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공원에서 화장실을 놓친 일행들이 화장실 서용을 위해 카페에 들어 간 사이 우리는 승리광장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모스크바의 개선문도 찍고 하였다. 일행이 다모여 우리는 모스크바에 오면 꼭 들러야할 유명한 곳인 지하철을 타러 승리역으로 내려갔다. 이름 그대로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는 긴 에스컬레이터가 우리들을 압도하였다. 84m나 깊이 들어가야 역플랫폼이 나온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한참을 내려가서 드디어 플랫폼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흔히보던 그런 역사가 아니고 이 것은 궁전 으로 들어 가는 길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기둥이며 벽이며 벽에 그려진 벽화며 모든 것이 지하궁전이라 불릴만 하다. 잠시 후에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고 우리는 아르바트역으로 갔다. 그런데 아름다운 플랫폼과는 달리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시골 기차같다. 지하철을 탑승하여 빈자리에 앉아 보았다. 3구역 정도 가니 내린다고 하여 아쉽지만 내렸다. 지하철 역에서 빠져 나와 아르바트거리로 갔다. 가면서 보이는 스탈린 시스터즈의 하나인 외무성 건물도 보았다. 아르바트거리는 긴 대로를 따라 조성되어 있었으며 차 없는 거리라서 걸어서 구경하였다. 그림을 그린 사람들, 약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마술을 하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닌 동상이 하나 나왔다. 그동상은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동상 이었으며 맞은편 초록색 집은 푸시킨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 곳을 푸시킨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단다. 조금도 내려가 골목길로 접어드니 온통 그래피티로 되어 있느 벽면이 나왔다. 그 곳이 바로 한국계 러시아 가수인 빅토르 최의 추모벽면이라고 했다. 온통 그래피티로 되어 있는 중간에 빅토르 최의 얼굴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로 조그맣게 단이 만들어져 있어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꽃을 놓고 가곤 한단다. 우리는 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잠깐 묵념을 했다. 아르바트 거리를 빠져 나와 우리는 다시 버스에 탑승하여 저녁 식사 장소인 한국식 레스토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와 내일 러시아의 황금고리 블라디미르와 슈즈달로 갈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Park Pobedy 역(파르크 포베듸 역 : 승리공원 역)
제 2차 대전 전승 기념 60주년을 기념하는 역으로 모스크바 지하철 중에
그 깊이가 84m로 가장 깊다.
플랫폼의 한켠에 마련된 반원형의 화려한 벽화부터
역 곳곳에 마련된 세심한 장식들은 “지하궁전”이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있음직해 보인다.
홀의 양쪽 끝에는 1812년과 1945년의 승리를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2003년 5월에 165번째로 개통되었다.(러시아는 제 2차 세계 대전을 “The Great
Patriotic War”라고 하며 독일에 대한 승리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역시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면서도 장대한 공간미가 느껴지는 역사인 듯하다.
제정 러시아 시기의 군인들을 묘사한 벽화와 1945년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순간을
묘사한 벽화가 승리공원과 대 조국전쟁 기념관이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역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깊이 84m의 역사 프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길이 만도 대단하게 길다.
끝없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러시아는 지하철역을 왜 깊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전쟁에 대비해 적의 공습과 핵 공격에도 안전한 방공호로써
지하철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41년 10월15일 독일군이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하자 책임자는 지하철 폭파를 명령한다. 독일군이 시민의 방공호로 사용된 지하철을 전초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봉쇄하려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음날 독일은 진격을 멈추었고 지하철역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시민들은 지하철역에서 한달 이상 머물렀고
이때 태어난 아기만 해도 217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를 보면 모스크바 지하철역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
드디어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곳 까지 내려왔다
2차세계대전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벽화
러시아 지하철
지하철은 1935년 5월 15일 처음으로 개통했다.
당시 러시아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통치하던 구소련이었다.
스탈린은 지하철역을 통해 구소련의 미래상인 찬란한 소련의 미래를 제시하려 했다.
그렇게 지어진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대리석 바닥과 기둥, 아치형 천장,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조각상, 웅장한 상들리에로 꾸며진 지하궁전을 방불케 한다.
모스크바 지하철이 지닌 가장 놀라운 특징은 대부분의 역이
웅장하고 화려한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 유적 1001”에 따르면 이러한 역들은
차르(러시아나 불가리아 등의 동유럽 슬라브 민족 국가의 군주)
궁전의 내부를 닮게 치장된 것이라고 한다. 타일로 덮힌 벽에는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의 권력기관 또는 권력형태) 체계가 이루어 낸 결실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노동자, 농민, 군인들을 나타낸다.
매혹적인 조각품, 모자이크, 그림이 가득한데 이는 공산주의의 대의를
선전하려고 하는 계획적인 책략이었던 것이다.
맞은 편의 벽화-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고 자축하는 모습
지하철역사 입구
정면에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이 스탈린시스터즈의 하나인 외무성 건물이다
아르바트거리
푸시킨과 그의 아내 나타샤 동상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 박물관
신혼 시절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것 그리움이 되리니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1799년 6월 6알 - 1837년2월 10일)은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외조부는 표트르 대제를 섬긴 아비시니아 흑인 귀족이었다.
유년시대는 백부 바실리와 친지인 카람진 제콥스키등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1811년∼ 1817년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차르스코예셀로의 전문학교에 다녔다.
1820년 농촌이라는 시가 널리 읽혀지자, 당시 "정부는 그것이 정부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푸시킨을 남부 러시아로 유배시키고, 푸슈킨은 키시뇨우나, 오데사에서 살았다.
키시너우나 오데사에 살던 시절,
데카브리스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사상과 영향을 받았다.
1824년엔 국외망명에 실패하면서, 미하일롭스코예란 곳에서 유배되었다.
1837년 1월 27일 아내 나탈랴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귀족 단테스와의 결투로 부상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