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동향사람들
 
 
 
카페 게시글
스포츠♡방 스크랩 80년대(82~83년) :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
노채(성치두) 추천 0 조회 304 09.09.19 11: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80년대(82년~89년) : 타이거즈의 전성기

80년대(82년~89년) 타이거즈의 탄생과 전성기

1982년 프로야구는 6개팀으로 출범하는데 지역연고와 기업연고를 고려해서 탄생됐다. 우선 서울지방은 맨처음 프로 팀 창단을 발표했던 'MBC'가 기득권을 주장해서 선정됐고, 부산 경남은 '롯데'(신격호 회장의 고향이 경남양산), 대구 경북지역은 '삼성'(이병철 회장의 고향은 경남의령이었지만 기업의 창업 발생지가 대구), 대전 충청지역은 'OB'(두산 박용곤회장의 고향은 서울이고, 3년 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해 준다는 조건을 전제하고), 인천 경기 강원지역은 '삼미'(김현철 회장은 이지역과 전혀 연고가 없었으나 난항을 거듭하던 이지역을 맡겠다고 자청)가 선정됐다. 끝으로 이 지역 호남은 '해태'가 선정됐는데 사실 그 동안 논의 돼왔던 기업은 '삼양사'와 '금호그룹'이었다. '삼양사'의 김상홍 회장은 선대가 전북부안출신이고 '금호그룹'의 박인천 회장은 광주가 고향이었다. 하지만 당시 재정이 비교적 튼튼했던 이들 두 기업은 창단을 고사하고 결국 조그마한 제과업체인 '해태'가 김동엽씨를 초대 감독으로 임명한다는 조건으로 창단했었던 것이다.

1982년 3월 27일 한국프로야구 개막

드디어 82년 3월 27일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장소는 서울 동대문운동장이었고 MBC와 삼성의 경기였다. 시구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맡았다. 이날 경기에서 '이만수'는 프로 첫 홈런을 날렸고 '이종도'는 7 : 7로 맞서던 연장 10회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트리며 프로야구의 성대한 개막을 알렸다.

1982년 프로원년

프로원년 타이거즈는 단 14명의 선수만으로 시즌에 참여했다. 감독 김동엽을 필두로 김봉연, 김성한, 김일권, 김종모, 김준환, 차영화, 조충열, 이상윤, 방수원, 김용남, 강만식, 김종윤, 양승호, 김일환등 너무나 부족한 선수층으로 팀을 꾸려나가게 된다. 전반기가 끝나고 삼성에서 서정환이 해태로 트레이드된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트레이드인 것이다. 결국 프로원년 38승 42패로 6개팀중 4위에 머물지만 해태 타이거즈는 홈런왕 김봉연, 타점왕 김성한, 도루왕 김일권을 배출 하면서 호남지역의 확실한 사랑을 받는 팀으로 탄생하게 된다.

1983년 타이거즈 전성기의 시작

83년 프로구단들은 팀간 전력 평준화를 위해 85년부터 수입하기로 한 재일동포선수들을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두텁지 못했던 삼미와 해태에 한해서 수입을 앞당기는 결정을 한다. 이에 삼미는 30승투수 '장명부'와 '이영구'를 데려왔고 해태는 포수 '김무종'과 투수'주동식'을 데려왔다. '장명부'는 너구리라는 별명과함께 60경기에 등판하는 철완을 과시하며 시즌 30승을 올렸고, 해태의 '김무종'과 '주동식'은 이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등공신이 되며, 해태의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다. 한편 83년 해태의 최고 인기선수이자 4번타자였던 '김봉연'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악조건을 극복하며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83년 해태는 전기리그 30승 19패 1무로 우승을 차지하며 MBC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1무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후기리그에는 25승 25패로 부진.

1984년 프로 첫 노히트노런

84시즌 해태는 43승 54패 3무를 기록하며 전년도 우승팀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롯데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를 지켜봐야했다. 한편 해태투수 '방수원'은 프로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한다. 반면에 84시즌 '방수원'은 노히트노런으로 거둔 1승이 시즌 유일한 승리이기도 했다. 방수원은 1승 8패로 시즌을 마감한 것이다. 빠른 직구보다는 변화구로 승부하는 '방수원'은 프로원년 맴버로 선수생활동안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지만 프로 첫 노히트노런을 작성한 투수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1985년 국보투수의 등장

1985년 한국프로야구에 제 7구단이 탄생했다. '한국화약(현 한화)'이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프로야구팀을 창단한 것이다. 연고지는 충청도를 택했고, 이때까지 충청도를 연고지로 사용했던 'OB'는 3년후 서울입성이라는 조건을 달고 프로야구에 참여했던 이유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된다. 이때 해태는 이미 메이저리그로부터 강한 스카웃제의를 받고 있던 '선동렬'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다. 당시 해태와 선동렬은 해태에 입단하냐 안하냐를 두고 강한 신경전을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선동렬'은 군대문제와 광주팬들의 압력에 의해 계약금 1억에 연봉 1천2백만원(실제로는 계약금과 연봉 합쳐서 1억5천만원)을 받고 해태에 입단하게 된다. 그는 후반기가 되어서야 광주구장에 첫선을 보이는데 85년 성적은 25경기에 출전해서 7승 4패 8세이브에 방어율 1.70을 기록한다. 이해 타이거즈는 57승 53패 1무의 성적을 기록하며 후년을 기약한다. 한편 이순철이 타이거즈의 유일한 신인왕수상자로 탄생한다.

1986년 타이거즈의 해결사

85년 'OB'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던 '한대화'는 간염과 허리통증에 시달리며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OB에서는 85년 11월 23일 그를 해태 황기선, 양승호와 맞바꾸는 2:1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하지만 '한대화'는 고향팀인 빙그레 이글스로 보내달라며 트레이드를 거부한다. 결국 임의탈퇴선수로 공시돼고, 당시 해태코치였던 '김인식'의 설득으로 3월 22일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된다. 타이거즈에서 3루수로 자리잡은 한대화는 16개의 승리타점을 올리며 시즌최다승리타점신기록을 달성하는등 팀내의 해결사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해 타이거즈는 67승 37패 4무의 성적을 올리며 한국시리즈에 진출, 삼성을 상대로 4승 1패를 기록하며 두 번째 우승이자 4연속 우승의 시동을 걸게된다. 한편 시즌 MVP에 '선동렬'이 선정되고 한국시리즈 MVP에는 '김정수'가 선정됐다.

1987년 2년 연속우승

타이거즈는 기존맴버에 선동열, 한대화가 가세하고 김정수, 문희수, 차동철등 젊은 투수들의 가세로 55승 48패 5무의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를 통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전년에 이어 다시만난 타이거즈는 내리 4번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2년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시리즈 MVP는 김준환이 선정됐다.

1988년 신구의 교체

올림픽이 열렸던 88년 타이거즈는 두명의 원년맴버인 김봉연과 김준환을 플레잉코치로 승격시킨다. 사실상의 은퇴인셈이다. 반면에 이순철, 신동수, 문희수, 김성규등 신진 선수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여전히 리그 최강을 유지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이자 3연속우승을 달성한다. 한국시리즈 상대였던 빙그레 이글스는 장종훈, 이정훈의 막강 화력을 앞세워 강력하게 도전했지만 타이거즈를 상대로 2승을 올렸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시즌 MVP는 김성한이 선정돼고, 한국시리즈 MVP에는 문희수가 선정됐다.

1989년 연고지 전북지역 상실

89년 타이거즈에는 세명의 국가대표 기둥투수들이 동시에 입단한다. 광주일고 출신의 이강철, 이광우와 군산상고 출신의 조계현이 그들이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조계현이 1년 늦게 프로에 참여하는 바람에 세명이 동시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아직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강철은 10년연속 1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고 조계현도 다승왕을 차지하는 등 최고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이광우는 타이거즈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이적, 현재 두산에서 많은 활약을 보이고 잇다. 한편 타이거즈는 김봉연이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선동렬은 프로 5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다. 김성한은 프로최초로 20-20클럽에 가입하며 호타준족의 상징이 된다. 또 89년에도 타이거즈는 빙그레를 상대로 4승1패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를 재패하며 4연속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시리즈 MVP는 박철우. 한편 프로출범이후 타이거즈의 연고지였던 전북이 쌍방울의 탄생과 함께 연고지에서 제외되게 된다. 결국 타이거즈는 89년 9월 23일 전주고별전을 치르게되고 전주에서 통산 40승 1무 24패의 성적을 뒤로하고 전북을 내주게된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