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하권
12. 법관범지경(法觀梵志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석국(釋國) 가유라위수(迦維羅衛樹) 아래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오백 비구를 거느리고 계셨는데, 이들은 모두 아라한[應眞]의 수행을 이미 갖추어 번뇌의 무거운 짐을 벗고 진리를 스스로 증득하였으며 따라서 모태에 태어남이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
이때 시방(十方) 천하의 지신(地神)과 천신(天神)들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존귀하신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친견하고자 하였다.
이에 제 칠천(七天)의 사천왕(四天王)들이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배우는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부처님께서 석국 가유라위수 아래에 오백 아라한과 함께 계시며, 시방의 천신과 지신들이 모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예배하고 존귀하신 부처님의 위신력과 비구승들을 친견하고자 하는 줄을….
이제 우리가 어찌 가서 부처님의 위신력을 친견하지 않으리요.”
사천왕은 즉시 마치 힘이 센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듯이 제 칠천(七天)에서 날아 내려와 잠깐 사이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 근처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함께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로 가서 예배를 올리고는 각자 자리에 앉았다.
사천왕 중 첫째 천왕[梵天]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지금 이 숲속에 큰 모임을 가지는데
모여들어 부처님을 뵙는 이들은 모두 지신과 천신들일세.
이제 제가 와서 법을 듣고자 하오니
원합니다. 앞으로 한량없는 대중이 모이기를.
둘째 천왕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이곳에서 도를 배움에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고
정직하게 수행을 익혀야 자신이 바르게 됨을 알리라.
마치 말 모는 이가 고삐를 잘 조절하듯
눈[眼根]을 잘 지켜 마음을 깨달아야 하리.
셋째 천왕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온갖 번뇌를 힘써 끊고 삿된 생각 조복 받아
뜻을 굳게 안정하길 철근(鐵根)이 박히듯 하고
세속일랑 보지 말고 티없이 깨끗하게
총명한 근기, 밝은 생각으로 연약함을 다스려라.
넷째 천왕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이 몸으로 밝으신 세존께 귀의하오니
끝내 생(生)을 받아 삿된 곳에 떨어지지 않기를.
사람 몸을 버리면 그 후에는 존귀하게 되어
하늘 몸을 받아서 고통을 여의게 되리라.
이때 좌중에 법관(法觀)이란 이름의 범지가 있었다.
그는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열반을 얻은 이들이 육체를 가진 것을 보고 마음 속에 의심이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법관 범지가 의심을 가진 줄 아시고 이때 곧 또 한 분의 부처님을 만들어 내셨다.
이 만들어낸 부처님은 보는 이들은 누구나 좋아할 만큼 더없이 단정한 모습에 삼십이상(三十二相)의 대인상(大人相)과 금색 광명을 갖추고 큰 법의를 걸치고서,
부처님을 향해 손을 모으고 게송을 읊어 찬탄하였다.
가령 편견에 인연한 말이 있거나
자기가 취한 것을 모두 좋다고 말한다면
그와 나의 상대성 모두를 가볍게 여기고
또는 혹 선한 인연이 있게도 한다.
스스로 아는 것이 적음을 부끄러워하며
변화다 근본이다 다투며 두 결과 말하네.
이와 같은 변화와 근본의 견해 버리고
안연히 변함이 없음을 비추어 보기 바란다.
모든 것은 땅처럼 평평하니
이는 일찍이 견해의 평등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같지 아니하다면 무엇 따라 같아지겠는가.
보고 듣고 말함에 변화를 만들지 말아라.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 대중이 모두 미워하나니
보고 듣고 또한 생각해야 한다.
두 곳[有ㆍ無]에서 벗어나 깨끗해지면 무엇을 더 밝힐 것인가.
애착을 끊지 못하면 몸은 다시 몸으로 되돌아간다.
계율을 잘 지키면 죄 지을 대상도 청정해지고
진리를 행하면 상서로운 일 다 갖추어 머문다.
여기에서 어찌 다시 시일이 지나야 청정한 경지에 이른다 할 것인가.
무섭구나!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 있으니.
이미 진리를 떠나서 다시 행을 구한다면
죄의 인연 따라 과보 받고
또한 말처럼 힘써 청정을 구한다면
자연의 이치와 같아 생사의 고통 없어진다.
행 힘써 구하라고도 말하지 아니한다.
눈이 행과 같으면 또한 생각도 행과 같아지니
이로부터 생사(生死)가 다할 날 없다.
이와 같은 지혜도 역시 같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한 행 경계하여 모든 것 버리고
죄도 복도 버리고 멀리 떠나라.
청정도 때 묻은 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더러움 없는 청정이라 받는 영향 애처롭게 여겨진다.
이 법 닦아 상대를 제도하여 같게 하노라.
무의 행[無行] 설법함은 멀리 남을 속이는 일
이와 같은 설법 받아들이면 문득 변란만 더해지나니,
모두가 각기 밝은 세상과 사악한 이익에 기인한다.
자신이 법으로 삼는 것은 문득 갖추어진 법이라 말하고
상대방의 법을 보고는 비난하며 누(漏:번뇌)라고 한다.
같은 행이 없을 때는 더욱 서로 원망하니
스스로 행을 밝혀 더러운 것 따라가지 말라.
잔꾀로 말하는 모든 말 무서움으로 바뀌니
법에 이익될 것이 없네.
지혜 없는 사람은 온갖 다른 것을 청정이라 말하며
얽매여 집착하는 곳에 머물며 각기 굳게 자기 자리 지킨다.
각자의 법만 존중하여 들은대로 멈추고
이해한 대로 자기 스승의 말을 베푼다.
법에 맞는 행은 없고 말만 있으니
저 청정하다는 곳은 한마음에 인연하리라.
내 말이 이와 같으면 그도 역시 말한다.
한 곳에서 본 것으로는 청정한 경계에서 떨어져 내린다고
곧 자신의 견해를 원수가 지은 것이라 하고
뛰어난 지혜 위에 앉아 있다 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크게 높여 말하게 된다.
거두어들인 집착에서 벗어날 길 찾아라.
믿는 것을 잊지 않고 근본 원인이 된 것은
좋은 말에 있었으니 청정한 행은 그에게 있어서는
아직 오염이 제거되지 아니하였다.
세상사람들이 이 이름과 색을 보는 것을 비추어 보면
그의 지혜로 받은 것과 같은 알음알이를 짓는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인가를 보고 싶어한다.
이로부터 거룩한 청정은 존재하지 아니하게 되느니라.
지혜 있는 행 있으면 마음에 얽히는 번뇌는 없다.
알고 또한 보아서 바른 것을 취하고
견해에 허물 없으면 이것이 법행(法行)이니,
이 경계 건너가면 혼란은 다시 받지 아니하리라.
지혜로운 생각 이르는 곳은 일정하게 이르는 곳이 없다.
굳은 인식으로 느낀 것을 보지 아니하고
관문을 닫은 것처럼 집착한 것을 제약하고
오직 행과 관(觀)에 다른 것을 취하지 말아라.
세존께서는 세간에서 받고 취한 영향을 끊고
취하여도 중생과 더불어 취하여 굳게 자기 것이라 지켜서는 안 된다.
고요한가 어지러운가는 관(觀)에서 버리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하였고
이 악한 곳에 있으면서 모든 사람 애처롭게 여기신다.
예전에 이룬 것 버리고 새로 업 짓지 아니하면
바라는 것 없는데 어디에 집착하랴.
사악함을 벗어나 믿음과 용맹으로 제도하여
모두가 이미 세간을 벗어나면 그곳은 세간이 아닌 경계다.
모든 법 의심할 곳 없으며 모조리 보고 들었는데
또 무슨 생각을 하랴.
무거운 짐 버리시고 세존 바야흐로 해탈하시니
지나치게 늘 찾아와 만나는 일 원하지 아니하셨다.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