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의 필요성#
가. 개 설
보전처분은 소송에 의하여 권리의 존부가 확정되기 전에 그 집행을 보전하여 주고자 하는 제도이므로 채무자에게는 큰 불편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보전처분은 채무자에게 그와 같은 불편을 감수시키더라도 집행을 보전하기 위하여 미리 보전처분을 하여야 함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가 아니면 함부로 발령해서는 안 된다.
나. 각종 보전처분에 있어서의 보전의 필요성
(1) 가압류
가압류의 보전의 필요성은 가압류를 하지 아니하면 판결 그 밖의 집행 권원을 집행할 수 없거나 집행하는 것이 매우 곤란할 염려가 있을 경우에 인정된다. 민사집행법 277조는 집행 불능 내지 곤란하게 되는 것을 ‘판결’로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예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판결 이외엔 민낙조서, 화해조서와 같은 집행권원에 의한 강제집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집행할 수 없거나 집행하는 것이 매우 곤란할 염려가 있을 때란, 채권자가 가압류를 하지 않고 채무자의재산을 그대로 놓아두면 장래 금전채권에 기하여 본안판결에서 승소하더라도 그 집행이 불능으로 돌아가거나 집행이 매우 곤란할 염려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책임재산의 낭비, 훼손, 포기, 은닉, 염가매매 또는 채무자의 도망, 주거부정, 빈번한 이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유는 채무자에게 있음을 요하고, 채무자의 보증인 또는 연대채무자에게 있는 것만으로는 보전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 또한, 위 사유는 제3자의 행위 혹은 불가항력에 의하여 발생된 것인지 채무자의 고의 ・ 과실에 의해 생긴 것인지를 불문한다. 보전의 필요성은 채무자의 신분, 직업, 자산상태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채권자의 금전채권에 관하여 충분한 물적 담보가 설정되어 있거나 (대판 1967.12.29. 67다2289) 채무자에게 재산이 충분히 있음이 소명된 경우에는 가압류의 필요성이 부인된다. 또한 채무를 불이행한다든가 소송을 일부러 지연시키는 때에도 단지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집행재산에 변동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므로 가압류의 필요성은 부인된다. 구 민사소송법에서는 외국에서 판결의 집행을 할 경우를 절대적 가압류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오늘날 국제적인 인적 ․ 물적 이동이 빈번하여지고 세계 각지에서 거래 활동을 하면서 재산을 보유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에 비추어 국내에 있는 일부의 재산에 대하여 어떤 채무에 의해서든지 다른 사유의 심사 없이 가압류할 필요성이 당연히 인정된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개정법은 이러한 절대적 가압류 사유를 삭제하여 이러한 경우에도 가압류 법원이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서 심사하도록 하였다.
(2) 다툼의 대상 (계쟁물) 에 관한 가처분
다툼의 대상에 관한 가처분은 현상이 바뀌면 당사자가 권리를 실행하지 못하거나 이를 실행하는 것이 매우 곤란할 염려가 있을 경우에 허용된다. (민집 300조 1항)
(가) 다툼의 대상에 관한 현상의 변경
현상의 변경은 보전할 청구권의 목적물을 훼손하는 것 (객관적 변경), 이전하거나 양도하는 것 (주관적 변경) 등에 의하여 생긴다. 이 현상의 변경은 장래에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와 이미 그 염려가 발생하고 있는 경우를 포함하는데 어느 경우나 그러한 위험이 현재 존속하고 있어야 한다. 현상의 변경은 다툼의 대상에 관하여 생겨야 하므로 채무자의 일반재산상태가 좋지 않다든가, 자력이 감소한다든가, 채무자의 다른 재산으로부터 만족을 받을 수 있다든가 하는 등의 사유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나) 권리실행의 불능 또는 현저한 곤란
권리의 실행이라 함은 청구권의 강제실현, 즉 청구권에 기한 강제집행을 말한다. 권리실행의 불능은 채무자 그 밖의 사람이 강제집행의 목적물을 멸실 ․ 훼손 ․ 양도하는 경우와 같이 집행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또 매우 곤란하다는 것은 불능으로는 볼 수 없으나 그 달성에 중대한 장애가 있는 것을 말한다.
(다) 구체적인 예
타인의 토지를 그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계속 점유경작하고 있는 이상 출입금지가처분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대판 1965.5.25. 65다404, 대판 1968.5.14. 67다2777), 토지의 처분행위를 금하는 가처분이 인정된다면 그 토지에 공작물설치와 수목벌채 등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도 보전의 필요가 있고 또 그 소명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며 (대판 1969.6.24. 68다2100), 피 신청인이 신청인과의 동업계약을 부인하고 단독으로 동업재산인 고사목 (枯死木) 을 벌채한다면 이를 금지시킬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할 것이고, 불법점유라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밟아 그 목적물을 인도할 때까지는 그 점유의 방해예방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가처분 채권자의 점유가 불법점유라고 하여도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할 것은 아니다. (대판 1967.4.4. 66디2641 등) 반면에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한 가처분신청으로서 목적부동산에 대한 환지촉탁등기가 이루어지면 신청인이 승소하더라도 판결집행이 곤란하게 된다는 이유로 ‘환지촉탁등기보류’의 가처분을 신청함에 대하여 현행 부동산등기법상 환지촉탁등기를 하더라도 신청인이 우려하는 것과 같은 위험성이 없다 하여 가처분의 필요성을 부인한 판례가 있다. (대결 1967.3.7. 66미1175)
(3)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
민사집행법 300조 2항은 이 가처분의 필요성에 관하여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하여, 가압류나 다툼의 대상에 관한 가처분과 달리 이가처분은 현재의 위험방지가 주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이 가처분의 보전의 필요성에 관한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라는 사유는 단순한 예시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예시적 사유 외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 라고 하는 일반조항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가처분의 필요성은 법원의 재량적 판단에 맡겨질 문제이다. 그러나 이 가처분은 본안판결 전에 채권자에게 만족을 주는 경우도 있는 것이어서 채무자의 고통 또한 크다고 할 것이므로 그 필요성의 인정은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고, 그 심리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변론기일 또는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열어야 한다. (민집 304조)
실무상으로는 가압류나 다툼의 대상에 관한 가처분에서는 채무불이행 그 밖의 필요성을 엿볼 수 있는 소명이 있으면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보전처분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데 반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에 있어서는 반대로 그 필요성을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의 소명이 없는 한 가처분신청을 배척하는 예가 많다. (대결 1997.1.10. 95마837참조)
특히 만족적 가처분에 있어서는 보다 고도의 보전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판례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이 필요한지 여부는 당해 가처분 신청의 인용 여부에 따른 당사자 쌍방의 이해득실관계, 본안소송에 있어서의 장래의 승패의 예상, 그 밖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합목적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며, 단체의 대표자 선임 결의의 하자를 원인으로 직무집행을 정지하는 가처분에 있어서는, 장차 신청인이 본안소송에서 승소하여 적법한 선임 결의가 다시 행하여질 경우에 피 신청인이 다시 대표자로 선임될 개연성은 없는지의 여부도 참작하여야 한다고 한다. (대결 1997.10.14. 97마1473) 또한 판례는 특허권 또는 실용신안권 침해금지가처분 사건에서, 가처분채권자가 신청당시에는 실체법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가까운 장래에 본안소송에서 채권자가 패소하여 특허권 등이 무효로 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보전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한다. (대판 1993.2.12. 92다40563, 대결 1994.11.10. 93마2022)
현저한 손해는 본안판결의 확정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불이익 또는 고통을 말하고, 이는 직접 및 간접의 재산적 손해뿐만 아니라 명예, 신용 그 밖의 정신적인 손해와 공익적인 손해를 포함한다. (대결 1967.7.4. 67마424) 정신적 손해에 관하여는 사립학교 교수의 파면처분효력정지 가처분, 사립학교 학생의 퇴학처분무효의 가처분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손해가 현저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가처분에 의하여 채무자가 입는 손해 내지 불이익에 비하여 채권자가 얻는 이익이 현저하게 클 것을 요한다. 실무상 현저한 손해의 측면에서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예로는 교통사고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본안으로 하여 가해자에 대하여 자력이 없는 피해자의 치료비, 생활비 등의 지급을 구하는 가처분, 종업원의 해고무효를 전제로 하는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가처분, 특허권 ․ 실용신안권 등 지적재산권의 침해방지를 구하는 가처분 등이 있다. 이에 대하여 비교적 보전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경향이 있는 예로는 임차인에 대하여 차임의 지급을 구하는 가처분, 매매대금의 지급 또는 대여금의 반환을 구하는 가처분 등을 들 수 있다.
급박한 위험은 현재의 권리관계를 곤란하게 하거나 무익하게 할 정도의 강박 ․ 폭행을 말하며, 이는 현저한 손해를 생기게 하는 전형적인 예라고 봄이 상당하다. 급박한 위험의 예로는 명예를 훼손하는 인쇄물의 배포, 수리권을 방해하는 제방의 축조, 점유침탈행위 등을 들 수 있다. 판례는 토지의 소유자가 충분한 예방공사를 하지 아니한 채 건물의 건축을 위한 심굴굴착공사를 함으로써 인접대지의 일부 침하와 건물 균열 등의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공사의 대부분이 지상건물의 축조이어서 더 이상의 심굴굴착공사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여 지고 침하와 균열이 더 이상 확대된다고 볼 사정이 없다면 토지심굴굴착금지 청구권과 소유물방해예방 또는 방해제거 청구권에 기한 공사 중지가처분을 허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한다. (대판 1981.3.10. 80다2832 등)
‘그 밖의 필요한 이유’는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는 것에 준하는 정도의 이유를 말한다. (대결 1967.7.4. 67마424)
다. 보전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경우
어떠한 경우에 보전처분의 필요성이 없어서 보전처분신청을 배척하거나 보전처분을 취소하여야 하는가?
(1) 채권자가 이미 보전처분에 의한 보호 이상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 예를 들면 채권자가 피 보전권리에 관하여 이미 확정판결이나 그 밖의 집행권원 (조정, 화해 등의 조서 또는 집행증서)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즉시 집행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보전의 필요성이 없다. 그러나 이를 바로 집행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때, 예컨대 집행할 채권이 기한부 ․ 조건부채권이거나 청구이의의 소가 제기되어 집행 정지된 경우에는 보전처분을 발할 여지가 있다 할 것이다.
또한 충분한 담보를 확보하고 있거나 집행권원 없이도 권리행사를 할 수 있을 때에는 그 보전의 필요성이 부정된다. 예컨대 선박우선특권이 있는 채권자는 선박소유자의 변동에 관계없이 그 선박에 대하여 집행권원 없이도 경매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는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그 선박에 대한 가압류를 하여 둘 필요가 없다. (대판 1988.11.22.87다카1671 등) 그러나, 우선권이 보장된 임금채권 (근로기준법 37조)은 사용자의 총재산에 대하여 우선권을 가질 뿐 임금채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선박우선특권과는 달리 집행권원이 필요하므로 그 보전을 위한 가압류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2) 보전처분에 의하여 제거되어야 할 상태가 채권자에 의하여 오랫동안 방임되어 온 때에는 통상 즉시 보전처분을 구할 필요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가압류채권자가 본안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아 확정된 후 가압류채무자가 그 본안판결에 대하여 재심의 소를 제기하였으나 재심의 소를 각하한 판결이 확정되고도 5개월이 지나도록 가압류채권자가 본 집행에 착수하지 않고 있었다면 가압류는 보전의 필요성이 소멸되었다고 한다. (대판 1990.11.23. 90다카25246) 또한, 가처분채권자가 본안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그 집행채권이 정지조건부인 경우라 할지라도 그 조건이 집행채권자의 의사에 따라 즉시 이행할 수 있는 의무의 이행인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의무의 이행을 게을리 하고 집행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면 보전의 필요성은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판 2000.11.14. 2000다40773)
(3) 채권자가 스스로 보전처분을 필요로 하는 긴급 상태를 초래한 때에도 같다.
(4) 동일한 사정에 기하여 동일 내용의 보전처분을 신청하는 때에는 기판력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