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이 장 원
설산의 봄은 설산이다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았던 태고에도
설산의 봄은
빗살무늬가 웅장한 설산이었다
설산으로 가는 길목엔
꽃도 피었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꽃이 되었을
새는 묵직한 날개를 펴고
얼음 궁전 위를 유유히 날았으리라
태양은 태양의 길을
둥글게 둥글게 돌아갔던
태고의 시간
봄은 왔고
얼음 속에 갇힌 여름과 가을과 겨울
찾는 발길도 없이 외로웠을
다만 자신의 고독으로 우뚝 서서
고결한 혼을 지켜왔을
안데스, 그 깊은 설산의 봄
*김춘수의 시에서 인용
동창
-구 춘천 여고 교정을 추억하며-
이 장 원
연탄난로 위 도시락 굽는 냄새
소녀들의 공상 위로 떠도는
수학 선생님의 꿈결 같은 강의
단조로운 리듬과 두 음계 안에 안착했던 음표들이
책상 아래로 무심히 굴러 떨어진다
우리의 미래에 미적분을 애써 심으려 했던
수학 선생님의 열의는 박애주의였을까
미적분이 갈라놓는 미래의 안쪽에
뭐 쫌 폼 나는 의자가 기다리고 있다 한들
지금은 수평선으로 무거워진 눈꺼풀 위,
창밖 목백합 나뭇가지에 걸린 낮달 같은
시를 꿈꾸는 소녀들
거꾸로 매달린 시어들이 하얗게 웃는다
숫자가 튀어나올 때마다 벌름거리던
수학 선생님의 콧구멍과
도시락 냄새를 추억하던 침묵 사이로
세월의 간극이 밀고 들어온다
교실 안에서 재잘거리던 모국어는 길을 잃고
소통이 서툴러진 표정들
커다란 틈을 만들어버린
인테그랄과 리미트의 이쪽과 저쪽 끝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표류한다
반가워 맞잡았던 손끝에 서먹한 척력이 끼어들고
슬며시 손가락을 오므리며 카페 안을 둘러보는 눈길들
저쪽 테이블에서
어린 여학생들의 소란이 생기발랄하다
*이장원: 한림대커뮤니티교육원 시창작반. 현,수향시낭송회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