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밀엄경 하권
8. 아뢰야즉밀엄품(2)
[아뢰야식]
그때에 금강장은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였다.
아뢰야는 무시(無始)로부터
희론에 훈습(薰習)되었고
업들에 얽매여져서
바퀴 돌기 끝이 없나니.
마치 큰 바닷물이
바람 때문에 물결이 일어
항상 생기고 항상 소멸하나
단멸도 아니고 항상함도 아니듯.
자기의 마음 깨치지 못해
식을 따라 경계를 나타내네.
자기의 마음 깨닫기만 하면
불길이 마른 섶을 태움과 같이
무루(無漏)법을 통달하여서
성인이라 이름 하리라.
장식은 여러 경계를 변하여
세간에 가득하고
뜻은 나와 내 것을 집착하여
사량(思量)하며 항상 흘러 다니고
식들은 차별하여서
자기의 경계를 깨닫네.
쌓고 모으는 것을 마음이라 하고
두루 쌓아 모은 것을 뜻이라 하고
깨닫는 것을 식이라 하니
5식이 현전의 경계를 취하네.
눈병 난 이가 털 바퀴를 보고
보는 데 따라서 미혹함같이
빛깔과 비슷한 마음 가운데
빛깔이 아닌 것을 빛깔이라네.
비유컨대 마니 구슬이
햇빛과 달빛에 비추어져서
마땅히 나타날 바에 따라
자기 유(類)의 물건을 비 내림같이.
아뢰야도 그러하여서
여래의 청정한 장(藏)이
습기와 화합하여서
변현하여 세간에 두루하시네.
무루와 더불어 상응하여서
여러 가지 공덕 법을 비 내리시니
비유컨대 우유가 변하여서
낙(酪)이나 낙장(酪漿)을 이룸과 같이
장식도 그러하여서
변한 것이 여러 빛인 듯함이
눈병으로 털 바퀴를 보는 것 같고
유정들도 또한 그러해.
악한 습기의 가리움이
장식의 눈 속에 머문 까닭에
모든 빛깔이 아닌 곳에서
보는 바 이러한 모든 빛깔은
아지랑이와 같아서
유와 무를 모두 다 멀리하였네.
아뢰야를 익히어 나타난 바를
그대가 눈과 빛깔[眼色]에 의지하여서
색(色)인 듯한 식심을 내는 것이나
요술의 눈 속에 머문 것 같아.
나부끼고 움직임은 아지랑이와 같고
색들은 모두가 장식이라네.
색들과 습기가 상응하여서
변한 듯하지만 실체는 없는 것.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분별해
여러 가지 혼취(昏醉)와 방일 속에서
앉고 눕고 그리고 미쳐 달리며
불끈불끈 모든 사업 일으키나니.
모두가 아뢰야식이니
성하게 밝은 해가
땅 위에 빛을 펴면
증기는 물같이 흐르고
갈수(渴獸)는 쫓아다니듯
아뢰야도 그러하다.
체성은 실제로 색이 아니나
색인 듯 비슷하게 나타나나니
악각(惡覺)을 허망히 내는 이
자석이 쇠를 당김과 같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정식은 비록 없으나
정식인 듯이 움직이니
이것이 아뢰야식일세.
생사에 끄달리어
여러 갈래로 왕래하나니
내가 아니되 나인 듯해라.
바다에 뜬 물건과 같이
생각 없이 물을 따라 흐르니
아뢰야는 분별이 없이
몸에 의지하여 운동하네.
비유컨대 두 코끼리 싸움을 하되
상처를 입은 것이 길이 물러나
아뢰야도 또다시 이와 같아서
물듦을 끊으면 유전이 없어.
비유컨대 맑은 연꽃이
진흙을 떠나서 희고 고우니
인천(人天)이 모두가 소요하면서
누구나 아끼고 즐겨함같이
아뢰야도 그러하여서
습기의 진흙을 나와
의지를 돌리고 청정 얻으면
불보살의 소중히 하시는 바라.
비유컨대 수승한 보배를
야인은 천히 여기지만
만일 면류(冕旒)를 장식하면
왕에게 정대(頂戴)됨같이
아뢰야식도 그러하여서
청정한 이 불성을
범위(凡位)는 항상 잡염하지만
불과는 언제나 보배로 지녀.
아름다운 구슬이 물속에 있어
이끼에 얽히고 덮임과 같이
아뢰야가 생사에 처해 있음도
습기에 얽히어서 못 나타나.
이러한 아뢰야식에는
두 가지 취상[二取相]이 생기니
뱀이 두 머리를 가졌으나
즐김을 따라 함께 가는 듯.
아뢰야도 그러하여서
모든 색과 상들을 갖추었으니
일체의 모든 세간은
이를 취해 색이라 하네.
악하게 깨달은 이 미혹하여서
계교하되 아소(我所)와 아(我)라고 하며
그리고 있다거나 없다고 하여
마음대로 세간을 지으려 하네.
아뢰야가 비록 변현하나
체성은 항상 깊고 깊은 것
모든 무지한 사람
모두 깨닫지 못하리.
비유컨대 요술쟁이가
요술로 짐승들을 만들어 내니
다니거나 뛰거나 하여
유정인 듯하되 실답지 않아.
아뢰야도 그러하여서
요술로 일체의 세간과
모든 유정을 지으나
체성에 진실이 없어.
범부는 알 수 없고
허망하게 취착을 내니
미진과 승성(勝性)과
유ㆍ무의 다른 분별과
그리고 범천과 장부 따위의
여러 가지 소견을 일으킨다네.
분별은 모두가 뜻으로
세간을 분별하는 것.
이러한 분별의 소견은
본래 실제가 없어.
비유컨대 그림의 물질과 같고
또다시 무지개의 형상과 같고
그리고 구름 속의 물건과
병난 눈으로 털 바퀴를 보는 것과
여인이 거울 속의 얼굴을 보는 듯
꿈속에 여러 색을 보는 것 같고
제궁(帝弓)과 메아리 같고
나무 그림자와 건달바성과 같고
더울 때의 아지랑이의 물결 같고
못 속의 달 그림자 같네.
이러한 모든 헤아림은
아뢰야에서 허망하게 취하니
이들을 관찰할 때에
장식뿐임을 깨치면
즉시에 세간의 모습이
의지한 바인 일체의 법을 통달하여
이 모든 분별의 소견이
즉시에 모두 없어지리라.
아뢰야는 의(意) 따위와
모든 법과 습기의 의지가 되어
언제나 분별심 때문에 흔들리네.
만일에 분별을 떠나면
즉시에 무루도(無漏道)를 이루어
항상하고 변하지 않아 허공과 같으리.
만일 아뢰야에서
삼마지를 얻으면
즉시에 무루법과
여의(如意)ㆍ정(定)ㆍ해탈과
그리고 4무외와
10력과 좋은 방편과
자재와 그리고 신통과
이러한 공덕들을 내어
열 가지의 구경원(究竟願)을 일으켜
뜻으로 이룬 미묘한 몸
길이 의지를 돌려
식계(識界)에 항상 안주하여서
체(體)는 허공의 성같이
망가지지 않고 다하지 않으리.
여래는 모두 밝게 보시니
세간은 증감이 없고
유정은 다시 나지 않고
열반은 없어지지 않네.
이 세계와 다른 세계
똑같이 한 법성이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어쩌면 세상에 안나오셔도
법성은 본래로 상주하여서
상견(常見)도 아니요, 단견(斷見)도 아니네.
만일에 해탈을 얻으면
유정계가 소멸된다 할진대
이는 여래의 모든 지성(智性)과
3세의 부처님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평등을 얻지 못하리.
만일에 열반에 들면
유정계가 소멸된다 할진대
뉘라서 괴로움을 떠나서
유여(有餘)와 무여(無餘)를 얻으리.
마군과 사견을 항복 받는 일
모두가 마땅히 허망한 말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모든 수승한 관행자(觀行者)
만일 해탈을 증득하면
그 몸은 상주하리라.
영원히 취온(取蘊)을 떠나고
모든 습기를 멸해 버리니
비유컨대 뜨거운 쇠를
찬물에 던져 넣으면
뜨거운 김은 제거하였으나
쇠의 본체는 망가지지 않아.
여러분 마땅히 알라.
아뢰야는 바다와 같아
언제나 희론 따위의
추중(麤重)한 바람을 맞아
5법과 3자성과
모든 식의 물결이 상속하니
있는 바가 모든 경계에
그 모양이 나부끼고
뜻 없는 속에서
뜻인 듯하나 실체는 없네.
만일 깨달으면 모두 공한 것
의(依)를 돌리어 항상 다함이 없어
밀엄에 머물러 달무리같이
그림자 시방에 나타나리라.
마땅히 알라. 아뢰야식은
온법의 조림(稠林) 속에 운행하나니
말나(末那)가 앞에서 인도가 되고
의식은 능숙히 결단해 아니
색 따위 일체의 모든 경계와
그리고 다섯 가지 식신(識身)들이요
근(根)과 경(境)과 더불어 화합하여서
현전의 경계를 분별하나니
자기의 경계로 취할 바이며
모두가 이것이 아뢰야라오.
장식은 수(壽)ㆍ난(煖)ㆍ촉(觸)과
더불어 화합한 성품이고요
말나는 이 식에 의지하였고
이 식은 또 다시 의(意)에 머물러
나머지 다섯 가지 알음알이는
또다시 자기 근[自根]에 머문다오.
심의(心意)와 모든 식
온법에 안주하여서
업습(業習)에 얽매인 채로
끝없이 흘러 도나니
이렇게 있는 바 업은
모두 탐애(貪愛)를 말미암으니
이미 법으로 몸을 받고
다시 업으로 법을 지어
이 몸을 버리고
다른 몸 받으니
앞뒤로 인(因)에 의하여
천천히 행하여 물벌레 같네.
심(心)과 그리고 모든 심소(心所)
상속하여 제취(諸趣)를 내고
다시 더욱 적집(積集)하여서
모든 온법의 숲 속에 머물러.
수(壽)ㆍ난(煖) 그리고 식이
만일 몸에서 떠나면
몸은 깨달음 없음이
나무나 돌 같으리.
장식은 심(心)이라 하고
아(我)를 집착함이 의(意)요
능히 모든 경계를 취함이
식(識)이라 부른다네.
업을 채집(採集)하는 것이 심이요
의는 두루 채집하는 것이요
의식은 능히 두루 아는 것
5식은 현전에 분별하는 것
심은 능히 몸을 지니고
말나는 모든 갈래에 착(着)하고
의식은 능히 두루 깨닫고
5식은 자기의 경계를 반연해.
장식으로써 원인을 삼아
다른 식들이 이에서 나고
의ㆍ의식은 반연하는 바를
간단(間斷)없이 흘러 도나니[流轉].
5식은 또다시 증상연(增上緣)들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생겨나는 것
자기 근에 딸린 일같이 섬김은
이것이 증상(增上)인 까닭이라오.
이 몸은 기시(起屍)와 같고
더운 날 아지랑이 같네.
인연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니
허망도 아니요 진실도 아니네.
수(受)에게 끄달린 바 되어
성품이 공하여 아(我)가 없나니
의(意) 등의 모든 전식(轉識)은
심과 더불어 함께 생기고
5식은 또다시 의식을 따라
의지하는 까닭에 일어나나니
이렇듯 일체의 시간에
대지(大地)와 함께 움직이네.
아뢰야는 애(愛)에게
훈(熏)되어 증장(增長)하니
자신이 증장하고는
다시 다른 식을 증장해
연이어 끊이지 않음이
물 푸는 도르래 같네.
모든 식이 있는 까닭에
여러 갈래가 생기었으니
이러한 여러 갈래에
식은 다시 자라나서
식과 세간법들은
다시 서로 인이 되어
비유컨대 강물의 흐름
앞뒤가 끊이지 않고
싹과 종자도
상속하여 잇따라 나니
각각 모습의 차별
분명히 나타난다오.
행하는 식도 그러하여서
세 가지가 화합하고는
또다시 서로서로 화합하여
차별된 모습이 생겨나나니
이렇듯 흘러 돌아서
항상 끊임이 없네.
안팎의 모든 법
모두 이에서 생기니
어리석은 이 유심(唯心)인 줄 모르나
그대들은 부지런히 관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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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밀엄경_8. 아뢰야즉밀엄품(2), 아뢰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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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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