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교육에 관하여 관심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하기를 교육의 위기 시대이다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표현을 '교실이 무너진다'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도 여러 사회 현상들을 보면서 교육 위기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많이 있지만 제자가 없다"라는 말들을 많이 함
*학생은 지식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학생은 많이 있다. 그런데 제자는 없다.
*제자는 스승과의 사이에서 지식이상의 그 무엇을.... 인격적인 그 무엇을 나누는 것이 제자라면, 이 제자가 많아야 할텐데 제자가 없다고 하니 우리의 마음이 참 아픕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제자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으니 교회에서 주로 쓰는 말이 되어져 간다고 생각함.
*성경에 보면 제자라는 말이 많이 나옴.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 <마데테스>라는 헬라어 단어가 무려 250회 등장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곁에 우루루 몰려왔다가 또 거품처럼 사라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되겠고
-우리 모두가 철저한 '제자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28:19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 :내가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함
-우리 교회 성도 모두가 제자신앙으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제자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제자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겠는데, 간단히 몇 가지로 얘기한다면
*첫째로 제자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제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자는 아무에게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스승에게 배웁니다.
-우리의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그래서 마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제자는 혹독한 시련과 훈련을 감당하는 사람.
-배운다? : 침대에 편안히 누워서 졸면서 배울 수 없음.
-뭔가 배움이 이루어지려면 훈련과 연단이 필요한 것.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면서 그에게서 복음을 배운 제자.
-그런데 디모데는 쉽게 배우지 않았음. 연단을 통해 배웠음.
-빌 2 : 2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는 혹독한 훈련과 연단을 통해 복음의 진수를 터득한 것을 볼 수가 있음.
*그 뿐이 아니라 세 번째로 제자는 스승을 도와 일을 하기도 하는 사람.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시고 사람들에게 먹이실 때, 그것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전달해 주는 일을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을 도와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배우는 사람,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터득하는 사람, 그리고 또 스승을 도와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때, 그것만 할 때 그럼 진정한 제자가 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오늘 성경 말씀은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 줌.
*그렇다면 제자의 핵심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참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드릴려는 말씀의 요지가 바로 그 속에 들어있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 있음.
-13절 말씀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녀와 크리스챤이 되었는데, 이것이 우연히 된 것인가? 나의 선택으로 된 것인가?
-우연도 아니요, 우리의 선택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느냐?
-내가 알지 못할 때 그 분이 나를 아셨고,
-내가 선택하기 이전에 주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나를 점찍어 놓으셔서, 나를 부르셔서, 당신께서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원하셔서, 짝사랑하셔서 그래서 나를 불러 주셨으므로 내가 이곳에 있다는 이 깨달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을 보면 엡 1:4에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얘기하셨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야!" "주님 사람으로 선택되었어!!"
-이 기쁨과 확신이 여러분에게 충만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Jx님과 제자의 관계는 시시한 관계가 아니고 아주 특별한 관계임.
-우리 사람들간의 인간관계가 다 똑같이 이루어지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내가 기차타고 서울까지 가면서 내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연로하신 할아버지면 어떻고 청년이면 어떻습니까?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떻습니까?
-잘생긴 사람이면 어떻고 그저 그렇게 생겼으면 어떻습니까?
-잠깐 동안 내 옆에 앉은 기차 여행하는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인생에 무슨 큰 일이 생깁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 불만이 없어요.
*또 운전하면서 가다가 목이 말라 음료수 하나를 살 때 그 가게 집 주인이 친절하면 어떻고 무뚝뚝하면 어때요.
-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장가를 간다.
-아무나 내 곁에 세울 수 있나요?
-내가 시집을 가는데 아무나 지금부터 열 번째 오는 남자를 신랑으로 삼아야지... 그럴 수 있습니까? -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가 다 다르지요.
-내가 자산을 투자해서 동업하려고 하는데 아무나 동업하자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심사숙고하고 또 할 것입니다.
-이 관계는 2-3일 지나면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그런 관계가 아니고 소중하게 지속될 관계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심사숙고 하듯이 예수님과 우리가 제자가 되어 맺어진 관계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볼 일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님.
*여러분!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평생동안 지속될 관계입니다.
-또 이 땅에서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삶이 끝나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연결될 인연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예수님의 관계를 싸구려로 인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우리가 선택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드릴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기에서 무리와 제자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무리는 몰려와서 끝나면 그냥 갑니다.
-제자는 갈 수 없습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음으로 예수님을 떠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합니다.
@나는 Jx 없이는 살 수 없어.
-그 예수님이 피를 흘려주셨으니 피를 나눈 관계요.
-내게 생명을 주셨으니 생명으로 연결된 관계인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떠날 수 있는가?
-이것이 제자입니다.
**여러분!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의 정체성도 다른 것임.
-제자에게 요구되는 바도 다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나옴.
-목적이 무엇인지 한 번 볼까요.
-14-15절(합독) " "
*제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보내서 전도하게 하고, 복음도 전하며 귀신도 내어쫓게 하신다.
-다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이것이 제자의 정체성 중에 첫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느냐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제자가 되시기를 기원함.
*이런 관계를 잘 비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의 모두는 다 결혼하셨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내를 왜 얻으셨습니까?
-내가 점방을 보는데 배달도 해야되고 일손도 딸려서 그냥 일손 하나 얻는 셈치고 장가들었지.....(그런 남자 만나서 사는 여자분 계시면 오늘 보따리 싸서 가십시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노동력 확보하려고 결혼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혼자 살다 죽으면 대가 끊어지니 자식이라도 하나 놓아야 되겠고, 그래서 씨받이 얻기 위해 장가드셨습니까?
-그것도 아니쟎습니까?
-쾌락을 위해 결혼합니까?
-아니면 그 남자, 그 여자가 가진 돈 때문에 결혼하셨습니까?
*물론 이 세상에 타락한 결혼도 많이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짜 결혼은 너무나 사랑해서 함께 있을려고 하는 게 결혼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고 도움을 줄지...
-그것은 나중 일입니다.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고, 그래서하는 게 결혼이니까
-혹시 그 사람이 내게 일을 못해줄지라도 그것을 극복하며 결혼할 수 있음
*여러분!! 함께 있기 위해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도가 출발되는 것이고, 여기서부터 기독교의 영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
-그래서 볼 일 다 보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제자라는 이 말을 헬라어로 <마데테스>라고 하는데 이 말씀에 무슨 뜻이 들어 있느냐 하면,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무엇엔가 홀딱 반해서, 거기에 정신을 다 빼앗겨서 거기에 깊이 빠져 버린 사람', 그런 뜻입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그러면 제자라는 본뜻은 스승에게 홀딱 반해서 스승이 가르치는 말씀이 너무나 즐겁고, 스승처럼 되고 싶고, 스승과 함께 있고 싶어 언제나 스승만 생각하면서 스승에게 빨려 들어가는 사람
-바로 그게 제자라는 말의 본 뜻.
-여러분!! 예수님에게 그렇게 반하시고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하시고 예수님을 사랑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제자가 되었는가?
-원래 그는 시몬이란 이름의 어부였음.
-하루는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고 몸도, 마음도 지쳐서 그물 정리를 하고 빨리 집에를 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그 배에 타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닷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는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 설교는 바닷가의 사람들보다 베드로에게 하는 설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숨소리조차 들을 수 있는 지척에서 한 배를 타고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베드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설교가 즐겁지 않고 빨리 끝나서 집에 갔으면 하며 짜증만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무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설교 끝나고서도 예수님이 이제는 수고했으니 가라고 그러시지 않고 깊은 데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짜증이 또 났겠죠? 이거 또 엉뚱한 일까지 시키시는구나...
-할 수 없이, 마지못해 그물을 내립니다.
-여전히 무리의 마음입니다.
-스승에게 홀딱 빠져서 제대로 된 제자라면 어떻게 그 말씀을 거역합니까?
-그러나 지금 베드로는 기쁨이 없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으니 그 역시 무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내린 그 그물에 찢어질 만큼 물고기가 잡힐 때,
-'야! 나는 1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 분은 나와는 다른 분이구나'
-깨닫는 순간 그 마음이 산산히 깨어지면서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감히 당신 같은 분과 함께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야! 나도 네가 지겹다. 네가 떠나라고 하지 않아도 갈란다." 그러셨나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
*무슨 뜻입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 이 말씀은 "오늘부터 나랑 함께 있자. 내 곁에 너를 두고 싶다." 이런 뜻이 아닙니까?
-그래서 함께 있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제자가 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마 4 장에 보면 그 배와 그물을 다 팽개치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깐 가서 볼 일 보고 돌아 올 거면 배와 그물을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이제 나는 이 분과 영원히 함께 한다.
-영원히 이 분 가는데 같이 간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 배도, 그물도 필요 없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
-그러면서 따라나서서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에게 사랑과 온 마음을 주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마음을 바치고 함께 하기를 결단하여 관계가 맺어지니 예수님과 제자 사이가 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그것이 예수님 제자의 본질되는 마음이라면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게 되길 진심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데테스>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번역하면 [몰입자]라 하는데
-뭔가에 푹 빠져들었는데 예수님께 깊이 빠진 사람,
-예수님께 미친듯한 사람. 예수님만 생각하면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사람
*또 이 <마데테스>는 [귀의자]로 번역 될 수 있는데
-여기저기 쏘다니고 방탕하고 방랑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래도 어디에서 안식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품에서 참 쉴 곳을 발견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부르시는 그 음성 속에 안식을 얻고, 예수님 없이는 못 사는 줄 알고
-그 분 떠나서 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사람이 되어 자신의 미래를 다 맡기면서
-'주여.... 내가 여기 왔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그 사람!!
*그래서 그 분만 바라보고 살게 되는 그 사람, 그런 사람을 가리켜 제자라고 한다면
-여러분!!! 우리가 다 그런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와 제자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무리는 보리 떡 5개 물고기 2마리 나누어주실 때 받아먹고 배부르니까 갔습니다. 볼일 끝나니까 간 거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 또 와서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절했습니다. "나는 음식을 줄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줄려고 왔다"
-다 갔습니다. 그게 무리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너희들도 가겠느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계신데 우리가 가기를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여기 남겠습니다."
-다 떠나도 끝까지 주님 곁에 남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제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믿을 때 자동차 학원의 학생들처럼 믿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약 30년 전에 광주 서방에 있는 신진운전 학원 출신입니다.
-그런데 면허증 딴 후에 한 번도 거기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학원 운영이 걱정되어 기도해 본 적도 없습니다. 한 번도 안 가봤습니다.
-왜 안 갔을까요? 그야 배우고 끝났으니까요.
*예수는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볼일 다 봤으니까 나는 갑니다 : 그건 제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제자는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하는 겁니다.
-뗄 수가 없어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듯이 여러분, 예수님과 동행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은 이것을 떼어 놓을려고 합니다.
-어떤 시련과 유혹이 있어도 예수님을 떼어놓고 도망가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가정생활도 하시고, 직장에도 가시고, 교회사역도 하시고, 학교에도 가고,
-여러분의 모든 인생이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함께 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떤 집은 함께 살아도 주머니 따로 찬 집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 번 것은 네가 쓰고, 내가 번 것은 내가 쓴다.
-이것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할려면 같이 나누어 밥 먹고 돈도 같이 나누어 쓰고, 다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면 예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됩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우리도 원해야 되고,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예수님의 걱정거리가 우리의 걱정거리가 되고,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모든 것의 이유가 되셔서, 복음성가 가사처럼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자매를 사랑하고'
-내 인생은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간다.
-바로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 신앙의 모습의 그림을 그렇게 그려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해야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번역 성경을 보기에 잘 모르지만, 원어 성경을 보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충격적인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누가복음을 썼는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일이 있지 않습니까?
- 그 사건 이후로는 한 번도 이 <마데테스>, 제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왜 안 썼을까요?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는데 무슨 제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느냐?
-예수님을 버렸는데 무슨 제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 단어가 다시 등장하는 게 언제인가?
-의사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 와서 이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와서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의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이 남겨준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다시 이 단어가 비로소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제는 제자로 복귀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데테스 중의 한 사람입니까? 그저 예수 이름 듣고 따라다니는 무리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사명자인 우리 행복한교회의 종들과 성도인 여러분들이 영원하신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