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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야말로 어제 놓친 8시 15분 봉정사행 버스인 5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출발했다.
홈플러스에 가방을 넣어두고 움직이려고 했는데 하필 안동 홈플러스는 수요일에 쉰단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가방을 매고 가게 되었다. 부석사도 봉정사도 가방 매고 가게 되는구나, 했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 운이 정말 안 따라주는 날이었다.
51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번 정거장은 봉정사입니다, 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곧바로 벨을 눌렀는데
기사님이 봉정사 한참 남은 도로 한 복판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얼떨결에 내리긴 했는데 여긴 어디? 우린 누구? 상태로 잠시 멈칫.
그러다 봉정사쪽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열심히 걷기 시작했는데 버스가 봉정사 주차장에 바로 서 있는 게 아닌가!!
이미 거기까지 걷는 동안 가방때문에 등에 땀이 솟구치고 내리쬐는 햇빛때문에 살이 뜨거웠다.
그래도 내 긍정을 막을 순 없었다. 이상하게 난 여행만 가면 피곤해도 신나고 걸어도 신난단 말이야!!!
(물론 집으로 돌아오면 여행 버프는 사라진다;;)
어쨌든 봉정사 주차장까지 와서, 또 봉정사까지 등반을 해야 했다.
부석사와 맞먹는 경사를 자랑하지만, 역시 사진은 평탄한 곳에서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겨우겨우 가방을 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죽는 소리를 하면서 일주문에 도착했다.
일주문 앞 넓은 광장에서 다람쥐 두 마리가 술래잡기를 하는 걸 보고 기분이 또 좋아졌다. (단순하다)
일주물을 지나 또 열심히 걸어가면
드디어 봉정사 입구다.
봉정사는 천등산 한 복판에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에 둘러싸인 산 속 깊은 곳, 아늑한 절의 모양새 그대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서 여기에 봉정사를 세웠다는 설화가 있었는데,
상량문 안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지었다고 되어 있어서 그 설화의 주인공이 능인스님으로 바뀌었다.
고려 태조 왕건도 다녀가고, 고려 말의 왕인 공민왕도 다녀갔고, 먼 훗날에 나도 봉정사에 다녀갔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봉정사가 나온다.
극락전은 아껴두고, 먼저 만세루부터 둘러보았다. 올라가서 아래를 턱 굽어보고 싶었는데 올라가진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멀찍이서 보는데, 멀찍이서 보는 맛도 운치있다.
오늘도 아침엔 날씨가 살짝 흐려서 산에 안개가 서려 있었다. 신비한 느낌, 좋아!!
그리고 대웅전. 절의 심장!!
영혜는 대웅전 측면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다. 절에 올때마다 인사를 드리는 영혜를 보면서 나도 한번쯤 드리고 싶었는데
왠지 용기가 안 나고 들어가기도 민망하고 그래서 그냥 그만두었다.
부석사는 장쾌한 풍경, 소백산을 제 앞마당으로 끌어들여 훤칠하고 시원한 맛이 있었다면,
봉정사는 아늑하고 조용하다. 정말 산사같은 느낌이었다.
부석사는 관광지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다. 부석사 앞에 즐비한 식당이며 기념품 가게며...
그런데 봉정사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오가는 사람도 적고 한산했다. 게다가 곳곳에 스님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지런하게 놓여진 흰 고무신이나, 빗자루같은 것들.
대웅전 앞에 수국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아침 이슬을 맞아서 촉촉했다.
대웅전도 무량수전처럼 문을 위로 열어 안을 활짝 개방할 수 있는 모양이다.
유홍준 교수님 책에서 봉정사는 소박하고 운치있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단청이 일품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옳은 말인듯.
그리고 드디어 극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972년에 해체 보수할 때 공민왕때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나와서 무량수전을 제쳤다.
극락전에서 세월호 아이들의 극락왕생을 빌어 보았다.
비록 안에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그냥 멀리서나마 부처님을 보면서 속으로 극락왕생하게 해주세요, 하고 생각했다.
극락전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데도, 보수를 새로 해서 그런 맛이 안 나는 게 조금 아쉬웠다.
조선 시대에 지어졌다는 대웅전이 더 오래된 것처럼 보이고 더 운치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살짝 벗겨진듯한 단청은 고풍스러웠다.
유홍준 교수님 왈, "이 집의 또다른 매력은 지붕이 높지 않고 낮게 내려앉아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아주 야무진 맛을 풍긴다는 것."
극락전 앞 삼층석탑 주위엔 사루비아꽃이 잔뜩 있었다.
옛날 초등학교때 생각도 나고 해서, 사루비아꽃에서 꿀을 따먹었다. 맛은 여전히 좋더라.
스님들이 먹는 장을 묻어놓은 독들인가보다.
이렇게 진짜 땅 속에 묻어놓은 독은 처음 봐서 너무 신기했다.
이 쪽으로 쭉 가다보면, 영산암이 나온다.
유홍준 교수님의 책에서 봉정사에 오면 꼭 요사채 뒤에 있는 영산암을 가보라고 써 있어서, 주저없이 올라갔다.
영산암의 입구.
저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이렇게 복잡한 마당이 등장한다.
유홍준 교수님이 말하기를, 봉정사는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그리고 영산암의 감정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이 세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복잡하지만 아름답다. 복잡하지만 질서도 느껴지고.
아름답다.
재미있는 것. 자물쇠를 따로 하는 게 아니라, 나뭇가지를 재미있는 모양으로 잘라서 걸어놓았다.
저 문고리가 내 마음을 끌었다.
그렇게 영산암을 구경하고 있는데 절 곳곳에 마련된 스피커에서 갑자기 청아한 목탁소리와 불경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른 대웅전 앞으로 내려갔다.
오전 10시경, 스님이 대웅전에 앉아 불경을 외고 있었다.
처음 본 광경.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차분해지는 소리.
우리는 대웅전 앞 마당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쉬었다. 스님의 목탁소리와 불경 소리를 들으면서.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불경 소리가 무얼 뜻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듣고 있으니 기분이 점점 좋아지고, 땀이 식으면서 마음도 차분해졌다. 조용한 산사 안에 불경 외는 소리만 크게 울렸다.
아침이라 절에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 앞마당에 가만히 앉아 불경을 듣고 있는 건 우리 뿐이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불경은 30분정도 계속되었고, 불경이 끝나자 우리도 가방을 매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그 옆으로 쭉 올라가니 사찰에서 키우는 연밭이 있었다.
그 위로는 관광객은 올라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발길을 돌렸다.
다시 내려오다 귀여운 다람쥐를 만났다.
안녕? 다람쥐야?
하지만 다람쥐는 내 인사엔 대답하지도 않고 빠르게 숲 속으로 달아났다.
내려오면서 퇴계 이황이 자주 쉬다 갔다는 명옥대를 만났다.
이상하게, 월요일에 비가 그렇게 왔는데도 물이 적어서 계곡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봉정사를 내려왔다.
봉정사는 결코 큰 절이 아니다. 그러나 봉정사는 정연한 건물배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사가 되었다. 봉정사는 불국사처럼 대웅전과 극락전이라는 두 개의 주전을 갖고 있고 각각의 전각이 독자적인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어서 이 두 공간의 병렬적 배치가 봉정사에 다양성과 활기를 부여한다. .... 봉정사는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산사다.
다시 시내로 가는 51번 버스는 무려 11시 50분에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왔더니 한 시간 가량이 비었다.
일단 쉼터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무거운 가방부터 내려놓으니 어깨가 한결 편했다.
그리고 주차장 앞에 자리잡은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더치커피도 2500원, 영혜가 먹은 레몬티도 2500원.
더치커피에 얼음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는데, 진짜 맛있었다. 풍부한 맛이 일품이었다.
영혜는 신 걸 안 좋아하는데 레몬티는 정말 맛있다고 했다. 레몬청도 잘 만드시는 분인가보다.
남은 시간동안 더치커피를 마시며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간 미니북을 읽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와 함께 주인공이 갈탄을 효율적으로 캐는 크레인을 구상하는 지점까지 읽었더니 버스가 왔다.
버스는 푸르른 논밭을 끼고 달려 달려 시내로 간다.
한 40분정도 걸린다.
시간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대충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먹으면서 안동 소주박물관으로 가는 36번 버스를 12시 40분에 탔다.
그런데 아까 봉정사 갈 때는 너무 일찍 내려서 문제였는데 이번엔 두 정거장이나 더 가서 내렸다.
도시처럼 정거장 간의 간격이 좁은 게 아니라서 거의 3,40분을 땡볕 속에서 걸어갔다.
그랬는데 기대했던 안동 소주 박물관은 그냥 사설 박물관이었다.
전시품도 그저 음식 모형들 뿐. 안동소주 만드는 과정은 흥미롭긴 했지만 그 고생하며 여기까지 올 만큼은 아니었다.ㅠ
그래도 여행하면 이런 날도 있지 뭐, 하면서 쿨하게 넘어갔다.
(평소같았으면 운도 지지리도 없다고 짜증냈을텐데. 여행버프 받은 긍정심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땡볕을 걷고 걸어서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딱히 뭘 보려고 간 게 아니라, 이미 아침에 호텔은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서 갈 곳이 없었다.
벽화마을이라도 둘러볼까 했지만 영혜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다
솔직히 나도 벽화마을 자체에 흥미가 없고 그저 시간이나 때우자 하는 마음이었던지라 그냥 쉬기로 했다.
시간이야 어디서든 때우면 되니까!!
예술의 전당에서 화장실도 가고, 시원한 물도 리필해서 마셨다.
그리고 앉아서 이 세상의 최초들을 다룬 두꺼운 책을 한 권 읽었다.
그리고 5시 46분정도에 경주로 출발하는 기차를 안동역에서 기다렸다. 한 두어시간 기다린 것 같다.
이 기차를 타고!!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에 도착해서는 영혜도 기차 안에서 충분히 잤고, 편하게 앉아오기도 했고, 거기다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생각에 둘다 신이 났다.
사랑의 자물쇠 좋아하네... 라고 말하면서도 찍었다. ㅋㅋㅋㅋ
우리는 내일로 발권을 경주역에서 했다. 혹시 밀레니엄파크 무료 입장권을 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그건 없었다.
남은 거라곤 테디베어 달력과 워터파크 50퍼 할인쿠폰뿐.
워터파크는 우리가 안 갈거라고 받지 않고, 테디베어 달력이나 하나씩 받아서 경주역을 나왔다.
경주역 너무 예쁘다!!! 다른 역과는 달리 고유의 느낌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첨성대 바로 앞에 위치한 도란도란 게스트 하우스.
경주 도란도란 게스트 하우스!
큰 도란도란이랑 작은 도란도란이 있는데, 우리는 2인용 독방을 써서 큰 도란도란에 예약했다.
큰 도란도란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대식의 깔끔한 한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안도 한옥 느낌.
저 두꺼운 요는 누워보니까 진짜 편하더라. 메모리폼인가? 라텍스인가? 무지 편했다.
예쁜 한지로 만들어진 조명도 있었다. 진짜 예뻤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모기랑 벌레가 좀 있긴 했지만 아마 화장실 창문이 열려있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방에 커다란 거미가 개미 하나를 돌돌 말아 잡아먹으려고 하는 걸 영혜가 생포해서 바깥에 놔주었다.
우리 방은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저 불켜진 곳이었다. 라일락 방.
짐만 내려두고 보조가방을 꺼내서 삼각대와 카메라만 쑤셔넣고 얼른 바깥으로 나왔다.
첨성대와 안압지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첨성대 야경.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있어서 잔디밭을 걸어서 첨성대로 금방 왔다.
한 번도 첨성대와 안압지의 야경을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아름답고 화려했다.
그리고 안압지로 향했다. 안압지는 입장료가 2000원이나 했다. (1000원인 줄 알았는데 ㅠ)
그래도 카메라가 야경을 딱 잘 잡아줘서 좋다.
예전 디카는... 내 핸드폰은 못 잡는 야경 ㅠㅠ
안압지의 야경도 화려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다만, 빛이 너무 세서 산책로에선 시야가 막히기도 했다.
물에 비치는 안압지의 야경이 아름답다.
통일신라 시대에, 신라의 가장 큰 부흥기에 화려함을 모토로 지어놓은 안압지. 그러나 현대에 와서 조명을 덧붙여서 더 화려해졌다.
이젠 오히려 조명을 켜지 않은 낮의 안압지는 수수하게 느껴질 정도.
안압지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대략 10시 정도.
숙소 정원에 조명이 예뻐서 한 번 찍어봤다.
조명이 흩어지고 있다!
그렇게 내일로 셋째날도 저물어간다....
도란도란 게스트하우스는 1박에 오마원이라 둘이서 25000원씩 냈는데, 이번 내일로 중 최고 비싼 숙소였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게스트 하우스에 고작 하루만, 그것도 밤에 와서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나가야 한다니 아까웠다!!
그래도 최고 비싼 숙소였지만 최고로 마음에 든 숙소!!!!!
그럼 이제 내일 넷째날과 마지막날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