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비구경 하권
12. 대화 8
[영원에 관한 일]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집에서 하는 일들 속에서 영원에 관한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영원에 관한 일을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생각하십니까?
본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생각하십니까, 기억으로 생각하십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일찍이 배운 것이 있은 후에 그것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일찍이 배운 것이 있은 후에는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때 본래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때 생각하는 것을 잊습니다.”
“마치 왕이라는 것을 빌려서 그 모습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하는 것]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기억합니까?
만약 처음으로 했던 것이 이미 있어서 기억하는 것이고, 현재 하는 것은 그것을 기억해서 알고 있는 것입니까?”
“과거의 일들은 다 기억해서 알고 있으며, 현재의 일들도 기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단지 과거의 일들만 기억하고 새로운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령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글을 배우는데 기교는 헛된 것입니까?”
“사람이 새로 서화를 배우는데 기억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제자로 하여금 배워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은 어떤 일들에 대해 기억을 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는 대체로 열여섯 가지 일이 있어서 기억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예부터 한 일에 대해 기억을 합니다.
둘째는 새로 배우는 것에 대해 기억을 합니다.
셋째는 큰 일이 있으면 기억을 하게 됩니다.
넷째는 좋은 일을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찍이 겪은 고통에 대해 기억을 하고,
여섯째는 스스로 사유한 것에 대해 기억하고,
일곱째는 일찍이 안 잡다한 일에 대해 기억하고,
여덟째는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이고,
아홉째는 특징에 대해 기억합니다.
열째는 일찍이 잊어버린 것에 대해 기억을 하며,
열한 번째는 기호(記號)에 대해 기억을 하며,
열두 번째는 산술(算術)에 대해 기억하고,
열세 번째는 빚진 것에 대해 기억하고,
열네 번째는 일심(一心)을 기억하고,
열다섯 번째는 독서에 대해 기억하고,
열여섯 번째는 일찍이 부탁받은 것이 있어 다시 보게 되어 기억합니다.
이것이 열여섯 가지 일이 있어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예부터 한 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의 제자이신 아난(阿難)의 여제자인 우바이(優婆夷) 구수단파(鳩讐單罷)는 천억 세 전의 숙명의 일들을 기억했으며, 그 밖의 다른 도인들도 과거의 일들을 능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난의 여제자 같은 이는 많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문득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새로 배운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일찍이 배워서 알고 요량하여도 이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이를 요량하는 것을 보고 즉시 이를 기억합니다.”
“큰일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태자를 세워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는 귀합니다. 이런 것이 큰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생각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초청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에서 그를 귀빈으로 대접합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언젠가 누구의 초청을 받았었는데 지극한 대접을 받았다’고 기억하면 이것이 좋은 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겪은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으면 이것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일찍이 본 바가 있는 가실(家室)이나 종친이나 축생들은 스스로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잡다한 것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만물의 이름이나 안색이나 향취나 초고(酢苦) 등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생각하면 이것이 일찍이 한 잡다한 일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스스로 기뻐서 주위 사람을 잊습니다. 그 가운데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잊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입니다.”
“특징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나 소나 말은 각각 자신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특징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잊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죽게 되면 잊히게 됩니다. 자주자주 혼자 생각해서 이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 일찍이 잊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호에 대해 기억을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글을 배우는 사람은 글자의 차례를 압니다. 이것이 기호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산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함께 요량하여 성취하면 그 모든 책술(策術)을 알아서 분명하게 됩니다. 이것이 산술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빚진 것에 대해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빚이 있으면 마땅히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빚진 것이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이 기억이 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문은 일심으로 여러 생을 내려오면서 수천억 세의 일들을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나는 일심이 기억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서가 기억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임금이 옛날 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이 어느 임금 어느 신하 때의 책인 것이라고 기억하여 말합니다. 이것이 독서가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부탁받은 것이 있어 다시 보게 되어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부탁받은 것이 있었는데 이를 눈으로 보고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탁받은 일이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아시는 일과 가르치시는 것]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일과 처음 시작하는 미래의 일들을 다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가령 부처님께서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신다면 어찌하여 한 번에 제자들을 가르치시지 않습니까? 왜 조금씩 가르치십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나라 안에 의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의사가 있습니다.”
“그 의사는 천하의 모든 약들에 대해 다 알고 있습니까?”
“그 의사는 모든 약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 의사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면서 한 번에 약을 다 줍니까, 조금씩 줍니까?”
“아직 병이 들지 않았는데 미리 약을 줄 수는 없습니다. 병이 들어야 약을 줍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한 번에 천하의 사람들을 다 가르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조금씩 가르침과 계율을 주어서 이를 봉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천상과 지옥에 가는 일]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대사와 같은 사문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세간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임종에 당해서 염불을 하면 사후에 천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한 생명을 살생해도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람이 작은 돌을 물 위에 놓으면 그 돌이 뜹니까, 가라앉습니까?”
“그 돌은 가라앉습니다.”
“백 개의 큰 돌을 배 위에 놓으면 그 배가 가라앉습니까?”
“가라앉지 않습니다.”
“배 위에 있는 백 개의 큰 돌은 배 위에 있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비록 본래 악해도 일시에 염불을 하면 이로 인해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작은 돌이 물에 가라앉는 것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고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몰라서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