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5장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
(찬송 240장, 구찬송가 231장)
2020-7-17,
금요일
욥과 세 친구 사이의 첫 번째 논쟁이 3-14장에서
나왔습니다.
15-21장은
두 번째 논쟁입니다. 논쟁이 더 가열됩니다. 여기에서도 엘리바스(15장), 빌닷(18장), 소발(20장)이 이야기하면
욥이 각각에 대하여 대답합니다(16-17, 19, 21장). 첫
번째 대화에서 욥을 설득하지 못한 세 친구는 좀 더 강하게 욥을 비난합니다.
15장에서
엘리바스는 사람은 원래 죄악이 가득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모두 욥에게 적용시킵니다(15:1-15). 후반부에서는
악인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하여 말합니다(15:16-35).
1. 무익하고 죄악적이고 부정한 인간, 욥이 바로 그런 사람 (15:1-16)
엘리바스는 4장에서 욥의 덕성을 이야기하면서
부드럽게 말을 시작하였으나 둘째 대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욥을 몰아세웁니다. 첫째 대화에서는 욥이 돌이키면
좋게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지만(5:8-27) 15장의 둘째 대화에서는 그런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가혹하게 욥을 논박합니다. 그의 주장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욥의 말이 “헛된 지식”일 뿐 아니라, “동풍”과 같아서 무익하다고
주장합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열기만 품고 있어서 사람을 불쾌하게 하며 농작물에 큰 폐해를 끼칩니다. 욥의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15:2-3).
둘째, 욥의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도록
하는 위험한 말이라고 판단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하는 것이 지혜의 말인데, 그의 말은 오히려 정반대로 작용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15:4).
셋째, 욥이 그렇게 헛된 말을 하는 것이
그에게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엘리바스는 판단합니다. 욥이 간사한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죄악”이 시키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욥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죄를 숨기려고 간사하게 말하고
있다” 말합니다. 내용도 지적하지 않고 느낌을 말합니다. 순환논법처럼 말합니다(15:5-6).
넷째, 욥은 교만합니다. 엘리바스는 연거푸 세 차례나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주장합니다. “네가
제일 먼저 난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7절).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8절). “어찌하여 네가 불만스러워 하느냐?” (12절). 욥이 아는 것 중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엘리바스는 자기들 중에는 욥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고 그래서 지혜도 많다고 합니다. 욥이 마치 처음 사람인 것처럼 말하거나 산보다도 먼저 태어나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알게 된 사람처럼 말하는
것은 틀렸다고 비판합니다(15:7-10).
다섯째,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책망합니다. 엘리바스는 지난 번 첫번 째 말에서 자기가 밤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4:17-21) 욥이 은밀하게 위로를 내려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눈을 번쩍이면서 하나님을 반대하고 함부로 말을 한다고 책망합니다(15:11-13).
여섯째, 엘리바스는 사람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여인에게서 나온 사람은 모두 부정하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14:1) 하고
욥이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그 말을 욥에게 적용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하늘조차 부정할 뿐임을
생각하면,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부정하다고 지적합니다(15:14-16).
2. 악인의 운명 (15:17-35)
1)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음(17-24절)
17-19절: 이어서 엘리바스는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하면서 두 가지를 근거로 제시합니다. 첫째, 그것은 “자기가
본 것”이고 둘째, “지혜로운 조상이 전하여 준 내용”입니다. 그 지혜는 외인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20-24절: 엘리바스는 악인의 운명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악인은
평생 고통을 겪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환난과 역경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을 느낍니다.
2) 하나님을 향한 교만 때문에 심판을 받음(25-25절)
25-28절: 악인이 그러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하게 대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목을 세우고 방패를 들고 덤벼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굴에
살이 찌고 허리에 기름이 엉겨 붙어서 도무지 전쟁에 참가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한 곳과 돌무더기가 된 곳에 거하는 자였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였습니다.
29-35절: 하나님께 대항하던 그는 결국 가난하게 되고 어둠 가운데 머물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입김에서 나오는 불로 떠나갈 것입니다. 재물이나 우상과
같은 “허무한 것”을 믿는 사람은 “허무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익기 전에 떨어지는 포도 열매와 같고, 꽃이 곧 떨어지는 감람나무와 같습니다(33절).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뇌물을 좋아하는 자는 그의 장막이 불에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악한 생각을 하고 죄악을 낳으며 거짓을 준비합니다(15:29-35).
요약: 논쟁할 때의 태도와 말
엘리바스의 주장은 욥이 자기의 가난한 처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교만하게 하나님께
대항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욥이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모습을 그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대항하면 더 큰 심판만이
있을 것이고, 허망한 것을 믿어 봐야 허망하게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가 지혜로운 자들의 조상에게서 전하여 주는 말이라고 하였던 이 내용에서 핵심은, 욥이
당한 비참하고 허무한 일들이 결국 그가 마음에 죄를 품고 헛된 것을 의지하여 왔다는 증거이므로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엘리바스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말은 교묘하고, 여기에서 “자기주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는 4장에서
이야기한 자기의 종교적 경험과 조상들의 지혜를 반복하고, 여인에게서 난 사람의 비참한 종말에 관한 욥의
말을 인용하면서(14:1) 욥에게 자기의 죄를 인정하라고 압박을 가합니다. 처음에는 회복한 사람에게 복된 소망이 있다는 것을 말하였으나 이제는 그러한 말도 없이 더 가혹하게 욥을 압박합니다. 엘리바스의 말뿐 아니라 이러한 태도가 그릇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태도는 욥의 대답과 대조가 됩니다. 욥은
친구에게 대답하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이 점이 없습니다. “자기주장”을 하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는 엘리바스 처럼 되지 맙시다. 특히 조상의 지혜를 잘 전수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체득하였다고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호소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가르치는 직분자나 부모가 조심해야 할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