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신경(藎卿). 찬성사 문개(文凱)의 9대손이다. 1583년(선조 16)에 두 형과 더불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따라갔으며 왕명을 받들어 각 진(鎭)을 다니며 왕의 지시를 전달하였다. 이 해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 등으로 전공을 세웠다. 1597년 보성군수로 3도수군통제사 원균(元均)의 휘하에 중군(中軍)으로 참전, 군무에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군선[舟師] 30여 척을 이끌고 안골포(安骨浦)·가덕도(加德島)의 적주둔지를 공격하다가 안골포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순천의 충민사(忠愍祠), 보성의 정충사(旌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현(忠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