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 참가 산우
동문산악회 선후배 산우 50명(13회~32회)
2. 산행 기록(후미 기준)
이화령(548m) 09:50
조봉(671m) 11:20
황학산(915m) 12:20(점심)
백화산(1,063m) 13:40
평천치(888m) 14:50
사다리재(829m) 16:10
분지리 안골마을(347m) 17:10
3. 산행 落穗
오늘 이화령을 출발한 11km쯤의 대간길(하산로 포함 13km)이 동남쪽으로 크게 휘어져 말굽형의 포물선 형태를 그리며 나아가는데 포물선의 변곡점에 백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포물선 각 호(弧)의 길이는 7km 남짓이라니 이화령에서 백화산까지 7km쯤이라는 이야기이다.
경북쪽으로 오목하게 휘어진 산길이 계속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충북 입장에서는 모처럼 만족스러운 영토 분할의 모습인 듯하다. 이전 산길에서는 대간의 서쪽 사면까지 경북땅이 되었다고 충북에서는 은근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 것이다.
세월이 찬 바람에 날리는 눈발과 함께 슬며시 흘러가는 사이 한겨울의 시작인 大雪이 지나고 冬至가 바로 내일이다.
산악회도 농촌도 한가롭게 보이지만 실상은 새해 준비로 靜中動의 바쁜 때이고 긴긴 밤에 입이 궁금해져 살이 찌기 쉬운 계절이다. 올해 동지는 음력 동짓달 초에 든 애동지이니 팥죽 대신 팥떡을 먹는 동지인가.
지도를 보니 이화령에서 백화산까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는 오늘 산길이 일단은 수월하게 보이는데 오르막 표고차가 500m쯤 되고 급경사 눈길 내리막이 제법 미끄러울 것이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에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찬다. 嚴冬雪寒인 오늘 아침의 평지 기온이 영하 8도이다.
1925년 신작로가 개설될 때 이우릿재라는 옛 이름이 무슨 이유에선가 이화령으로 바뀌었다는 이 고개가 산행 인파로 붐빈다.
계단을 오르고 동물 이동통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선다.
산길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 스틱으로 길섶의 눈을 툭툭 쳐보니 눈이 30~40cm 정도 쌓인듯하다.
이화령의 군부대 대공 초소를 통과한 산길이 편안하게 조금씩 고도를 높혀 가는데 눈길이 럿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는다.
눈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시원찮은 몸의 핑계이고 푹신한 눈길은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고 미끄러지듯 날렵하게 걷는 방법도 있을 듯하다. 시원찮은 산행은 잘 안풀리는 인생이나 바둑처럼 슬픈 드라마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감기 기운이 있는 몸에 흰 눈에 씻긴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셨다가 토해내는 느낌이 좋다.
아우들(32회 김성모 외)이 럿셀을 하겠다고 선두에 서고 북진 대간팀과도 가끔 마주치지만 눈 쌓인 산길의 사정이 계속 나아지지 않아 여의치 않다. 가파른 사다릿재 하산로에서 미리 럿셀을 하고 돼지 껍데기를 굽는다는 총무 아우(31회 길려근)도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이 산길의 전망이 좋은 곳에서 헌출하게 솟은 조령산을 보고 싶은데 아직 능선 고도가 낮은지 언뜻언뜻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지난 달 산행 시 밧줄을 잡고 허겁지겁 넘어온 산인데 능선 고도가 높아진 곳에서 보니 오늘은 뾰족한 정상부가 압도하는 시각적 형태로 솟아 올라 한낮의 햇살에 밝게 빛나고 있다. 사다리재 하산길에서 더 가까와진 모습은 귀공자처럼 더 의젓한가.
산길이 편안하여 휴식 없이 계속 걷는 사이 裸木 사이로 능선의 좌우 전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좌慶尙 우忠淸의 兩道를 굽어 보며 천천히 나아간다. 찬 바람이 불어올 때는 추운 듯하지만 완만한 오르막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작은 돌비석 하나 외롭게 서있는 조봉을 지나고 헬기장이 있는 776봉을 지난다. 이화령이 776봉 옆에 서있는 갈미봉과 조령산의 안부라 했던가.
억새밭으로 유명한 황학산 부근에 이르니 왼쪽으로 3번 국도 넘어 새재쪽 문경의 산들이 다시 나타난다. 정상부가 매부리코 모습인 주흘산이 헐벗어 황량한 느낌인데 그 동쪽으로 웅크린 산은 운달산인가. 운 좋은 곳에서는 새재 넘어 신선봉과 아스라하게 멀어져 손톱만큼 작아진 월악산 영봉이 배웅의 눈인사를 보내온다.
백화산까지 80분 남았다는 흰두뫼 이정표 밑에서 간단한 행동식으로 점심을 삼고 물 한 모금 마신다. 이 곳에서 분지리의 안말로 내려설 수 있다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눈밭에서 호호 불며 한 젓가락 먹는 라면이 제격인데 라면을 끓여주겠다던 아우(32회 간민호)는 너무 먼 곳에 있는 듯하다.
황학산의 작은 돌비석을 확인하고 조금씩 계속 고도를 높혀가는 산길을 걸어 간다. 산길의 전망이 좋아 크고 작은 산줄기들의 흐름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오고 황량한 겨울산들의 모습이 가깝게 다가온다.
산길에 樹齡이 오래 된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대부분 조림인 듯 굵지 아니한 참나무나 소나무들이 산록을 차지하고 있다. 괴산의 연풍이면 현감이 있었고 오지이기도 하여 호랑이가 출몰하던 곳이었다는데 어이해서 굵직한 老木들이 없는가.
백화산 오르막에 산행의 고비인듯 두어 군데 낭떠러지 같은 암릉이 나타난다. 쌓인 눈이 없다면 밧줄을 잡고 그런대로 수월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이지만 가파른 내리막 바위 구간에 행여 미끄러질세라 밧줄을 움켜 잡는 손에 더 힘이 들어 간다. 오르막 암릉 구간에서도 긴 줄이 생긴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최고점인 백화산 정상에 선다. 눈 덮인 봉우리의 모습이 환하게 빛나 백화산인가. 남쪽 절벽 아래 明堂터가 있다는 산인가.
밝은 햇살 쏟아지는 백화산 정상에 예전의 휘날리던 태극기는 사라졌지만 산줄기들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시원한 전망은 반갑게도 여전하다.
산길 제일 먼 곳으로 속리산 연봉이 톱날처럼 솟아 꿈틀대는 모습이 보이고 희양산이 가까와져 있다. 백화산에서 8km쯤 떨어진 희양산은 해방 후 혼탁한 불교 교단을 바로잡기 위해 救佛決死의 모임이 태동된 봉암사의 뒷산이다. 문경의 가은쪽에서 보면 암릉 구간이 많아 보이는데 대간 능선상에서는 조금 뾰죽한 모습으로만 솟아 있다. 그리운 대야산의 모습은 알아보기 어려운가.
평천치로 향해 내려빠지는 길이 미끄러워 속도가 나지않는데 군데군데 까다로운 암릉 구간이 나타나 신경이 쓰인다. 한두 군데 암릉에서 그럭저럭 밧줄도 잡으며 백화산에서 1.2km 떨어진 평천치에 닿는다.
고개 위에 평평한 밭이 있다던 평천치는 문경의 마성면 성내리와 괴산의 연풍면 분지리를 잇던 옛 고개였다는데 분지리의 안말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서있다. 벌채지와 임도를 통해 마을로 60분만에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탈출로로 택해 걸어보면 약간의 함정 같은 길인 모양이다.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고 마구 자란 잡목 사이로 발자국 없는 新雪만이 발이 빠지게 쌓여 있어 럿셀을 하며 길을 찾아내기가 고역일 것이다.
오늘 모처럼 투혼을 발휘하셔서 평천치에 이르신 형님(17회 이정호)께서 나름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이 길을 택하셨다가 엄청 고생을 하셨다는 후문이다. 다행히도 탈출로 삼아 이 길을 먼저 내려가신 형님(21회 송영진)과 나중에 만났고 산행대장(30회 이영준)이 동행을 했기에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도 웬만큼은 안심하셨을 터인데 울며 겨자 먹기로 新雪을 밟는 감촉을 즐기신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아이젠까지 도망갔다니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식의 자책이시다.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더라도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산길에 뇌정봉(991m)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나니 산길이 981봉을 통과하는 모양이다. 가까와지는 조령산의 모습을 살피며 지쳐가는 몸의 인내를 다해 봉우리를 두어 개 넘어가니 움푹 꺼진 사다리재가 드디어 나타나고 오늘의 대간길이 끝난다.
부근에 이만봉쪽으로 고사리밭등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있거니와 예전에는 고사리가 많아 미전(薇田)치라고 불렸다는 고개가 급한 비탈 때문에 사다리재로 이름이 바뀠었다는 것인데 이름에 걸맞게 급하게 내려빠지는 눈길이 아주 미끄럽다.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오니 골짜기 끝에 얼어붙은 개울이 나타나고 얼음장밑을 흐르는 물소리가 구원의 소리처럼 들려온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한겨울이지만 마을로 내려서니 滿天地에 봄의 鼓動 소리 들려오는 듯하고 도톰하게 돋아나는 꽃망울을 보는 느낌이다.
최종 후미로 내려와 온천욕 가능 시간 보다 1시간 이상 늦어져 아쉽게도 온천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지만 길 없는 길에서 고생하신 형님들 보다는 다행인가.
산길 끝에서 대간길을 되돌아 보니 대간 줄기가 U자 형태로 동네를 감싸 안고 있다. 예전 화전민들이 곰봉평원이라는 이 분지에서 고냉지 채소를 경작하며 이 마을을 지켜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이 마을의 이름이 지금은 분지리 안골 마을이고 충북이지만 동남북 삼면이 경북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2차 대간 산행시에도 雨水 무렵 이 마을로 내려와 고로쇠 수액을 마셨던 기억인데 이 산길의 경북쪽 사면에는 박달나무 수액이 나온다는 소식이다. 나무에게는 가혹한 이야기이지만 이른 봄에는 고로쇠 수액으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늦은 봄이면 아주 더디게 나오는 박달나무 수액을 한 모금 받아 마셔 술에 지친 속을 달랠 수 있다면 괜찮을 터이다.
수안보로 나가 목욕팀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푸짐한 시골 밥상을 받는다.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산길의 추억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돌아오는 버스 속은 선후배간 어지간히 오른 술기운에 조금 어수선하지만 정답고 재미있는 선후배간 친교의 시간이 흐른다. 몸살 감기로 술을 사양하자니 스스로 이상한 기분인가.
2014. 12.
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