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제2권
12. 불설구생경(佛說舅甥經)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유행하시면서 대비구 대중들과 함께 계셨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주 오랜 옛날 무수겁(無數劫) 때에 누이와 남동생, 두 사람이 있었는데 누이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느니라.
외삼촌과 조카는 조정에서 금실이나 비단이나 명주 등 진귀하고 좋은 옷을 짜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 궁중의 창고에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 있는 것을 보고 탐심이 발동하여 서로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옷감 짜는 일에 부지런히 수고하면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모든 창고에 좋고 나쁜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 아는데 둘이서 그것을 가져와 이 가난을 면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는 밤중에 사람들이 다 잠자리에 든 후 땅을 파서 굴을 만들고 조정의 물건을 도둑질했는데 그 물건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 창고를 감독하는 관리가 창고 안에 있던 물건이 줄어든 것을 알아채고 이를 왕에게 알렸다. 왕
은 이렇게 명령하였다.
‘이 사실이 널리 퍼지지 않게 하여 밖의 사람들이 이 외삼촌과 조카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하라. 그리고 왕은 일이 많아서 알지 못한다고 말하라.
관찰해 보면 훗날에는 두렵긴 해도 반드시 다시 또 올 것이다. 그때 경비를 삼엄하게 하여 지키고 있다가 그를 기다려서 그가 오거든 잡아서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창고를 감독하는 이는 명령을 받고 즉시 수비를 강화했다.
그 사람들은 오래 있다가 곧 다시 도둑질을 하러 갔다.
조카가 외삼촌에게 말하였다.
‘외삼촌께서는 나이가 드시고 기력이 약하셔서 창고지기에게 들키면 혼자서 빠져나오실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다시 땅굴을 따라 뒷걸음쳐서 들어가십시오. 만일 들키면 제가 힘이 세니까 외삼촌을 구해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외삼촌이 땅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창고지기에게 들키고 말았다. 외삼촌을 잡은 창고지기가 소리를 지르니, 여러 창고지기들이 조카를 잡으려 하였으나 잡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날이 밝아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서 외삼촌의 목을 잘라서굴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새벽이 되자 창고를 감독하는 관리는 이를 왕에게 자세히 알렸다.
왕이 다시 명령하였다.
‘그 시체를 가지고 나가서 네거리에 놓아 두어라. 그 시체를 보고 울거나 그 시체를 가지고 가는 자가 바로 도둑의 두목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시체를 네거리에 두고 경비를 한 것이 여러 날이 되었다.
그때 멀리서 대상(大商)이 왔는데 사람과 마차가 길을 가득 메우고 함부로 몰아치며 달려 왔다. 그 사람은 양 수레에 땔나무를 싣고서 시끄럽게 달려오다가 땔나무를 그 시체 위에 놓았다.
시체를 지키던 이가 다음 날 아침 왕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알렸다.
왕은 명령하였다.
‘몰래 이를 잘 엿보라. 잘 지키지 못하면 이를 태워서 광목에 싸가지고 갈 것이니 잘 지켜라.’
이때 조카는 아이들에게 횃불을 가지고 뛰놀라고 시켰고, 사람들이 많아서 시끄러울 때 횃불을 땔나무 더미에 던졌다. 땔나무에 불이 붙어 활활 탔는데 시체를 지키는 이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왕에게 알리니 왕은 또다시 명령하였다.
‘만일 그 시체가 다비가 되었다면 지키는 사람의 수를 늘려 은밀히 그 유골을 지켜라. 그 유골을 가지러 오는 자는 도적의 두목일 것이다.’
그 조카는 이를 알아채고 술을 아주 진하게 담가서 시체를 지키는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 은밀히 이를 팔았다.
시체를 지키는 사람들은 연일 밤을 새우고 배도 고파서 술을 보자 사서 마셨는데 너무 많이 마셔서 다들 취해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하여 거기에 잡혀 있던 유골을 술병에 담아 거두어 가지고 가버렸다. 유골을 지키던 이들이 이를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날이 밝으니 왕에게 다시 고했다.
왕은 다시 지시했다.
‘앞뒤로 지켰는데도 결국은 잡지 못하고 말았구나. 이 도둑은 매우 교활한 놈이다. 필경 다시 무엇인가를 도모할 것이다.’
그러면서 딸을 미끼로 내놓았다. 영락(瓔珞) 목걸이와 각종 구슬들로 몸을 장식하고 큰 강가에 있는 방안에 앉혀 놓았다. 반드시 여색을 탐해서 오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여럿이 딸을 잘 모시고 지키도록 하고 딸을 빼앗기지 않도록 잘 살피라고 하였다.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누가 오거든 잡고 소리를 질러 여럿이서 그 자를 잡도록 하게 하여라.’
그 후 어느 날 밤 조카는 밤에 몰래 왕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강에 나무 밑동을 띄우고 물결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큰 소리로 외치면서 급히 달아났다.
지키는 사람이 놀래서 보니 낯선 사람과 나무 밑동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며칠을 계속해서 하니 지키는 사람은 그 일에 길들여져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어 자면서 놀라지도 않았다.
조카는 즉시 나무 밑동을 타고 왕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왕녀는 즉시 옷을 집었다.
조카가 왕녀에게 말하였다.
‘옷을 잡는 것보다는 내 팔을 잡는 것이 나을 것이오.’
그 조카는 흉물스러우면서도 교활해서 미리 죽은 사람의 팔을 준비해 가지고 가서 왕녀에게 내미니, 왕녀는 옷을 놓고 죽은 사람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놀라서 소리를 쳤다. 지키는 이가 잠이 깨었으나 조카는 도망쳐버렸다.
다음 날 왕에게 모두 고하니 왕이 말하였다.
‘그 자가 방편을 쓰는 것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구나. 오랫동안 잡으려고 하였으나 잡지를 못하였도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왕녀는 즉시 임신을 해서 열 달이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남자 아이는 크고 단정했다. 유모로 하여금 아이를 안고 나라 안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게 하면서 만일 아이를 보고 어르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아이를 안고 종일 돌아다녔으나 어르는 사람이 없었다.
조카는 떡 만드는 사람이 되어 떡 만드는 화로 옆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배가 고파 우니까 유모는 어린 아이를 안고 떡 만드는 화로 있는 데로 가서 아이에게 떡을 주려 하였다. 조카는 아이를 보자 즉시 아이에게 떡을 주며 아이를 얼렀다.
유모가 돌아와서 왕에게 아뢰었다.
‘아이를 데리고 종일 다녔지만 가까이 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떡 만드는 화로 옆을 지나가는데 그때 그 떡 파는 상인이 떡을 주며 아기를 얼렀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그런데 어찌 그를 붙잡아 오지 않았느냐?’
유모가 대답했다.
‘어린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우니까 떡 만드는 사람이 떡을 주며 얼렀습니다. 그 사람이 도둑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사람을 잡아오겠습니까?’
왕은 유모에게 다시 아이를 안고 나가게 하고는 여럿이 따라가 몰래 엿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가까이 오는 자는 즉시 데려 오도록 하였다.
조카는 술을 팔고 있다가 큰 소리로 유모와 감시하는 이들을 술집 안으로 불러 들여서 술을 권했다. 이들이 술에 골아 떨어져 누워버리자 즉시 아이를 몰래 데리고 도망가 버렸다. 잠이 깨어 아이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왕에게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다시 말했다.
‘그대들은 정말 어리석구나. 술을 탐하다 취해서 도둑을 잡지 못하고 또 아이까지 잃어버리다니.’
조카는 아이를 안고 다른 나라로 갔다.
그 나라의 왕을 만나서 예를 올린 후 경전에 있는 말을 인용하며 옳은 도리를 설하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벼슬을 내려 대신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지혜와 방편으로 보면 경을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소. 내 신하의 딸이든지 아니면 내 딸을 그대의 아내로 맞는 것이 어떠하오? 원하는 대로 들어줄 터이니 자유롭게 말해보시오.’
조카가 대답하였다.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가령 대왕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들어 주신다면 사실은 아무[某] 나라의 왕녀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왕이 말했다.
‘좋소,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소.’
왕은 즉시 그를 자기의 아들로 삼고 사신을 보내어 가서 그 왕녀를 데려오도록 하였다.
왕은 이를 허락하였지만 한편으로 생각하였다.
‘그 놈은 도둑의 두목으로 아주 교활한 놈인데, 이제 사신까지 보내어 내 딸을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그리고는 그 태자와 5백 명의 기마병을 보내 모두 위엄 있고 질서 정연하게 하였다. 왕은 또 밖에 칙명을 내려 수레와 말을 엄정하게 하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조카는 도둑이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어서 그 나라에 도착하면 그 나라 왕이 반드시 알아채고 자기를 잡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그 왕에게 말하였다.
‘만약 왕께서는 보내온 이들을 보시면 사람과 말 5백 기마병으로 하여금 의복과 말안장을 갖추어 주되 하나도 차이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야 아내를 맞아올 수 있습니다.’
왕이 그 말대로 하자, 즉시 아내를 맞으러 갔다.
왕은 여자와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하여 서로 즐기게 하였다. 250명의 기마병은 앞에 가고 250명의 기마병은 뒤에 가도록 했으며 조카는 그 가운데 있으면서 말을 타고 내리지를 않았다.
왕녀의 아버지는 직접 나와 재빨리 살펴보고는 기마병 가운데로 들어가 몸소 조카를 데리고 나왔다.
‘전후의 방편을 그리하지 않아도 되었네. 이제 잡아서 무엇 하겠는가?’
조카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실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경의 총명함은 천하에 비길 사람이 없네. 경의 소원대로 내 딸을 배필로 맞아 부부가 되도록 하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조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으냐? 이는 나였느니라.
왕녀의 아버지인 왕은 사리불(舍利弗)이었으며, 외삼촌은 조달이었고 왕은 금생의 부왕(父王)이신 수두단(輸頭檀) 왕이었고 어머니는 마야(摩耶) 부인이었으며, 아내는 구이(瞿夷)였으며, 아들은 라운(羅云)이었느니라.”
[라운(羅云): 싯다르타 태자의 아들 라후라(羅睺羅)]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