠어? 아니면 서울에서 직접 지주를 만나겠느냐?"고 물으셨다. 정춘자 선사가 "도장으로 올라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도전님께서 "그러면 도장으로 올라와."하시며 "박 선감 올라오고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으셨다. 정춘자 선사가 "모릅니다."라고 하자, 도전님께서 "박 선감도 지금 올라오고 있어. 여기 오면 만나. 지금 추풍령쯤 올라오고 있을 거야."하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라 미리 통보를 드리고 올라 간 것도 아닌데, 도전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올라가고 있는 도중에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정춘자 선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전님께서 정춘자 선사에게 도장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으며, 또한 상도선감이 올라오고 있으니 도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박성구 선감은 "도장에서 만나자."하고 통화를 끝내고 서둘러 도장으로 향했다.
도장에 도착하여 도전님을 배알하러 아래내정으로 갔다. 내정에 들어가자 도전님께서 문앞에 나와 계셨다. 도전님께서 반기시면서 "왔느냐?"하시고, 친히 계단아래까지 내려오셔서 부축하려고 하시자, 상도선감이 "혼자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래, 걸을 수 있어?"하시며 한 발짝 한 발짝 지켜보시며 함께 계단을 올라가셨다. 방안으로 들어가서, 불편한 몸이지만 4배를 올리자 도전님께서 "뭘 절을 하느냐?"하시며 4배를 다 받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속초에 연락했어. 그 누구지?"하시자 상도선감이 "예, 정춘자 선사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도전님께서 "내가 일 좀 시키려고"하시고, 이어서 "오선감이 해야돼!"하시고는 "오면 이야기 할께"라고 하셨다.
이때 김찬성 선감, 박원균 선감, 경석규 원장, 신용덕 총무부장, 정인식 선감 등 임원들이 들어오므로 박성구 선감에게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고 "밑에 내려가 있어라."고 하셨다. 밑에 내려가니 정춘자 선사가 도착해 있었다.
조금 후 도전님을 배알하니 도전님께서 강원도 고성군 토성도장 부지 매입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오연자 선감과 정춘자 선사에게 그 땅의 지주들을 만나보고 땅을 매입하라고 지시하셨다. 그 부지는 김찬성 선감과 박원균 선감이 흥정하였던 고성군 토성면 부지로서 지주가 2명이었다. 도전님께서 "빨리 매입하라. 이틀이면 되겠느냐?"고 하시자 오연자 선감이 "3일만 말미를 주셨으면 합니다."하자 "그렇게 하라"하시고, "차는 내 차를 쓰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⑤ 당시 부지를 매입하는 동안 상도 박성구 선감은 도전님의 하명으로 일주일 동안 도장에 머물면서, 도전님의 분부를 모시었다.
그때 도전님께서 대순성전 지하 집회실로 도장에 있는 임원들을 전부 모이게 하셨는데, 부전방면에서 주문과 채지가를 녹음하여 5천원씩 판매하는 것을 아시고 "녹음한 테이프는 모두 회수하여 폐기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하시고, 또 "녹명지, 성령지위를 인쇄하지 말고 적어서 쓰도록 하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그리고 정대진 선감에게 "정대진이 네가 대두목이며 제2인자라고 하는데"라는 말씀이 계시자 정대진 선감이 "저는 그런 말한 적 없습니다." 도전님께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대진이 너! 재단 이사장 당장 그만둬!!"라고 진노하시며 질책하시고, 안담 사무장을 보고 "정대진을 재단 이사장에서 빼!!"라고 지시하셨다.
⑥한편, 오연자 선감과 정춘자 선사는 당일로 지주들을 만났으나 두 사람 모두 술을 마신 상태인지라 "내일 만나서 가계약을 하자."고 약속을 하고 그날은 헤어졌다.
다음날 다시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옆 팔레스호텔 커피숍에서 지주 두 사람과 오연자 선감, 정춘자 선사가 만나서 평당 4만 5천원에 5만평을 매입하기로 가계약을 하였다. 다음날 도전님께서 김찬성 선감에게 "너는 절대 나가지 마라! 그리고 전화도 하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오연자 선감과 정춘자 선사에게 박원균 선감과 같이 가서 지주들과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시고 계약에 관한 업무를 보게 하셨다. 그래서 지주들을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중도금을 지불하여 토성도장 부지매입 계약을 매듭지었다. 도장부지를 매입하고 도전님께 보고를 드리자, 도전님께서 "고성 땅은 상도방면 오연자 선감이 샀어."라고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다.
도전님께서 김찬성 선감, 박원균 선감에게 진노하시며 "천하에 몹쓸 놈들이다. 일반 사가(私家)에서도 집안어른이 땅을 살려고 했으면, 한번쯤은 지주를 만나보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다."고 하시고 다시 "너희들이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13만원을 주고라도 사보라고 했었다. 그런데 못 샀어. 너희들은 그 땅 못 사!"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못사는 땅을 상도에서 샀어!"라고 하셨다.
그 후 훈시말씀에서 "이번에 고성 땅, 상도에서 샀어!"라고 말씀하셨다.
⑦매입 후 도전님께서 여러 임원들과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현지에 도착하여 답사하실 때 오봉산에 좋은 산세를 보다가 인흥리에 야산을 보고 아쉬워하는 임원들을 보신 후, 여러 임원들과 준비해 온 점심을 산 속(지금의 본전자리)에서 드시면서 "명당이 어디가 명당이냐?"하고 임원들에게 물으시자 정인식 선감이 지체없이 "윗 전에서 쓰시는 곳이 명당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음 그래…."하시며 미소를 지으시니 여러 임원들도 이 곳이 명당이라 믿는 마음으로, 다같이 기뻐하며 좋아하였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은 배산(背山)이 금강산 제일봉인 신선봉이고, 앞쪽으로는 동해이며, 지명이 인흥(仁興)이다. 뒤에 있는 화엄사도 금강산 화엄사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