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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과 류시화 시인, 유시민 작가의 진로진학 가이드
* 법륜 스님의 진로진학 가이드 - 이상(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꿈을 향해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자신만 뒤쳐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데도 현실적인 여건이 안 돼서 포기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마음의 상심과 갈등이 크다.
흔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성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래희망에 종교인은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과학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번민과 갈등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고등학생 시절 출가해서 지금까지 종교인으로 살면서도 과학은 제 삶 속에서 늘 새롭게 응용되었습니다. 원래 과학에 관심이 있던 까닭에 종교에서도 허황된 요소는 믿지 않고 멀리했습니다. 대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불법의 이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했어요. 그러다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때에도 앞뒤가 맞고 논리가 정연하도록 강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어떤 일을 하든 거기에는 개인의 성향이 작용하게 됩니다. '내 적성은 과학에 맞으니까 나는 반드시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내 적성이 어떤 직업에만 딱 맞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일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적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가슴 뛰는 일을 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말의 참뜻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돈과 명예, 안정만을 좇아 인기있는 직업을 가지려 하지 말고, 자신의 성격과 흥미,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인기나 돈에 연연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의미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하는 일이 나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므로 무조건 다수가 좋다는 길로 따라가지는 말라는 뜻이다.
'왜 나는 좋아하는 일도, 목숨 걸고 하고 싶은 일도 없을까?'라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없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주어진 대로 할 수가 있으므로 삶이 더욱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밥해야 할 때 밥하고, 빨래해야 할 때 빨래하고, 청소해야 할 때 청소하고, 일해야 할 때 일한다면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길만이 내 길'이라며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가리지 않는 자세야 말로 최상의 자유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디자인 공부를 할 여건이 안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디자인 감각을 접목시키면 된다. 절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면 승복 디자인이나 정원 조경, 사찰 설계 등에 전통미와 현대감각을 접목 시킬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연이 되는 대로 무엇이든 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장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꿈을 찾는다고 현실을 등한시 하거나 미래의 행복을 위해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면 허황된 인생을 살기 쉽다. 그리고 현재의 밥벌이에만 급급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그래서 항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모순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두 발은 현실에 딱 딛고 서서 두 눈은 이상을 향해서 한 발씩 한 발씩 나아가면 됩니다."
30년 전에 포교당을 처음 열었을 때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부처의 법을 가르치는 수행도량을 만들기 위해 '서원'을 세웠다. 어느 절에 들어가 전법활동을 하자 그곳의 신도들과 갈등이 생겼다. 그래서 절 밖에 조그만 법당을 만들어서 포교활동을 새롭게 시작했다. 광고 전단지를 돌렸더니 두 명이 참석했고, 첫 강의가 끝나자 한 명만 남았다. 3개월 교육 프로그램에 한 명 밖에 없으면 폐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한 명을 두고 3개월 동안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자 수료한 사람이 지인을 몇 명 데려왔고, 전단지를 보고 몇 명이 더 참석해서 다시 3개월 교육을 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오늘이 되었다. 법문을 하지 않는 날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운영비를 충당했고, 4년 정도 지났을 때 법당만으로 운영이 가능해지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만약 당시에 상황이 어렵다고 적당히 기존 방식과 타협을 했다면 제가 가고자 했던 이 길을 갈 수 없었겠지요. 물론 미래에 대한 꿈이 확실하다고 해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때로는 '내가 과연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하고 미래를 예측해보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좋은 미래는 막연히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연구하고 도전해가는 과정에서 꿈꾸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법륜 스님의 행복/나무의 마음> 중에서
* 류시화 시인의 진로진학 가이드 - 당신은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집과 결별하고 노숙자가 되자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학교를 마치고 교사가 되었으나 한 달도 안 돼 그만두었을 때 사람들은 미친 것 아니냐고 했다. 불교 잡지사를 다니다가 반 년도 못 채우고 퇴사했을 때 그들은 '왜?'라고 물었다. 클래식 음악 카페를 열었다가 석 달 만에 문을 닫았을 때 사람들은 그새 망한 것이냐며 의아해했다. 거리에서 솜사탕 장사를 시작하자 그들은 '정말?' 하고 눈을 의심하다...가 한 계절 만에 접자 뒤에서 웃었다.
가을에 출판사에 취직했으나 봄에 퇴사하자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에서의 생존을 못 견디고 산 중턱의 버려진 집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나에 대해 포기했다. 산에서의 생존도 한계에 부딪쳐 여의도의 회사에 다니자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렸다. 어느 날 바바 하리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 원서를 읽고 그 책을 번역하겠다고 회사에 사표를 내자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만류했다.
불법체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뉴욕으로 떠나자 '꼭 그래야만 하는가?' 하고 사람들은 질문했다. 두 달 만에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인도의 명상센터로 가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귀포로 이사하자 사람들은 계절마다 놀러 오면서도 외롭겠다고 했다. 외로운 것은 그들이었다. 두 해 만에 서울로 오자 그 좋은 곳을 왜 떠났느냐고 아쉬워했다.
인도에만 자꾸 가자 사람들은 유럽에도 가고 러시아에도 가라고 조언했다.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원고를 완성하자 세 군데 출판사에서 '시 읽는 독자가 적다'며 출간을 거절했다. 인도를 열 번 여행하고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썼을 때 '인도 기행문을 읽을 독자는 거의 없다'며 출판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을 번역하자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또다시 거절당했다.
방황한다고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런 목적지가 있다'고 마르틴 부버는 말했다.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의 이동,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존재를 가리킨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을 포기하고 한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항상 선택 앞에 놓인다. 한 가지 길의 선택은 가지 않은 많은 길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UCLA 인류학과 학생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에게 멕시코의 야키족 인디언 돈 후앙은 말한다.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고 느끼면 어떤 상황이든 그 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너로 하여금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길은 너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한 길은 너를 약하게 만든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담겨 있다면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류시화의 페이스북> 중에서
* 유시민 작가의 진로진학 가이드 - 즐거운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로 결정과 관련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은 모두 소질과 적성에 압도적인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이것은 모범 답안일 뿐 속마음은 다르다. 직업 능력을 기르기 위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결정적인 것은 학업 성적이다. 국가의 공식 통계는 없지만 언론을 통해 입시 전문기관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보면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과대학에 몰린다. 한의학, 경영학, 자유전공, 언론영상, 반도체, 생명공학, 항공공학, 기계공학, 국어교육, 수학교육, 영어교육, 국제통상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이 서열은 그 학과와 관련된 직종의 평균적 소득 수준, 안정성, 사회적 평판과 관련되어 있다. 적성과 소질, 자아실현, 삶의 의미, 이런 것들은 보통 후순위 고려 사항에 머무른다.
그렇다면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일까? 사람들은 안정되고, 근무 환경이 좋고, 돈을 많이 벌고,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한다. 이런 것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 그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여든 살 먹은 스위스 남자가 자기 인생을 기록해서 통계를 냈더니 21년 동안 일하고, 26년 동안 잠을 잤으며, 밥 먹는 데 6년, 사람을 만나는 데 5년을 보냈다. 평생 동안 깨어있는 시간의 최소한 절반을 일하는 데 쓴다고 볼 수 있는데, 만약 직업으로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을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원하는 사람이 적은 직업도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도 있다. 남들이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르면 된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것이라면 부득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경쟁해서 그 직업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서 더 잘하기 위해서 또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삶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이기는 게 정답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열등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전쟁과도 같은 대학 입시 경쟁을 보라. 공부를 아주 잘하는 젊은이들은 소위 SKY 대학과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에 진학한다. 세칭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청년들은 흔히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나 SKY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연고대나 카이스트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다시 수능을 봐서 서울대를 가는 청년들이 드물지 않다. 서울대라고 해서 어디 만사형통이겠는가. 거기에도 잘 나가는 학과와 그렇지 않은 학과가 있다. 이른바 인기학과에도 성적이 하늘을 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바닥을 기는 학생도 있다. 경쟁은 끝이 없다. 경쟁에 뒤질 때마다 열등감을 느낀다면 인생은 참혹한 비극이 된다.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을 찾는 것이다. 사회의 평판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의지를 버리면 삶의 존엄성도 잃어버린다. 스스로 설계한 삶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자기에게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적어도 남들만큼은 잘할 준비를 하라. 자격증이 필요하면 기능을 익혀 자격증을 따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과 소통을 잘해야 하니 스스로 글쓰기 훈련을 하라. 중요한 정보의 대부분이 영어로 유통되는 게 현실인 만큼 영어로 듣고 말하는 능력을 충분히 기르는 것이 좋다. 중국어나 스페인어처럼 사용 인구가 많은 언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열정을 쏟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이라면 그 일을 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역시 즐거울 것이다.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못하고 그저 막연히 스펙만 쌓으려고 한다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한다. 청년들이 꼭 그렇게 하면 좋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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