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17)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5-27)
위의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지극히 크신 평안함 가운데에서 기뻐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시게 되실 터이신데 천방지축인 제자들을 놔두시고 평안해 하시며 기뻐하실 수 있으셨을까? 그 이유는 바로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곧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 안에, 믿는 사람들 안에 들어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은 예수님과 동고동락 했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친히 임재 하셔서 그들 안에서, 그들의 삶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혀 알고 만나게 된다. 전 인격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해 들어왔던 부분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만남을 통해 진정으로 인격적으로 알게 된다(교리 자체를 사람의 지식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성령님으로 충만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나타나거나 귀신을 쫓아내거나 예언의 은사 등 초자연적인 은사들의 나타남이 그 증거라고 이야기 한다. 이 말들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령님으로 충만한 증거는 성령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삶이 기준이다.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시금석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 5:22-26)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18-21)
...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친구,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말씀하신다. 인간관계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갑자기 결혼하는가?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안다고 결혼이 가능한가? 절대 아니다.
먼저는 편하게 친구 관계부터 출발하게 된다. 친구로서의 관계가 친밀하게 깊어지다 보면 서로를 점점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점점 서로에게 자신의 시간을 헌신한다. 점점 서로에게 자신의 물질을 헌신한다. 점점 자신의 유익도 희생하며 상대방이 기뻐지기를 원하게 된다. 이 모든 관계가 친밀하게 발전하는 과정의 시작은 생각에서부터 상대방을 자주 생각하면서 부터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꾸 상대방이 떠오른다.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부러 생각하기 시작한다. 친밀한 관계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성령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내주하신다. 하지만 내주하시는 것이 성령님과 내가 친밀한 증거는 아니다.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령님과 친밀해지려면 성령님과 친밀해지려는 노력이 너무나 필요하다. 친밀해지려는 노력이 없이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 노력이 없다면 더 이상 관계가 발전하기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성령님과 친밀해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령님을 생각하는 훈련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다음은 성령님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의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성령님께 끊임없이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님을 지속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드리면서 생각하고 집중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중세의 수도사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 임재 연습>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과 친해진 뒤에야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그 사람을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자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이가 귀히 여기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게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생각합시다!
그렇다 우리가 성령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로렌스 형제의 권면을 가슴 속에 깊이 새기기 바란다. 그리고 철저히 적용하기 바란다.
성령님을 계속 생각하라!
혹시 놓치거나 잊어버렸더라도 다시 시작하라!
결코 포기하지 말고 다시 생각하라!
성령님을 계속 생각하라!
첫댓글 정말 로렌스 형제의 권면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철저히 적용하도록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