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물건』은 무엇이며 나의 『물건』은 무엇일까?
『남자의 물건』이란 무엇일까? 떠오르는 것이 하나있다. '여자에게는 없고 남자에게만 있는 신체적인 그 무엇'을 얼핏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남자의 물건은 신체적인 물건이 아니라 ‘그 남자가 가장 아끼는, 그 남자를 상징하는 사물'을 의미함에 다름 아니다. 김정운은 TV에서 자주 접하는 대학교수로 개그맨의 예능 같은 재치와 다소 다혈질적인 어투가 인상적인 사람이다. 이 책은 서점에서 지인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물론 신문 지상의 광고에서도 많이 접했다. 책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터라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저자 김정운은 이 책에서 대한민국 남자들의 삶에 주목한다고 했다. 불안하고 갑갑한 대한민국 남자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발적인 제목인 『남자의 물건』은 그러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한 상징이라 보인다. 책은 '물건' 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책의 1부에서 대한민국 남자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는 유쾌하고도 가슴 찡한 위로를, 2부에서 각계각층 다양한 분야 13명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관계에 치이고 삶이 외로운 남자들의 마음에 건강검진을 하듯, 내면을 위로하고 사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구체적 해법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저자 특유의 통쾌한 입담과 예리한 통찰은 읽는 내내 유쾌한 공감을 만들어 준다.
남자의 마음엔 외로운 아이가 산다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문제로 이어진다. ‘남의 돈 따먹기’ 힘든 회사 생활, 점점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아내와 자식들, 폭탄주를 마셔도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 늘어만 가는 짜증과 분노……. 이렇게 메마르고 갑갑한 일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때론 비굴하고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에 도대체 무엇이 빠져 있기에 이토록 허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내 삶의 낙이 무언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대로 지내다가는 정말 “한 방에 훅 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62년생이니 올해 50세다)는 본인의 곤욕스러웠던 전립선 검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립선보다 중요한 ‘마음’에도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소변 줄기가 막히는 것도 그렇게 두려워 그 난감한 전립선 검사조차 마다 않는데, 온통 상처투성이인 마음에는 왜 정기검진이 없을까 하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는 관계에 치이고 삶이 외로운 남자들의 마음에 건강검진을 하듯, 내면을 위로하고 사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이야기’다. 모이기만 하면 하는 정치인, 연예인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계절이 바뀌면 눈물나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 등 나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때 삶은 즐거워지고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는 문학평론가 이어령, 학자 신영복, 축구감독 차범근, 정치인 문재인, 영화배우 안성기, 가수 조영남, 정치인 김문수, 지도 컬렉터 유영구, 화가 이왈종, 소설가 박범신 등이다. 지식에의 욕망을 나타낸 이어령의 3미터 책상은 오히려 대학자의 근원적 외로움을 알 수 있고, 먹을 갈고 글씨를 쓰는 것처럼 20년 무기수의 삶을 과정 그 자체로 살아온 신영복의 벼루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재미는 없지만 일희일비하지 않는 신뢰감을 주는 문재인은 그의 바둑판처럼 묵직하다. 또한 영원한 경계인이자 비현실적 낙관주의자인 조영남은 그의 네모난 안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당당함과 꼬장꼬장함을 그대로 기록한 김문수의 수첩은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며, 고지도를 모으는 유영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며, 화가 이왈종의 면도기는 예술가의 섬세함과 자유인의 대범함을 보여주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은 내면의 상처와 슬픔을 보여준다. 그들이 펼쳐놓는 사소한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들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서화 : 저자는 신영복 서체의 근원이 신영복의 '물건'인 벼루에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당신만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나의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물건을 매개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설레게 하는 사소하고 특별한 물건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고, 진정 충만하고 행복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위의 사진은 순서대로 이어령의 책상, 문재인의 바둑판,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암의 안경,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김갑수의 커피 그라인더, 김문수의 수첩, 윤광준의 모자이다. 사진은 책에 있는 그림으로 대부분 동아일보에서 퍼왔음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