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헌 ․ 신희지의 종횡무진 동양철학③
동양철학은 사주 풍수 한의학으로 발전하다!
사주나 풍수를 알고픈 것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누군들 불행하고 아프고 싶겠는가! 사는 게 어차피 고행이라고는 하지만 이왕 마실 잔 좀 덜 쓰고 덜 맵게 마시고픈, 맞더라도 살살 맞고픈 마음을 어찌 욕심이라고만 또 하겠는가! 그러니 어쨌든 배우고 익히고 좀 더 알고 견디고 마음을 편히 먹고 그러는 데에 힘을 쏟을 일이다.
우선 우리 사는 모양의 큰 축인 사주는 천시에서 시작된다. 이건 타이밍을 잘 맞춰서 일을 풀고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놓을 때 놓고 잡을 때 잡고 갈 때 가고 스톱할 때 스톱하는 고스톱을 결정 하는 것, 그래서 사주가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가 봄철인가 알면 그 때 기운을 써야한다. 겨울인데 용을 쓰면 기운만 뺏긴다.
풍수는 공간의 문제다. 이곳의 기운을 가져가느냐 저곳의 기운을 가져가느냐 이다. 요즘은 다들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로 치면 3층까지가 땅의 기운을 받는다. 그 위로는 땅의 기운을 받기가 쉽지 않다. 땅의 기운을 받으려고 돌침대도 가져다 놓고 몸에 좋다고 황토 흙침대도 깔고 잔다. 이렇게 해서라도 인간은 땅의 기운을 받는 것이 좋다.
풍수에는 두 가지 기운이 존재한다. 음택과 양택이다. 음택은 묘지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온라인으로 통신을 해서 죽은 자의 좋은 기운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양택은 산사람이 사는 곳이니 집을 짓는 자리이다. 양택에는 승생기(乘生氣)가 있어야 한다. 즉 생기를 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나 같은 사람 눈에도 간혹 집 자리를 잘 못 잡는 경우를 더러 본다. 특히 귀농이나 귀촌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전망만 보고 집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은데 본시 집 자리는 사계절을 두루 보아야하지만 그럴 수 없다 치더라도 계곡이 가까워서 혹시 물이 범람하지 않을지, 아니면 너무 높은 곳이어서 사방으로 바라보기는 좋을지 모르나 바람이 너무 거세게 치지 않을지, 가장 중요한 물이 모자라지 않을지, 적어도 사계절 내내 하루 반나절은 해가 잘 들어오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오래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은 이러한 검증을 끝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마을이 들어선 곳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특히 물이 많이 고이는 논이나 마당에 이끼가 끼는 곳은 주의를 해야 한다. 물은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수맥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수맥은 인체의 리듬을 교란시켜 흐트러뜨린다. 수맥이 흐르는 곳에서 잠을 자면 피곤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몸은 식도를 거쳐 위로 가서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거치는 에스(S)자 형상을 가지고 있으나 물은 일직선으로 흐른다. 사람의 기운을 훼방시키는 것이다.
또 돌은 기가 쎄다. 특히나 화강암의 기운은 매우 강한데 대부분 우리 국토의 암석은 화강암이다. 그래서 마당에 큰 돌을 지니고 있는 경우,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 기운이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풍수 천국이다. 산이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여기 봐도 산, 저기 봐도 산! 산이 있으니 계곡이 있고 물이 있고 바위가 있고 아주 입체적이다.
얼마 전 없는 살림에 아들이 공부하는 곳을 보고 싶어 미국을 다녀왔는데 달라스에서 LA까지 한 1,700Km나 운전을 했다. 돌아다닌 것까지 합치면 왕복 3,700Km를 달렸는데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을 보면서 평평한 평야가 부럽기보다 참 히마리가 없는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보면 우리나라의 지형은 기운이 많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운도 강한지 모른다. 이 강한 기운은 잘 쓰면 약이 되고 잘 못 쓰면 독이 된다.
동양철학의 핵심은 건강함에 있다. 건강해야 평화스럽고 건강해야 행복하다. 사주는 마음의 기운을, 풍수는 몸의 기운을 주관한다. 그런데 이 마음과 몸이 또 별개인가? 몸은 보이는 마음이고 마음은 보이지 않는 몸이다. 즉 마음의 상태를 몸이 보여준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불안하면 몸에 탈이 난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우리가 직접 볼 수는 없으나 몸을 통해 나타난다.
동양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왔다.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뜻이 높고 엄숙한 사상에 머무르기보다 보다 실용적으로 발전해 왔다. 늘 모든 문제의식을 나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인 것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 세 가지 실용철학을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면 이 세 가지는 조선시대 때 중인의 신분을 지닌 이들이 응시를 하는 잡과에 속했다. 사주는 명리학으로 궁중의 택일이나 합궁 등의 일을 보았고 풍수는 지관이라 하여 묘 자리나 왕족의 태를 묻는 태실을 정하기도 했다. 한의학은 잘 아는 것처럼 의원이 되기도 하고 어의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 세 가지 중에 품계는 비록 높지 않으나 제일 짭짭하고 실속 있는 것이 한의학이다. 어의는 정년퇴직을 하면 한의원을 개업하니 임금이나 왕족을 진료하고 나왔다면 현재도 마찬가지로 한 수 쳐주는 것이다. 풍수는 왕실전용지관이라 하여 국지사로 칭하여 대접을 했다. 그런데 명리학은 어떠했겠는가? 왕자의 사주를 알고 혹시 안 좋다면 그것을 정적에게 알릴 수도 있으니 그러면 역적모의에 가담할 수도 있고 참 골치 아픈 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운이 잘 못 걸려 역술인이 되면 세 가지 중에는 가장 팔자가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와 같은 이야기 중에 내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 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관한 일화다. 공공연히 떠도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해보자면 1970년 그맘때 역술인으로 지리산 박도사가 유명하였나보다. 유신을 앞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을 발표하기 전에 어찌 될까 물으려고 박도사에게 사람을 보냈다. 당시 박도사는 사실을 말하면 자기가 죽을 것 같으니 하셔도 좋다고 말하고는 담뱃갑에 무심히 저승 유(幽)를 섰다고 한다. 아뿔싸! 하필 그 담뱃갑을 보고 말았으니! 예나 지금이나 점쟁이 지 죽을 날짜 모른다지만 세상의 이치를 알고 사는 일이 편한 자리는 결코 아니지 않나 싶다. 그러니 그것을 아는 팔자보다 우리처럼 그것을 알고 자신을 정비하는 팔자가 더 좋은 것이다.
풍수는 우리가 하나하나 앞으로 짚어갈 일이니 그쯤하고 한의학은 이와 달리 동의보감만 해도 사대부가 꼭 읽어야 하는 교양서였다. 양반가에는 집집마다 약장이 있어 어지간한 처방은 스스로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때 유생이 잘못을 하여 유배를 가면 다른 건 못 가져가게 해도 약장은 가지고 가게 했다하니 우리 집안도 그 옛날 양반 끄트머리여서 출세를 하지 못해 고조부 때 약방을 차렸다고 하는데 우리 집 약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 집 약장처럼 동양철학도 근간에 와서는 사라져 버린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론으로 알기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영혼이다. 집 자리나 앞으로의 일은 사람의 촉보다 더 정확한 것이 없다. 촉이란 무엇인가? 바로 느낌이다. 이 촉을 알려면 고요하고 맑아야 한다. 정갈하고 절도 있게 살면 이 촉이 예민해진다. 그러면 자신의 불행도 미리 감지할 수 있어 조심하게 된다.
집 자리를 보러 가면 자신의 느낌이 있다. 단순하게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과학적인 통계 수치만을 계산할 게 아니라 촉을 세워봐야 한다. 느낌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은 꿈자리가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보통 꿈은 여자들이 많이 꾼다. 사업을 하거나 큰일을 하는 사람은 부인을 잘 둬야 한다. 부인의 촉을 믿고 일을 하면 그르치지 않을 수 있다. 안사람의 촉이 바로 서려면 맑아야 하니 바깥사람은 안사람의 성정 흐리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자신 스스로 경락을 열어 세상사는 기운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경락은 또 무엇인가? 경락은 기가 다니는 길이다. 사람의 몸에는 세 개의 길이 있다. 피가 다니는 길과 순환을 돕는 림프액이 다니는 길, 기(氣)가 다니는 길, 그래서 세 갈래 길이다.
조용헌 선생도 20대 때 도사가 되는 꿈을 꾸면서 산에 사는 친구들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도사들은 대부분 산에 있으니 당연하다. 산에서 두세 명의 도사들을 만나면서 단전호흡을 따라 익혀보니 몸에서 기가 열리더란다. 하지만 풍수에 의해서도 그렇고 스스로의 사주에 의해서도 그렇고 어느 날 모친에게 말했다던 점쟁이 말인 즉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세 개의 철필을 들고 태어났으니 그것이 닳을 때까지 글을 써야 할 팔자’ 라고 했다던가! 조 선생은 자신이 그래서 도사가 되기보다 글을 쓰며 사나보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러면 우리 세상사는 기운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하여 동양철학을 모르는 내가 종횡무진 돌진하여 알아보려는 것이다.
사설 조용헌 글 사진 신희지
첫댓글 잼나게 자~~알.읽었습니다
현준에게는 이런류의 철학 다가오지잉~ ^^
동양철학하면 어려울줄 알았는데 참 재미있네요~~
귀가 솔깃한 부분도 많고~~^^
돌 물...^^
조용헌 선생님의 글을 읽었지만~이렇게 풀어써주시니 특히 귀농 귀촌에관한부분이 명쾌하게 와닿네요~얼마전 강원도에 귀농하신분들인데 전망은 탁트였는데 여름인데도 바람이 장난아닌 걸 보니 섣부른 우려가 생기더군요~겨울엔 어찌사나~내가 살것도 아닌데 말이죠~추운건 질색이라 그런생각을했던건가싶었더니 꼭 그런것만은 아닌듯하네요~^^
네 그렇지요.
바람은 영혼을 맑게하지만
너무 많이 맞으면 말그대로 풍이 들고
자꾸 집을 비우게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도 하물며 하안거 동안거를
로 기간을 정해 하는데
쉽지 않지요.
철학이라면 어렵다는 생각이 앞서는데
이렇게 알기쉽게 해석해주니 재미 있네요
공부를 해도 재미 있을것 같아요
선생님
반가워요.
잘지내시죠?
조만간 조선생 강의판 열께요.^^
언제든 와주실텐데
제가 좋은판을 못만들어서^^
동양철학은 철학이라는 어원 보다 우리 생활 속의 묵시적 룰이나
습득된 행동양식 속에 많이 들어 있는듯 하더라구요.
저도 젊은날 체험 하려 애쓰다 해석 않되어 놓고 고민 한적 있었는데
나이 들어 다시 찾아 읽으면서 사유와 체험을 접목 하니 이해가 되는거 같더라구요.
이제는 많이 정리가 됩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놈이 가까이 있으면 에너지 기 업되어지는거 느끼겠구요.
근데 풍수는 아직 먼이야기예요....
유익하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