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본생심지관경 제6권
7. 염신품(厭身品)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출가한 보살마하살이 세간을 떠나서 아란야에 머물러 그 마음을 조복하고 때[垢] 없는 행을 닦음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이 보살이 텅 비어 한적한 곳에 머물러 스스로 이 몸에 대하여 어떤 관(觀)을 지어야 하나이까?”
이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중생을 위하여 큰 동정심을 일으켜 여래께 성지관묘행법문(聖智觀妙行法門)에 들어감을 청하여 물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잘 들어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노라.”
“그렇게 하십시오, 세존이시여. 듣기를 원하나이다.”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자세히 관찰하면, 이 샘이 있는 몸은 37가지 청정하지 못한 더럽고 악한 것이어서 사랑할만한 것이 못되며 견고하지 못한 것이니,
마땅히 이 몸을 보기를 아직 굽지 않은 질그릇같이 보라.
밖에는 여러 가지 빛나는 금과 은과 7보로 교묘하게 꾸며 장엄하고 안에는 똥과 더러운 갖가지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꽉 채우고서 두 어깨에 걸머지고 길을 따라 가면,
보는 이는 모두 사랑하고 즐거워하지만, 그릇 안에는 정결하지 못한 것이 가득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섯 마리 검은 뱀이 항상 이 그릇 안에 있는데, 한 뱀이 움직이면 그릇이 곧 파괴되어 독하고 해로운 악취를 마침내 견딜 수 없으니,
세간 사람이 그 몸을 장엄하는 것이 저 색으로 곱게 칠한 것에 정결하지 못한 것을 담은 그릇과 같은 것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를 마음의 병이라 하고,
풍병(風病)과 황담병(黃痰病)과 심화병[癮病]은 몸의 병이라 하는 것인데,
안팎의 여섯 가지 병이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이,
마치 저 여섯 마리 뱀이 그릇 안에 살면서 하나가 움직이면 그릇이 곧 깨지는 것과 같아서, 한 가지 병만 발생해도 몸이 곧 덧없어지는 것이다.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이 텅 비어 한적한 곳에 처하여 이 몸을 관찰하는 것을 제1부정관상(不靜觀相)이라고 한다.
출가한 보살은 밤낮으로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더럽고 청정하지 못하여 마치 죽은 개[狗]와 같다고 보니,
왜냐 하면 저 몸이 또한 부모의 정결하지 못한데서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뭇 개미들이 개미집에 편안히 머물 때, 흰 코끼리가 밟아서 집이 곧 부서지는 것과 같이 보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 집은 이른바 5온(蘊)의 몸이요,
흰 코끼리는 염마라사(琰魔羅使)이며,
몸이 다음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코끼리가 집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제 이 몸이 이마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가죽과 살과 뼈, 골수가 함께 서로 화합하여 그 몸을 이룬 것이니,
마치 파초(芭蕉)가 그 속은 실함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에 강한 힘이 없다고 관(觀)하니,
가죽과 살은 담장에 칠한 듯이 얇으며 억만의 털은 풀이 땅에 난 것과 같아서, 미세한 바람이 털구멍으로 드나드니 어느 지혜 있는 이가 이 몸을 즐기겠는가?
찰나 찰나에 노쇠함이 점점 더하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독사를 길러 해침을 당하는 것과 같이 보니, 내가 이제 비록 음식과 의복으로 이 몸을 돋우고 기를지라도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필경에 다시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비유하면 마치 원수가 거짓으로 친구가 되어 그의 틈[便]을 기다렸다가 독약으로 저의 목숨 뿌리를 끊는 것과 같아서,
내 몸도 이와 같이 본디 진실 된 것이 아니므로 마침내 덧없는데 이른다고 보니,
거룩하게 여겨 사랑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이, 마치 물거품이 비록 묘하고 좋은 유리나 구슬빛 같지만, 찰나의 인연이 일어났다 없어지면 덧없음과 같다고 보나니,
함이 있는 생각마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까닭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물 위의 물방울이 비록 아름답고 미묘한 유리구슬 모양이지만, 찰나의 인연으로 생겼다 없어져 항상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니,
함이 있는 생각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건달바(乾闥婆) 성이 비록 모양은 나타내지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보니,
이제 나의 몸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그림자처럼 보니,
나의 몸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있기는 하지만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비유하면 마치 나라 밖의 강성한 원적 같아서,
이제 내 몸도 또한 이와 같이, 이 번뇌라는 원적이 선근을 침략한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썩은 집은 비록 수리(修葺)하더라도 반드시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사랑하는 마음을 더할지라도 반드시 덧없음을 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원수의 나라 성읍(城邑)이 가까우면 인민이 항상 두려움을 품듯이,
이제 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덧없는 원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한량없는 섶이 불에 태워지더라도 이 맹렬한 불은 일찍이 만족함이 없는 것처럼,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탐애의 불로 5욕의 섶을 태울지라도 그 마음이 자라나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새로 낳은 아들을 자비한 어머니가 어여삐 여겨 항상 지키고 보호하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만일 병든 몸과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면 곧바로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본성이 청정하지 못하다고 보니,
비유컨대 마치 어떤 사람이 숯[炭] 빛깔을 싫어하여 모든 방편을 베풀어서 물로 씻더라도 한량없는 시간이 지나면 검은 빛은 옛날 그대로이며 나아가 숯이 다하더라도 끝내 이익 되는 것이 없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샘이 있고 청정하지 못하므로 설령 바다 물로 미래세가 다하도록 씻을지라도 이익 됨이 없는 것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기름으로 섶을 적시어 불로 태우는데 큰 바람을 만나면 그 기세를 끊을 수 없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5온(蘊)의 섶에다 탐애(貪愛)라는 기름을 적시어 성냄의 불을 놓으면 어리석음의 바람 기운이 쉬지 않고 분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악한 질병과 같다고 보니,
404가지 병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며,
또한 대장(大腸)과 같이 8만 4천의 벌레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덧없는 곳이니 숨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곧 덧없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무정물[非情]과 같나니 정신과 알음알이가 쉽게 벗어나서 기와나 돌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며,
또한 강물과 같나니 찰나에 흘러서 잠시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기름 짜는 것과 같나니 일체의 일에 대하여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의지할 데 없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은 것과 같기 때문이며,
구호할 이 없는 것이 마치 개구리가 뱀에게 먹힌 것과 같기 때문이며,
밑 없는 굴[無底窟]과 같으니 마음[心]과 마음의 대상[心所]인 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요,
항상 만족함을 알지 못하니 5욕락에 대하여 마음에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요,
항상 자재롭지 못하니 단(斷)과 상(常) 2견(見)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비록 양육의 은혜를 입더라도 주인을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죽은 시체와 같으니 낮과 밤으로 거의 소멸하고 무너지기 때문이요,
오직 모든 괴로움을 받으니 일체의 곳에서 참된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요,
괴로움이 의지하는 바가 되니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몸에 의지하여 머무르기 때문이요,
빈 취락(聚落)과 같으니 이 몸 가운데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마침내 텅 비어 고요한 것이니 치우치게 헤아려서 집착하여 멋대로 그리기 때문이요,
골짜기 가운데 메아리와 같으니 모두 이 허망한 것이 나타난 바이기 때문이요,
또한 배와 같으니 만일 뱃사공이 없으면 떠다니다 가라앉기 때문이요,
또한 큰 수레에 재물과 보배를 싣고 운전하는 것과 같으니, 왜 그런가? 큰 수레[大乘]를 타고 보리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은 밤낮으로 관찰하여 이와 같은 몸일지라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중생들이 생사의 바다를 벗어나서 저 언덕에 이르도록 하고자하기 때문이니라.”
이때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신 뒤에, 미륵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행을 닦으면 이를 곧 출가한 불자가 본 바의 법요(法要)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불자가 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기 위해 아란야에 머물러 이와 같이 37관(觀)을 닦으며,
또한 남을 가르쳐 이와 같은 법요를 닦게 하며,
풀어 말하고 쓰며 받아 지니고 읽고 익혀서 일체 나와 내 것이란 집착을 멀리 여의고,
영원히 5욕의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함을 끊으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의 마음을 빨리 성취할 수 있어서 큰 보리를 구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세간에 있는 보배임에랴?
현재의 몸이 반드시 구경에 일체 여래의 금강지인(金剛智印)을 성취하여 위없는 도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6도만행(度萬行)에 빨리 원만함을 얻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이때 모임 가운데 8만 4천의 새로 뜻을 발한 보살들이 세간을 깊이 싫어하여 대인력(大忍力)을 얻어 위없는 도에서 다시는 물러나지 않았으며,
3만 6천의 선남자와 선여인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어 법안이 청정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