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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경 하권
8. 정견품[3]
[부처님의 법의 국토]
사리불아, 부처도 또한 이와 같다.
무량한 겁에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닦아서 대법왕이 되어 법의 국토에서 큰 위력이 있다.
여러 제자 중에는 법의 맛[味:眞實]을 아는 자가 있어서 곧 목숨을 잃게 되어도 나의 가르침을 훼손(毁損)하지 않고 모든 하늘과 세간의 사람으로 능히 무너트리는 자가 없으며,
받은 가르침 가운데서 스스로 거역하지 않으며,
또 남을 가르치지 않고 나의 무리 중에서 큰 위력이 있어 가르침을 세우기 위하여 자재롭게 법의 성을 지키고, 나쁜 도둑을 무너뜨려 들지 못하게 하며,
여래가 설한 비밀한 법을 조금 받았어도 모든 원적(怨賊)과 삿된 소견을 가진 자를 향하여 설한다.
사리불아, 여래는 현재 법의 성을 잘 지킨다.
네 사람의 큰 제자는 지혜가 심원(深遠)하다.
지금 나의 법의 성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약 법의 성을 장애하는 자가 있으면 이는 큰 역적으로 법의 성을 깨트리는 자이며, 나의 비밀한 법을 훔쳐 외도를 향하여 설하는 자라고 한다.
이 사람은 항상 나의 곳에 와서 나와 함께 이야기하지만 그 교법(敎法)을 나타내어 비밀한 요지(要旨)를 설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가르친 바를 위하여 교법(敎法)에 출가하고 계를 받고자 구하면 나는 이 사람이 뒤에 마땅히 도를 얻을 것을 안다.
[출가자의 시험]
출가시키어 네 달 동안 시험할 것을 허락한다.
무슨 까닭인가?
법의 성을 지키기 위한 까닭이다.
또 미래세(未來世)의 도둑으로 하여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래는 법의 성을 잘 지키고 방편을 얻게 한다.
이른바 부처의 가르침을 받게 하고 본래의 악과 삿됨을 버리게 한다.
모든 비구의 무리는 모두가 마땅히 환희한다.
허락하여 출가하게 하고 계를 받게 하기를 마치면 하늘과 사람과 세간이 동요시키지를 못한다.
사리불아, 무엇을 시험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외도의 사람과 외도의 법을 즐기는 자이다.
사리불아, 무엇을 이 외도의 법을 즐기는 자라고 하는가?
이른바 유소득자(有所得者)와 아견자(我見者)와 인견자(人見者)와 중생견자(衆生見者)와 탐하는 자와 삿된 자와 상(相)이 스스로 공함에 대하여 마음에 의혹을 낳는 자와 여러 가지의 삿되고 허망한 법을 받아 행하여 제일의(第一義)의 공에 들지 못하는 자와 모든 삿된 도를 행하는 자,
이 사람을 이름하여 외도(外道)의 법을 즐기는 자라고 한다.
사리불아, 여러 가지 빛깔의 옷으로 시험하지 말아라.
혹은 흰 옷을 입은 사람, 혹은 가사를 입은 자로 이와 같은 불선(不善)의 유소득견(有所得見)이 있으면 모두 외도라고 이름한다.
나의 법 중에서 출가하고 계를 받으면 이 사람은 반드시 시험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얻음이 있는 자는 나의 법 중에서는 곧 이는 사견(邪見)이기 때문이다.
이를 도둑이라 하여, 일체 세간과 하늘과 사람 중의 도둑이라고 이름한다.
이를 일체 세간의 원수의 집이라고 하고 모든 부처에 대한 큰 도둑이라고 이름한다.
사리불아, 이 삿된 견해의 사람이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나는 곧 허락하지 않는다.
사리불아, 일체의 법은 무아(無我)이다.
만약 사람 중에서 인가(忍可)를 낳지를 못하고 일체의 법이 공하고 무아(無我)이며 무인(無人)이며, 중생이 없으며, 수명이 없음을 믿고 이해하지 못하면,
나의 법 중에서 받는 공양은 이름하여 부정(不淨)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이는 곧 부처를 공양하지 않고, 법을 공양하지 않고, 승(僧)을 공양하지 않고, 강제로 나의 법에 든다.
모양은 곧 사문이나 마음은 의도이다.
법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리불아, 미래세에 비구가 있는데 마땅히 몸을 닦지 아니하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다.
이 사람은 여래의 설한 것과 여래의 행한 바를 가벼이 여기고 비웃는다.
여래는 항상 제일의의 공에 대해 공경하고 공양하며, 항상 이러한 행을 즐긴다.
이 모든 비구는 여래가 행한 바, 진실한 경계인 필경공(畢竟空)인 법을 가벼이 여기고 웃는다.
사리불아, 그 때 만약 고행(苦行)하는 비구가 있으면 또 함께 가벼이 여기고 웃는다.
지금 나의 제자에 공을 행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 착함을 칭찬하여 그 마음을 위안하지만, 그 때 이 사람은 공(空)을 행하는 것을 경멸하고 다만 견고하지 않음을 구한다.
자아가 있고, 모든 법이 있다고 하는 이와 같은 일을 가져 무리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만약 일체의 모든 법이 공하다고 설하는 자가 있으면 또한 이 사람을 가벼이 여긴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법은 응당 그와 같기 때문이다.
중생의 선근(善根)의 근본된 상을 끊고자 하면 곧 진실한 묘법(妙法)을 나타내어도 세간에 있어서는 받는 자가 없다.
비유컨대 어리석은 자가 전단향(栴檀香)을 가져 더러운 나무와 같다 함과 같다.
사리불아, 가섭불(迦葉佛)이 설하였다.
‘미래세(未來世) 중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여러 제자의 무리가 속인(俗人)을 위하여 제일의의 공을 설하나, 이 때 많은 재가자(在家者)와 출가자(出家者)가 있지만 어리석어 받지 아니하고, 어기고 거스르며 믿지 않는다.
더욱 도리어 비방하여 큰 이익을 잃는다. 이 인연으로써 마땅히 나쁜 길에 떨어진다. 이익으로써 하는 까닭이다.’
[서로 어긋나는 많은 논쟁]
사리불아, 이 때 서로 어긋나는 많은 논쟁(論爭)이 있다. 아론(我論)ㆍ인론(人論)ㆍ중생론(衆生論)ㆍ수자론(壽者論)ㆍ명자론(命者論)이다. 선법(善法)을 원하는 자는 적고 다만 이익을 즐긴다.
실은 어리석으나 스스로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상호(相互) 어기고 거슬러서 항상 함께 다투며 끊어지는 일이 있는 것을 즐겨 원한다.
질투하는 마음을 낸다.
이 사람은 사문(沙門)의 법을 버리고 다만 이익을 구한다.
많은 일을 맡는 것을 즐겨 경영(經營)하는 것이 하나가 아니다.
항상 남의 잘잘못을 찾는 것을 즐기고, 스스로는 그 잘못을 감추고서 공덕을 칭찬하여 설한다.
지금의 비구가 공덕을 덮어 감추고 스스로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 때를 당하면 모두가 함께 무거운 계를 지키고 지니지를 못한다. 밝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생활의 규칙을 깨트리고서도 말한다.
‘모든 법은 공하고 상(相)은 스스로가 공한데 무엇이 능히 짓는 바이겠는가?’
나라(那羅)의 유희(遊戱: 힘을 겨루는 유희)가 사람을 여러 가지로 변하게 하는데 아는 것이 없는 자는 이것을 보고서 크게 웃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유희하는 법의 그 술수가 감추어진 것을 모르기 때문에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고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크게 웃는다.
이와 같이 사리불아, 그 때 진실한 비구가 공적(空寂)의 법을 설하여도 목숨이 살기만을 구하는 자는 모두가 함께 비웃는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불법(佛法)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공의 법을 설함을 듣고 놀라고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사리불아, 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안온(安隱)한 곳에서는 쇠퇴하고 고뇌하는 마음이 생하고, 쇠퇴하고 고뇌하는 고에서는 안온한 마음을 낸다.
이 사람은 전도(顚倒)되어 선법(善法)에는 역행(逆行)하며, 악법(惡法)에는 순행(順行)한다.
사리불아,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간탐(慳貪)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많이 품고 세 가지 착하지 아니한 뿌리[不善根:貪ㆍ瞋ㆍ癡]를 갖추어 행한다.
[계율]
사리불아, 나는 계를 지닌 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250경(經: 비구의 250계에 대한 가르침)을 설한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곧 세간의 작은 인연으로 해서 재가자(在家者)를 향하여 설하고 내지는 써서 속인에게 보인다.
사리불아,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설하여 말한다.
‘모든 법은 공하고 상(相)은 스스로 공한데 누가 능히 짓겠는가?’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도 간탐의 번뇌를 없앨 수가 없다. 하물며 능히 무명(無明)을 끊겠느냐?
사리불아, 이 때 계율을 지닌 비구는 잘 배우지를 못한다.
여러 설법을 하는 자도 잘 배우지를 못한다.
경을 독송하는 자도 또 잘 배우지를 못한다.
사리불아, 어떤 것을 이름하여 계율을 지닌 비구가 잘 배우자를 못한다고 하는가?
여래의 경 중에서 설한 것에 세 가지 배움[三學]이 있다.
선계학(善戒學)과 선심학(善心學: 定學)과 선혜학(善慧學)이다.
이 세 가지 배움 중에서 잘 배우지를 못하고 다만 경을 많이 들은 인연을 가져 남을 업신여긴다.
이 사람을 곧 선법을 장애하는 자라고 한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법답게 묻고 답하지 못한다. 하물며 필경의 공과 얻는 바가 없는 가운데서 능히 정진을 내겠는가?
사리불아, 이 때 파계한 비구는 즐겨 속인을 위하여 일을 관장하고 사명(使命)을 잘 수행하고, 병을 낫게 하는 법을 만들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생활한다.
사리불아, 너는 지금 이 악인을 보아라. 나의 법 중에서 출가하고 계를 받아서 공양을 받게 되었음에도 도리어 나를 원수로 삼는다.
사리불아, 이 때 사천왕(四天王)과 석제환인(釋帝桓因)과 대범천왕(大梵天王)과 내지 백천만억(百千萬億)의 모든 하늘이 나의 법 가운데서 이와 같이 무너트리는 자가 있음을 보고 모두가 크게 근심하고 울며 눈물을 떨어뜨린다.
사리불아, 이는 진실로 마땅히 나에게 의지하여야 함에도 속인을 위하여 경영하는 사무(事務)를 관장한다.
무슨 까닭인가?
석가모니불의 제자와 내지 모든 하늘과 용(龍)과 귀신도 더욱 마땅히 그를 위하여 심부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은 나의 제자를 위해서는 심부름을 한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친근하는 속인이, 만약 능히 닦아서 모든 법의 제일의(第一義)인 공에 통달한다 해도 그럴 리는 없는 것이다.
사리불아, 그 때 파계한 비구는 내지 한잔의 물을 얻기 위하여 여러 속인에게 불법(佛法)을 연설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많아서 많은 독경(讀經)을 즐긴다.
외경(外經: 俗書)의 이익을 탐하여 청정하지 아니함을 행한다.
이 사람은 능히 소유함이 없고 필경은 공인 법을 믿고 이해함을 얻겠느냐?
능히 사문의 과위(果位)를 얻겠느냐,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불아, 만약 비구가 있어 곧 옷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醫藥)을 얻고 지계(持戒)가 청정하여 뭇 번잡함 속에서 산란한 언어를 즐기지 않고,
외경(外經)의 뜻을 탐하지 않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함이 머리에 붙은 불을 구함과 같이 하고,
일심으로 8정도(正道)를 부지런히 행하여도,
이 사람까지도 공하고 소득이 없는 법에 더욱 통달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이 어리석은 사람은 깊은 원(願)이 없고 믿음과 이해가 없음이겠는가?
사리불아, 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여래의 위없는 뜻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나의 정법(正法)을 깨트리고 스스로 자기의 몸을 위하여, 또 남을 위하여 대쇠뇌(大衰惱)를 짓는다.
이와 같은 큰 도둑은 세간의 원수이다.
이 경 중에서 마땅히 멀리 떠나야 한다고 설한다.
이 사람은 부처에 대해서 아직도 은혜를 모른다.
스스로 우리들이 출가한 바를 생각하고, 이 법 중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곳은 곧 마땅히 행하지 않는다.
이 까닭에 사리불아, 여래는 미래세에 이 악을 그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을 설한다.
혹 어떤 비구는 받은 계를 깨트리고 훼손하여 위의를 깨트리고 또 정견(正見)을 깨트린다.
이 경을 들음을 얻고서 두려워 계를 어긴다.
왜냐 하면 파계한 사람은 마땅히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성인(聖人)의 상(相)에 머물고, 가사(袈裟) 안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경을 듣고 마음이 환희하는 자, 이 사람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를 공양하고 불도(佛道)를 수호한다고 한다.
왜냐 하면 사리불아, 이를 불도의 진실한 뜻[佛道眞際]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으로서 사문의 법을 얻고자 하는 자는 이 경을 듣기 위하여 마땅히 백천만억의 유순(由旬)을 지나야 한다.
왜냐 하면 모든 불여래는 아주 오랜만에 세간에 나왔고, 세간에 나왔다고 하여도 때가 있어서야 이를 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