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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 집필실
 
 
 
카페 게시글
▣희곡 창고 스크랩 심토머 연극대본
한작가 추천 0 조회 49 08.08.22 07: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심 토 머(symptomer)

원작 : 김언수,『캐비닛』, 문학동네, 2006

(원작에서 ‘고양이가 되고 싶은 남자’와 ‘시간을 잃어버리는 여자’의 아이디어를 차용)

 

                                                                                                                        대본 정문정


등장인물

김융 정신심리연구소 박사 

박사의친구 피디 앤드리김

고양이가 되고 싶은 허왕 

시간을 잃어버리는 이 기자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 정조아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 너일촌

신문을 먹는 왕삼순


무대 왼쪽에 책상이 놓여있다. 중앙 벽에는 시계가 걸려있고 책상에는 “심리학 박사 김 융”이 적혀있는 명패가 있다. 책상은 종이문서들로 가득하고 어지럽다. 책상중앙에는 노트북이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전화기 두 대가 놓여있다. 책상에 의자 한 대, 책상 옆에 환자용 의자가 네 개 놓여 있다.


김 박사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다. 그때 앤드리김 노크 후 들어온다. 어색하게 포옹한다.


박사: 야, 이게 누구야. 엄마친구아들~ 오랜만이다.

앤드리김: wow. long time no see. 닥터 융~!

박사: 한국엔 언제 돌아온 거야?

앤드리김: 좀 됐어. 근데 여기서 뭐해? 요즘은 연구소 차리면 돈 많이 버나봐?

박사: (비밀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어) 잘 들어. 앤드리김. 난 인간을 연구하는 거야.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야. 난 위대한 연구를 하고 있단 말야. (양손을 양 옆으로 벌리며)이건 전지구적, (팔을 좀 더 넓게 벌리며)아니 전우주적인 연구지. 현재의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호소하는 인간들을 알아보는 거라구. 이건 정신병이랑은 달라. 아직 마땅한 정의도 학계에 없어. 그래서 내가, 징후를 가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심.토.머’라는 새로운 의학용어를 만들었지.

앤드리김: (의아한 표정으로) 아~symptom~ fantastic하다! 근데 그게 뭐하는 사람들인데?

박사: (손을 턱에 괴고) 음... 예를 들면, 사람이 일년 주기로 잠을 잔다든지, 나무가 됐다든지, 물 대신 휘발유를 먹는다든지 하는 거 말야.

앤드리김: (당황하며 소리친다) what? 말이 돼?

박사: (표정 변화 없다) 말이 되니까 십 년째 이러고 있지.......

앤드리김: 야, 조크하지 말고 정말 노멀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제보 좀 해라. (박사 책상 위 문서를 뒤적이며) 나 아리랑티비 그만두고 한국와서 이번에 <세상에 이런 일이> 피디됐거든. 너 그 프로 보냐?

박사: (냉소적으로)아, 그 이상한 프로 아직도 하냐? 특이하게 먹는 사람, 특이한 사람, 특이한 동물 이게 다잖아. 특히 뭐 매일 먹는 사람은, 가만히 잘 먹고 있는 사람, 괜찮다는데 (강조하며)굳이! 병원 데려가서, 검사하고 이상은 없는지 물어보고, (의사말투 따라한다)“현재까지 특정한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지속해서 드시다 보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 끝나면 그 성우가 뭐래냐, (여자 성우 흉내)“라면만 드시는 할아버지이~ 라면 드시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음식도 좀 드셔서 건강하게 오래오래~사세요~” 이러잖아. (비아냥거린다)그 패턴은 도대체 바뀌질 않아요.

앤드리김: (의아한 듯)아니,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사람이 밥을 먹어야 정상이지! 재밌잖아!


이기자가 등장한다. 이기자 전화를 걸고 전화벨이 울린다. 박사와 앤드리김 가볍게 티격태격하고 있다가, 박사가 책상으로 와서 조금 늦게 전화를 받느라 자리에 앉는다. 시계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기자는 오른 손목과 왼쪽 손목에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 매우 초조한 기색이다. 피디는 따라와서 옆에 앉아 계속 문서를 뒤적이고 있다.


2

박사: (수화기를 들며) 네, 김융 심리연구소입니다.

이기자: (따지듯이 소리치며)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 거죠?! 일부러 나, 이기자 전화인 줄 알고  늦게 받은 건 아니겠죠? 내가 매주 금요일 오후 한시 오 분전에 전화한다는 걸 알고 말이에요. 

박사: 아. 이기자님 설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이기자: (절박한 목소리로) 또 시간이 사라졌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박사: 지금까지 시간이 사라진 것과 또 다른 특성이 있습니까?

이기자:  사라지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요. 그것도 꼭 중요한 일 앞에서만요. 며칠 전엔 제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분명히 이곡역에서 (또박또박 강조하듯)‘일곱시 십분’에 지하철을 탔다구요. 그런데 경대병원역에 내릴 때는, ‘열시 사십분’이었어요. 이게 말이 돼요? 고작 십육분 거리를 말이에요. 정말 별 다른 짓은 안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심호흡 한번, 자료 확인, 립글로즈를 한번 발랐을 뿐이라고요. 당연히 회의는 캔슬됐죠. 팀장이 이젠 저를 (한쪽 팔 들고 걸어오며 원숭이 흉내)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고 있어요.

박사: 시계는 정상인가요?

이기자: 당연히, 당연히. 앱솔루~를리. 제 스위스제 명품시계는 항상 정확하죠. (손목을 보여주며)게다가 항상 두 개씩 ,아 아니, (바지를 걷어 올려 안에 넣어놓은 시계를 꺼낸다)시계를 세 개씩 넣고 다닌단 말이에요. (분노 폭발)증거가 필요해요? 지금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거예요?

박사: (진정시키며 손을 든다)믿습니다! 믿어요! 그리고 사실 여기선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도 사라진지 오래죠.

이기자: 전 매주 헛소리를 늘어놓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욧. 매일 일곱시까지 데스크 마감을 해야 한다구요. (머리를 쥐어싸며)제 생활은 나날이 더 나빠지고 있어요. 데스크 사람들과 가족들은 제가 어디가서 농땡이를 치고 와서는 (목소리 톤을 바꾸어 여성스럽게, 한 손을 얼굴에 대고)‘어머나, 시간이 언제 이만큼 흘렀지?’ (다시 거칠게 화풀이 하듯)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줄 알죠. 도대체 내 시간은 어디로 가버린 거죠? 도둑맞은 이 내 시간은 어디서 환급받냔 말이에요. 

박사: 통계적으로 볼 때 규칙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타임스키퍼가 될 확률이 (손바닥을 펴보이며)무려 다섯 배나 높죠. 너무 열심히 살지 마세요. 계획을 너무 빡세게 잡지 마시구요. (주먹을 쥐고 흔들며)남을 꼭 이기자, 이기자! (손을 앞으로 쭉 뻗어 몸을 흔들며)이렇게 버둥버둥거리지 마세요. 그런 짓을 계속하니까 시간이 왕창 사라지는 거예요.

이기자: (울 듯하다) 다들 열심히 살아요. 나만 열심히 사는게 아니라고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게 사시잖아요.‘얼리버드’, ‘노홀리데이’의 정신으로요!

박사: (진지하게)이기자님, 좀 헐렁헐렁하게 사세요. 생리휴가도 찾아 먹으시고, 월차도 당겨쓰세요. 마감은 원래 어기라고 있는 겁니다. 기분이 울적하면 무단결근도 좀 하시구요. 휴가를 반납하고 야근을 하라고 하면 멋있게 (손으로 강하게 동작을 한다)뻑큐를 먹여주란 말입니다.

이기자: (기운 빠진 듯)알겠어요. 노력은 해볼게요. (똑딱거리는 시계소리 효과음. 이기자 시간 확인 후 놀라며)어머나, 다음 주에 또 전화드리죠.

(불안한 듯 모든 시계를 번갈아 가며 재확인하고 후다닥 퇴장)

박사: (정색하며) 아니요. 다음에 또 전화 안하셔도 됩니다.

앤드리김: 야. 너 방금 그게 무슨 말이냐? 아, 너무 늦어서 나도 지금 들어가 봐야겠다.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피디 급하게 나간다. 박사는 표정변화가 없다. 피곤하다는 듯이 문서를 정리하고 노트북을 확인하는 시늉하다 일어서 중앙으로 걸어와 말한다.


박사: 여러분, 보셨죠? 전 이런 일을 한다 이 말입니다. (으쓱한다)뭐 그리 힘들진 않아요. 하지만 사실 이 일이라는게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치며)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는 일이랍니다. (혼란스러운 말투로 빠르게)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져 버려서 (고개를 끄떡거리며 느리게)어떨 때는 가끔 이 사람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인게 아닌가, (심각하게)그러니까 이 세계가 폭력적 잣대로 개별적인 인간의 실체를 무화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단 말입니다. (손목시계를 보고)아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이제 곧 심토머들의 집단 상담이 있을 겁니다. (손으로 가리키며) 아, 저기 오고 있군요!


박사가 손으로 가리키면 고양이가 되고 싶은 허왕,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 너일촌, 거식증 증세로 신문 먹는 왕삼순 우르르 시끄럽게 등장한다. 다들 자리에 앉는다.


3

박사: (차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부르면 다들 대답한다) 아, 성함 확인부터 하죠. 오늘 예약하신 허왕씨, 왕삼순씨, 너일촌씨, 정조아씨. (정조아에서 대답없자) 아, 아직 정조아씨는 안 오셨군요, 뭐 그럼 우리 먼저 시작하죠. 자, 누구 먼저 말씀해보시겠어요?


허왕은 코를 까맣게 칠하고 고양이가 그려진 티를 입고 있다. 최대한 고양이같은 모습. 긴 콧수염 한 올 있다.


허왕: (고양이처럼 손목을 귀 옆에서 구부리며 손을 든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옹. (의자위에 고양이 자세로 앉아서-데쓰노트의 L같은 자세- 그리고 중간 중간에 볼을 손을 문지르는 손동작을 취함) 전 고양이가 되고 싶어용. 고양이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용. 제가 사랑하는 그녀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거든용. 남자에겐 마음의 문이 닫혀 버린 거죵.

너일촌: (카메라로 사진찍다가)어머. 남자한테 일촌거절이라도 당했대요?

허왕: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서 내려와) 아뇨. 남자에게 너무 많은 배신을 당했대요. 대신 그녀는 이제 고양이를 사랑해요. 그녀는 월급의 대부분을 46마리의 고양이를 위해 지출하죠. 심지어 그녀는 제게 (옆으로 비껴서며 ‘내 아를 나도’말투 경상도 사투리로)“내 고양이가 돼도!”라고 했어요. (주먹쥐고 강하게 다짐)그래서 전 그녀의 47번째 고양이가 되기로 결심했죠. (자신감 조금 사라진 말투로 약간 옆으로 서며)그런데 어떻게 하면 고양이가 될 수 있을까요? (고양이 요가) 매일 밤마다 고양이 요가도 하고, (손으로 목을 쥐고 흠흠하며)야옹, 냐옹. 니야아아아옹. 이렇게 고양이 울음 연습도 하고, (수도 자세)얼마 전엔 고양이가 누운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묘향산에 수련도 하러 갔죠. 그런데 도무지 변할 기미가 안 보여요.

너일촌 : (허왕을 계속 관찰하듯이 살피다가) 근데 여기 이건 뭐에요~?

허왕 : 아, 그거요? (설레는 목소리로)사실 조금 기별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콧수염을 가리키며)고양이 수염 같죠? (실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아래로 내려다본 후 발을 동동구른다)하지만 여전히 이 저주받은 인간의 몸뚱이로 살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박사: 허왕씨. 그건 별로 허황된 생각은 아니군요. 실제로 고양이로 변신한 위대한 분이 있거든요. (서류를 보며) 2001년에 (혀를 굴리며 강조)사이언스지에 발표되었으니 백프로 확실한 거죠. 미국에서 한 30대 남성이 100일 동안 날생선과 쥐를 먹는 등 엄청난 인내와 혹독한 수련 끝에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셨다는 학계보고가 있어요. 허왕씨도 희망을 갖고 꾸준히 더 노력해보세요.


이때 동방신기 노래 허그(‘하루만 네 방에 고양이가 되고 싶어’ 부분)이 흐르고 허왕, 따라 부르며 고양이몸짓으로 어슬렁거리면 너일촌, 각종 종이가 들어있는 박스를 가지고 일어선다. 목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걸고 있고 한손엔 녹음기를 들고 있다.


너일촌: 아, 고양이가 되었다니, 정말 낭만적이에요. 이 무료한 도시에서 이렇게 개성 넘치는 분들을 만나다니! 녹음하는 보람이 있네요. (박스를 내려놓으며)우리 일촌 할까요? 아! 일촌신청은 여러분이 먼저 해주세요. (검지 손가락 까딱한다)전 일촌명을 그리 센스있게 짓지 못하거든요. 참. 이따가 단체 사진 꼭 찍어요. 우리가 이렇게 모였다는 걸 기록해두어야지요. 오늘 바로 제 홈피에 올릴 테니 꼭 퍼가세요. 스크랩 수 확인합니다? 

박사: 찍어놓은 사진을 사진첩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올리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주객전도군요!

너일촌: 그럼 어때요, 도시생활이라는 건 실체가 없어서 금방 허무해지잖아요. 내가 무얼 했는지 누굴 만났었는지 사진을 보면서 기억의 흔적이나마 느껴보는 거죠. 

허왕: 그나저나 일촌씨, (볼을 한 번 간질이며 고양이 행동을 하면서 박스로 가면서 고양이처럼 뒤적이는 흉내)그 큰 박스에는 뭐가 들었나아야옹~

너일촌: (그런 허왕의 손을 톡 치며 박스를 뺏는다. 허왕, 여전히 박스에 관심을 보이며 쫓아다니고 일촌이 도로 박스를 뺏으면 허왕 ‘야옹~’거리며 시무룩해져서 자리로 돌아간다) 바로 제 일상을 설명해주는 영수증이에요. 도저히 이것들을 버릴 수가 없어요. (박스 안에서 허왕이 종이를 하나 꺼내들면 빼앗아 설명해준다.) 이건 남자친구와의 첫 데이트로 갔었던 빕스에서 찍은 사진. (‘사진을 보다가 반쪽을 찢었어’ 음악에 회상에 잠기는 듯이 잠시 침묵)

너일촌: 허전해요. 끈임없이 움직여도 왜 마음에 허기가 드는 거죠?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아요.

박사: 혹시 싸이를 못 하면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것처럼 하루 종일 답답하고 불안한 증세를 보이나요?

너일촌: 그럼요. 이젠 (마우스 클릭 흉내)싸이질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걸요. 저에겐 그게 존재감 자체인걸요. 위안을 준다구요! 이런 말이 있죠? “세상에는 일기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그래요. 전, 새로운 방식의 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이제 현대인에게 미니홈피는 새로운 기록의 수단이자, (손을 앞으로 펴고)공개적이지만 (뒤돌아 손으로 몸을 감싸며)한편으론 은밀하고 싶은 (다시 정면보며)일기죠. (갑자기 박사를 끌어당기며 밝은 톤으로)아, 박사님 우리 일단 사진 먼저 찍어요! 제가 셀카가 잘 나오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죠!


5

너일촌과 박사 같이 셀카를 찍는다. 너일촌이 박사에게 ‘45도 각도가 얼짱각도라구요!’라는 식으로 각도를 조절해주는 듯한 행동을 한다.


(리쌍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음악) 정조아 허겁지겁 나온다. 정조아는 머리망을 하고 있고 입술과 볼이 과장되게 새빨갛다. 내내 과장되게 계속 웃는 것이 중요하다.

너일촌은 박사와 사진을 찍다말고 정조아를 보자마자 급하게 다가서며 정조아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한다. 정조아 계속 웃으며 ‘위스키~’하며 사진을 찍는다.


정조아: (하이톤 목소리로 두 손을 흔들며) 사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너일촌: (사진찍다말고)아 그런데 누구?

정조아: (정신없이)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막 직원들 서비스 교육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박사: 아, 정조아씨, 오늘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조아: 전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일한지 십년이 다되어가는데 작년에 빕스 복현점에 최연소 점장이 되었죠. 친절사원에 5년 연속으로 뽑힌 덕분입니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루 종일 웃다 보니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며칠 전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도 전 계속 웃고 있었습니다.

왕삼순: (의아해하며) 장례식장에서 웃었다구요? 보험금이 많이 나왔나보죠?

정조아: (더 크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아뇨, 저희 어머닌 자살하셨습니다. 의사들은 우울증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세상에,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들 저희 행복한 가족을 부러워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선 말이죠, 전 이랬습니다.


장례식장 광경을 재연한다. 영정사진 무대 뒤에 붙인다.

뒤에 있던 너일촌과 왕삼순, 허왕 나와서 정조아 바로 뒤에 앉는다.


너일촌, 왕상순, 허왕 : (곡하듯)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정조아 : (계속 활짝 웃으며 곡한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그때 허왕 나와서 절하고 정조아에게 악수를 건넨다.

허왕: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정조아 : (웃으며 일하는 말투로)상심이라뇨.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저희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오시게 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식사는 저쪽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시구요. 부조 계산은 저쪽에서 하시면 됩니다. 즐거운 시간되십시오. (재연 끝내고 다시 돌아와 손을 흔들며) 이랬다고요. 다들 제가 너무 슬퍼서 미쳐버린 줄 알죠!

  

정조아가 대사를 할 동안 세 명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너일촌: (박스에서 빕스 영수증 꺼내는 시늉하며)아, 4월 6일에 빕스에 갔었는데! 가보니까 친절하고 좋던데요. 레스토랑에서 하시는 일이 어떤거에요?

정조아: 뭐, 이런 일들이죠. 고객님이 오시면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합니다. (실제 일하듯 재연한다)환영합니다, 후레시 빕스입니다. 고객님, 이쪽 자리 마음에 드세요?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저는 고객님의 친절한 담당서버 (‘쪼아’춤을 추며)정조아입니다. 이런거죠. (눈썹을 위로 올리며 과장된 표정)양 미간을 최대한 위로 올리면서 눈썹을 들어 올려야 해요. 그래야 정말 반가운 듯한 표정이 되거든요.

왕삼순: 진상인 손님도 있어요?

정조아: 그렇죠. 가끔 고객님 중에 미디움으로 구워 달랬더니, 레어로 구워 왔다고, 스테이크의 오분의 일을 남기고 컴플레인을 거시는 분이 계세요. 그럴 땐 속으론 오만 생각이 다 나죠. (옆을 보며 혼잣말, 목소리 내리 깔며)‘다 처먹어놓고 지랄이야’ (다시 밝게)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인터넷에 고객불만이 올라오면 전 사유서를 써야합니다. (고개를 흔들며)아이, 끔찍해. (다시 일을 재연한다)“어 어떡해요 고객님, 스테이크가 마음에 안 드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의 마음 불편하게 해드려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곧 바로 신선한 고기, 다시 구워 드릴게요.” (어깨를 으쓱한다) 뭐, 이렇게 일하는 거죠.


6

‘세종대왕이 떡볶이 먹었대’ 노래 나온다. 왕삼순 앞으로 나와 정조아를 옆으로 밀치며 음악에 맞춰 토하는 시늉을 한다. 왕삼순, 말랐지만 너무 헐렁한 옷을 입고 있다.


정조아: (여전히 웃으며)어머 왜 이러세요? (하며 뒤로가 앉는다)

왕삼순 : 그만! 고기 얘긴 제발 그만두세요. 토할 것 같다구요.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토하는 시늉을 한다)우엑. 전 고기 따윈 먹지 않아요. (관객 쪽으로 시선 돌리며)여러분은 도대체 그딴 걸 왜 먹는거죠? (신문지를 넣은 보온병을 들어보이며)전 아침이면 중앙 일간지 다섯 개를 구독한 후 (대사하며 보온병에서 신문지를 꺼낸다)물과 함께 신문지를 뜯어먹죠. (신문지를 한 장씩 뜯으며)음 이 뜨끈뜨끈한 모닝신문 잉크의 맛. 신문마다 맛도 천차만별이죠. 이젠 눈 감고 먹어도 무슨 신문인지 맞힐 수 있다구요. 여러분도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신문지를 찢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는데)

일동모두 : (놀라며 다같이)미쳤어! (정조아 혼자 여전히 웃는 얼굴로)그걸 왜 드십니까?

왕삼순 : (멈칫하다가 둘러보며) 아니 그럼. 여러분은 뭘 드세요?

허왕: (사료를 들어보이며)사료를 먹죵~

너일촌 : (박스를 끌어안으며)관심과 사랑도 먹고!

정조아: (계속 웃으며 하이톤으로) 빕스에선 안전한 호주산 스테이크를 먹죠.

왕삼순 : (기가 차다는 듯이)그게 맛있어요?

박사 : (덤덤하게)맛있으니까 먹는 거죠.

왕삼순 :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저도 맛있으니까 먹는 거예요.

박사 : 흠. 언제부터 신문지가 맛있어 진거죠?

왕삼순 : (관객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갑자기 차분해진 말투)일 년 전부터에요. 전 그때 좀, 아니 많이 뚱뚱했어요. 전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에요. 90키로까지 나갔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날씬하진 않아요. 이건 유전이에요. (팔뚝, 배를 차례로 만지며)여기도 출렁~여기도 출렁거리죠. 전 항상 뚱뚱했어요. (고개를 숙이며 잠시 뜸을 들이다 갑자기 발끈하며)첫 직장에서였죠. 전 거기서 열심히 일했다구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제가 떡볶이를 먹는걸 보고는 상사가 제 옆의 대리에게 (옆으로 비껴서며 상사말투로)"저 돼지 같은 건 입에 하루 종일 먹을 걸 달고 사네, (비꼬며 강조)참~위대하다 위대해."(다시 말투를 바꾸며)이러는 거에요. 그것도 충분히 제가 들을 수 있는 위치에서 말이에요.

허왕 : 아니 그건 진짜 돼지 앞에서도 할 수 없는 말 아니에요? (할퀴는 시늉하며)확~ 할퀴기라도 하지 그랬어용~

왕삼순 : (체념한듯한 말투로)뚱뚱한 여자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구요. 전 그다음 날에 바로 퇴사를 했어요. 당연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군요. 그날 이후로 음식 따윈 보기만 해도 역겨워요. (신문지를 들고 바라보며)신문지는  그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서 제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거에요. 좋은 기사가 나면 종이의 맛이 더 향긋해지죠. 아, 요즘은 좀 조심해서 먹고 있어요. 광우병 기사는 먹기가 좀 꺼려지거든요.

(신문지 찢어 입에 넣으며 자리 자리로 간다. 자리에 앉기 전에 정조아에게 신문지를 찢어 먹어보라 권한다.)

정조아: (웃는 얼굴로 밀쳐내면서 사무적 말투) 너나 잘드세요~


7

그때 박사의 전화벨 울린다.

앤드리김 무대 한편에 등장


박사: 여보세요?

앤드리 김: 어때, 그 심토머인가 하는 사람 중에 방송할 만한 좋은 소재거리있어?

박사: 니가 찾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오늘 온 사람들은 이상하게~ 다들 지극히 정상이라서 말야, 도움이 못돼서 미안하네.

앤드리김: that's ok! 어쩔 수 없지~

박사: 그래, 우리 다음에 술이나 한 잔 하자. (다.음.에를 끊어서 말하며 강조)그래, 다음에’!(전화 끊는다)

(정면을 보며) 제가 연구하고 있는 ‘심토머’들이 실제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는 왜 이런 증상을 갖고 있을까’가 아니에요. 바로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라는 것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이상한 도시에서 한 두가지 증상 없이 사는 현대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관객을 가리키고 차트를 확인하는 척하며)아 당신도 예약하셨죠? 다음 주 목요일에 오세요.


엔딩음악(피디수첩 같은 시사프로그램 전형적 음악) 나오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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