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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드래프트 1차 1번으로 픽.
하지만 투수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큰 부상을 고작 10대에
그것도 그라운드외에서 당한 선수.
나카자토 아츠시
하지만 아직도 부활로의 고난의 길은 이어져가고있기에
아직 비운의 선수라는 말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골수 주니치팬이 아니신이상
나카자토를 아시는분이 매우 적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실적에 비해 팬의기대도가 언밸런스하게 높은선수입니다.
또한 팬의 기대도에 비해 데이터가 적은 선수이기도 하죠.
그래서 인본내의 여러 블로그에서 모은 자료를 정리에서
이곳 한국에서도 올려볼까합니다.
▼ 1982년 9월 12일, 사이마타 태생.
주니치 선발투수인 나카타 켄이치와 동급생이며
초등학교 2학년때 언덕 파이터스에서 연식야구를 시작한 이래
투수로서 중3때 현대회 8강 진입.
▼1999년 17세
카스카베 공영고교 2학년 여름.
사이마타 대회 준준결승에서 명망학원에 사요나나 패배.
▼2000년 고3
스카우터들이 가득 찬 가운데 147Km/h
관통지방의 가장 유망한 투수 3명이 베일을 벗은 대회에서
직구만으로 7탈삼진 5이닝 1안타 무실점 기록.
오릭스의 와타나베 스카우터
"던지는 모습은 물론,치고 달리기에도 뛰어난 우수한 운동 능력을 느낍니다."
입학당시에는 182cm의 장신이었으나 체중은 60kg으로 날씬했다.
혼다감독은 소질을 간파해 직구만으로 삼진을 잡을 수 있는 투수를 목표
전시합 나카자토의 선발을 공언한다.
본인이 말하는 목표는 세이부의 마쓰자카!
▼지역대회에서 퍼펙트게임 달성.
우천콜드게임이긴하였으나 그 내용은
5이닝 15탈삼진. 즉,전원탈삼진 퍼펙트게임이었다.
▼카스카베 고교를 상대로 나카자토 13k 첫완투로 8강진입.
23이닝동안 38탈삼진을 거두며 삼진머신의 별명.
그 후 결승에서 라이벌 사카모토 미타로와 대결에서
연장의 끝 2-1의 사요나라 패배로 졌다.
즉,갑자원 경험이 없다.
▼갑자원기록도 없는 나카자토 아츠시.
그러나 드래프트 1위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다.
4위가 오카모토 신야였으며,
결승에서 맞붙어서 승리를 거우었던 사카모토 마타로는
오히려 드래프트 4위로 야쿠르트에 입단했다.
당시 스카우팅 리포터에는 140Km/h후반의 다소 떠오르는 느낌이 있는 회전이 좋은구를 던진다.
전신의 유연성이 매우 훌륭하며 내외각뿐만아니라 높낮이도 조절할 수 있는 제구력을 가지고 있다.
단점으로는 구종이 단조롭다는점이 있다.
▼2001년 19세 Rookie year
호시노 센이치 감독
"첫인상을 기억하고있습니다.선명하고 강렬했기때문에.
직구가 비명소리를 지르고있었는데 입단한진 얼마 안된 고교생이라는 말에 두번 놀랬습니다."
2군에서 7승1패 방어율 2.90으로 프레쉬 올스타에 출장.
▼1군 첫등판은 9월 16일 나고야톰 19세.
자이언츠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5이닝 3실점.
숫자로는 대단한 데뷔도 아니면서 151Km/h를 마크하여
팬들에게 쾌속의 오른팔이라는 병명을 얻음.
당대 최고였던 마쓰이 히데키와 다카하시 요스노부를 삼진처리.
마쓰이에게 "고졸루키의 공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특히 다카하시 요시노부는 나카자토를 정말로 높게 평가한거같다.
현재 LA다저스에서 에이스역할을 하고있는 구로다의 직구에 대한 평가로
"지금까지 본 투수 가운데 2번째군요.나카자토라고하는 투수가 있을테니까"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 후지카와,크룬 등을 상대해 봤지만 가장 대단한 직구를 던진 투수는 나카자토였다"
승부한지 5년이 지난뒤의 평가라는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얼마나 임팩트있던 신인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다음경기까지 타격에서 4타수 3안타 3타점을 기록하여 야수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고졸루키 "투수" 가 이렇게 뛰어난 타격을 보인적은 없었다고한다.
다소 립서비스이지만 사사키 쿄오스케 긴데스 감독이 말하길
"나카자토의 야수로서의 소질은 후쿠도메 이상"
이 때문에 이후 부상때 타자 전향의 권유가 여러찰례 있었다고 한다.
▼2002년 봄 오키나와 캠프
숙소2층에서 미팅 후 1층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팔이 후방으로 비틀어지는 형태의 완전탈구.
또 다른 에이스후보인 아사쿠라도 화장실에서 손을 다쳤었으므로
고졸루키를 사기한 2군선수가 저지른짓이라는
루머도 있었지만 확실치는 않다.
관계자에 따르면 나카자토는 눈물을 흘리면서
" 어깨가 아픕니다"라고 보고하러 왔다고 한다.
그런 사고는 일반인이라도 일어나기 매우 힘든데
프로야구 선수의 그것도 투수의 오른팔에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나고야로 돌아와 정밀검사의 결과 '오른쪽 견관절입술 및 관절포의 손상'으로
전치 3개월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스포츠월간지의 한 기자가 조사한바로는
3개월은 커녕 선수생활이 끝날지경이었다고 한다.
가와카미 켄신 - 아사쿠라 켄타 - 나카자토 아츠시라는 청사진을 꿈꾸며
나카자토를 거물로 키우려던 호시노 감독은 절망했으나
포기하지않고 무기한의 재활기간을 보장한다.
▼7월 1일 캐치볼 재개.거리는...5미터.
프로2년차로 개막을 1군을 손에 넣은 사카모토 미타로는 질문을 받았다
"1군으로서 대전해보고싶은 선수는?"
모두들 마쓰이 혹은 기요하라를 예상하던 가운데 사카모토는 단언했다.
"나카자토 입니다.지금은 부상중이지만요.
나카자토는 고등학교때부터 의식하고있습니다.정말로 좋은 투수니까
그 시합 ,2루로부터 결승의 홈을 밟은것은 저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야구 인생에서 제일의 추억입니다."
▼2003년 21세 가을.또 다시 탈구.
4월20일 불펜으로 서서던져 30구 그러나 허리에 위화감.
7월 8일 불펜으로 서서던져 30구.
▼시즌종료.오치아이 신감독취임에 등번호 70번으로 격하.
연봉 또한 최저연봉인 500만에서 100만많은 600만엔으로 체결.
▼11월 19일 다시 어깨에 위화감.
21일 MRI결과 견관절혈종이라는 진단.
12월에 겨우 재활훈련에 다시 복귀.
▼2004년 22세 1월...결국 수술.
수술이후 시험삼아 불펜에서 공을 던지려했으나
공은 2미터채 나가지않았다.
한편 오치아이가 이끄는 주니치는 6월에 이미 리그우승을 확정지었다.
▼11월1일 오키나와에서 축계캠프
모리시게 코치 이 캠프에서 그만한 각오를 보고 싶다. 안되면 그만두길 바란다."
나ㅏ자토는 던질 수 있다는것을 보이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대답했다.
이날 서서 30구 거리는 최후에 70m였다.
▼11월6일 실전피칭연습
그리고 100만엔 다운된 500만엔에 계약
이는 전선수 중 최저액수이다.
나카자토日
"어쩔 수 없습니다.야구를 하고 있지 안습니까.
어떤 조건이라도 싸인하려고 처음부터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3년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최후라고 다짐하고있습니다.
우선은 시합하러 나올 수 있도록 그 다음은 1군에
하나씩 이루어가며,내년은 완전 부활을 목표로 합니다.
냐년 던질 수 없으면 그만둘 생각으로 노력하고 싶습니다.
내년중에는 등판하지 않으면 해고 당할테니까."
▼11월 11일 369일, 약 1년만에 불펜에서 셋포지션으로 실전피칭 20구.
"무서움이나 불안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그렇지만 밸런스좋게 던질 수 있었고 느낌은 좋았다."
▼2005년 23세 부상의 오키나와캠프로부터 3년
3월24일 나고야구장에 돌아와 서서던지기 70구
5월29일 배팅볼피칭.타자를 상대로 던지는것은 3년8개월만이었다.
"겨우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가볍게 던져도 느낌은 좋았습니다.여기서부터군요."
▼6월 4일 배팅볼피칭으로 100구
"전회에 비해 이번에는 여유가 있었습니다.코스도 생각해가며 확실하게 던질 수 있었습니다."
▼8월 일 주니치스포츠방송에서 실전복귀전망.
13일에는 컷패스트볼과 포크볼을 섞어 전력투구.
"부상정의 이미지에 가깝게되었습니다."
▼8월 21일 실전복귀 20구 갑자기 148Km/h
나고야구장 대히로시마전에서 선발로 등판.
2군경기이긴 하지만 루키이어의 한신전이래 4년, 1428일만이었다.
"생각했던거보다 좋았습니다.어깨의 상태는 좋습니다. 지금은 아픔도 위화감도 없습니다.
여러사람들의 도움 때문입니다.감사하고싶습니다.(나카자토의 모자에는 감사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변화구는 컷패스트볼과 포크를 던졌습니다만 컷패스트볼이 전혀 구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실전을 통해 게임에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라면을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되어 기쁘다(?)라는
가슴아픈말을 남겼다.
오치아이 감독 日
"오늘 좋은 것을 보았다.나카자토의 직구는 다르다.확실해.
내년 셋업맨 역할을 빈틈없이 해주었으면 한다."
이 날의 등판이래 모자에는 "감사"라는 두 글자가 쓰여져있다.
이는 부상중에 치료나 재활훈련으로 도움을 주었던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자신을 버리지않았던 구단,계속 응원해 준 팬에게의 감사의 기분을
마운드상에서도 잊지않기 위함이다.
큰 부상 후 웨스턴 리그의 시합에서 처음으로 던졌을때는
의사와 간호사도 스탠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8월30일 실전복귀 제2전 150Km/h
9월13일이 있었던 2ㅔ3자ㅏㄴ에서도 149를 마크
두 경기 모두 20구 던졌다.
23일 실전복귀 제4전.3이닝 53구.
▼10월 1일 4년만의 1군 부활!
나고야돔 대히로시마전에서 6회 1이닝 17구를 던져 승리투수.
최고속도는 148Km/h였다.
<경기를 지켜본 한국의 주니치팬>
05시즌 이와세가 사사키의 45세이브를 갱신했던 10월1일 히로시마전...
당시 중계를 보면서 저에게는 이와세의 기록보다
더 기대를 했던 일이 갑자기 벌어졌습니다
한투수가 6회초에 등판을 했습니다.
1이닝 2탈삼진...17개의 투구를 한 그...
이와세의 신기록에 가려진 주니치에게 10월1일 가장 감격적인 투구내용이었습니다.
야쿠르트전에 등판하여 최고구속은 152Km/h를 기록.
7일 시즌 최종전에서도 3이닝 59구를 던졌으나
타무라(wbc에서 구대성에게 홈런을 친...)에게 투런홈런을 맞았다.
나카자토의 시합후에는 사인을 받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어이없게도 주니치 선수들 중 가장 긴 줄을 자랑한다.
그 이유는 사인을 원하는 모든 팬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기 때문인데,
정말로 괴로운때가 있었으니 팬의 소중함을 알고있기 때문일것이다.
▼2006년 24세
1군을 기대하였으나 영화와 같이 가지는 않는다.
개막을 2군으로 맞이한채로,2군에서 등판도 4월8일로 끊김.
아무래도 또 어깨와 팔꿈치가 부상기색이었던 것 같다.
▼7월 3개월만에 던져 호투위에 8월 3일 1군 승격.
등번호를 에이스의 번호인 18번으로 고쳐달았다.
▼올해의 하이라이트인다.
일본시리즈 로스터에 올라가 매우 좋은공을 던졌으나,
절대 안맞아야할 거의 원바운드공이 맞아 이나바에게 3점홈런을 허용했다.
은퇴를 선언한 신죠를 상대로 삼구삼진을 잡아내며 겨우 매스컴을 탔다.
리그가 끝난뒤 도미니카 원터리그로 파견되었으나 등판은 없었다.
▼주니치 투수진 전체가 참가한 400미터 달리기에서 베스트랩은55초로
2위인 나카타를 2초차로 제치고 1위.정말 소재적으로는 뛰어난 남자다.
▼2007년 25세 금년도 2군스타트.
5월 29일에는 최장이닝인 8이닝을 던져 6안타 6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6월 23일 7년만의 첫 완봉
미체험의 9회에서 최고구속인 148Km/h를 기록했다.
9이닝 3피안타 6탈삼진 완봉이니 당연히 무실점
상대는 2007년 신인왕 다나카 다이스케였다.
▼7월21일 그라운드외에서 두번째 부상
밸런스볼을 통한 운동중 미끄러져 왼팔의 팔꿈치를 다쳤다.
오른팔이 아닌것이 다행이었으나 역시나 수술대에 오르며 3개월동안 쉬게되었다.
▼10월15일 선발에 다시 복귀.왼쪽팔꿈치였던것이 다행이었다.
6이닝 3실점으로 무난한 피칭.
6일뒤인 21일에도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으로 팬들의 걱정을 씻어냈다.
그리고 시즌종료.
▼2008년 3월 2일
셋업맨으로 보직을 굳힌 나카자토.
비슷한 라이프기록을 가진 후지카와가 활약하기 시작한 나이가 되었다.
팀청백전에 등판하여 테이블세터진이 낀 세타자를 8구로 삼자범퇴.
구종은 모두 스트레이트 즉,직구였다.
▼3월 4일 세이부 오픈전 등판.
2이닝간 22구 2피안타 1탈삼진.
셋업맨으로 보직을 변경한뒤로는 한적이 없는 와인드업으로 던졌다.
▼3월 11일 세이부 오픈전 등판.
1이닝 13구 1피안타 MAX는 145로 몸상태가 올라왔다.
특히 떠오르는 느낌이 강해서 모두 플라이아웃으로 처리.
이어서 12일에 연투하여 3타자를 공6개로 처리. 역시 플라이볼이었다.
▼3월19일 자이언츠 오프전 등판.
8회 2아웃에서 대타 시미즈를 맞아 공4개를 던져 땅볼아웃시켰다.
▼3월 22일 야쿠르트와의 오프전에 등판하여
2/3이닝을 공 10개로 처리.볼넷이 하나있는것이 흠이었다.
그리고 23일에도 연투하여 역시 2/3이닝 무실점으로 마지막 오픈전을 마쳤다.
그리고 생애처음으로 개막1군 로스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
나카자토는 2008시즌의 시작을 나고야돔에서 맞게되었다.
<나카자토에 대한 말말말>
주니치 다니시게 - 처음 공을 받을때 직구라는것을 알고있는데도 공을 빠뜨렸다.
지금까지 받은 누구와도 다르다 .
광장한 스핀이 걸린 볼이었다.
히로시마 아라이 - 공이 광장히 좋다. 공이 떠오르는듯한 느낌도 있다 .매우 좋은 투수이다.
히로시마 쿠리하라 - 공이 떠오른다. 전부 스트레이트였지만 모두 타이밍으 늦어 헛스윙해버렸다.
주니치 후쿠도메 - 작년에 나도 골절하여 아츠시와 함께 2군에 있었다.
당시에는 달리는 모습만을 보았는데 오늘은 마운드를 지키고있어 즐어웠다.
히로시마 타격코치 우치타 - 공이 생각하는것보다 위로 온다. 부상이후지만 그 이전의 공을 되찾은 것 같다.
야구인 미야타 - 공의 출처가 보기 어렵기때문에 실제구속보다 8-10킬로 빨라보이는 투구폼이군요.
야구인 사사키 - 다른 투수는 10의 힘으로 10의 구가 나가지만, 나카자토는 8의 힘으로 던져 12의 구가 간다.
전 주니치 감독 호시노 센이치 - 아츠시가 부상을 입지않았으면 로테이션의 기둥으로서 10년은 평안무시했을것이다.
한신 미야케 - 틀림없이 일급폼이다. 나카타도 좋지만 또 다르다.옛날이라면...우에하라,사와자키 그들에 필적 혹은 능가하는 스트레이트를 던지는군.
한신 아카호시 - (프레시 올스타에서 나카자토 등판시 센터수비)
대단해! 공이 떠올라 !
(정말로 인상이 깊었는지 후에도 몇번이고 이야기를 꺼냈다)
산큐 - 나카자토는 이상적인 투구폼. 피로가 모이기 어렵다.한신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카자토는 부상이 없다면 후지카와보다 한 랭크위를 가는 투수
히로시마 타마키 - 나카자토는 다른 투수들과 전혀 다르다.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거의 없다.후지카와같이 될 수 있다.
한신 이이다 - 구질은 후지카와가 가진것의 전부 . 야구소년같이 된다.
요미우리 니시야마 - 그렇게 떠오르는볼은 지금의 야구계에서 후지카와와
나카자토만.
스기시타 시게루 - 불펜으로 본 투구는 압권이었다. 처음은 바로 뒤에서 보고 있었지만 종속은 어떨까 타석에 서보았는데 솔직히말해 무서웠다.
신음소리를 내는 구가 이성을 잃을정도여ㅆ지만 제구도 훌륭했다.
많은 프로투수들을 봐왔던 나였지만 이것이 프로의구라고 감탄했을정도였다
http://blog.naver.com/lonkth?Redirect=Log&logNo=110033993265
감동적입니다 이사연을 알고나서부터 나카자토 각성시키는중 ㅠㅠ
첫댓글 다 읽었다 ㅋ 흥미로운 선수야 닮고싶지는 않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