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 수필>
보신탕에 관한 추억
<Episode 1>
내가 30대였으니 1970년대 후반으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회사를 경영하시던 형님(나보다 다섯 살 위)이 회사 일에 바빠 건강 체크를 자주 못했던지 기침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이라는 진단.
의사 처방은 약 잘 먹고, 좀 쉬고, 영양식을 섭취하라는 것인데 가능하면 보신탕을 먹으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평소 동생인 나를 끔찍이도 아끼고 챙겨주시던 형님이라 보답하는 셈으로 내가 한 마리 사 드릴 터이니 집에서 푹 고아 두고두고 몇 번 잡수시라고 이야기가 되었다.
차에 칼, 도마, 들통... 등속을 싣고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조카들을 데리고 개를 사러 나섰다.
차를 가지고 경기도 시흥 쪽으로 갔는데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지만 당시 시흥 부근은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나는 집은 모조리 들러 개를 팔지 않겠냐고....
서너 집을 돌다가 맞춤한 개 한 마리를 사게 되었는데 스피치보다 조금 큰 잡종견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주인보고 잡아 달랬더니 자기는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우리보고 직접 잡으란다.
‘형님 우리끼리 한 번 잡아 볼까?’ ‘까짓 거 뭐 어렵겠어? 우리끼리 잡아 보자고....’
개 주인이 개 목줄을 벗기고 나일론 줄을 목에 걸어주며
‘나무에 매달면 금방 죽을 것이다. 털 그슬리는 것은 볏짚을 한 단 줄 테니 매달려있는 개 몸에 짚을 둘둘 감고 아랫쪽에 불을 지르면 몽땅 털이 그슬려지니 누워 식은 죽 먹기다.’
듣고 보니 천하에 더 쉬운건 없을 것 같았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등성이 잔솔밭 속으로 낑낑거리며 버둥거리는 개를 끌고 들어가서는 우선 맞춤한 나무를 정하고 목줄을 조이고 나무에 매달았다. 어린 조카들은 머리를 외로 꼬고 돌아서서도 상태를 살피려고 흘끔거리며 돌아다보고, 매다는 형님이나 나도 영 기분이 언짢아 재빨리 해치웠다.
처음에는 제법 몸부림을 치고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더니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도 한 참을 더 기다린 후에
‘형님, 이제 죽었겠지?’ ‘그래 한 번 건드려 보자’
막대기로 엉덩이를 쿡쿡 찔러 보았더니 미동도 않고 디룽디룽....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메뉴얼에 따라 다음 단계로 짚단을 풀어 매달린 개 몸뚱이에 두른 다음 얼기설기 짚으로 묶고 아래쪽에다 불을 붙였다.
불이 후루룩 타 오르자 축 늘어졌던 개가 갑자기 사납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뿔사! 개가 버둥거리는 통에 짚은 바깥부분만 후루룩 탔을 뿐인데 매달았던 나일론 줄이 녹아서 끊어지며 개가 툭 떨어졌다.
개 몸뚱이의 털은 반쯤 그슬렸을 뿐이고 온통 지푸라기 탄 재가 붙어 흡사 귀신같은 꼬락서니인데 흰자위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어 오르는데 정말 어른인 형님이나 나도 기급할 노릇이었다.
어린 조카들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간 뒤....
다급해진 형님과 나는 나무 작대기를 주워들고 쫓아가고, 목이 졸려 넋이 반쯤 나갔을 개는 비틀거리며 이리 펄쩍, 저리 펄쩍.... 어쨋거나... 지푸라기를 두르고 불을 붙이면 그슬려 진다는 말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임을 알았다.
천신만고 다시 붙잡아서는 작대기로 두들겨 패서....
산등성이라 물이 없어 씻지도 못하고 재 투성이인 채 각을 뜨는데.... 형님이나 나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이 또한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도 형님은 예전에 본 적이 있다며 칼질을 했는데 엉뚱한 부분에 칼이 들어갔는지 칼이 계속 뼈에 부딪히며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암튼 결국에는 조각을 내는데 성공했다.
<Episode 2>
내가 근무하던 K학교는 인천인데도 산 밑에 건물이 있어 아주 아늑했다.
학교 옆, 산 밑에 보신탕집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은 50대로 해병대 출신이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교육상으로도 그렇고, 냄새도 학교 쪽으로 오고해서 좀 마땅찮게 생각을 했다.
어떤 이들은 보신탕 가게를 다른 데로 옮기라고 말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도 했지만 주인은 살짝 얽은 얼굴에 조금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성질을 잘못 건드리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개망나니가 된다는 소문이 있어 차마 말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직원들이 편을 갈라 배구시합를 하고 있는데 그 보신탕집 주인이 집에서 기르는 송아지만한 도사견을 끌고 운동장으로 들어온다. 주인은 이 개를 무척 귀여워해서 무시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가하면 얼굴을 부비고 두드리며 애지중지하는 터였다. 사람들은 보신탕집 주인이 개를 사랑하는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수군거리고는 했었다.
개를 끌고 배구장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그 사람을 보며 선생님들은 무슨 까탈을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닌가하여 경기를 멈추고 긴장하여 쳐다보고 있는데 그 사람은 얽은 얼굴에 미소를 흘리며
‘선생님들 오늘 요놈을 처분할까 하는데 이따가 간을 잡수시러 수돗가로 오세요.’
하고는 개를 끌고 산골짜기로 올라간다.
경기를 하던 선생님들은 그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을 뿐더러 질려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골짜기에서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잠해지더니 곧이어 개털 그슬리는 노린내가 진동을 한다. 선생님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상을 찌푸리고....
배구경기를 끝내고 땀을 씻으러 수돗가에 갔더니 보신탕집 주인이 그슬린 개를 수돗가에 날라다 놓고 배를 갈라 간을 꺼내고 있었다. 개가 커서 그런가 간도 엄청나게 컸다. 꺼내자마자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간을 뭉텅 잘라 소금을 찍어서는 입에 넣고 볼을 부풀리며 우물거리는데 입가는 물론 손도 온통 피가 범벅이다.
‘자, 선생님들도 한 점씩 잡숴 보세요. 아주 고소해요.’
그 모습을 보고 아무도 먹으러 나서지 않았음은 물론 보신탕집 주인이 사람같지 않아보였다.
그처럼 따르고, 그처럼 애지중지하던, 자기가 기르던 개를 직접 잡아서......
우리 아들은 백령도에서 군 생활(해병)을 했다. 마음이 여려 입대 전에는 보신탕은 쳐다보지도 않았었는데 첫 휴가를 오더니만 제일 먹고 싶은 것을 말 하라고 했더니 ‘보신탕’을 먹고 싶다고 한다.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신기해하며 아들을 데리고 학교 옆 그 보신탕집으로 갔다.
그때만 해도 해병이 무슨 자랑인지 아들은 어디를 가나 사복은 입지 않고 해병대 정복을 입고 다녔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주인은
‘어이구, 선생님 오셨네요. 선생님도 보신탕을 좋아하시던가요?’
‘아들이 휴가 나왔는데 보신탕을 먹고 싶다고 하네요.’
정복을 입은 채, 모자를 벗어 옆에 놓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아들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자네 몇 긴(期)가?’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네 823깁니다.’ ‘어, 그래? 나는 125기네.’
아들은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서는 모자를 쓰더니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이며
‘피~~~~일 씅!’
보신탕집 주인은 히죽이 웃으며 거수경례로 답례를 하고는
‘오늘은 내가 낼 테니 마음 놓고 실컷 먹고 가게.’
그리하여 돈도 안내고 보신탕은 물론 수육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