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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2013년 2월 14일부터 2월 18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직장 동료들과 부부동반 중국 운남성 곤명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여행 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오랫동안 추억하고, 다음에 이곳을 여행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메모와 기억을 더듬어가며 쓴 것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가이드의 설명과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얻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꼬리 글을 남겨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2013년 2월 14일(목) : 대전-인천공항-곤명
여행은 모든 시름을 잠시 잊고 일상에서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바로 이것이 여행이 가져다주는 매력이 아닐까.
이번 여행은 오후 3시 55분 인천공항행 우등버스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대전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약 3시간 정도 소요(요금 22,100원). 저녁 7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저녁식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공항 지하 1층 식당가로 내려간다. 해외여행을 할 때 종종 이용하던 "風物 장터"라는 스넥코너를 찾지 못해 다른 식당에서 비빔밥(가격 8천원)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귀국하면서 안내데스크에서 알아보니 간판이 푸드온으로 바뀌었다. - 참고로 7번과 8번 출입구 사이에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내리면 바로 옆에 위치한다. 떡볶이, 김밥, 우동, 라면, 떡만둣국, 양푼이 비빔밥 등의 메뉴에 값이 저렴(가장 비싼 메뉴가 5천원)할 뿐 아니라 맛도 훌륭하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기내식이 제공되므로 간단한 요기를 하는데 적당한 곳이다 -
식사를 끝내고 3층 F카운터에서 국빈여행사 희선 팀장과 만나 주의사항을 듣고 항공권 발권을 한 다음 짐을 부친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지하로 내려가 트레인을 타고 이동한다.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130번 게이트 앞에서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눈다. 모두가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들뜬 기분이다.
예정시간보다 약 30분 늦은 밤 9시50분 탑승이 시작되고 활주로를 구르던 비행기는 10시 20분쯤 하늘로 힘차게 솟아오른다. 얼마 후 저녁인지 밤참인지 기내식이 제공되고 잠시 눈을 붙인다. 곤명까지는 3140킬로미터, 약 5시간을 비행하고 중국시간(중국과 시차 -1시간) 새벽 2시가 조금 지나 곤명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한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여행객이 많지 않아 입국수속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짐이 나오는 것은 더디기만 하다. 역시 만만디 중국답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오자 현지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맞이한다. 숙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준비된 17인승 버스에 오른다. 시내 숙소까지는 약 40분이 소요. 숙소로 이동하며 가이드는 흑룡강성 출신의 교포3세 조선족으로 이름은 이호명이며, 2012년 곤명 1등 가이드로 뽑힌 똘똘한 가이드라고 자랑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현지가이드 이호명
중국은 가깝고 익숙한 반면, 세계 육지 면적의 6.7%에 달하는 거대한 땅에 다양한 삶을 품고 있어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은 나라다.
윈난성
윈난(云南)은 '구름의 남쪽'이란 뜻이다. 윈난은 중국의 23개 성들 중에서도 가장 다채로운 지역이다.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는 윈난은 지역적으로는 시솽반나의 아열대 기후에서부터 1년 내내 눈 덮인 매리설산까지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2,500종이나 되는 야생 화초와 식물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가장 많은 종(種)의 식물과 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윈난은 '동물의 왕국', 혹은 '식물의 왕국', '천상의 화원'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다. 또한 중국 전체 소수민족의 1/3인 26개의 소수민족이 이곳에 살고 있다.
또한 '강호의 무림고수'로 시작하는 수많은 무협지의 본고장이 바로 윈난성이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남만왕 '맹획'을 기억할 것이다. 제갈공명이 일곱 번 붙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준, 칠금칠종(七擒七縱)의 일화로 유명한 변방이 바로 윈난지역이다.
7세기에 세워진 다리 왕국은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매우 강력한 왕국이었다. 지금도 윈난은 북쪽의 정부로부터 가장 먼저 이탈하는 반골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무수한 관리들이 이곳으로 추방되거나 유배되면서 반란 성향이 더욱 짙어진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윈난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배낭족들로부터 가장 각광을 받은 매력적인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윈난성 성도 쿤밍
중국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쿤밍(昆明)은 해발 1,89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를 접경으로 하고 있는 윈난 성의 성도인 쿤밍은 중국보다는 동남아의 정취를 한가득 품고 있는 매력적인 고도다. 쿤밍(昆明)은 한(漢)에서 당(唐)에 이르는 시기에 서부 윈난에서 톈츠(滇池) 지역으로 이주한 유목민족의 이름을 음역(音譯)한 것에서 도시 이름이 시작되었다. 이곳 지명인 톈(滇)이 윈난성(雲南省)의 약칭이 되었다.
쿤밍의 연 평균 기온은 15℃다. 낮은 위도(25°)와 고원 산지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무더위가 없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없다. 인도양의 온난다습한 기류와 많은 일조 시간, 그리고 서리가 내리는 날이 적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쿤밍의 사계절이 봄날 같이 온화하다. 그래서 쿤밍은 '영원한 봄의 도시 춘성(春城)'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차마고도(茶馬古道)와 서남 교역로(蜀身毒道)의 기점이었던 쿤밍은 중국 서남 지역 교통 요충지다. 1910년 철도에 이어, 1930년대 처음으로 쓰촨(四川)의 충칭(重慶), 구이저우(貴州)의 구이양(貴陽) 사이에 간선도로가 개설되면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들과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관문이다. 쿤밍에서 다리, 리장, 샹그릴라, 매리설산이 있는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의 라싸까지 이어진다.
새벽 3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한다. 객실 키를 받아 곧바로 방으로 올라가 양치만 하고 침대에 눕는다. 준5성급 호텔로 객실과 욕실이 넓고 헤어드라이기까지 비치되어 있다.
★ 2013년 2월 15일(금) : (조식)-숙소주변 민족공예품거리-원통사-운남육군강무학교-취호공원-(중식)-서산공원(곤명호, 용문)-(석식)
8시 모닝콜이 울린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아내와 숙소 주변의 민족공예품을 판매하는 공예품 거리를 돌아보고 과일가게에서 작은 귤과 바나나를 구입한다. 탱자 크기의 귤은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아 중국 여행에서 자주 사 먹는 과일이다. 몽키 바나나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과일이다. 작년 겨울 라오스 배낭여행을 할 때는 거의 주식이었다. 중국은 모든 물품을 저울에 달아서 판매하는데 1근(500그램) 단위로 값을 정한다. 귤이나 바나나는 1근에 3콰이(위엔=540원)정도이고 리쯔나 망고스틴은 10콰이(=1800원) 정도로 저렴하다. 10시 30분 숙소를 출발하여 본격적으로 곤명 관광을 시작한다.
240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곤명은 중국의 3대 관광지로 꼽힐만큼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 곤명시외버스 터미널
△ 민족공예품거리
원통사
쿤밍 시 북쪽, 원통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원통사는 당나라때 '보타나사(補陀羅寺)'란 이름으로 세워졌다. 그 뜻은 '광명사(光明寺)'.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쿤밍 최대의 불교 사찰로, 중국에서 가장 먼저 지은 관음사 중의 하나다. 위앤통(圓通)은 관음보살의 32개 법호 중의 하나인데 '명백'하다는 의미이다.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가 원나라때 중건되었고, 절 주변의 산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원 내부는 궁전을 연상케 할 만큼 화려한데, 특히 원통보전과 동불전이 유명하다. 사찰 안에는 좌불상과 용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는 두 개의 원주가 눈길을 끈다.
이 절의 구조가 아주 독특하다. 전통사찰에는 맨 먼저 절 입구가 되는 산문으로 일주문(一柱門)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천왕문(天王門)이나 금강문(金剛門)과 같은 중문(中門)이 나타나는데, 이 사찰에는 천왕문 대신 "원통승경(圓通勝境)"이라는 패방(牌坊)을 중문삼아 세워놓았다. 이 문은 1668년에 우싼꾸이(吳三桂)가 확대 개축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찰들이 계단을 올라가서 대웅전이 있지만 이 절은 해발 2,000m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대웅전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전(寶殿) 앞에 제법 큰 연못과 팔각정이 있다. 연못 양측의 복도를 걸어가면 절의 중심 정전인 원통보전 앞에 서게 되는데 이것이 대승불교의 구조라고 한다. 원통보전 뒤쪽으로 계단이 있어 이곳을 올라가 보면 소승불사 동불전이 나온다. 한 절 내에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실제로 이 사찰에는 라마교의 흔적도 있어 3대 교파의 불전이 모두 있는 곳이다.
원통사 연못의 난간에는 너무나 귀여운 해태들이 세월의 풍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앉아있다. 해태는 시비를 분간할 줄 알며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 악인을 미워한다는 신수(神獸). 화재와 재앙을 예방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궁궐, 사찰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상속의 동물로 사자의 발톱과 호랑이의 이빨 등 각종 신성한 동물들의 장점만을 모아 만들었으며, 용과 함께 황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원래 황제를 뜻하는 용무늬는 황제의 처소에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특별히 황제의 허락을 받아 원통사 원통보전의 중앙에는 용들이 조각된 높이 10미터의 원주가 서있다.
청나라 강희황제 때 중건되어진 연못 위의 팔각정에는 옥불상과 천수관음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밖의 연못 속에서는 잉어들이 한가로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천수관음상이 모셔진 원통 보전. 천수관음은 지혜의 상징이다. 천개의 손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지상의 모든 인간들의 괴로움을 그 눈을 통해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의미라고 한다.
원통사의 매력은 사찰 맨 안쪽에 있는 태국식 사원이다. 태국 양식으로 지어진 동불전은 내부에 모셔진 동불상과 주변의 동물상 모두 태국 왕이 선물했다고 한다.
△전설의 동물 기린. 자신의 몸에서 아픈 부위와 같은 부위를 손으로 만지면 강건해진다는 전설이 있다.
운남육군강무당(云南陸軍講武堂)
취호공원 바로 앞에 자리한 육군운남강무당은 1909년 청나라 때 신식 군인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옛날 육군사관학교다. 1916년에는 4명의 한국청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였다. 한인들의 입교는 11기에서 19기 사이에 활발하였으며 졸업한 한국인의 수는 50여 명이다. 이들은 만주지역의 독립군이나 독립운동 진영에서 조직한 군사조직에서 활동하였다.
곤명의 운남육군강무학교는 한국의 역사와 항일투쟁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초대총리를 지낸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1900-1972)장군은 1915년 중국으로 건너가 이곳 운남육군강무학교 기병과를 나와 김좌진 장군의 지휘 하에 중대장으로 있으면서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끄신 분이다. 또, 만주항일무장투쟁으로 유명하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부주석을 지낸 최용건(崔庸健)(1900-1976)도 이 학교 출신이다.
동갑내기에 같은 학교 동창으로 같은 항일무장투쟁을 하였지만 광복 후 한사람은 남쪽을, 한 사람은 북쪽을 택하므로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취호공원(翠湖公園)
취호공원은 쿤밍 시내 북서쪽 나봉산(螺峰山) 아래의 운남대학 정문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비록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물비취(水翠), 대나무비취(竹翠), 버드나무비취(柳翠)가 어우러져 아름답다. 호수에 연꽃의 푸른 잎이 떠 있는 광경이 비취처럼 아름다워 1900년 '취후(翠湖, 취호)'라는 이름이 정식명칭이 되었다. 원래는 만(灣)이었는데, 점차 수위가 내려가면서 호수가 되었다. 가족과 연인들이 놀이 배를 타고 명절을 즐기는 모습이 한가롭지만, 물은 오염되어 더러운 느낌이다.
취호공원은 4개의 연못과 그 위에 떠있는 4개의 인공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섬들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호수 주변의 무성한 버드나무, 수면 가득한 연꽃잎, 푸른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장관을 이루고, 쿤밍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사시사철 다양한 전시회나 모임이 열리며 시민들이 태극권을 하거나 전통악기 연주나 노래 연습을 하는 장소로 자주 이용한다.
△말린 과일 가게
점심식사는 현지식이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음식에 향채를 사용하지 않아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특이한 것은 이곳은 상추가 밥상에 오른다. 쌈장을 준비해 가서 맛있는 점심식사로 배부르게 하고 후식은 역시 믹스 커피. 해발 고도가 높아 믹스커피 봉지가 터질듯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다들 신기해한다.
시간은 인간과 자연을 통해 예술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운남성에는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70여 명의 석공이 밧줄에 의지한 채 72년 동안 깎아 만들었다는 용문석굴. 누가 이 돌산을 깎을 생각을 했을까?
서산 용문
쿤밍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시산(西山, 서산)의 해발은 2350m. 커다란 돌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서산은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주차장에서 그린버스로 갈아타고 서산 입구에서 내려 서산용문까지 오르는 여정이 흥미롭다. 리프트(삭도)를 타고 서산에 오르면 광대한 곤명호가 눈에 들어온다.
곤명호는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담수호라고 한다. 이 호수는 해발 1,885m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원의 진주" 라고도 불린다.
△리프트에서 바라본 풍경-곤명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서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용문(龍門). 절벽을 따라 뚫어 놓은 석굴을 따라 가면 다양한 불상, 석대 등 석각 예술품들이 조각되어 있는 석실과 그 앞의 용문(龍門)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이 산을 뚫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
도교와 불교, 유교의 양식이 모두 혼재되어 있는 쿤밍의 용문 석굴은 3대에 걸쳐 72년 동안 만들어졌다고 한다. 쿤밍 외에도 중국 여러 지역에 이러한 용문 석굴이 있다. 가장 유명한 허난성 뤄양의 용문 석굴을 몇 해 전 중국 여행에서 보아서인지 솔직히 감동은 별로다.
△자식을 많이 얻게 해준다는 부처
△돌에 조각되어 있는 전설의 동물 봉황
효우천(孝牛泉)
백정이 소를 잡으려고 칼을 들고 어미 소를 끌고 가자 송아지가 달려들어서 칼을 놓치게 하고, 송아지가 그 칼을 배 밑에 깔고 앉아 숨겨서 어미 소를 살렸고, 그 곳에서 샘이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효우천 앞에는 전설을 돌에 조각해 놓아 흥미롭다.
사천왕은 처음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이었지만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차츰 무인상(武人像)으로 바뀌었다. 사찰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잡귀를 제거하는 기능을 갖기 위해서는 두 눈을 부릅뜬 분노상(憤怒像)에다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여 먼저 형상에서부터 위압감을 주어 악귀를 제압한다는 목적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천왕의 그림이나 조각상에는 악귀(惡鬼)를 깔고 앉거나 발로 짓누르고 있는 형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재물의 신
△그린버스 정류장까지는 전동차로 이동한다.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지금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기간이다. 곳곳에서 폭죽놀이와 화려한 불꽃놀이가 수시로 펼쳐진다. 밤 8시. 숙소 바로 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남자들만 모여 숙소 앞 길거리 탁자에 둘러 앉아 꼬치구이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곤명여행의 추억을 만들어간다.
꼬치구이 노점상 주인인 젊은 부부가 아주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근처에 곤명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있어 늦은 시간에도 오고가는 인파가 거리에 가득하다. 또 하루는 그렇게 깊어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