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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8. 10:20 |
神仙道 (kr.blog.yahoo.com/apelyo/348 育士道 2005년 2월 5일 )에서
유교사상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1. 주역은 신선도의 경전이다
{주역}은 유교의 기본경전으로서 8괘(八卦)와 64괘(六十四卦) 그리고 이를 설명한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8괘는 천지만물이 회통하는 이치 곧 천지인삼재지리(天地人三才之理)와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는 이치 곧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기본원리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64괘는 8괘를 더욱 발전시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괘사는 괘의 총체적 뜻을 설명한 것이고, 효사는 육효(六爻)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1) 역(易)은 동이족에서 비롯되었다.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역(易)에는 환역(桓易)과 희역(羲易) 그리고 금역(今易)이 있다. 희역은 복희의 역을 의미한다. {태백일사} 신시본기를 보면, 복희가 어느날 꿈에 "삼신(三神)이 몸에 강령하여 만리를 통철하게 되고 인하여 삼신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하(天河;지금의 송화강)에서 괘도를 얻었는데 삼절(三絶;┏陰爻) 삼연(三連;?陽爻)하여 위치를 바꾸면서 그 이치를 궁구하면 묘하게도 삼극(三極)을 품고 있어 변화가 무궁하였다"고 하였다. 즉 괘도를 복희가 천하에서 얻었다고 하였다. 이는 복희가 괘도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전승되고 있던 것을 복희가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기전} 상편을 보면, "환국을 이어서 한웅씨가 일어나 괘(卦)를 그리어 미래를 알고 괘상을 잡아 신통력을 부렸다"고 하여 한웅천황에게서 역(易)이 비롯되고 있다. 신시본기에도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의 근본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이라 하여 {주역}의 근본원리인 음양오행사상이 신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상 {한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기원되고 복희에 와서 좀더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의 저작에 대하여 학설이 각각이다. 일반적인 학설을 소개하면 제1설로는 8괘와 64괘를 모두 복희씨가 저작하였다는 위(魏)의 왕필설(王弼說)이 있고, 제2설로는 8괘는 복희씨가 저작하고, 64괘와 괘효사(卦爻辭)는 문왕이 저작하였다는 사마천설(司馬遷說)이 있다. 여기에서 제2설이 통설로 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복희씨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8괘 창안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복희씨는 동이족이며 좁게는 우리민족이다. 우리민족은 3국시대 이후만하여도 931회의 외침을 당하였다고 한다. 외침을 당할 때마다 사료가 소실되었고 멸실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민족에게는 사료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사료가 없으니 상고시대의 인물이 전설적인 인물로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료가 없다거나 전설적인 인물이라 하여 복희씨의 64괘 창제설을 부정함은 모순인 것이다. 더욱이 위에서 밝혔듯이 복희씨에 의하여 괘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 외에 한웅천황에 의하여 그려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비롯되고 복희와 문왕에 의하여 더욱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
역(易)은 날일(日)자와 달월(月)자의 회의문자인 바꿀역(易)자이다. 곧 역이란 해와 달이 바뀌고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을 보면 "역은 천지(天地)에 준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하였고, 계사상전 제2장에는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의 지극한 이치를 표현한 것이라"하였다. 또한 "그런 까닭에 역의 이치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하늘과 땅 두 현상을 낳고, 하늘과 땅은 태양·태음·소양·소음의 4상을 낳고, 그런 까닭에 법의 현상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변하고 통하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을 지적하면,
첫째, 신선도의 일기(一氣)와 {주역}의 태극은 같은 뜻을 지닌다.
둘째, 신선도와 주역은 모두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와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을 발생원리로 한다.
셋째, 신선도의 숭배대상은 하나님인데, {주역}에서도 숭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다.
넷째, 신선도는 순환론인데, {주역} 역시 순환론이다.
이와 같이 {주역}과 신선도의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여기에 괘(卦)가 한웅천황과 복희에 의하여 기원되었다는 것을 아울러 생각하면 {주역}은 원래 동이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2. 홍범구주는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란 첫째, 오행(五行). 둘째, 경용오사(敬用五事). 셋째, 농용팔정(農用八政). 넷째, 협용오기(協用五紀). 다섯째, 건용황극(建用皇極). 여섯째, 예용삼덕(乂用三德). 일곱째, 명용계의(明用稽疑). 여덟째, 염용서징(念用庶徵). 아홉째, 향용오복 위용육극(嚮用五福 威用六極)이다. 이를 부연한 것이 유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홍범구주는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인 황제중경지서(黃帝中經之書)가 태자 부루(扶婁)에게서 나와서 우(虞)의 사공(우임금)에게 전하여지고 후에 다시 주왕(紂王)에게 기자(箕子)가 진술한 것이 홍범(洪範)이 되었으니 바로 그것이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五行治水)의 설(說)인 즉 대개 그 학문의 근원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遺法)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지나에 전승된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신시(神市)에서 연원되었다는 것이다.
신채호 역시 여러 전거를 들면서 말하기를 {상서:尙書}에 "홍범(洪範)은 하우씨(夏禹氏)가 전하는 바라" 하였고, {오월춘추;吳越春秋}에 "하우씨가 치수(治水)할 때에 현토사자(玄?使者)로부터 중경(中經)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 "단군 태자 부루(扶婁)가 하우(夏禹)씨를 도산(塗山)에서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 세 가지 사실을 고찰하여 볼 때, 기자(箕子)의 홍범(洪範)은 곧 부루의 중경(中經)을 강술한 것이라 하였다. 아울러 {한서(漢書)}에 거북이가 문자를 지고 낙수(洛水)에서 나오므로 우(禹)가 홍범을 연(演)하였다 하나, 그것은 망증(妄證)이라 하였다.
3. 인사상은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인(仁)자는 사람인(人)변에 두이(二)자로서 천·지·인(天地人)의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그래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고, 유학의 핵심사상을 이루어 사서(四書)의 하나인 {논어}에만도 인(仁)에 대한 말씀이 무려 50여회나 나타난다. 그러면 인사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의 무엇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첫째, 고대에 있어서 인(仁)과 인(人)과 이(夷)는 같은 의미로 쓰였다. 즉 인(仁)은 동이족을 의미하였다.
중국의 학자 노간(勞幹)도 말하기를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람인(人)자와 어질인(仁)자는 동이족에서 나온 동이족을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설문}에도 어질인(仁)자는 오랑캐이(夷)자의 고자(古字)라 하였다.
둘째,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동방을 이(夷)라 한다. 말을 어질게 하고 인생을 즐기며, 만물이 땅에 근본하여 태어난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이치로써 다스리니 군자들이 사는 불사지국에 이르렀다 하고, {신이경;神異經} 동황경(東荒經)에도 동방 사람들은 항상 공손히 앉아 서로 거스르지 않으며 서로 칭찬은 하되 서로 헐뜯지 않고 남의 환란을 보면 몸을 던져 죽어도 구제하니 이를 일컬어 착함이라 하였다. 또한 중국 고서 {이아;爾雅}에 "구이는 동방에 사는데 동방은 해돋이 땅으로 태평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질다. 땅의 정기가 그러한 때문이다고 하여 땅의 정기로 인하여 동이족은 원래 어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셋째, 인(仁)은 도·불·유 삼교의 근원사상이다.
{최문창후전집} "지증화상비명병서"에 의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방위에 따라 나누니 동방에 짝한 바가 仁이다. 인은 道·佛·儒 三敎를 일으켰으니 정역에 드러낸 이름이 불(佛)이다. 인심(仁心)이 곧 불(佛)이며, 불목(佛目)은 능인(能仁)의 법칙이라"하였다. 즉 인(仁)은 동방사상인데 인사상에서 도·불·유 삼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4. 제례의 기원은 우리민족에 있다
지나의 유교에 상제(上帝)와 조상신을 모시는 제례풍속이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이것 역시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 의히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제 그 유래를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서경} 우서를 보면 순(舜)임금이 제위(帝位)에 오르자 상제(上帝)와 육종(六宗)과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두루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음력 10월에 제천하던 것이 만세의 풍속이 되니, 그것이 동방 특유의 성대한 제전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순이 제위에 올랐을 때 상제께 제사를 올리고 육종(六宗)에 제사를 지내며 차례로 산천제신(山川諸神)에게 두루 제사하니 이는 일찍이 순(舜) 이전에는 없던 일로 이 역시 동방에서 제천보본하는 의식과 산악하천(山嶽河川)이나 해양소택(海洋沼澤)에 봉명하는 사상에 근원한 것이다"라고 하여 10월의 소도제천의식에서 제사풍속이 연원되었고, 지나의 제례풍속도 이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도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이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하는 서물(庶物)의 원의(原義)인 즉,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禮樂)이 곧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리요"하여 모든 예의법속이 삼신사상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족의 제례풍속 역시 우리나라에서 지나족 사회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Ⅳ.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다.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사상(五倫思想)도 지나의 유교에 뺏겨 지나족에 의하여 창안된 외래사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그러한 인식을 떨쳐버리고 오륜사상이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임을 논증하려 한다. 그러한 논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첫째, 오륜사상이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되었다는 종래의 관념이 부정되어야 하며.
둘째, 오륜사상이 동이족에서, 좁게는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 시대에 발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야 하고.
셋째,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면 오륜사상이 오늘날 공맹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하에서 위의 세 가지 문제를 순서대로 하나씩 밝혀나가기로 한다.
1). 오륜은 지나족의 창작이 아니다.
{동몽선습}에 의하면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에 이르기를(孟子曰)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군신유의(君臣有義)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시니 사람으로서 오상(五常)을 알지 못하면 금수에 가까워짐이 먼데 있지 않으니라" 하였다. 이 원문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오륜사상이 맹자에 의해서 창작되고 가르쳐진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맹자} 등문공장구(상)에 기록되기를 "사람의 도리에 있어서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안일하게 지내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지기 쉽나니 성인(聖人)이 이를 근심하여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이 그것이다"하였다. 이를 보면 {동문선습}에서 말하는 {맹자}는 사람이 아니라 책자이며, 오륜사상은 맹자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고대의 성인(聖人)과 설(契)로 올라간다.
그러면 그 성인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중국에서 성인이라면 공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공자는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설 보다 약 1천 8백여년 뒤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 될 수 없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누구인가? 공자께서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밝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문왕과 무왕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인가? 문왕과 무왕도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천여년이나 후대의 인물이라는 것은 사계의 학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라 할 수 없다. 또한 공자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을 조술하였다 했다. 그러면 이들이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인가? 그렇다 그들이 바로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 아니면 순임금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서경} 요전(堯典)이나 {논어} 요왈편(堯曰篇) 등 기타 요임금에 대한 기록을 보면 어디에도 요임금이 설(契)과 더불어 오륜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서경} 우서 순전을 보면 거기에 {맹자}의 기록과 일치되는 대목이 있다. 즉 "임금(舜임금)이 말하기를 설(契)이여! 백성들이 화친하지 않으며 오품(五品)을 따르지 않고 있소. 그대를 사도(司徒)에 임명하니 오교(五敎)의 가르침을 삼가 펴서 너그럽게 하기 바라오" 하였고, 그 주(註)에 오품(五品)이란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의 다섯을 가리키는 위계적 등급이라 하였다. 오교(五敎)는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임이 당연한 이치라 하였다. 그렇다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순임금이 틀림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표(7)과 같이 {맹자}의 기록을 {서경}의 기록에 대입시킬 경우 서로 일치되기 때문이다.
{맹자}에 성인이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오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하고, {서경}에는 순임금이 설을 사도에 임명하여 오교(五敎)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하였으므로 {맹자}의 성인은 곧 순임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순임금과 설은 지나족이 아니다. 따라서 오륜(五倫)사상은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이 아니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오륜의 발상지는 배달국이다.
순임금과 설(契)이 지나족이 아니라면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규명하여 보자. {맹자} 이루장구 하(離婁章句 下)에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낳고, 부하(負夏)로 옮겼다가 명조(鳴條)에서 운명하였으니 동이인(東夷人)이라 하고, 그 주(註)에 제풍·부하·명조는 모두 지명일 뿐더러 동이족이 다스리던 곳이라 하였다. 즉 {맹자}에는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이지방이라는 증거를 들면서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또한 {단기고사}에 의해도 순임금은 단군왕검의 중신인 고시(高矢)의 형 고수(高未)의 아들이다. 그리고 안호상을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이 중국의 고서를 전거로 들면서 설(契) 역시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전거나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지나족에게 처음으로 오륜사상을 보급한 순임금과 설(契)이 동이족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동이족 사회라는 것을 말한다.
국내고서인 {단기고사}에 의해도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그 이전 배달국에 이미 있었다. 즉 {단기고사} 제1세 단제 왕검편에 단군왕검께서 수두교를 창설하시고, 중신(重臣)인 신우(神佑)에게 명하여 백성에게 오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오륜의 성립이 단군조선 시대에 있었고 신선도(수두교)와 함께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신선도는 단군왕검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한웅천황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므로 오륜의 성립은 한웅조인 배달국 시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태백일사} 마한세가(상)에 유중유일(惟中惟一)의 도(道)는 아비가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하고, 임금이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존경하고, 형제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노소(老少)는 마땅히 차례가 있고, 벗은 마땅히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의 고서에도 오륜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를 보아도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3). 오륜은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에서 성립된 우리 민족의 고유덕목이라면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 즉 三倫이 三神사상에서, 五戒가 五帝사상에서 발원되었다면 오륜은 五行사상에서 발원되어야 한다.
우선 오륜과 오행의 공통점을 지적하면.
첫째, 오행이란 만유의 존재현상이 木·火·土·金·水의 다섯 가지로 동정변화하면서 돌아가는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그런데 五倫의 倫은 사람인(人)자와 둥글륜(侖)자의 회의문자로서 오륜은 인간관계가 부자·부부·붕우·군신·장유로 돌아가는 예법을 의미한다. 즉 오행이 자연법칙이라면, 오륜은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둘째, 오행은 지전(地轉)에서 생기고, 지전은 태양과 지구의 인력에서 생긴다. 즉, 오행은 태양과 지구의 쌍무관계에서 생긴다. 그런데 오륜의 부자유친은 부자자효(父慈子孝)로, 군신유의는 군인신충(君仁臣忠)으로, 부부유별은 부화부순(夫和婦順)으로, 장유유서는 장혜유순(長惠幼順)으로, 붕우유신은 상교이신(相交以信)으로 풀이 된다. 즉 오륜 역시 상부상조하는 쌍무관계이다. 이와 같은 공통점으로만 보아도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오행사상에서 나온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에서 오행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오행과 오륜과의 연관성을 밝힌다. 이해의 편의상 일반적인 순서를 바꿔 설명한다.
① 土 : 토는 흙이다. 흙은 농토로 쓰면 농토가 되고, 집을 지으면 집터가 되며, 겨울이 되면 습토가 되고 여름이 되면 초토가 되어 때와 장소에 순응할 뿐이다. 그뿐인가? 모든 생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흙은 생명의 보금자리이며 생활의 근본이다. 흙의 그러한 성격으로 토(土)는 방위로 말하면 동·서·남·북의 중앙으로서 사방(四方)에 모두 관련을 지니는가 하면, 계절로 말해도 장하(長夏)로서 사계(四季)의 중앙이다. 그 덕목으로 말하면 부자·부부·붕우·군신·장유는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로 하는 덕목이 토에 해당한다. 그러한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상(五常) 중 신(信)이며, 오륜 중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신(信)이다. 신은 진실(眞實)·불기(不欺)·무망(無妄)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은 토를 상징한다.
② 木 : 목은 물질로 볼 때 나무를 뜻한다. 나무는 습도와 온도 등 적절한 조건에 해당되는 시기가 되면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뻗어나간다. 이는 하나의 출발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봄(春)이며, 방위에 비유하면 해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동방이다. 사업에 비유하면 시작이다. 인생에 비유하면 그것은 유년기에 해당되는데, 어린 자녀를 교육시키고 양육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仁)과 친절(親)이다. 사랑과 친절은 오상(仁·義·禮·智·信) 중 인(仁)이며, 오륜 중 부자유친의 친(親)이다. 그래서 인(仁)과 친(親)은 오행(五行) 중 木에 해당된다.
③ 火 : 화는 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불이다. 불은 빛과 열을 발산한다. 이는 계절로 말하면 여름(夏)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남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번성기이며 성장위주의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한창 뻗어나가는 청년기로서 그 감정으로 볼 때는 가장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시기이며, 태도로 볼 때는 의기양양하고 투쟁적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예절이며, 남녀 간에는 분별이다. 이는 오상(五常) 중 예(禮)이며, 五倫 중 부부유별 또는 남녀유별의 별(別)이다. 이래서 예(禮)와 별(別)은 火에 해당된다.
④ 金 : 금은 쇠붙이로서 단단하면서도 빛난다. 그래서 금은 완성으로 접어든 단계를 상징한다. 火가 양적 성장기라면 금은 질적 성숙기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秋)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황혼이 깃든 서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성장위주에서 공익사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40∼50대의 장년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여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어떠한 상량적 계산이나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지와 투철한 가치관 그리고 인도주의 정신이 요청된다. 그러한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의로움(義)이다. 의로움은 五常 중 의(義)이며 오륜중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의(義)이다. 이래서 의(義)는 오행 중 금에 해당된다.
⑤ 水 : 수는 물이다. 물은 생물의 생장과 발육에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북방에서 찬바람과 함께 몰아닥치는 찬이슬과 눈보라는 생물을 말라 죽게 한다. 그런 때가 되면 웬만한 동물은 땅속에서 잠을 자게 되고, 씨앗이나 뿌리도 땅속에서 잠을 자며, 내년을 기다린다. 이는 계절로 볼 때 겨울(冬)이며 방위로는 북방에 해당된다. 즉 외형적으로는 소멸하였지만 내적으로는 다음 단계를 위하여 응고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인생으로 볼 때, 유년기·청년기·장년기를 거친 노년기에 해당된다. 노년기는 지나온 사회적 경험과 축적된 지혜를 정리하여 후예를 양성하고 사회에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를 정리(序)하면서 지혜(智)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五常 중 지(智)이며, 五倫 중 장유유서의 서(序)이다. 이래서 지(智)와 서(序)는 수(水)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이 오륜의 기본사상이 모두 신선도의 오행사상과 일치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륜이 지나족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거나 창제되었다는 기록도 없었고, 오히려 지나족에게 오륜사상을 전한 순임금과 설(契)이 모두 동이족이었고, 단군조선 사회에도 오륜사상이 있었다. 따라서 오륜이 오늘날 공맹유교의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그 성립연원이 단군왕검 시대 또는 그 이전 한웅천황 시대로 볼 수 있고, 오륜사상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Ⅴ.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이며 지나문화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 유교가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集大成)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복희·신농·황제·요임금·순임금으로 소급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동이족이다.
3)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그런데 한자의 창제기원 역시 동이족에 있었다.
4) 지나의 고대문화는 음양오행사상을 비롯해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음양오행사상과 홍범구주는 단군조선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유교의 기본경전은 {주역}이다. {주역}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주역}은 동이족에 의해서 비로소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6) 유교의 기본사상은 인(仁)사상이다. 그런데 인은 원래 동이족과 그 성격 및 그 사상을 의미한다.
7) 유교의 기본덕목이 오륜인데,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었다.
8) 기타 사상에 있어서 숭배의 대상·우주관·발생원리·제례의식·종교적 목적이 신선도와 동일하였다.
9) 유교사상을 지나족이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 지나의 유교는 비록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되고 체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로서 그 유파라 아니할 수 없고, 이제 유교는 발상지인 조국으로 되돌아온 격이라 할 수 있다. 곧 유교는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송(宋)나라와 명(明)나라에 걸쳐 정이천(程伊川)·정명도(程明道)·주희(朱熹)에 의하여 지나족 중심의 주자학으로 변질되었다. 그러한 사상을 고려말엽에 수입한 이래, 근세조선은 5백년 동안 국시로 하여 정치·종교·교육의 기반으로 삼았다. 지금의 대학에 해당되는 성균관이나, 지금의 중등교육에 해당되는 향교에 나가면 한국 사람으로서 지나족인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5성과 공자의 제자 10철 및 72제자 그리고 송나라의 6현에게 절을 하여야 했고, 지나의 역사인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등 삼사(三史)와 지나의 종교서적이며 사상서인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사서오경(四書五經)과 그밖에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배워야 하였다. 사회적으로 관혼상제도 지나의 풍속을 따라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제 민족의 조상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은 평양 구월산의 한쪽 구석에 방치하여 한 왕조에 한번 돌아볼까 말까 할 정도였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일체 가르치지 않았으며, 국가고시인 과거시험 과목에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과목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근세조선 시대의 우리민족은 지나의 삼대(夏·殷·周) 역사는 이를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한(고조선의 마한·진한·변한) 역사는 전혀 몰랐다.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전혀 몰랐다. 또한 지나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줄줄 외우면서도 제 민족의 배달성전(삼화경)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이를 부끄럽게 생각치도 않았다. 그러한 것이 근세조선의 사회적 풍토였다. 좀 가혹한 표현을 쓰면 근세조선 500년은 지나의 사상적 식민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외래종교 신자인 주자학자들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었고, 고유의 토속신앙을 지키는 서민들은 노예였고 하인이었다. 그래서 서민을 노예처럼 하인처럼 혹사하고 착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수차에 걸쳐 민란이 일어났고, 드디어는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외세가 개입하면서 나라마저 송두리채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근세조선 때의 지나풍 대신 오늘날은 미국 중심의 서구풍으로 바뀌었고, 주자학 대신 서양종교로 바뀌었을 뿐 근세조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유교도와 더불어 반성하여야 할 문제점을 몇가지 꼬집고자 한다.
첫째, {주역}을 해설한 계사상전의 천존지비(天尊地卑) 이론과 이를 계승한 정주학의 이존기비(理尊氣卑) 이론이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이냐의 문제, 그러한 이론을 국가에 적용시켜 다른 나라인 지나를 대국(大國)·부국(父國)·중국(中國)·중화(中華)라 받들고, 제 나라를 스스로 소국(小國)·자국(子國)·이적(夷狄)·소중화(小中華)라 천시하여 서민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었던 행위, 또한 이존기비이론을 자기민족에 적용시켜 관존민비(官尊民卑)·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만들어내어 서민을 천민으로, 나약한 여성을 비열한 인간으로 취급하여 혹사하고 착취를 예사로 하였던 행위가 과연 옳았던 일인가?
둘째, 우리민족은 지나족이 아니다. 지나족과 다른 역사와 사상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기 전에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근세조선 시대에는 지나의 주자학을 국시로 함으로써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쳤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하찮은 것으로 묵살되었고, 오히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우면 이를 사문난적이라 하여 매도하였다. 그러한 교육환경에서 어떻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겠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제 민족의 사상서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가르치고 있는가? 정주학이 이 나라에 전래된 것이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 민족을 위해서 전래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유교의 사서오경과 더불어 제 민족의 성전도 함께 가르쳐야 옳은 일이 아닌가?
셋째, 주자학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는 누구의 땅에 누구를 위하여 누가 세웠는가? 한국땅에 한민족을 위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의 노력과 재력으로 세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지금도 누구를 모시고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지나족인 공자·맹자 등 五聖과 十哲과 七十二弟子 그리고 宋나라의 六賢을 모시고 거기에 한국 사람이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 지나인들은 한인·한웅·한검에 비유하면 까마득한 후배이며 손님이다. 그런데 주인과 선배를 물리치고 후배인 손님이 선배처럼 또 주인처럼 대우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 할아버지와 제 할머니를 무시하고, 남의 할아버지와 남의 할머니에게 절을 하도록 시키면서 부모조상에게 효도하라는 격이 아닌가? 또 성균관이나 향교의 집례관인 주자학자들은 지나의 하수인격이 아닌가? 그것이 과연 공자와 맹자가 바라고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일인가? 이는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참으로 상식 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종교의식 아래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나오겠는가?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애국애족심은 나오겠는가?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탓하기에 앞서 기성 종교인들의 가치관이 전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아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체 민족이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4편 도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홍익인간 광명이세
Ⅰ. 서 론
지나의 도교는 신선사상이며, 지나는 우리나라와 인접하여 있다. 지나문화의 시조인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이었고, 이들은 우리민족의 시조인 한인과 한웅보다 후대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지나에서 언제 누가 신선사상을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 한웅천황이 삼신산(三神山)인 백두산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를 설파했다는 전거가 있고 근거가 있다. 이를 생각하면 지나 도교의 원류는 당연히 우리민족의 신선도라 추정할 수 있고, 지나에서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함은 역수입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교가 지나에서 발원되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본 문제는 도교가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이래 처음 제기되는 문제이며, 전체 민족의 대다수가 외래종교 신자이다. 외래종교 신자는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거나 박약하다. 곧 도교신자는 지나를 정신적 고향, 신앙의 성지, 아버지 나라라고 믿는다.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나라는 그 다음으로 친다. 그럼으로써 좀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나의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가 지상선경이라 동경하던 삼신산(三神山)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의 문제, 언제 누구에 의하여 신선도의 경전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는가의 문제를 하나씩 밝혀 나가기로 한다. 끝으로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을 밝힌다.
Ⅱ. 도교인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도교인의 이상향은 삼신산이다
지나의 도교인들이 지상선경이라 동경하였던 삼신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그 어의로 말하면 삼신산이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삼신을 상징하는 산을 의미하며, 또한 세개의 神山 곧 仙山을 의미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삼신산이란 어떤 산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근거로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인출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셋째, 삼신산은 발해 내지 바다에 있다.
넷째, 삼신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는 모두 희다.
일곱째, 삼신산에는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
이상의 성립요건을 충족시키면 그 산이 곧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신선사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산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2.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삼신산은 발해에 있다고 하였다. 발해는 고대 우리나라이다. 그러므로 삼신산은 우선 우리나라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고, 백두산에서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베풀었으므로 백두산이 우선 삼신산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신산의 성립요건에 백두산의 특수성을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백두산도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삼신이란 천일·지일·인일 또는 한인·한웅·한검을 의미하는데, 본서 제1편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가 백두산에서 베풀어졌음을 밝혔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웅천황이 아버지 한인의 뜻에 따라 풍백·우사·운사 등 신관과 3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백두산정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신시를 베풀었고, 한웅의 아들 한검(단군왕검)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이래서 백두산은 삼신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이 한 가지 사실만을 보더라도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그런데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
{부도지}에 '불함삼역(不咸三域)'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함은 백두산을 의미하며, '그 주(註)에 삼역'은 봉래·방장·영주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 내에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산을 논하는 대목에서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라는 묵정밭 곧 천왕이 내려온 곳이며, 방장은 사방이 일장(一丈)인 각(閣) 즉 소도(蘇塗)가 있는 곳이며, 영주는 못이 섬을 둘러싼 모양 즉 천지(天池)가 나오는 곳이며, 이것들을 말하여 삼신산이라 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신산이란 봉래·방장·영주를 의미하고,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인간의 신체에 상단전(上丹田)·중단전(中丹田)·하단전(下丹田)이 있다. 그와 같이 땅에도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상단전, 한반도는 중단전, 각 지방은 하단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은 중단전에 있는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각 지방에도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금강산·지리산·한라산도 이들 하나 하나는 선산(仙山)이지만 이를 총칭해서 말하면 삼신산인 것이다.
셋째, 삼신산은 바다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바다는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
바다는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실제의 짠물바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선인주처(仙人住處), 수미세계(須彌世界)를 의미하고, 그곳은 과거의 우리나라 고조선을 지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2부 제1편 Ⅵ에서 상설하였다.
넷째, 삼신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에 신선이 살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백산(백두산)은 한웅천황이 풍백·우사·운사 등 선인(仙人)을 거느리고 내려온 곳이며, 단군왕검 선인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거악(白頭巨嶽)은 대황중(大荒中)에 튼튼히 자리잡았으니 배달천국의 진산(鎭山)이요, 신인의 오르내림은 실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백두산은 신선이 살았던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백두산도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불함산(백두산)의 영주 대여산 자삭방에서 인삼이 나는데, 이는 4삭(2080년)을 경과해야 꽃을 피는 삼근영초로서 이를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한다고 하였다. 실제에 있어서도 백두산에는 산삼씨만 따먹고 사는 인삼조(人蔘鳥)가 있을 정도로 백두산은 산삼의 고장으로서 산삼을 백두산 삼보(三寶) 중의 하나로 친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가 희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의 초목과 금수도 희다.
{역대소사}에 의하면 백두산(태백산)의 초목과 금수가 모두 희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 북쪽 기슭에는 백양목이 많고, 흰사슴·흰돼지·흰매들이 지금에도 서식하고 있다.실재 백두산을 등반하여 보아도 백두산 북쪽의 나무들은 거의 백양목이고 소나무 중에 백송(白松)도 있다. 가을이 되어 산상에서 북쪽의 산밑을 내려다보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이도백하(二道白河)·두도백하(頭道白河) 등 백하(白河)라 부른다.
일곱째, 삼신산에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너무나 과장된 나머지 비합리적이고 실제 있을 수 없는 문제이므로 논외로 한다.
이상 외에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적하면 본서 제1편 Ⅳ의 4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백두산이 3층으로 되어있다는 점, 삼강일지(三江一池)라는 점, 천지의 좌우에 금선(金線)·옥장(玉漿)·은류(隱流) 등 세 개의 온천과 천지의 동북쪽에 인만(麟巒)·봉만(鳳巒)·벽라(碧螺) 등 세 개의 특수한 산이 있다는 점 등 거의가 3수로 된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은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삼신사상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백두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에 의하여 신선도가 설해졌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삼신산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신본기에도 "옛날의 삼신산은 곧 태백산이다. 또한 지금의 백두산이다"라고 하였다. 그밖에도 백두산에 대한 기록이라면 거의 백두산이 곧 삼신산임을 밝히고 있다. 이래서 삼신산이 백두산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Ⅲ. 우리민족의 신선도서가 지나로 전승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선도서(神仙道書)가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이다. {도서전집;道書全集}·{음부경;陰符經}·{삼황옥결;三皇玉訣} 서문에 의하면 황제가 신선도서(神仙道書)인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대산(大山)의 천단(天壇)에서 받아갔다고 했다. 삼황내문은 모두 천상의 전서(篆書)로 쓰여졌고 삼백여자가 세권으로 나뉘어졌는데, 상권은 천황(天皇), 중권은 지황(地皇), 하권은 인황(人皇)이었다(이래서 이를 삼황내문이라 한다). 상권에는 신선과 우주론에 대한 것이 담겨 있고, 중권에는 부국안민(富國安民)의 법이 담겨 있으며, 하권에는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과 천지(天地)·음양(陰陽)·만물의 조화원리가 담겨 있으니, 치국(治國)·제가(齊家)·지신(持身)·불사(不死)의 도(道)는 모두 이 경에서 나온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삼황내문을 황제가 대산의 천단에서 지나로 가져갔다고 했다. 그러면 대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대산은 큰산·일산(一山)·환산(桓山)·백산(白山)·백두산과 그 뜻이 통한다. 또 이 산이 있는 곳이 청주(靑州)라 하였는데 청주는 청구(靑邱)이다. 이렇게 본다면 황제가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가져간 대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의 출처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된다는 것이다.
서기 4세기 경 중국의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내편에 "옛적에 황제(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 갔다"하고, {태백일사}에도 이르기를 "삼황내문을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황제 헌원(黃帝 軒轅)에게 주어서 마음을 밝히고 의(義)로 돌아가게 하였다. 선생은 항상 삼청궁(三淸宮)에 계시니 그 궁은 청구국(靑邱國) 대풍산(大風山)의 양지(陽地)에 있다. 헌후(헌원)가 친히 치우(蚩尤)를 조현(朝見)하려고 가는 길에 명화(名華)가 있어 승문(承聞)한 것이다. 경전은 신시(神市)의 녹도(鹿圖)로서 그것을 기록하였다. 나누어 삼편(三篇)이 되었다. 후인(後人)이 추연(推演)하고 가주(加註)하여 별도로 신선음부지설(神仙陰符之說)이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지나인의 기록인 {포박자}의 기록과 우리민족의 기록인 {태백일사}의 기록이 서로 일치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하등의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청구(靑邱)는 어디를 가리키고, 풍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이며, 자부선생은 누구냐 하는 문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청구는 지금의 만주 요령지방으로서 고대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지역이었다. 풍산(風山)은 백두산의 이칭이라고 안호상은 말한다. 자부선생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의하면 발귀리(發貴理)의 후예이며, 발귀리는 백두산 신시시대(神市時代)의 선인이다. 이렇게 볼 때, 황제가 삼황내문을 가져갔다는 대산과 풍산은 백두산이라 단정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황제에 의하여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교를 황로교(黃老敎)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 신선도서로서 {주역(周易)} 등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3편에서 밝혔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Ⅳ. 도교의 시조는 동이족이다
1. 광성자와 동이족
황제가 공동산(空同山)에서 도를 물었다는 광성자(廣成子)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흔히 광성자를 가공인물 또는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광성자가 실존인물이라 할 경우, 그는 지나 도교의 창시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조라 할 수 있고, 지나의 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광성자는 실재인물이라 할 경우, 지나족인가 아니면 동이족인가의 문제이다. 위의 기록에는 광성자가 어느 민족인지에 대하여 일체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광성자가 수도하였다는 공동산이 큰 근거가 된다. 즉 공동산이 지나지역에 있는가, 아니면 동이지역에 있는가에 따라 광성자의 민족적 소속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능화는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과 진자앙(陳子昻)의 시(詩)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공동산(空同山)이 계구(?丘)에 있다 하였는데, 계구가 역시 청구에 있고 요동에 가깝다. 요동은 예로부터 선적(仙跡)이 많은 곳이다" 라고 하였다. 즉 광성자가 수도하던 공동산이 요동에 가까운 곳, 청구에 있다는 것이다. 청구는 우리민족의 고토이다. 그러면 공동산은 고대 우리민족의 지역 내에 있는 산으로서 광성자는 당연히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지나의 신화에 나오는 반고를 비롯해서 지나문화를 개척한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인데 광성자만이 지나족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광성자는 지나족이라 절대 볼 수 없고, 동이족이라 강력히 추정된다. 광성자가 동이족이라 할 경우 지나 도교의 시원은 당연히 동이족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근세조선 시대에 쓴 조여적의 {청학집}에 의하면 "한인진인(桓因眞人)은 명유(明由)에게서 수업하였고, 명유는 광성자에게서 수업하였는데 광성자는 상고의 선인(仙人)이다"하여 광성자는 한인보다 지위도 높고 선대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
앞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가 광성자에게 도를 물었다 하였고, 황제는 치우에게 조현하였다 하였으므로 광성자는 황제나 치우보다 선배라 하더라도 이들 세 사람은 동시대의 인물이다. 치우는 배달국의 제14세 자오지천황으로서 한웅보다 1000여년 이후의 인물이며, 한인보다 4300여년 이후의 인물이다. 따라서 광성자가 한인보다 선배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생각하면 {청학집}의 기록은 지나를 상국으로 받드는 근세조선 시대의 기록으로서 그 시대의 영향에 의하여 쓰여진 곡필이라 할 수 밖에 없고, 진실성이 결여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노자와 동이족
도교에 있어서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황제는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직접 지나로 수입한 인물이고, 노자(老子)는 {도덕경}을 저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황제는 동이족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밝혔다. 문제는 노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노자는 주(周)왕실 주사직(柱史職)을 지냈다. 그리고 노자의 후손은 지나에 있어도, 노자의 선조는 지나에 없다. 또한 노자(老子)를 노담(老聃) 또는 이이(李耳)라 하는데 성씨가 노(老)인지 이(李)인지, 아니면 그밖에 다른 성씨인지 하는 것도 확실치 않다.
그런데 {태백일사}에 의하면 노자 이이(李耳)는 그의 성(姓)이 한(韓)씨요, 동이족이다. 즉 "계미(B.C.518)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이의 아버지는 그 성(姓)이 한(韓)이고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노자의 성은 원래 한(韓)씨로서 동이족이며, '이이(李耳)'의 '이(李)'는 '목(木)의 자(子)' 즉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고, 노자(老子)는 늙은 학자라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Ⅴ.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
지나 도교의 원류가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면 그 기본사상이나 숭배의 대상 및 전문용어 등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하여야 한다. 이하에서 그 유사성을 몇 가지 지적코자 한다.
1. 기본사상의 동일성
첫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님(옥황상제)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신선도는 천일(한늘님)·지일(한울님)·인일(한얼님)의 삼신일체인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도교 역시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 즉 천보군(天寶君)·신보군(神寶君)·영보군(靈寶君)의 삼존신일체(三尊神一體)인 옥황상제(원시천존)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옥황상제(玉皇上帝)는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는 신선도의 삼신하나님과 그대로 일치한다.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신선도에서는 {천부경}에 "하나에서 비롯하나 하나의 비롯은 없으니, 하나를 나누면 셋이 되어도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하여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도교에서도 {도덕경} 제42장에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하여 만물이 생성소멸하는 근본원인을 도(道)와 하나(一)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39장에는 "한늘은 하나(一)를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여지며, 신(神)은 하나를 얻어서 영묘하여지며,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가득차게 되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태어나게 되며, 임금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린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하여 도교는 도(道)와 마찬가지로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이와 같이 신선도와 도교는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셋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만물동근 내지 만물일체사상이다.
신선도에서는 만유의 근본을 '하나'로 보는가 하면, '하나'는 한알→하날의 전음으로서 그 원의는 숫자적 의미의 '하나' 외에 한늘의 영기(생명 에너지)를 의미하는데, {태백일사}에 "하나의 기(一氣)가 능히 움직여 조·교·치(造·敎·治) 삼화(三化)의 신(神)이 된다" 하여 만유의 근본을 일기(一氣)로 본다. 즉 만유의 근본이 "하나 즉 기(氣)"로서 신선도는 만물동근사상이다. 또한 신선도는 천일·지일·인일의 일체사상으로서 만물일체사상이다.
도교의 경전인 {장자}에도 "사람의 생(生)은 기(氣)의 모임이니, 기가 모이면 생(生)이 되고, 흩어지면 사(死)가 된다. 이와 같이 생사는 같은 무리이니 내 또한 괴로워할 것이 무엇이리요,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니라"하여 만유의 근본을 기로 보고 만유를 평등하게 보고 있다.
넷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순환론이다.
{천부경}에 "만가지가 가고 만가지가 돌아온다(萬往萬來)"하였고, {참전계경} 제91사(조)에 "순환이라 함은 형상있는 한늘의 윤회이니, 형상있는 한늘은 윤회에 일정한 도수가 있어서 조금도 어김이 없느니라"하여 순환론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제95사에는 "무극이라 함은 돌아서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원기이니 만약에 잠시라도 그침이 있으면 천리가 멸하느니라. 사람이 신의를 기름도 저 무극의 원기와 같으니 털끝만치라도 그침이 용납되면 인도(人道)는 폐하느니라"하여 사람의 도리에도 순환론이 적용됨을 말하고 있다. 즉 신선도는 순환론이다.
{도덕경} 제25장을 보면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道)라 이름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 부르기로 하였다. 대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여 간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멀리 극도에 이른다. 멀리 극도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하였고, 제16장에도 "마음을 극도로 허하게 하고 독실히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아울러 생겨나고 그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란 번성하고 번성하면 제 각기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순환론이다.
다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본서 제1편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원리에서 음양오행사상이 발원됨을 밝혔다. 또한 제3편에서 음양오행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음을 밝혔다. 그런데 도교는 불로장수를 목적으로 함으로써 연단술(煉丹術)과 양생술(養生術)을 닦게 되고, 연단술과 양생술에서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원리로 한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 역시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교도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에 대하여 신선도를 모르는 유교학자들은 도교가 유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고, 도교학자들은 유교가 도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신선도와 유교, 신선도와 도교는 부자관계격(父子關係格)이며, 유교와 도교는 동복형제격(同腹兄弟格)으로 서로 같은 사상을 동시에 지니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교와 유교는 신선도의 음양오행사상을 지니게 된다.
여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조화사상이다.
신선도는 삼극일체(三極一體) 사상으로서 개전일체(個全一體)·선악일체(善惡一體)·유무불이(有無不二)의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도교 역시 {도덕경} 제37장을 보면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 말이 도의 양극일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제41장에서는 "도에 밝은 것은 어두운 듯이 보이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듯이 보이며,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듯이 보이고, 훌륭한 덕은 속된 듯이 보인다. 크게 결백한 것은 욕된 듯이 보이고, 광대한 덕은 부족한 듯이 보이며, 튼튼한 덕은 간사한 듯이 보인다. 바탕이 참된 것은 더렵혀진 듯이 보이고, 크게 모난 것은 모퉁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하고, 제45장에서도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고, 크게 교묘한 것은 졸열한 듯이 보이고,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듯이 보인다"고 하여 도교 역시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2. 전문용어의 동일성
신선도와 도교는 그 전문용어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하다. 신선도에서는 삼수(三數)가 가장 기본수여서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예컨대, 삼일신고(三一神誥)·삼화경(三化經)·삼극일체(三極一體)·삼신일체(三神一體)·삼교일체(三敎一體)·삼륜(三倫)·삼진(三眞)·삼방(三房)·삼관(三關)·삼문(三門)·삼도(三途)·삼강(三綱)·삼덕(三德)·천부삼인(天符三印)·삼천도(三千徒) 등이다.
도교에도 삼수로 된 용어가 많다. 이는 부전자승(父傳子承)하는 격이다. 예컨대, 삼존신(三尊神)·삼황(三皇)·삼황내문(三皇內文)·삼원(三元)·삼계(三界)·삼청(三淸)·삼기(三氣)·삼군(三君)·삼통(三洞)·삼태성(三台星)·삼천공(三千功)·삼화(三華)·삼목(三木)·삼요(三要) 등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神仙道 7 끝 .
첫댓글 ㅎㅎㅎㅎㅎ
증산도! 신선도!
우리민족의 근원을 즉/ 일만년 우리민족성
그러나 보라!
복희의 꿈을
보라 지구내의 생각을
우리 민족 보다 생명의 근원을 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황제님 굽어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