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위(徐渭, 1521~1593))는 명나라의 화가로 자신의 국죽도(菊竹圖)에 아래의 칠언절구를 지어 적었고, 후대의 화가들은 국화를 그릴 때 서위의 이 화제(畵題)를 많이 인용하였다.
身世渾如泊海舟(신세혼여박해주) : 신세가 바다에 맨 배와 같아
關門累月不梳頭(관문누월불소두) : 문을 닫고 여러 달 머리 빗질조차 못했구나.
東籬胡蝶閒來往(동리호접한래왕) : 동쪽 울타리에 나비는 한가로이 오가는데
看寫黃花過一秋(간사황화과일추) : 국화를 그리자니 한 해 가을 다 지났네.
국화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일화 때문에 “은일(隱逸)”을 뜻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은 후, 동쪽 울타리[東籬]밑의 국화꽃을 따며 유유자적하며 산 자연주의자 도연명은 은둔생활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국화=도연명=은일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으나 국화가 장수를 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예문유취 풍속통(藝文類聚 風俗通)』에 남양국수(南陽菊水)의 고사에서 근거한 것이다. 국화밭을 여과해서 흐른 물을 마셨기 때문에 동네사람들이 장수하였으리라는 추정을 실제로 국화의 약리작용을 확인도 하기 전에 사실로 받아들임으로써 국화가 수(壽)를 뜻하게 된 것이다.
국화가 수(壽)이므로 국화를 층층이 그려 놓은 그림은 고수(高壽)가 된다. 또 국화가 역시 “수(壽)”의 뜻을 지닌 바위에 얹혀 있으면 익수(益壽)가 된다.
국화에 곁들여 그리는 빨간색 열매는 구기자(枸杞子)로, 구기자가 건위강장제(健胃强壯劑)로서 국화와 같이 장수를 의미하므로 이런 그림은 기국연년(杞菊延年)의 뜻을 갖는다. 그래서 아래 한유동의 그림에서도 구기자가 그려져야 본래의 법식에 맞지만 찔레꽃 열매가 그려지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는 법식에는 어긋난다.
한유동(韓維東, 1913~1994)
호는 규당(葵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제자로 인물화와 화조화에 능하였다. 14세에 김은호의 문하생이 되어 김은호의 화실 낙청헌(絡靑軒)에서 그림지도를 받았다. 일본 우에노 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에서 수학했으며,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준특선을 받았다. 1958년 동양화가들의 친목단체인 ‘백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7년 상림회전, 1983년에 현대미술초대전 등에 출품했다. 그의 그림들은 매우 섬세하면서 화려한 기품을 보이는데, 수묵화에서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맑은 담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김은호 제자들의 모임인 ‘후소회’ 지도위원, 세종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주요작품으로 〈신선도〉,〈화접도〉 등이 있다.
첫댓글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읽다보니 글 보다는 동명이인의 지인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