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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본업경 하권
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
이때 경수보살이 모든 부처님께 경례하고 대중의 가르침을 받들고 간략히 요의칠회(了義七會)에서 말씀하신 바를 묻고, 삼보장(三寶藏)을 믿고 따르며, 법법이 끊어짐이 없게 하고, 세상의 명리(名利)를 위하지 않고 법이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위에서 이미 인(因)ㆍ과(果)ㆍ현(賢)ㆍ성(聖)의 일체 공덕장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대중에 십사 나유타의 사람이 있사오나, 누가 능히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도 수학(受學)하고 수도(修道)하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실행하고 차례로 보살위에 들어가는 자이겠습니까?”
그때에 석가모니불께서는 정수리의 상투[頂髻]에서 일체 부처님의 광명과 일체 보살의 광명을 놓으시고, 다시 시방으로 각각 백억 불국토에 계신 부처님과 보살들을 모으셨다. 모두 다 모이고 나자 곧 이 대중 속에 있는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ㆍ보현(普賢)보살ㆍ법혜(法慧)보살ㆍ공덕림(功德林)보살ㆍ금강당(金剛幢)보살ㆍ금강장(金剛藏)보살ㆍ선재동자(善才童子)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대중 가운데 경수(敬首)보살이 능히 삼관법계(三觀法界)와 제불의 자성청정도(自性淸淨道)와 일체 보살이 닦는 바의 명관법문(明觀法門)을 묻는 것을 보았느냐?
너희들 일곱 보살은 각각 백만의 대중을 거느리고 마땅히 이 같은 법문을 받아서 관하고 배워야 하느니라.
불자여, 내가 이제 다시 거듭 이 같은 명관법(明觀法)을 설하나니, 이른바 육입차제(六入次第)의 도이니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 모든 도를 닦으며 대중에게 경계하고 타일러 수용케 하고 조복하여 행하도록 할지니라.
불자여, 만약 일체 중생이 처음으로 삼보의 바다로 들어감에는 믿음으로써 근본으로 삼고, 부처님 가문에 머물러 사는 데 있어서는 계(戒)로써 근본을 삼느니라.
불자여,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혹은 믿음이 있는 남자[信男]나 믿음이 있는 여자[信女] 가운데 모든 근이 갖추어지지 않은 황문(黃門)ㆍ음남(婬男)ㆍ음녀(婬女)ㆍ노비(奴婢)ㆍ변화(變化)의 사람이라도 계를 받게 해야 하나니, 모두 마음이 있어서 진리의 길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처음으로 발심 출가하여 보살의 위(位)를 잇기를 원하는 이는 마땅히 먼저 정법계(正法戒)를 받을지니라.
계는 일체행의 공덕장의 근본이며, 바로 불과(佛果)의 길을 향하는 일체행의 근본이니라.
이 계는 능히 모든 대악(大惡), 이른바 일곱 가지 견해와 여섯 가지 집착을 없애서 정법(正法)을 밝히는 거울이니라.
불자여, 이제 모든 보살을 위하여 모든 계의 근본에 대해 결론을 내리자면 이른바 삼수문(三受門)이니라.
섭선법계(攝善法戒)는 팔만사천법문이며, 섭중생계(攝衆生戒)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이니, 이러한 교화가 일체 중생에 미치어 모두 안락을 얻게 하느니라.
섭율의계(攝律儀戒)는 십바라이(十波羅夷)이니라.
[수계의 세 가지의 믿음]
불자여, 계를 받는 것[受戒]에 세 가지의 믿음이 있나니,
첫째는 모든 불보살이 현재하시는 앞에서 받으면 진실상품(眞實上品)의 계를 얻느니라.
둘째는 모든 불보살이 멸도한 후 천 리 안에 먼저 계를 받은 보살이 있으면 법사로 삼아 나의 스승이 되어 주실 것을 청하고서 내가 계를 받기에 앞서 발에 절을 하고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니라.
‘대존자(大尊者)를 청하여 스승으로 모시오니, 저에게 계를 내리소서’라고 하면,
그 제자는 정법계(正法戒)를 얻나니 이것이 중품(中品)의 계이니라.
셋째는 부처님 멸도 후 천 리 안에 법사가 없을 때에는 마땅히 모든 불보살의 형상 앞에서 두 무릎을 땅에 대고 두 다리를 세워 합장(合掌)하며 스스로 서원하여 계를 받을지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느니라.
‘저 아무개가 시방의 부처님 및 대지(大地)의 보살들께 아룁니다.
제가 일체 보살의 계를 배우겠습니다’라고 하면,
이것이 하품(下品)의 계이니라. 두 번째와 세 번째도 또한 이와 같이 설하느니라.
불자여, 이 세 가지는 세 종류의 수계를 섭수하나니, 과거불이 이미 설하셨고, 미래불이 마땅히 설할 것이며, 현재불이 지금 설하시느니라.
과거 모든 보살이 이미 배웠고 미래의 모든 보살이 마땅히 배울 것이며, 현재의 모든 보살이 지금 배우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정법계이니라.
만약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이 법계의 문에 들어가지 않고 무상도과(無上道果)와 허공평등지(虛空平等地)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바로 정계(正戒)를 설하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마땅히 계를 받으려고 할 때에는
먼저 과거세진과거제(過去世盡過去際)의 모든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미래세진미래제(未來世盡未來際)의 모든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현재세진현재제(現在世盡現在際)의 모든 부처님께 예경할지니라.
이와 같이 세 번 예경 드리되, 법과 승에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다시 공손히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四不壞信]을 받고, 사의법(四依法)에 의지하여
‘지금으로부터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이 몸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현성승(賢聖僧)에게 귀의하고 법계(法戒)에 귀의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세 번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다음에는 마땅히 삼세의 죄에 대해 잘못을 참회[悔過]해야 하느니라.
‘만약 현재의 신ㆍ구ㆍ의에 대한 십악죄(十惡罪)는 원하옵건대 끝끝내 미래제가 다하도록 일으키지 않으며,
만약 미래의 신ㆍ구ㆍ의에 대한 십악죄는 끝끝내 미래제가 다하도록 일으키지 않기를 원하오며,
만약 과거의 신ㆍ구ㆍ의에 대한 십악죄는 끝끝내 미래제가 다하도록 다시 일으키지 않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잘못을 참회하여 삼업이 청정하기가 깨끗한 유리(琉璃)의 안팎이 서로 밝게 비치는 것처럼 되면 곧 십무진계(十無盡戒)가 주어지나니, 너희들은 잘 들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살생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四十二賢聖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음행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술을 팔아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고의로 재가(在家)나 출가(出家) 보살의 허물을 말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일부러 인색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짐짓 화를 내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고의로 자기를 칭찬하면서 남을 헐뜯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 고의로 삼보장(三寶藏)을 비방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범하면 보살행이 아니며, 사십이현성법을 잃어버리게 되나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능히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느니라.
불자여, 이 열 가지 무진계(無盡戒)를 다 받으면 그 계를 받은 사람은 사마(四魔)를 다 지나 건너며, 삼계의 고통을 초월하고 세세생생에 이 계를 잃지 않으며, 항상 수행하는 사람을 따라서 나아가 곧 성불(成佛)하게 되리라.
불자여, 만약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체 중생 가운데 이 보살계를 받지 않는 이는 지각이 있는 이라고 하지 않으며, 축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으며, 항상 삼보(三寶)의 바다를 여의게 되나니 보살이 아니고, 남자가 아니며, 여자가 아니고, 귀신이 아니며 사람이 아니니라.
이름 하여 축생이라고 하고, 사견(邪見)이라고 하고, 외도(外道)라 하나니,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보살계에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수법(受法)은 있으나 사법(捨法)은 없느니라. 그러니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잃어버리지는 말지니라.
만약 사람이 있어서 와서 받고자 원하면 보살과 법사는 먼저 그를 위하여 해설하고 독송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열리고 생각으로 이해하여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그런 후에 받게 할지니라.
다시 법사가 능히 일체 국토 가운데서 한 사람을 교화하고 출가시켜 보살계를 받게 한다면 이 법사의 그 복은 팔만 사천의 탑을 만드는 것보다 뛰어나니라. 하물며 다시 두 사람, 세 사람 나아가 백천 사람에 이르기까지이겠는가? 그 복덕의 과보는 헤아릴 수 없으리라.
그 스승은 부부(夫婦)와 육친(六親)이 서로 스승이 되어 줄 수가 있으며, 그 계를 받는 이는 모든 부처님 국토의 보살의 수 속에 들어가 삼 겁의 생사 고통을 뛰어넘으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받아야 하나니, 있으면서 범하는 것은 없으면서 범하지 않는 것보다 수승하나니,
범하는 일이 있어도 계를 받은 이는 보살이라 이름하고,
범하는 일이 없어도 계를 받지 않은 이는 외도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의 계를 받은 것이 있어도 보살이라 하고,
나아가 둘ㆍ셋ㆍ넷ㆍ열 가지를 구족하면 계를 받는다고 이름 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에게는 십중계(十重戒)와 팔만위의계(八萬威儀戒)가 있느니라.
십중계는 범하는 일이 있으면 참회할 수가 없으나 거듭 계를 받게 할 수는 있느니라.
팔만위의계는 모두 경계(輕戒)라고 하며, 범하는 일이 있으면 상좌 스님 앞에서 잘못을 참회하여 잘못을 소멸시킬 수 있느니라.
모든 보살의 범성계(凡聖戒)는 모두 마음을 체(體)로 하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다하면 계도 또한 다하고, 마음이 다하지 않으면 계도 다하는 일이 없으므로 육도 중생이 계를 받아 얻을 수 있으며, 다만 법사의 말을 요해할 줄만 알면 계를 잃지 않느니라.
불자여, 삼세의 겁 가운데에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나도 지금 이 나무 아래에서 십사억 사람을 위하여 주전(住前)의 신상(信想)보살이 처음 계를 받는 법을 설하리라.
불자여, 이 신상보살은 십 천 겁 동안에 십계법(十戒法)을 행하고 마땅히 십주심(十住心)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므로 불자여, 마땅히 먼저 모든 대중을 위하여 보살계를 받게 하고, 그러한 후에 영락경(瓔珞經)을 설하여 함께 보고 함께 실행하게 해야 하느니라.”
이때 대중 가운데 백억 사람이 있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율을 받아 지녔으니, 그 이름은 범타수왕(梵陀首王)이며 무수한 천자와 함께 십계를 수행하여 만족하고, 초주위(初住位)에 들어갔다.
“불자여, 다시 이 주(住)에서 백법관문(百法觀門)을 수행하나니, 이른바 십신(十信)ㆍ십진(十進)ㆍ십발취(十發趣)ㆍ십승(十乘)ㆍ십금강(十金剛)ㆍ십수희(十隨喜)ㆍ십계(十戒)ㆍ십원(十願)ㆍ십호(十護)ㆍ십회향(十廻向)이니라.
이 백법관으로써 삼계는 공하고 거짓 이름일 뿐이니 모두가 공하기에 일체법은 나[我]와 남[人]이 없고 수(受)가 없고 인(因)이 없어서 모두 정해진 성품이 없다는 것을 관하여 통달하면 곧 열세 가지 결박을 소멸하게 되나니, 이른바 일곱 가지 견해[七見]와 여섯 가지 집착[六箚]이니라.
이것들은 실상(實相)과 같아서 초행위(初行位)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다시 이 행에서 천법명문(千法明門)을 관하여 닦게 되나니, 이른바 십신(十信)에서부터 십향(十向)에 이르기까지 전전하여 법에 들어가느니라.
법의 무아(無我)ㆍ법의 집(集)ㆍ법의 기(起)ㆍ법의 도(道)ㆍ법의 멸(滅)에 있어서 모두 법을 받는 사람이란 없나니, 온갖 법은 허공과 같고 환(幻)과 같고 건달바성(乾達婆城)과 같고, 불꽃과 같아서 일체법이 무상(無相)하여 백천 생멸(生滅)이 다 불가득이므로 초회향위(初廻向位)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다시 이 향(向)에서 밝고 밝게 서로 비추는 지혜로써 상사평등관(相似平等觀)을 배우느니라. 관(觀)은 무득(無得)이라 이름 하는데 무득은 거짓으로 얻는 것[假得]이니라.
비유하면 연등(然燈)에 심지가 타고 있는 것은 처음의 불꽃이 아니고, 처음의 불꽃이 있는 속에 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음 불꽃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처음 불꽃이 없을 때 그 속에 타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다음도 또한 이와 같듯이,
바로 유위(有爲)의 모든 법은 이제(二諦)가 모두 서로 옮기므로 거짓[假]으로 짐짓 탄다[燒]고 이름 하느니라.
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처음 불꽃은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며, 지금 타는 것은 처음이 아니니라.
지금 타는 것이 처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에 바야흐로 있는 것이니라.
처음의 불꽃은 지금이 아닌 까닭에 지금 타는 것은 없느니라.
지금 타는 것이 없다면 지금 타는 것은 거짓으로 타는 것[假燒]이니라.
평등관을 얻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초심(初心)이 있는 가운데 얻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역시 초심이 없는 가운데 얻음이 있는 것도 아니니, 뒤의 마음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처음 마음은 지금 마음이 아니며, 지금 일어남은 처음 일어남이 아니니라.
지금 일어남은 처음 일어남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바야흐로 있는 것이며,
처음 마음이 지금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얻을 수가 없느니라.
지금 얻을 수 없으므로 지금 얻는다는 것은 거짓으로 얻는 것[假得]이니라.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의 마음은 생각 생각마다 적멸하여 만법명문(萬法明門)에 드느니라.
십신(十信)에서부터 십향(十向)에 이르기까지 자연히 평등의 도(道)에 흘러들지만, 일상(一相)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실하게 일조상(一照相)을 관하여 초지(初地)의 도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다시 이 지(地)에서 바르게 일조지(一照智)를 관하는 가운데 백만 아승기의 공덕문에 들어가느니라.
일상관 중에서 일시에 행하여 나아가 제십지(第十地)에 이르기까지 온갖 마음이 적멸하여 자연히 무구지(無垢地)에 흘러드느니라.
불자여, 다시 이 지에서 일조지로써 일체의 업인업과(業因業果)를 명료히 이해하되 법계를 하나로 관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것은 지혜로써 일체 중생의 식(識)이 처음 일상(一相)을 일으켜 연(緣)에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따라서 일어남을 선(善)이라 하고 제일의제를 등지고 일어남을 번뇌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주지(住地)로 하기 때문에 생득(生得)의 선(善), 생득의 번뇌라고 하고, 이 두 가지 선과 번뇌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후의 일체 선악을 일으키느니라.
일체법의 연(緣)에 따라서 선과 번뇌의 이름이 생기고, 행위 함으로써 선을 얻고 행위 함으로써 번뇌를 얻지만 마음은 선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니라.
이 두 가지를 따라 이름을 얻기 때문에 선과 번뇌의 두 가지 마음이 있느니라.
욕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욕계주지(欲界住地)라고 이름하고,
색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색계주지(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며,
마음[心]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무색계주지(無色界住地)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네 가지 주지(住地)로써 일지(一地)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처음 일어나는[始起] 것을 사주지(四住地)라고 하고,
이 사주지 앞에 다시 법이 일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無始)의 무명주지(無明住地)라고 하느니라.
금강지(金剛智)로써 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일상(一相)은 끝이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나 또한 그 최초의 앞에 법이 있는지 법이 없는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얻는 일주지(一住地)와 행위 함으로써 얻는 삼주지(三住地)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시작을 알고 끝을 알 수가 있느니라.
이 무구(無垢)보살은 일체지로써 가지런히 자지(自地)를 알고 항상 제일의제 속에 머물면서 자연히 묘각해지(妙覺海地)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이 묘각지(妙覺地) 중에 머물러 오직 화(化)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을 나타내자면 헤아릴 수 없는 뜻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이 있느니라.
그 가운데 일체(一體)를 출생하면 이른바 묘과(妙果)가 항상 청정하게 머무는 것이 허공과 같아서 생각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고 이름으로 들어갈 수 없으나 과분(果分)은 얻을 수 있느니라.
불자여, 나는 보살의 차제에 육입법문(六入法門)의 무량 공덕을 설하였노라.
이와 같은 육입법문에는 일체 보살로서 들어가지 않는 이가 없나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십사억의 사람이 있음을 보지만 모두 본래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 육입법문에 들어갔느니라.
불자여, 내가 지금 처음으로 득도했을 때에 이 나무 사이에서 십세계해(十世界海)의 법문을 설하자 구십억의 사람이 있어서 역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보광당(普光堂)에 이르러 십 불국토를 설하자 백만 억의 사람이 있어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제석당(帝釋堂)에 이르러 십주(十住)를 설하자 오백만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염보당(焰寶堂)에 이르러 십행(十行)을 설하자 천만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다시 제사천법광당(第四天法光堂)에 들어가 십회향(十廻向)을 설하자 십 항하사만큼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제육마니당(第六摩尼堂)에 이르러 십지(十地)를 설하자 백만 항하사만큼의 사람이 있어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기원림(祇洹林)에 이르러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설하자 십이 항하사만큼의 사람이 있어서 이 육입명문에 들어갔느니라.
또 이 여덟 번째 회좌(會座)에 이르러서는 시방의 끝없는 대중과 경수보살의 모든 대중을 위하여 육입명문을 설하였는데 모든 대중이 받아 지니는 것이 하나이어서 둘도 없고 다름도 없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