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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바수밀보살소집론 제5권
5. 사대 건도(四大揵度)
또 세존께서 “비구여, 물질이 끊어짐 없고 지혜도 역시 아는 바가 없다. 끊어짐이 없으므로 욕애(欲愛)가 다하지 않고 고통의 근원을 끊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으니 어떤 것을 물질이 끊어짐 없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지혜도 역시 아는 바가 없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끊어짐이 없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욕애가 다하지 않음이라 하는가?
어떤 이는 “제 모양[自相]으로 끊는 지혜와 지혜가 상응하여 저 제 모양인 모든 결박을 관찰하여 남음 없이 영원히 끊어 없애고 그로부터 항상 화합(和合)을 생각하며, 스스로 끊는 지혜로 모든 결박을 제거하여 그로 하여금 욕애가 없도록 하나니 색욕(色欲)을 뽑아버리매 모든 결박에 다시 묶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세속도(世俗道)로써 끊는 지혜와 제일의 도로써 저 세속의 도를 아는 이에게는 결박이 끊어지게 되나니 그 결박이 없어지면 제일의 도로써 모든 결박을 끊어서 저 욕애가 다해짐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4제(諦)의 도로써 알고 사유(思惟)의 도로써 끊나니 4제의 도를 알아 사유로 끊을 도를 없애서 다하면 욕애가 다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몸 진리[身諦] 자리는 곧 앎과 지혜의 자리이며, 끊는 지혜로 베푸는 자리의 욕애(欲愛)가 다 정지된 자리로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 물질에서 분별하여 물질임을 알되 저 물질을 또한 무상한 것으로 알며, 괴로움ㆍ공(空)함ㆍ내가 없음으로 안다. 저것은 공하고 나는 없으나 항상 어리석음을 따르나니 저 무상함ㆍ괴로움을 없애면 다시 애착이 없고 저 욕애가 다하는데, 그와 같이 스스로 어리석음만 따르고 자기 애착을 제거하지 아니했음을 안다.
무명(無明)이 끊어지면 남는 애욕이 없으며, 몸이 죽어 목숨이 다하면 몸ㆍ이름ㆍ인식이 제거되고 그와 같이 있지 않다는 등의 괴로움까지도 다하게 된다.
무슨 까닭으로 땅은 굳은 모양이 되는가?
어떤 이는 “그 중에 사법(事法)이 있어서가 아니고 본래 성질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만일 땅의 굳음이 인연 없는 것이라면, 물도 또한 인연이 마땅히 없을 것이다. 물에 굳음이 없는 것은 그와 같이 땅이 없음으로 인한 것이며, 혹 어느 때에 물이 되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땅에 인연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이는 “굳지 않을 인연이 있어서이지, 재과(財果)가 상응하여 그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재(財)에 인연이 있지 않으면 곧 항상함이 있다. 온갖 상응하여 서로 같은 종류와 다른 종류가 여러 곳에 유전하여 어느 때에는 있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없기도 하다.
또 땅이 곧 그 사실로서 굳음에는 굳은 결과가 있다.
[문] 부드러운 것이 굳은 것이 되는 것을 일찍이 보았다. 그러므로 굳음에 인연이 없다.
[답] 온갖 4대(大)가 혹시 굳음이 있고 실함이 있고 부드러움이 있어서 인연으로 굳음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부드러움과 굳음은 땅이 인연이 되며, 불ㆍ바람도 역시 그와 같다.
땅 종류의 굳은 모양을 굳지 않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가?
어떤 이는 “할 수가 없다. 혼자서 제 모양을 사유(思惟)하여도 모르고 사유하고 한량없이 사유하여도 생각만 막히며, 물과 불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했다.
4대를 일시에 함께 생기게 하여 많은 수가 되게 할 수 있는가?
[답] 가능하다. 우발화(優鉢花)를 바람의 모양으로써 아나니 거기에 하나의 4대가 있다.
거기에 4대가 있는가?
어떤 이는 “하나의 4대가 있으면 곧 4대가 있나니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하나의 4대가 있으면 4대가 있다는 것은 마침내 하나가 있지 않으면 넷도 없게 하려는 것인가?
어떤 이는 “하나가 있으면 4대가 있다”고 말했다.
세존께서 또한 온갖 물질에는 곧 4대가 있으니 물질이 4대로 말미암아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문] 그것은 다만 물질을 설명한 것이니 그것은 물질에 대한 말이다. 만일 그대의 경에서 말한 것과 같으면 곧 4대가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둘이 불 속에서 잘 단련된 후에는 이에 부드러워지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이 없으면 또한 부드러워질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그렇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하나가 있으면 넷이 있다. 만일 땅에 물이 없으면 곧 무너짐만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무너지는 것이 여기저기에 있다고 하려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일체에 두루 있지 않다.만일 일체에 두루 있다면 들에는 물이 있을 수 없고, 바람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곧 더 불어남이 있는가?
[답] 그 중에 자라나는 것이 여기저기에 있는가?
또 그것은 정해짐이 있지 않고 온갖 장소에 두루 있지 않으며 없을 만한 곳도 얻을 수 없다.
무슨 까닭으로 4대를 따뜻한 법이라 이르고 차가운 법이라 이르지 않는가?
어떤 이는 “만일 4대가 차가운 법이라면 곧 여기저기에 있어서 동시에 따뜻함이 있고 차가움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이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 곧 여기저기에 없나니 그러므로 추위와 더위가 있는가?
어떤 이는 “만일 4대가 이 차가운 법이라면, 그것은 4대가 아니니 당연히 5대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그것 역시 나는 의심한다. 무슨 까닭으로 5대가 없는가?
어떤 이는 “따뜻한 법과 차가운 법인 큰 사실이 일어나니 그러므로 4대를 당연히 차가움이 아닌 법이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4대는 또한 따뜻한 법이며 또한 차가운 법이다. 만일 따뜻한 법이 없다면 다만 차가운 법이라고만 말했을 것이다.
처음 새로운 안식(眼識)을 당연히 미세하다고 말할 것이니 눈 인식으로 알지 못한다.
[답] 눈 인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감관이 미묘하여 알지 못하는 지혜로 아는 것이 있지 않다.
[문] 저 색(色)이 처음 새로운 것은 모두 볼 수 없는가?
[답] 낱낱을 볼 수 없고 합해서 모인 후에야 볼 수 있다. 몸에 때[垢]도 낱낱을 볼 수 없고 때가 모인 후에야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색이 가장 선명하면 눈 인식을 만든다고 말할 것이니 딴 색을 훈습하여 선명함이 있지 않다. 그와 같은 것을 저해하거나 무너뜨리지 못하거늘, 그 밖의 4대(大)로 만들어진 물질이겠는가?
어떤 이는 “존재할 수 없나니 그것은 여기저기에 있다”고 말했다.
[문] 색처(色處)의 처소가 첨복화(瞻蔔花)의 향기가 매우 향기롭고 좋은 것과 같은데, 어찌하여 “처소가 없다”고 하는가?
어떤 이는 “존재할 수 없다. 4대가 불어나는 4대의 인연은 저 4대에 의한다”고 말했다.
또 존재할 수 없다. 4대 중간에 만일 존재할 수 있다면, 곧 거기에 만들 물질이 없을 것이요, 그는 곧 첨복화 향내가 있지 않으며 첨복을 보게 되지 않음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아서 이 몸은 첨복화 향내로써 거기에서 생기어 조금의 회전이 있지 않다.
또 세존께서 “불이 들과 숲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불이 태운다고 말해야 하는가? 불타지 않은 것을 불태운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불타지 않은 것을 불태운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만들어진 물질인 불에 의하여 불태운다고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불타지 않고서 타는 것이 있지 않다. 만일 불태워서 타버린다면 곧 불탈 것이 없으리니 이는 변역(變易)하는 법이며 세속의 기수[數]로 만들어진 바이다. 불이 불태운다 함은 들이나 숲을 말한다”고 말했다.
다시 “불은 타는 바가 없으나 닿기만 하면 곧 불태우며, 만일 닿지 않으면 태우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일어나는 것을 불태움이라 말해야 하는가? 꺼지는 것을 불태움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꺼짐은 불탐에 해당한다고 그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나 불이 들이나 숲을 태우는 것이 불탐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문] 저것이 생기면 곧 불이 타오르는 불을 생각하게 됨이 있는가?
어떤 이는 “불은 불태우는 바가 없나니 그것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고 말했다.
빛깔[色]과 아는 모양이라는 것과
굳음과 많고 적음이며
하나의 따뜻함과 차가움 있음과
물질 머무름과 두 모양 불탐[燒]이네.
온갖 불은 모두 다른 바가 있는가? 만일 타는 바가 있으면 모두 불인가?
[답] 혹 어떤 불은 불탐이 있지 않기도 하나니 과거의 불과 미래의 불은 나무 안에 있고, 비벼 생긴 불은 집에 있고 화신(火神)은 사당에 있다.
자못 타는 것으로서 불 아닌 것이 있기도 하는가?
[답] 그대는 차가운 것을 말하는가? 그를 불태우는 것이 불이 아니겠는가? 말한 바 뜨거운 더위와 치열함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다.
자못 불이 타는 바가 있는가?
[답] 저 지은 바에 의하여 불이 현재에 있으니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의 불이다.
자못 불도 아니고 불타는 것도 아닌 것이 있는가?
[답] 위에서 말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곧 그런 내용이다.
무슨 까닭으로 나쁜 4대(大)에서 미묘한 물질이 생기는가?
어떤 이는 “만들어질 물질을 반연함이니 저 4대에 의하여 곧 빛깔이 생기며, 빛깔은 저 빛깔을 반연하고, 냄새는 저 냄새를 반연하고, 맛은 저 맛을 반연하나니 그러므로 이리저리 증가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4대가 증가하여 생긴 물질이며, 다시 딴 사실 때문에 저것이 곧 수승함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4대를 반연하여 생긴 물질은 한 인연의 모양이 아니다. 저것에 응하여 수승함 있는 것이 한 줄의 거문고는 높고 낮음이 곡조 소리와 노래에 따라 동일함과 같으며,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각기 다름이 있고 글자도 또한 다른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4대의 대상이 각각 다름이 있나니 그러므로 4대가 물질과 더불어 동일하지 않다.
[문] 어떤 사람이 물질을 보면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과 더불어 동일하지 않는가?
[답] 그것은 같은 색(色)이 아니니 혹 좋고 나쁨이 있다. 빛깔에 의하기도 하며, 혹 냄새에 의하고, 혹 맛에 의하며, 또한 약간의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을 보기도 하나니 유리ㆍ운모(雲母)ㆍ방염(方鹽)ㆍ고마리(苦摩利)ㆍ첨복화(瞻蔔花)의 자연적인 것과 같다.
자연적이란 줄어듦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증가함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증가함도 있고 줄어듦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이는 “증가하지도 줄지도 않나니 더함이 있지 않으며 줄어듦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저 사실을 살펴보건대, 또한 더함도 있지 않고 또한 줄어듦도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러한 말을 하지 아니해야 한다.
평등하게 생긴 4대가 이리저리 서로 부딪치는데, 부딪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닿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각각 모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닿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고 애초부터 제각기 서로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닿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3매(昧) 중의 색(色)은 거기에 닿는 생각이 있다.
감관이 4대에 의하는데, 감관이 이전하여 내려감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감관이 이전하여 올라감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으며 또한 이동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만일 내려감이 있거나 올라감이 있다면 곧 이동함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그것은 곧 산란함이니 수레바퀴가 굴러서 항상 머무르지 않음과 같은 이치가 성립될 처소가 없으며 저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또 머무름이 있는 모양을 관찰해야 한다. 그 중에 높고 낮은 미지근(未知根)이 있다. 그러므로 근(根)ㆍ역(力)ㆍ4대는 이 세계에서의 괴로움법이다.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이 4대에 의지하나니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을 하(下)라고 말해야 하는가, 상(上)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또한 하도 아니고 또한 상도 아니며 그것은 모두 모인 것이다. 만일 하가 있고 상이 있다면, 곧 흩어짐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섞여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수레바퀴가 굴러서 항상 머무르지 않음과 같다.
만일 1색(色)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중간에서 색에 다시 색이 있는가?
어떤 이는 “얻을 수 있다 해도 또한 변(邊)이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어서 모두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문] 만일 그가 중간이 있다면 곧 제일의(第一義)의 남음 있는 중간이 아니다.
또 얻을 수가 없고 공하여 있는 바가 없으며 가장 미세한 물질의 소리ㆍ냄새ㆍ맛을 얻는다.
어떤 이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모여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지금 미세한 물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곧 미세한 것이 되는가?
어떤 이는 “색(色)이 가장 미세하며, 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은 혼자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만일 있다면 낱낱이 다르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곧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있다. 만일 조금 있는 바라도 일체 ‘나’라고 함이 없다. 나도 역시 그와 같아서, 색은 색습(色習)을 떠나지 않고서 말할 수 없다.
[문] 만일 4대가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면, 저 있는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이 저 색에 닿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또한 저 색을 떠나서는 빛깔이 곧 무너진다”고 말했다.
[문] 4대가 무너지면 색도 또한 무너짐이 있는가?
[문] 4대가 무너지면 색이 무너지고 4대도 또한 무너짐을 어떻게 아는가?
[문] 희망이 무너지매 소의(所依)도 무너짐을 또한 보나 희망은 무너지지 않는다.
또 저것이 닿지 않는다. 만일 닿는다면 곧 미세하고 윤활한 갱락(更樂)이 될 것이다.
[문] 만일 몸 감관에 닿으면 저것은 미세하고 윤활한 갱락이 아니다.
[답] 몸 감관에 닿는 것으로써 미세하고 윤활한 갱락 있는 것 아닌가?
그 자리를 어떤 인식으로써 아는가?
어떤 이는 “두 인식을 사용하여 아니 눈 인식과 뜻 인식[意識]이다”라고 말한다.
또 혹 인식으로써 알지 못하기도 한다. 왜냐 하면 저것은 식처(識處)의 머무름이 아니요,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ㆍ법으로 만들어진 자리이다. 소리를 귀 감관에서 온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저 중간에서 들은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온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순풍에서는 소리를 듣지만, 역풍은 커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문] 만일 순풍(順風)에서 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역풍에서는 듣지 못하는가?
어떤 이는 “저 중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큰 시중(市中)에서는 소리가 매우 멀리 들리어 사방에서 다 듣는다”라고 말했다.
[문] 회전이 빠르면 곧 방위가 없고[無方] 방위가 있으면 곧 교만해진다. 돌아서 가지와 바퀴 없는 것과 같은 그 모양이 바퀴와 같아서, 그 소리가 사면에 두루한 것을 듣게 됨이 한 방울 기름을 물그릇 안에 넣으면 모두 다 두루 퍼짐과 같다.
[답] 가지와 바퀴가 없음을 사람의 향방이 같지 않음을 볼 것이요, 소리가 빠른 것으로써 가게 된다는 내용이 아니다. 만일 소리가 없어진다면 포섭하는 바가 적으리니 저것이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말해야 하는가? 저것이 서로 의지하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문] 사람이 오면 거기에는 곧 소리가 있다. 서로 의지하여 오는 것은 그 소리가 아니다. 만일 소리가 귀 감관으로부터 온다면 서로 의지하여 온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서로 의지하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서로 의지하여 온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저것은 곧 각각 서로 의지하여 온 것이 있고 소리 때문에 귀 감관이 아니다.
만일 조금의 수승함이 있는 것이면
닿는 감관은 한 물질만은 아니다.
1미(微)가 갱락(更樂)에 의지하며
의지하여 머무르고 소리와 상응하네.
냄새와 코 감관을 온다고 말해야 하는가? 저 맡음에서 냄새를 맡음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 오는 냄새가 처소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코로 냄새를 맡는 것이 코 감관에서 온다면 그가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말해야 하며 서로 의지하여 가지 않는다.
[문] 느낌에 의하여 온갖 생각을 내나니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말해야 한다. 장라살라화(藏羅薩羅花)를 거스르는 바람에서 그 냄새를 맡는다면, 그 냄새가 코 감관에 가까이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코 감관에 가까이한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가까이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만일 가까이한 것이라면 곧 미세하고 윤활한 갱락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가까이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저것에 닿지 않고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맛을 혀 감관에서 온다고 말해야 하는가? 저것에서 맛을 안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혀 감관이 처소가 없이 맛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맛이 혀 감관으로부터 온다면 그를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말해야 하는가? “서로 의지하지 않고 온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해야 할 것이니 서로 의지하여 맛이 있음을 알지 못함이 아니다.
혀 감관을 맛보면 가까움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가까움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가까움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만일 가까움이라면 곧 미세하고 윤활한 갱락(更樂)이 될 것이다.
또 가까움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가깝지 않음 때문에 저것이 포섭된 바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몸 감관의 갱락과 몸 감관은 갱락을 온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거기에 머무른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온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저것이 몸 감관이 아니면 닿음 그것이 처소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갱락이 몸과 더불어 온다면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말해야 하는가? 서로 의지하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서로 의지하여 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각각 서로 의지한다”고 말했다.
또 서로 의지하여 오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저것이 서로 의지하면 곧 만들어진 물질이기 때문이다.
볼 수 있는 것의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스스로 나타났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可見]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눈으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나타나서 사람에게 보여지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볼 수 없는 것[不可見]인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위의 내용과 같아서 다름이 없다.
상대함이 있는 법[有對法]인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대하여 머무르기 때문에 상대함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선택을 하기 때문에 상대함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공(空)의 도리를 깨달아 알기 때문에 상대함이 있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법이라고 한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위와 같아서 내용은 다름이 없다.
그 밖에 딴 물질의 처소를 얻을 수 있는가?
어떤 이는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모여진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물질의 처소라는 생각으로 집착을 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삼세에 머물러 처소가 있는 줄 알면 저 처소와 같다. 이러한 까닭으로 상대할 것이 없는 것은 남지 않았고, 상대할 것이 있는 처소를 만들었다.
공(空)과 공처(空處)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공은 어떤 물질로 헤아릴 수 있는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공은 인식과 물질이 공한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공은 볼 수 없는 물질이니 볼 수 없는 인식[識]의 자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공은 상대함이 있지 않으니 상대함이 있는[有對] 것은 곧 공식(空識)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동할 수 없는 것을 허공이라고 이르니 만들어진 물질은 본래가 공한 것이요, 인식 모양은 또한 미묘한 것이다. 머무를 수 있음, 머무를 수 없음ㆍ머무름 없을 수 있음ㆍ머무름ㆍ푸를[靑] 수 있음ㆍ푸를 수 없음ㆍ푸름 없을 수 있음ㆍ푸름인 그와 같은 네 가지 내용[四義]을 앞에서 이미 설명했다.
무슨 까닭으로 나무가 약간의 종류인데, 그 그늘 그림자가 다르지 않는가?
어떤 이는 “그것은 나무 그늘의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4대(大)로 말미암아 그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늘은 있지 않은 도리이니 어느 곳이나 어둠이 가면 그 처소가 없다. 그것들이 항상 머물러서 옮기지 않는 곳에는 스스로 인식[識]과 생각[想]을 낸다.
냄새와 맛과 갱락(更樂) 나타냄과
상대함 있고, 머물러 옮기지 않음과
인연과 경계가 없어져 다함과
2정(情)과 나무와 그늘이네.
무슨 까닭으로 큰 바닷물이 동일한 짠 맛인가?
어떤 이는 “옛적에 신선과 성인이 주술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바다 속에 중생들의 대변과 소변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저기에 큰 소금산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조수물이 파도를 격동해서 된 것이니 마치 여기에도 물이 물결 쳐서 소금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저 그릇 누리[器]가 저절로 물을 짜게 함이니 여기에서도 그릇이 깨끗하면 물이 깨끗하고 그릇이 깨끗하지 못하매 물이 깨끗하지 못함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4대(大)가 서로 닿으면 각각 소리가 들리는데, 그 도리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4대로 말미암아 그런 도리가 있는 것이나 사실인즉 서로 그가 닿기 때문에 각각 소리가 들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여기에서 소리가 나면 저기에서 메아리가 응하나니 소리의 연속인가?
[답] 본래의 행보(行報)이기 때문이니 마치 진흙을 이겨 질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어떤 이는 ‘전에 이미 메아리 소리가 생겨서 각각 서로 응한 것이요, 중간에 다시 다른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의 소리가 들린 후에 중간의 소리가 있나니 저것으로 하여금 소리 인연이 아니라고 하려는 것인가?
또 저 소리가 들린 후에 중간의 소리가 있나니 저것으로 하여금 소리 인연이 아니라고 하려는 것인가?
또 저소리가 차츰 그 울림이 있기 때문이니 그릇을 두드리면 그릇 안에 곧 소리가 나서 차츰 퍼져 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으며, 신통(神通)이 있는 이가 땅이나 석벽을 모두 통과하면 허공에도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그가 이것은 땅이며, 이것은 허공이라고 어떻게 아는가?
어떤 이는 “만일 최고 방편의 힘을 들여야 할 것은 곧 땅이며 곧 허공이니 말한 바와 같이, 땅에 들어가 솟아나오는 것이 마치 물에 뜨고 들어감과 같다”고 말했다.
물 속에서는 언제나 힘을 쓸 수가 있으나 허공에서는 힘을 쓸 수가 없다.
어떤 이는 “허공은 붙은 데가 없으니 삼매에 들지 않더라도 또한 다시 허공임을 스스로 안다. 땅에 가까운 것과 땅에 먼 것이 역시 허공이다”라고 말했다.
또 뜻과 성품이 회전하면 이름과 물질[名色]이 수승함이 있고 물들어 집착함이 있는 처소가 땅과 같으나 볼 수가 없으며 허공도 역시 그와 같나니 허공은 있음 없는 도리이다.
말한 바와 같이 물들어 집착하는 중생은 허공을 땅이라 생각하고, 땅을 허공이라 생각하나니 저 생각으로 하여금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가 결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문] 그는 곧 제 생각이 무너지는가?
어떤 이는 “그는 생각 때문에 결과를 얻지 않나니 저 생각이 뒤바뀐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허공을 땅이라 생각 하면 곧 무너짐이 있고, 땅을 허공이라 생각하여도 또한 무너지게 된다.
생각 때문에 뒤바뀜이 있음을 이루지 않는다. 만일 생각으로써 뒤바뀜을 이룬다면, 한 집이 같은 모양일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허공으로 땅이라는 생각을 하고 땅으로 허공이라는 생각을 하는 그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이[齒]를 감관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감관과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모든 피와 살이 서로 붙었으면 저 감관과 붙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그는 느낌이 있다. 만일 피와 살이 이[齒]에 붙지 않았으면 저것은 감관에 묶인 바가 아니다.
만일 저것이 느낌이 없으면 “고통이 없음, 부정(不淨)함이다”라고 말해야 하며 “감관에 묶인 바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감관에 묶임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부정을 버림 때문에 때로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부정은 욕심과 함께 일어나 자주자주 축적된다.
[답] 욕심과 함께 일어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그것은 살아감에 대한 이익을 지니고 있다.
허공은 어떠한 모양인가?
어떤 이는 “허공의 모양은 헤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허공의 모양이다”고 말했다.
또 허공은 있음 없는 내용이니 그러므로 저것은 모양이 있지 않다. 존재하는 물질을 관찰하여 허공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또 세존께서 “가[邊]가 없고 끝이 없다. 이 동쪽 세계로부터 헤매면서 반복하는 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 또 “세상은 무한한 것이어서 이를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러한 말씀을 하실 적의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아주 없음[斷滅]과 항상함이 있다[有常]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세계가 끝이 없고 한정이 없어서 현재에도 한없이 많다”고 말했다.
또 중생의 경계는 그러하나 세존께서는 그러하지 아니하시니 그 나고 죽는 방편과 중생의 한계가 있지 않다.
무수하게 모인 것에 두 결과가 있는 것이, 두 돌이 서로 마찰하면 곧 불이 나는 것과 같다.
어떤 이는 “저 하나가 모인 것이 불의 원인이 아니다. 4대의 소리는 소리로 인하여 소리가 있듯이, 두 사실이 합하고 모이어 불의 인연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저것이 혹 모인 것이 있어서 곧 소리 나는 것이 있으며, 혹 불이 나는 것이 있나니 그러므로 그와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인연의 힘으로써 물질과 물질 아닌 것이 곧 있게 되나니 인연을 그와 같은 것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마음과 같아서 그에 혹 색습(色習)이 있기도 하고 혹 소리가 있기도 하며, 혹 상응하기도 한다.
하나의 맛과 둘이 서로 닿음과
생각 없음과 신통이며
이[齒]와 두 모양이 있는 그것과
끝이 없고 한 있지 않음이네.
극미(極微)가 허공과 비슷하더라도 “허공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허공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만일 허공이라면 곧 왕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긴 것이 수승하기 때문에 곧 왕래가 있다.
어떤 이는 “허공이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무너짐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이 아니라면 또한 무너짐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극미는 자연적인 허공이다. 처음 자리와 둘째의 자리에서는 곧 수승함이 있어서 각각 다름이 있거니와, 수승함이 없다면 그러기에 허공이다. 그러므로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지각을 낼 적에는 저 삼매가 무너지나니 그러므로 그가 스스로 느낄 처음 시기에 곧 무너진다. 그러므로 허공이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허공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상응하면 공(空)이 있지 않다.
만일 이 극미가 항상 머무른다면 그것은 상응하여 머무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머물러 상응할 처음 시기에는 머무름이 수승하다. 만일 머무르지 않는 중간과 상응한다면 곧 공함이 아니요, 만일 중간의 모양에 머무르면 상응함이 또한 공함이 아니고 상응함이 또한 공함이니 그러므로 상응함은 공하다고 말해야 한다.
극미를 “방위[方]가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방위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말한 바와 같이, 저 극미를 모아 방위가 곧 성취된 것이며, 말한 바와 같이 “또한 방위가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또한 방위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만일 극미라면 모인 것이 한량없을 것이며, 그에 줄어듦이 있을 것이다.
또 방위가 있음이 없고 방위 없음도 있지 아니하며 공하여 있는 바가 없어서 갖추어 말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와 저기에서 무슨 까닭으로 안의 6입(入)과 3입을 죽음이라고 말하는가?
어떤 이는 “그것은 무기(無記)에 반연함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그것은 죽음의 뿌리[死根]다”라고 말했다.
또 그것은 돌아서는 경계이니 도로 죽음의 모양이 있다.
하나의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을 일으키면 저것을 “하나의 원인이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수한 원인이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하나가 상응하여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문] 어찌하여 결과가 무너지지 않아도 상응과(相應果)가 있으며 모양이 저절로 무너짐에 과보가 없게 되는가?
[문] 자연으로 과보를 얻음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거기에 상응하여 곧 과보가 있나니 그러므로 상응함은 무너지지 않는가?
[답] 비록 상응하나 무기(無記)이니 그러므로 상응하는 원인이 없다. 상응하여 원인을 짓는 그것도 역시 없다.
어떤 이는 “하나의 원인이 4대(大)의 원인이 된 것이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어찌하여 4대가 무너지지 않는데도 무너지는 과보가 있는가?
[답] 사실과 상응(相應)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무수한 원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빛깔은 빛깔의 원인이 되고 냄새는 냄새의 원인이 되며, 맛은 맛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또 “원인한 바가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상응함이 무너지면 곧 과보가 무너지나니 이 빛깔과 상응함이 다르고 냄새와 상응함도 다르다.
[문] 많은 것들이 하나의 극미(極微:아주 작은 분자)와 상응하는가?
[답] 하나의 극미에 많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의 수효가 있다. 그 극미에는 6대승(大勝)이 있음을 알 수 있나니 빛깔의 원인에도 각각 상ㆍ중ㆍ하가 있음을 알 것이다.
어떤 이는 “섶에서 나온 불과 소똥에서 나온 불과 같다”고 말했다.
사실의 더함과 덜함을 관찰하면 제 모양에서도 또한 더함과 덜함이 있는가?
[답] 상ㆍ중ㆍ하에 각각 수승함이 있다.
어떤 이는 “불에 또한 불을 증가하나니 불이 적과 같다”고 말했다.
만일 햋빛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면 모두가 다 인연이고 결과는 무너짐이 있다. 불의 제 모양을 얻을 수 있는가? 혹 제 모양이 없는가?
어떤 이는 “얻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열(熱)로써 열을 아는 것이 아니며 상ㆍ중ㆍ하 그것은 각각 마땅한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소리를 “공한 것이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공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공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소리가 공했다면 소리는 포섭될 바가 없을 것이니 사실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과 마음 지님이 함께 무너짐이 있을 것이며, 또한 소리가 스스로 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니 그러므로 저것은 구경(究竟)이 아니며 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근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소리가 나고 메아리가 응한다. 만일 둘이 함께 사실이라면 그 이치는 옳지 않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괴로움이 없는가?
어떤 이는 “공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소리가 머무는 곳이 있다면 마땅히 오래 머무를 것이다. 왜냐 하면 소리는 무너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지 않으니 그러므로 소리는 공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공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소리가 머무는 곳이 있다면 곧 자주자주 들릴 것이며, 만일 자주자주 들리지 않는다면 그러기에 공한 것이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만일 소리가 자연적으로 공했다면 처음의 곳과 제2의 곳과 제3의 곳에서도 곧 수승함이 있어서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소리를 공했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소리가 머무는 곳이 있다면 중간과 상응하여 또한 머무를 것이니 그것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소리를 방위가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 소리를 찾아 보면 방위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방위가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소리를 찾아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또한 동쪽에서 소리가 있고 그 밖의 다른 방위의 소리가 아닌 것을 안다”고 말했다.
[문] 저 소리를 취하지 않고 혹 소리의 처소를 구하면 거기에 곧 소리가 있는가? 머리가 아프다고 달하면 그 아픈 소재를 알지 못하더라도 아픔이 생긴 곳은 그가 또한 보아야 하는가? 그와 같이 소리의 처소가 있으면 저 소리가 또한 나타나야 한다.
또 방위가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소리들이 함께 나기 때문이며 방위가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함께 소리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이 방위와 저 방위가 성립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성립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해가 처음 뜰 적에 그 광명이 동쪽에서 시작하고 빠지는 곳은 서쪽이다”라고 말했다.
[문] 만일 염부리(閻浮利)에서 해가 뜨면 울단월(鬱單越)에는 해가 지며, 만일 염부리에서 해가 지면 울단월에는 해가 뜨나니 그러므로 성립되지 않는다.
[문] 일체 사방의 중앙에 수미산(須彌山)이 있나니 이는 울단월이 성립된다.
[문] 이것 역시 동일하지 않나니 수미산이 1변에 있으면 하나는 북이고 하나는 남이며, 동방ㆍ서방도 역시 그러하며, 북방에서 북방으로, 혹은 동으로, 혹은 남으로 따르나니 그러므로 울단월도 성립되지 않는다.
또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아니해야 한다. 왜냐 하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며 사색과 관찰을 내기 때문에 곧 지혜가 있다. 저것은 또한 머무르지 않는 성질이 성립되며 물질이 혹 없기도 하다.
어떤 이는 “항상 있는 과거도 역시 그러하고 미래와 현재도 역시 그러하다”라고 말했다.
[문] 그 인연은 무슨 일을 분변하려는 것인가?
[답] 인연은 장애가 있다. 또 저 머무름을 관찰하면 물건 따위의 질과 그 업(業)이 공하여 있는 바가 아니며, 또한 새로운 것을 만들지도 아니하기에 평등한 업이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물을 뜨겁게 할 적에 먼저 위에서부터 뜨겁고 아래가 뜨겁지 않는가?
어떤 이는 “솥에 닿는 인연이 먼저 뜨거워지고 차가운 기운은 아래로 흐른다”고 말했다.
또 먼저 아래로부터 뜨거워짐은 도리어 불꽃의 많고 적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니 불꽃이 먼저 위로 가기 때문에 냉기(冷氣)가 밑에 머무르게 된다.
둘의 극미(極微)와 받아들임과
수대(水大)와 모든 감관이며
두 소리와 동쪽 방위이며
물의 뜨거움이 밑에 있음이네.
하나의 물질이 앞서거나 뒤서지도 않고 사방에 모두 나타나는 것이 있기도 하는가?
어떤 이는 “없다. 하나의 물질인 극미는 작아서 볼 수가 없고 방위도 성립되지 않나니 그러므로 없다”고 말했다.
다시 네모 모양으로 만든 공[毱]을 공중에 던지면 그 공이 혹은 동쪽으로 떨어지고 혹은 서쪽으로 떨어지며 혹은 남쪽으로 떨어지고 혹은 북쪽으로 떨어진다.
무슨 이유로 저 달군 철환(鐵丸)은 부드럽고 가벼운가?
어떤 이는 “그것은 불과 나무의 힘으로 된 것이며 또한 바람의 힘으로 된 것이니 저 바람이 힘이 가볍게 하며 물의 힘이 부드럽게 만들고 불의 힘이 깨끗하게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저 철환뿐만 아니라 그 밖에 가벼움이 있는 모양은 곧 저절로 무너지며 저 성질은 저절로 틀림없이 뜨거워진다”라고 말했다.
또 자연인 관찰에서 가벼움과 무거움도 자연이며, 그 중간에 혹시 가벼움을 보기도 하고 혹시 무거움을 보기도 한다.
저 부드럽고 미세한 땅의 원소 따위가 저 선명한 것을 낸 것은 땅의 원소로 말미암아 생긴 것인데, 불과 더불어 상응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마땅히 4대가 만든 푸른 빛깔과 4대가 만든 바 누런 빛깔과 같은가?
어떤 이는 “푸른 빛깔이 미묘하여 혹 누런 빛깔을 짓기도 하나 푸른 빛깔이 푸르고 누런 돌과 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그 밖의 4대가 만든 푸른 빛깔과 그 밖의 4대가 만든 누런 빛깔은 혹 미묘함에 의하고 혹 누런 것에 의하며, 하나의 빛깔이 미묘함에 서로 의지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푸르고[靑] 붉음[赤]과 그와 같은 푸르고 흰 것과 그와 같은 누렇고 붉음과 그와 같은 누렇고 흰 것과 그와 같은 붉고 흰 그것을 여섯이라고 말한다.
[문] 4대가 만든 신맛과 같이 저 4대가 만든 짠맛입니까?
어떤 이는 “혹 4대가 만든 신맛이 곧 4대가 만든 짠맛이니 또한 그 내용이 신 것, 짠 것임을 볼 수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 밖의 4대가 만든 신맛과 그 밖의 4대가 만든 짠맛은 혹은 미묘함이 있기도 하고 혹 신맛에 의하며 혹 짠맛에 의한다.
그와 같이 짜고 쓴 것과 그와 같이 짜고 매운 것과 그와 같이 짜고 단 것, 그와 같이 짜고 더러운 것, 그와 같이 짜고 쓴 것, 그와 같이 짜고 매운 것, 그와 같이 짜고 단 것, 그와 같이 짜고 더러운 것, 그와 같이 맵고 쓴 것, 그와 같이 맵고 단 것, 그와 같이 맵고 더러운 것, 그와 같이 달고 쓴 것은 말한 그 내용과 같다.
땅의 원소가 물의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어떤 이는 “없다. 4대가 다시 4대로 인하여 각각 달라짐이 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땅의 원소가 부드러움이 있을 적에 강한 물건이 녹는 것과 같은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있다.
땅 원소가 불의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어떤 이는 “나무를 뚫어 불을 얻는 것과 같음이 있다”고 말했다.
땅 원소가 바람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있다. 부채에 곧 바람이 있는 것과 같다.
물 원소가 땅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어떤 이는 “없다. 원소에 딴 원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그는 각각 다르다”고 말했다.
또 있나니 강한 것이 녹는 것과 같다.
물 원소가 물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물이 썩어서 오래된 것과 같다.
물 원소가 불의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뜨거운 기운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 원소가 바람의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바람이 바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불 원소가 땅의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부드럽고 굳은 것이 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 원소가 물의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부드럽고 굳은 불이 물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불 원소가 불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있다. 또한 불이 불을 내는 것을 보기도 한다.
불 원소가 바람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바람과 굳은 불이 바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 원소가 땅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밖의 원소가 다시 그 밖의 원솔 인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것은 변역하는 법이다.
다시 있나니 또한 허공에 바람이 모이고 구름끼고 비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바람 원소가 물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부드럽고 굳은 것이 바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 원소가 불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없다. 그 중간에 뜨겁고 굳은 바람이 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 원소가 바람 원소로 인해서 되기도 하는가?
[답] 있다. 또한 허공에 바람이 차츰차츰 빨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지옥[泥黎]에 음(陰)이 도로 지옥의 음이 되기도 하는가?
[답] 있다. 만일 지옥에서 죽으면 지옥에의 음이 앞에 나타나 지옥에서 지옥의 몸을 받는다.
지옥의 음이 축생(畜生)의 음이 되기도 하는가?
어떤 이는 “없나니 그 밖의 갈래[趣]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있나니 지옥에서 죽은 후에 축생의 음(陰)을 받는다. 그와 같은 모든 갈래와 낱낱의 갈래에는 각각 다섯 가지 내용이 있는데, 온갖 4대의 감각은 그 아는 바가 다르다.
[문] 머무름에는 열리거나 닫히는 것이 있다고 하려는 것인가?
또 세속의 모양을 말하자면 중생(衆生)의 4대(大)는 모두가 상대가 있고 온갖 4대는 물질에 의지한다.
어떤 이는 “온갖 4대는 온갖 물질에 의하여 4대로 만들어진 바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3대(大)는 물질에 의지하고 한 바람은 물질에 의지하지 않나니 바람에 의지하여 물질을 얻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땅 원소와 물 원소는 물질에 의지하나니 그 중의 그 4대가 불에 의지하거나 바람에 의지하여 물질을 얻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의 4대와 그 밖의 만들어진 물질임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답] 온갖 물질에 견고함이 있지 아니하며 온갖 물질의 중간이 아니다. 4대를 알려면 취건도(聚揵度)에서 “다름이 있지 않다”고 함과 같다고 말해야 한다.
온갖 방위[方]와 철환(鐵丸)이며
빛깔ㆍ맛과 음(陰)을 가짐이며
저 온갖 아는 법을 껴잡음과
약간의 생각 있음을 알음이네.
몸과 몇 음(陰)과 가짐[特]과 몇 받아들임[入]과 껴잡은 바가 어떤 모양과 감관을 따르는가?
[답] 몸 감관[身根]ㆍ몸이 가짐[身持]ㆍ몸이 받아들임[身入]은 색음(色陰)의 껴잡은 바이며, 4대의 몸ㆍ4지(持)ㆍ4입(入)은 색음의 껴잡은 바이며, 색신(色身)ㆍ9지(持)는 색음의 껴잡은 바이며, 통신(痛身)ㆍ법지(法持)ㆍ법입(法入)은 통음(痛陰:受陰)의 껴잡은 바이다.
상신(想身)ㆍ법지(法持)ㆍ법입(法入)은 상음(想陰)의 껴잡은 바이며, 의신(意身)ㆍ법지와 법입은 행음(行陰)의 껴잡은 바이며, 애신(愛身)ㆍ법지ㆍ법입은 행음(行陰)의 껴잡은 바이며,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법지ㆍ법입은 행음의 껴잡은 바이며, 상신(象身)ㆍ마신(馬身)ㆍ거신(車身)ㆍ연신(輦身)ㆍ17지(持)ㆍ11입(入)은 5음(陰)의 껴잡은 바이다.
색음은 몇 음과 몇 가짐과 몇 받아들임으로 모두 껴잡는 한계가 되느냐 하면, 약간 종류인 색음과 색지(色持)이다. 저 색지ㆍ색입(色入)은 색음의 껴잡은 바이며, 색지ㆍ14지(持)ㆍ10입(入)을 제쳐놓고는 5음(陰)의 껴잡은 바이며, 신산(神山)의 곳ㆍ색음ㆍ18지ㆍ12입은 5음의 껴잡은 바이다.
존자 사리불이 “불꽃이 있으면 불이 있고 불이 있으면 불꽃이 있다. 그러나 불꽃을 보는 곳은 각각 다른 곳이다”라고 말할 적의 그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어떤 이는 “그러한 것은 생긴 말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리저리 중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말한 것이며, 또 속박을 풀어주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말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존자 사리불이 말하기를, “그대 여러분들이여, 목숨과 같이, 아주 따뜻함과 같이 이 법을 마련하되 함과 하지 않음이 아니며 색(色)을 분변하지 않고 색습(色習)을 인해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으니 그 말을 할 적의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
어떤 이는 “욕계와 색계의 성질에서 만든 바이니 그는 방편의 말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욕계와 색계의 성질에서 만든 것으로서 이리저리 걸림이 없는 것이니 또한 방편의 말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3계(界)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이리저리 서로 의지한 것이다.
해를 일광(日光)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일광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빛깔은 빛깔 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만일 빛깔을 덮게 되면 곧 따뜻한 기운이 생긴다. 그림자는 빛의 인연이니 인연이 없으면 빛깔이 곧 생기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따뜻한 기운은 빛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음성은 소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소리도 또한 4대로 인한 것이며, 또한 자연에 인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4대가 서로 인하기 때문에 곧 소리가 있고 메아리가 난다”고 말했다.
울리는 것을 소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소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앞서 이미 소리가 생기었으니 저것은 자연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4대로 말미암아 소리가 있으며 저것이 중간에 생기어 닿지 않는다.
저절로 울린 것은 소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소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며,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그 중간에 본래의 소리는 저절로 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4대로 인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4대가 저절로 울리지 않는다.
온갖 원만한 물질에 저 온갖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도 또한 원만한가?
어떤 이는 “저것이 그 중간에 원만한 것이 아니고 저것이 한 곳에 원만함이 있다”고 말했다.
[문] 만일 원만함이 있다면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도 또한 원만할 것인데 어찌 저것은 원만하지 않는가?
[답] 백색(白色)인 공[毱]이 빛깔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와 같이 저기에 하나의 흰 것만 있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이 없다.
그와 같이 마땅히 원만함이 있는가? 그에 한 곳의 원만함만 있는가?
어떤 이는 “저것은 하나의 빛깔이 원만함이니 빛깔 때문에 빛깔의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머무름에 상대가 있음을 관찰하면 곧 원만함이 있음을 아니 머무름 때문에 곧 빛깔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까닭으로 색법(色法)을 중간 차제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떤 이는 “물질은 무너짐이 있지 아니하고 다시 딴 물질을 내나니 그러므로 거기에 중간 차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 작은 중간에 많은 물질이 생기고 많은 중간에 작은 물질이 생긴다.
심지와 밝음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이는 “만들어진 것이 영원히 다하고 생긴 바가 곧 사라진다”고 말했다.
또 인연이 모이어 이리저리 작은 것이 생기는데, 곧 생기어 머무르고 몸과 더불어 얽힘이 있는가?
어떤 이는 “몸과 더불어 함께 속박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마음과 뜻이 도는 것처럼 물질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또 작은 물질은 한계지을 수 없으며, 물질의 훈습에서 혹은 마음과 뜻이 함께 생긴다. 저것이 회전할 적에 마음과 뜻이 있음을 알게 되나 성품에는 물질이 있지 않다.
왜냐 하면 작음을 인식하는 중간에 많은 물질이 있기도 하니 물질의 성질은 없고 지을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함께 마땅히 머무른다고 말한다.
보리[麥]의 한 싹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음(陰)은 회전함이 있다. 하나의 보리 싹이 저 그림자를 반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림자가 또한 싹을 반연한다.
어떤 이는 “저것이 저절로 회전함을 자연 알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저 몸에는 자연히 음이 있게 됨이, 또한 보리 싹에서 모든 줄기가 생기는 것을 보게 되며, 또한 보리 종자와 그 인연에서 싹이 생기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그 중에서 알게도 되는 것이다.
설령 본래의 보리 인연이더라도 인연이 생기면 소득이 있게 되고 모든 싹이 생기게 된다.
만일 뒤의 인연에서 보리 따위가 생기거나 소득이 있다면, 그림자도 또한 회전할 것이니 그 중에 그 두 인연인 보리인 것임을 알게 된다.
몸ㆍ세계ㆍ빛ㆍ불꽃과 수명이며,
그림자ㆍ메아리ㆍ고요하고 원만한 물질과
인연ㆍ빛ㆍ성질의 얽힘이며
하나의 보리싹 보지 못함이네.
존바수밀보살소집론 제5 4대건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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