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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 제5권
12. 신족품(神足品)
이때에 최승(最勝)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에서 나아감[進]도 있고 물러남[退]도 있나이까?
또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켜서부터 부처님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부모의 포태에 처해 있지도 않고 언제나 화생(化生)하게 되었으며,
또 신족으로써 모든 부처님 국토에 노닐되 또한 국토라는 생각이 없나이까?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낱낱이 분별하시어 장차 오는 세상 모든 보살의 도를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그 나아갈 바를 알게 하여 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할지니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낱낱이 분별하겠노라.”
최승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즐거이 들으려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초지(初地)의 근(根)ㆍ역(力)이 성취된 것]
“만일 어떤 보살이 보시ㆍ지계ㆍ인욕을 행하고 마음으로 기억하는 생각이 있거나,
정진ㆍ선정ㆍ지혜의 온갖 법에서 생각을 일으키고 뜻에 집착하며,
혹은 세계에 있어도 세계라는 생각이 없거나,
중생이 있는 것을 보아도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거나,
가고 오고 하는 것이 있음을 보아도 가고 오고 한다는 마음이 없거나,
현재가 있는 것을 보아도 현재라는 뜻이 없거나,
집착과 단멸(斷滅)이 있는 것을 보아도 집착이나 단멸한다는 마음이 없나니,
이것은 바로 초지(初地)의 근(根)ㆍ역(力)이 성취된 것으로,
곧 열 가지 법(法)과 상응해야 하느니라.
[열 가지 법]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여래의 거룩한 덕[神德]은 한량할 수가 없고,
그대로의 한 모양[一相]으로 걸리는 바가 없으며,
정각(正覺)의 명호는 염착을 보지 않고,
온갖 법이 상도(常度)에서 지남을 보지 않으며,
평등하게 삼승이 나타나 나아가는 바를 보지 않고,
세계에 집착하여 명호를 이해하지 않으며,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고,
이른바 이름과 모양[名相]이요,
일체지(一切智)라 이르는 것도 또한 법계라고 이름하나니,
도(道)를 품고 오기 때문에 그 뜻을 돕고 보호하여 그 마음을 상하지 않는 것이니라.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이 모든 법이란 역시 처소가 없어서,
와도 또한 그가 어디서부터 온 곳을 알지 못하고, 가도 또한 어디로 소멸하는가를 알지 못하나니,
보살이 계율ㆍ인욕ㆍ정진을 행함도 역시 그와 같아서,
계율에도 또한 계율이 없고 인욕에도 또한 인욕이 없으며, 정진에도 또한 정진이 있음을 보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지키면 항시 그의 단점을 보완하나니,
가령 계율을 깨뜨리는 것을 보아도 원망하지 않고 계율이 완전히 갖추어진 것을 보아도 기쁘게 수용(受用)하지 않나니,
이것을 바로 보살이 계율을 성취한다 하느니라.
보살은 인욕을 행해도 마음이 더하거나 덜하지 않나니,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의 몸을 가져다 갈갈이 찢는다 하여도 마음을 견고하게 가져서 무너뜨릴 수 없으며,
보살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을 갖추어 잘 지혜를 사유하여 그 집착과 아주 없음[着斷]을 생각하되 마음에 둘이라고 품지 않으나 일어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약간의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모든 죄와 복에 대하여 평등하여 둘이 없고,
다시 3향범당(向梵堂)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사유해야 하나니,
공의 이치와 상(相)과 원(願)이 합한 것을 보지 않고,
상과 원도 또한 공과 합한 것을 보지 않으며,
무원도 공과 상이 합한 것을 보지 않고,
공과 상도 무원과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또한 합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무상도 공과 무원이 합한 것을 보지 않고,
공과 무원도 무상과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또한 합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과거ㆍ미래ㆍ현재에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최승아, 보살의 신족은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염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용(龍) 종류의 경계도 불가사의하며,
또한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세간을 여의지도 않으며,
오가면서 돌아다니되 도무지 머무르는 곳이 없고,
원(願)과 상(相)의 모든 법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보살은 앞으로 나아가며 그 도과를 닦나니,
성스러운 도는 자연(自然)이어서 가장자리나 언덕[邊岸]을 보지 않으며,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 단서를 구한다면 성현의 법에 대하여 곧 스스로 손상하는 것이니라.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의 계율[戒]ㆍ다문[聞]ㆍ지혜[慧]ㆍ보시[施] 등 여섯 가지는 청정한 법이라 이치가 깊디깊어 범행(梵行)을 닦게 되는 것이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덕의 근본을 닦게 되면,
이 깊은 법과 미묘한 요의를 얻게 되며,
무여멸도(無餘滅度)에서 멸도를 취하고 중생을 가르치되,
가고 오고 하는 끝이 없어야 비로소 도(道)라고 하느니라.
[보살의 업]
보살은 실제로 애욕(愛欲) 가운데 들어가 근원을 관찰하고 그를 위하여 설법하며,
때로는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 들숨ㆍ날숨을 끊고 영원히 남음이 없으며,
몸이 부풀어 모든 깨끗하지 못한 것이 새어 나오면, 중생으로서 보는 이는 덧없다는 생각[無常想]을 일으키느니라.
또 중생에게는 안정[定]도 있고 산란[亂]도 있음을 관찰하고 마땅함에 따라 나투어 보이며 해탈을 얻게 하고,
혹은 위의(威儀)와 도품(道品)의 법으로써 온갖 중생을 가르치되 그의 무거운 짐을 제거시키느니라.
신령한 지혜[神智]의 다섯 가지 법이 바로 보살의 업이요,
18가지 미세(微細)함도 바로 보살의 업이며,
16가지 금강(金剛)도 바로 보살의 업이요,
21가지 계율은 성현이 닦을 바이나 바로 보살의 업이며,
수왕(樹王) 아래에서 34가지 법을 사유하는 것도 바로 보살의 업이요,
보시나 계율 등에서 나[吾我]를 보지 않는 것도 바로 보살의 업이며,
과거ㆍ미래ㆍ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분별하는 것도 바로 보살의 업이니라.
[보살이 닦는 경계]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이 닦는 경계는 헤아리기 어렵나니, 그 보응을 알아야 비로소 도에 나아갈 수 있느니라.
그 오는 것이 있다면 인(因)과 연(緣)이 합함을 따르나니, 소리가 공중으로부터 오면 이식(耳識)이 가서 듣느니라.
언교와 서소(書疏)는 참된 것도 아니고 실제도 아니며, 인연 따라 합쳐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지고 떨어지느니라.
인연이 합치면 곧 합하고 인연이 흩어지면 곧 흩어지나니, 흩어져도 무엇으로부터 흩어지는가를 스스로 알지 못하고 모여도 무엇으로부터 모이는가를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이때에 최승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하고 장하시옵니다. 쾌히 이 법의 갖가지를 연설하셔서 분별하셨고, 인연의 본말을 말씀하셨으며,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큰 공덕의 갑옷을 입고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큰 도의 뜻을 내게 하셨으며,
보살로서 공업(功業)으로 나아갈 바와 여래 명호의 열 가지 덕의 뜻도 찬탄하셨으므로 모든 모여 와 있는 이들이 다 함께 듣게 되어 알았사오니 여래의 지혜 업은 걸리는 바가 없나이다.
만일 어떤 보살이라도 이 법을 듣는 이면 음쇠(陰衰)와 모든 번뇌[諸蓋]가 영원히 녹아 없어지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통달하지 않음이 없게 하셨습니다.
저희들의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시작하여 여래께서 가르치신 도의 가르침을 받들면서 좇고 순숙(純熟)한 행으로 감히 방일하지 않겠으며,
보시하며 뜻을 고르고 항상 온갖 문자(文字)와 장구(章句)의 이치를 분별하여 모두 다 앞에 나타나 있게 하며,
마음으로 평등함을 품는 것이 마치 허공이 덮어 주듯 하겠습니다.
행한 바는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면서 온갖 것에 두루하고 그 근원을 따라서 깨우치고 교화하며,
언제나 4등(等)으로써 중생에게 가피하여 감로를 먹게 하고,
온갖 성내고 원망함과 결사(結使)를 없애 버리며,
10법(法)을 놓아 버리고 3독을 여의며,
그 아홉 가지 고뇌와 산란한 생각의 법과 사마(死魔)의 티끌이 사람의 마음을 상해하는 것을 뽑아내어 영원히 남음이 없게 하며,
12인연의 근본은 치(癡)로부터 행(行)에 연(緣)이 되어 생ㆍ노ㆍ사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분별하고,
다시 연기(緣起)가 취향하는 어리석음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노(老)ㆍ병(病)ㆍ사(死)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음을 사유해야 하겠습니다.
종류에 따라 그 근원을 살피고 그런 뒤에야 약을 주면 지니는 마음이 견고하며,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밝게 살펴 이것이 선행(善行)이 되게 하고,
거듭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내닫지 않게 하오며,
더럽고 흐린 온갖 생각을 다시는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최승아, 보살이 널리 펴고 베푸는 언교는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성취하는 바도 많으며,
저 중생들 보기를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듯 하나니,
때에 맞게 돕고 기르며 더하거나 덜하는 뜻이 없느니라.
항시 정견에 있어 이학(異學)을 따르지 않고, 대중 안에 있을 때는 사자왕(師子王)과 같이 몸 속의 땅ㆍ물ㆍ불ㆍ바람을 사유하느니라.
땅이 움직이면 곧 물이 작아지고,
물이 움직이면 곧 불이 작아지며,
불이 움직이면 바람이 작아지고,
네 가지 법이 움직이면 모든 뜻[情]이 쇠미(衰微)하여져 정신은 그 몸을 떠나나니,
일시적인 종친(宗親)이거늘 그 무엇을 믿을 것이 있겠느냐?
오직 착한 법[善法]만이 기댈 수 있을 뿐이니라.
[깊이 관(觀)하는 법]
다시 깊이 관(觀)하는 법을 사유해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께서 노니시는 정수삼매의 근본을 수순하면 위의를 잃지 않고,
있고 없음과 새어 없어지는 행을 분별하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의 일을 초월하여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가 그 마음을 물들이지 못하고,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을 헤아려도 도무지 처소가 없느니라.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뒤바뀐 소견의 마음을 품고 와서는, 보살이 행한 법칙(法則)을 힐난하느니라.
또는 1겁으로부터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1주(住)를 이어 받나니,
보살이 말한 언사(言辭)는 막힘없어 능히 막을 수 있는 이가 없나니,
그러므로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행한 바는 미칠 수 있는 이가 없으며, 비유로써도 견줄 수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것은 모두 보살이 신족으로 변화하여 움직이고 시설한 바이기 때문이니라.
가서 시방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섬기고 공경하고 공양올리며,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렀고 도달한 데서마다 곧 중생들을 위하여 도법(道法)을 일으켜 나타내며,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재난을 제거하고, 모든 원수들이 있어 고뇌를 만나게 되는 것도 저절로 소멸하느니라.
[권속이 성취되는 까닭]
권속이 성취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두가 교만과 젠 체함을 버리기 때문이니라.
혹은 때로 대중 가운데 있을 때는 그 소리가 막힘없이 환히 통하니 마치 범음(梵音)과 같아서,
3부 대중으로 하여금 그 뜻한 바와 소원을 얻게 하며,
나아가 무위의 궁극의 자리에 이끌어 멸도하게 하느니라.
또한 마치 큰 용이 그지없는 구름을 일으켜 삼천대천세계에 비를 내리면, 온갖 곡식과 초목이 두루 윤택하고 때에 따라 더욱 자라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하나의 음성을 연창(演暢)하여 8해탈(解脫) 법의 맛의 물로써 도법(道法)의 가르침을 펴 삼천세계로 하여금 널리 그 제도를 입게 하며,
그 해탈한 이의 뜻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아서, 안과 밖이 청정하느니라.
또 신족과 금계의 법률로써 스스로 몸을 영락(瓔珞)으로써 장식하고 온갖 상호[衆相]가 빛나는 것이 마치 순금으로 된 산과 같으며,
지나는 곳에서 저마다 그 알맞는 곳을 얻게 하고 그 법을 들은 이는 믿음이 돈독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다시 중생으로 하여금 각의삼매(覺意三昧)에 들게 하고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기고 날고 꿈틀거리는 형상 있는 무리로 하여금 스스로 전생 일을 알게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본래 익힌 단서를 깨달아 고통이 온 까닭을 알게 하느니라.
이로 인하여 모두가 보살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정수(正受)를 받들어 좇아 수행하느니라.
이때에 법을 들은 중생들이 마음을 써서 부지런하면 부처님의 위신을 이어받아 오고 나아갈 데를 분명히 알았으며,
그의 멀고 가까운 데를 따라 모두 다 오고 나아가서 청정하고 미묘한 도량에 이르렀으며,
도량에 이른 이는 그 뜻이 견고하여 두려운 바 없는 데에 들어가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 뜻이 구경(究竟)이 되었으며,
근성이 영리한 중생은 혹은 하루ㆍ이틀ㆍ사흘, 나아가 이레에 이르러 그 몸을 버리고 목숨을 마치고는 모두 천상에 가 났고,
그 덕이 순수하게 익고 행에 결함이 없는 이는 곧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 났느니라.”
[각의삼매의 찬탄]
천상에 난 중생은 스스로 천상의 여러 가지 꽃과 여러 가지 향과 저절로 있게 되는 공양거리를 가지고 와서 공양하였으며,
모든 대중과 와 모여 있는 이들에게 뿌린 꽃은 허공에 그대로 있어 모두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변화하여 저절로 보배의 교로대(交露臺)가 되었으며,
큰 음성을 내어 스스로 찬탄하였다.
“저희들은 좋은 이익으로 쾌히 이런 복을 받았고 이에 이 각의삼매를 만나 삼천대천세계로 하여금 그 소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쾌히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다시 향과 꽃으로써 따로 최승보살에게 공양하였다.
“이제 어진 이의 은혜를 입어 이 각의삼매를 만나게 되었고 저희들의 몸으로 하여금 모두가 함께 경사스런 기회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 어떤 중생이라도 각의삼매를 얻어 듣고서도 돈독히 믿지 못한 이면 이 사람이야말로 전생에 이 삼매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이때에 세존께서는 와서 모여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이 삼매를 수행하여 내가 오늘날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과거의 수없는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과 미래의 부처님들도 모두 이 각의삼매를 닦았느니라.
삼매의 위덕은 한량없고, 그 이름만 듣는 이도 모두 다 보살의 큰 마음을 일으켜 다시 헤아릴 수도 없고,
4부 대중도 모두가 이 삼매정의를 체득하며,
다시 백천의 와서 모인 이들도 곧 그 자리에서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다시 각화정의삼매(覺華定意三昧)의 광명을 놓아 저 삼천대천세계의 지옥ㆍ아귀ㆍ축생의 무리를 비추었으므로 온갖 고통이 소멸하여 모두 인도(人道) 중에 도로 태어나 스스로 전생 일을 알았다.
이때에 자리에 있던 4억의 대중들도 이런 서응(瑞應)을 보고 저마다 근심하고 싫증을 내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태어나면 죽음이 있되 모두가 인연을 말미암으며 여기서 죽으면 저기에 나니, 서로 이끌고 관련되어 끊어지지 않느니라.
그것은 음욕이 그 근원이 되나니, 이것은 탐애(貪愛)를 말미암느니라.
우리들은 욕망이 없는 나라에 나서 이에 이 각의삼매정의정수(覺意三昧定意正受)를 닦게 되기를 바라노라.’
이때에 세존께서는 모여 있는 이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서방으로 여기서 수없는 부처님 세계를 지나서 부처님이 계시니, 명호는 무량수(無量壽)이시니라.
그 국토는 청정하여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고 모든 것에 다 동일한 마음을 지녔으며, 연꽃 가운데에 나고 부모의 정욕(情欲)으로 인하여 나지 않느니라.
순전히 이들은 동남(童男)이며 또한 여인의 형상이 없고 대소변이 없으며, 선열(禪悅)의 즐거운 법과 상념이 없는 식[無想念識]으로써 밥을 삼고, 같이 서로 공경하고 생각하는 것이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나니,
거기에 가 나고자 하면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때에 4억의 대중들은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서원을 세우고 그 국토에 가나기를 구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선 곧 그 형상 그대로 각의삼매 광명을 놓아 그 국토를 비추시어 4억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국토의 여래 세존과 화생(化生)한 보살들을 보게 하였으니,
그 나라는 넓디넓었고 순수한 금ㆍ은ㆍ유리(琉璃)의 온갖 보배가 섞여 이룩되었으며, 3악도(惡道)와 8난의 고통이 없었다.
그 나라를 본 뒤에 이 4억의 사람들은 그 몸의 수명에 따라 모두가 동시에 그 국토에 나서 이 각의삼매를 닦게 되었으니,
이것은 바로 본래의 서원으로 원을 일으킨 까닭이었다.
각의삼매가 감동(感動)하는 덕(德)은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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