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9일 아침 오 후 한 시, 일이건 공부건 어쩐지 정리가 안 된 채로 길을 떠난다는 느낌에,
어수선한 기분으로 오르도스市(东胜; 오르도스시는 대단히 넓은 지역으로 그 중 한 지역을 '东胜'이라 부른다.)행 버스에 올랐다.
후후헛에서 오르도스까지는 버스로 대략 세시간 반, 요금은 67RMB
오르도스는 오르도스 사막과 쿠줍치 사막 등,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이어지는
전세계에서 제일 큰 사막의 남동쪽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곳.
기원전 흉노가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고, 구석기 유물과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만리장성 너머의 북쪽 땅이지만, 몽골고원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장성 너머 남녘으로는 비옥한 한족의 농업지대가 펼쳐진다.
현재는 칭기스칸릉(실제 유골은 묻혀 있지 않지만, 칭키스칸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이 자리하고 있고
무엇보다 석탄, 석유, 동 등의 에너지 자원과 광물 생산이 활발하다.
오르도스를 '중국에 있어서의 광업 중심지'로 소개하는 여행안내서를 읽은 일도 있다.
하지만, 오르도스시내에서는 광업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없었고,
번화하고 현대화된 중소도시로서의 인상을 받았을 뿐이다.
다만, 양모 가공업이 활발한 오르도스이기도 한 만큼
도시 한 켠에 자리잡은 대형 양모제품 판매점이 있었다.
여관에서 숙박한 다음 날,
오르도스의 오래된 주거지역을 찾아가서 어슬렁대다가 그 지역에서 가까운 양모제품 판매점 앞을 지났다.
낮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이었지만, 쾌청한 날씨에 햇빛이 있어서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손과 발이 시렸다.
중국에서 숙박시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유스호스텔이나 별 세 개 이상의 호텔이 아니면,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는 법률조항이 있다.
2003년과 2004년에 중국에 왔을 때에도 그런 규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숙박시설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해도 눈감아 줬었다.
하지만,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을 때 숙박시설들이 엄격히 위의 법률조항을 준수하게 된 듯 했다.
외국인 혼자서 여행할 때는 비싼 호텔을 이용해야 하고 따라서 비싼 숙박비를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오르도스는 특히나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데, 별 세 개쯤 되는 호텔이라면 할인요금 적용을 받는다해도
적어도 100에서 150RMB는 지불하게 된다.
중국 각지의 유스호스텔 하룻밤 요금이 6달러 안팎인 걸 고려하면, 많이 비싼 편이다.
오르도스시에는 유스호스텔이 없다.
이럴 땐 편법을 쓸 수 있는데, 중국인 지인의 명의로 방을 빌리면 된다.
출발전 오르도스시에는 사는 학생과 연락을 해 두었고,
그 학생에게 부탁을 해 그 학생 명의로 방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싼 가격(첫날 50원 둘째날 35원)에 이틀간 방을 빌릴 수 있었다.
각 층별로 공동화장실이 있고, 욕실은 없었다.
2003년도에도 2004년도에도 여름에 여행을 했지만, 딱 한 번 욕실있는 방에 머물렀었다.
욕실없는 방에 머물게 될 때는, 공중목용탕을 이용하면 된다.

도착한 날 거의 저녁이 되었을 무렵부터 오르도스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오르도스시내 동셩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가서 백화점 구경을 했다.
길거리가 깨끗하다는 것, 거리건 백화점이건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간판들이 고급스럽다는 것,
버스나 승용차들 운전하는 양이 꽤 질서롭다는 것, 몽골사람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등이
거리를 거닐며 동셩에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밤늦게 여관으로 돌아와 아라샨멍盟과 바엔노르멍에 사는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다들 연락이 안 되었다.
출발 며칠전부터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연락이 안 되었고,
동셩에서 먼 시골의 유목지역에 산다는 학생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관도 식당도 없는 오르도스 사막의 허허벌판을 혼자 돌아다니다가 얼어죽는 것도 좋지만......
아쉽지만, 별 수 없이 동셩에서 후후헛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다음에 후후헛에서 실린골로 향할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터미널로 가서 후후헛 버스를 예약했고, 다시 동셩시내를 걷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오르도스에 사는 학생이 안내를 해 주었다. 그 학생이 다녔다는 고등학교에도 가 보았다.
어딘가 찾아갈 때, 그 곳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친구의 안내를 받게 되면,
그 안내해주는 이의 추억을 들여다보며 추억의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눈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소재로 해서,
머리속에 그들의 추억을 영상으로 연출해서 마치 내 기억인양 흐뭇해지고 어쩔 때는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내 추억도 아닌데......
학생들이 단 한 명도 없는 그 학생 모교 식당에서 만두국을 사 먹었는데,
열두시가 가까이 되자 갑작스레 수백명의 학생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다시 걷기 시작해서 오래된 단층벽돌주택 지역을 지나서, 양모판매장 앞을 지났다.
걷는 중에 바엔노르멍의 한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멍에 오면 자신의 집에 초대하겠다는 전화였다.
주저없이 바멍으로 가겠다고 대답했고,
곧바로 터미널로 가서 후후헛행 표를 환불하고, 다음날 '바멍 우중치'라는 곳으로 가는 차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걸었다.
추위때문에 단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 넓은 공원을 걷기도 했고,
장난감 가게에 가서 장난감이나 아이들 군것질거리들을 둘러 보기도 했다.
KFC에 가서 커피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고,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공원에 가서 원숭이와 거위를 보기도 했다.
오르도스시내를 거닐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오르도스 시내 한 곳이 재개발 때문에 작은 아파트가 철거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지역이 대단히 번화한 곳 중심에 있는 지역이었고,
그 아파트에 살던 사람은 보상금으로 600만RMB를 받았다고 했다.
오르도스는 인구가 20만쯤되는 작은 도시이긴 해도,
물가건 땅값이건 비싼 데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사례지 싶었다.
오르도스에는 오래전부터 몽골족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몽골의 흔적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르도스시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두시간 정도 달리면 칭키스칸 릉이 있지만,
가까운 거리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튼, 칭키스칸릉은 여름 휴양지 중 한 곳이기도 하고, 오르도스 공항을 통해서 많은 중국내외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오르도스시는 최근에 급성장한 도시로 몽골족의 전통적인 삶을 견학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다만, 광업과 양모사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현대적인 상업도시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식당이나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후후헛 사람들에 비하면 많이 친절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둘째날 하루종일 이어진 산보가 끝나고, 여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식당에 가서 양고기면을 먹었다.
이제까지 먹어 본 양고기면 중 최고의 맛이었다.
그 날 밤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그게 과음이 되어 셋째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여전히 술에 취한 채로였다.
아침을 먹으며 다시 해장술...... 그렇게 취한 채로 바멍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