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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約 / 新約 神學 스크랩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의 리차드 보캄 교수 와의 대담
總會神學大學校 추천 0 조회 26 14.07.14 21: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의 리차드 보캄 교수 와의 대담| 신 약 신 학
朴熙政 | 조회 26 |추천 0 | 2002.01.05. 00:22

 

 

 

영국신학자 특별대담 3   세인트 앤드류 대학의 리처드 보캄 교수

자료출처: 목회와 신학 2002년 1월호

 

 

신학은 중계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목회와 신학>에서는 한국교회에 교수님을 처음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에 대해서 어떤 성장과정이 있었고 어떤 신학적 배경들을 가지셨는지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영국 북부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국교회에서 신앙을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후 같은 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는 동안 신학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고, 16세기 후반부의 신학자에 대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씀으로써 신학과 역사학을 접목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신학 학위는 정식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 후 니스 대학에서 1년 간 재직했고, 그 다음 50년 간 맨체스터에서 현대신학(Contemporary Theology)을 가르쳤으며 여기에 온 후 9년 간 신약을 가르쳐왔습니다. 저는 그 양 분야를 접목시킬 사람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학과 성서학을 접목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신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사실 신학에서 일상생활의 메시지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신학이 하나님과 구원의 실체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세계관과 아울러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학이 성경과 오늘날의 세계, 문화, 상황 사이에서 중계자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신학이 교회의 사명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신학이 학문의 중요한 한 분야이기 때문에 따라오는 과제들이 있고 그에 따라 전문성을 띠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신학의 한 면입니다. 전문성을 갖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지만, 한편 결국 신학이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신학은 교회에 적용되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과 같이 신학이 대학교라는 환경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성은, 대학교라는 상황 속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신학을 전문화하는 쪽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학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몸된 교회 공동체에 참여해야 합니다. 담임 목회자로서는 아니더라도 설교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신학이 교회를 위해 존재함을 늘 명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학을 하는 목적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신학이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신학이 교회를 잘 섬기고 있기를 바랍니다만, 저 자신의 경우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그렇게 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영국의 특수성은 신학이 일반 대학교 안에서 연구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하는데, 그 중 하나는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일반 대학 안에서 자신들의 연구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 위해 성경을 고대의 역사적 자료로 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고대의 역사적 자료로만 보면, 일반 대학교에서 큰 위치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목회자들은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목회의 방향이나 내용이 완전히 좌우되는 경우가 있는데 교수님께서 보실 때는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지녀야 할 교회 이해의 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교회가 강력한 중심을 가질 때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회중들로 하여금 말씀사역을 단지 설교보다 더 광범위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 간에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좀 더 폭 넓은 가르침이 이뤄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르침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는 것을 앉아서 듣기만 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등의 시각적 자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좀더 참여적인 방법에 익숙합니다. 설교가 좀더 현대문화에 걸맞게 시각화됨으로써 청중들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의 기독교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는 인상적인 한 가지는 성인교육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들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강의, 토의그룹, 성경공부 그룹 등 온갖 종류의 소그룹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 소그룹들이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어있습니다. 저희 영국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 신학의 문제는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실제 삶의 문제와 연관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종의 신학에 대한 혼동이죠. 오늘날 이러한 신학적 혼동의 원인으로서 말씀에 근거한 사고력의 부재가 문제라고 보는데, 그러한 실패의 원인이 어떤 부분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 오래 전이 아닌 때까지만 해도 영국 사회는 교회의 영향을 받았고 미약하게나마 기독교적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많은 가치관들은 기독교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났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포스트 기독교 시대의 사회에 살고있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갈 지에 대해 더 많은 의식적 생각이 요구됩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변 사회의 가치관을 흡수해 버리기 쉬운 위험한 시대입니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신학자들이 문화와 당면이슈에 대해 생각하며 훨씬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문적인 신학연구에만 전념한다면 인식하지 못할 핵심적인 질문들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교회의 회중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해야 할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중의 모든 사람이 진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깊게 사고할 줄 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공동체, 리더십, 가르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일에 참여하여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이 회중을 어떻게 인도해야 할 것인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평신도들도 각 교회에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두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왜 결혼을 하시지 않고 아직까지 독신으로 계신지와, 두 번째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 위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겪는 신앙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혹시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독신의 은사나 결혼의 은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만일 가정을 갖고 자녀들이 있었다면 나쁜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 등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했을테니까요. 독신생활은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한다면, 저는 가끔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저는 우울증 기질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왜곡된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울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 비하면 저의 고통은 작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글은 지난 6월 영국 방문시 세이트 앤드류 대학의 신학과 교수로 있는 리처드 보캄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보캄 교수는 캠브리지에서 역사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이 취재를 위해 싱가폴 TTC에 있는 이문장 교수께서 도움을 주셨다.

진행, 사진/ 장병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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