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하권
[살차 니건자]
그때 살차니건자(薩遮尼犍子)가 그의 많은 제자와 5백 권속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기수숲 가리라(迦梨羅) 강당의 부처님 처소에 나아와서 세존께 절하고 인사 말씀을 드리면서 아뢰었다.
‘제가 사문 구담께서 환술과 방자[蠱道]로써 미혹을 일으켜 남의 제자를 변화시킨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이제 몸소 보았습니다.
문수사리가 나의 대중 모임을 파괴하여 사문 구담의 제자를 더 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삿된 행을 받아 가지기 위해 다시 나에게 와서 나의 교훈을 받지 않을 뿐더러 풍송(諷誦)하지도 않고 나에게 말을 하지도 않고 명령을 받아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그때 샤야말(闍耶末)이라는 도인(道人)이 대중의 모임 속에 앉아 있었으니, 이는 살차니건자와 두터운 사이라,
말하는 도중에 니건자를 보고 타일렀다.
‘그만두시오. 부처님께 청정하지 못한 뜻을 내지 마시오.
부처님의 여러 제자와 문수사리의 마음이 어지럽히는 뜻을 품었다고 할 수 없네.
그대가 이 때문에 이익 없는 이치를 얻어 언제나 안온하지 못하니, 마땅히 고통 받을 나쁜 갈래에 떨어지기 마련이오.
니건자여, 좀 들어보게. 이제 비유로써 말하려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제호(醍醐)를 얻으려고 다니면서 소[酥]를 구해 물을 병속에 넣어서 그 병을 아무리 흔들어도 마침내 극도로 피로할 뿐 제호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니건자여, 모든 외도들의 소행도 그러한지라,
비록 행이 도를 배웠다 하더라도 삿된 행을 끊을 수는 없으며,
또 마치 큰 병 속의 물로 제호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여래의 훌륭하고도 묘한 법률의 행을 받들지 않고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그러하다네.
또 마치 니건이여,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영리하고도 명철한 슬기로써 제호를 얻고자 다니면서 소를 구해 거기에 유락(乳酪)을 병 속에 넣어 흔들어서 곧 제호를 이룩함은 유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제호를 이루어내는 것처럼,
이와 같이 니건자여, 여래의 법에 있어서도 어떤 속인이나 출가한 사람으로서 도를 배우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어 즐거이 정진을 행한다면 곧 현성(賢聖)들의 해탈을 빨리 얻음이 역시 유락으로부터 제호를 이룩하는 것과 같다네.
또 마치 니건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집으로부터 백천 가지 와기(瓦器)를 빌려다 파괴하고서 그 대가로 곧 보배 그릇을 그 집주인에게 돌려준다면, 어찌 집주인이 화를 내어 꾸짖겠는가?”
니건자는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을 것이네.”
그는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니건자여, 여러 외도의 제자들은 마치 와기를 일부러 파괴하고 여래의 처소에서 다시 법 보배의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성내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네.
마치 니건이여, 뭇 사람의 어떤 길잡이[導師]가 훌륭한 방편이 없이 대중 장사꾼을 거느리고 나쁜 길에 나아가는데,
다른 어떤 길잡이는 훌륭한 방편이 있어 뭇 장사꾼을 모두 거느리고 나쁜 길을 벗어나 바른 길에 나아가는 것처럼,
이와 같이 니건이여, 그대들의 여러 스승은 삿된 길 때문에 도의(道義)을 깨닫지 못하고 무수한 사람을 데리고 나쁜 길에 떨어지지만,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께선 도를 알고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한량없이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나쁜 길을 벗어나 바른 길에 나아가신다.’
이에 니건자 스스로가 그들의 무리를 데리고 떠나가 버렸다.
그때 1만 2천 사람은 니건자와 함께 가 버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다 신통을 얻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들의 수염과 머리털을 떨어뜨려 비구가 되게 하시고는 샤야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1만 2천 사람들이 살차니건자와 함께 가는 것을 보았느냐?’
사야말은 대답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이 1만 2천 사람들은 다 앞으로 미륵(彌勒)여래에게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사문이 되어서 첫째로 큰 모임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깊은 법을 들었기 때문이다.
살차니건자는 앞으로 미륵여래에게 제자가 되어서 지혜가 가장 높기가 마치 오늘날 나의 제일 제자 사리불처럼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법을 사용함으로써 잘난 체하고 교만한 뜻을 일으켰으나 그런 후에는 모든 견(見)을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