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광명동자인연경 제4권
[광명 장자가 출가하다]
그때에 광명 장자는 갖가지 불쌍히 여기고 가엾이 여김과 이익케 하고 즐겁게 함과 보시 등의 일을 베푼 뒤에
모든 권속과 친한 이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몰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 앞에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지금 저에게 선한 이익을 베푸소서.
저는 이제 불법에 즐겁게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구가 되어 깨끗이 범행을 닦고자 하니, 크게 자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저를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다. 나의 법에서 부지런히 범행을 닦아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광명 장자는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승가리의(僧伽梨衣)가 저절로 입혀져 비구의 모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서 발우와 물병[淨軍]을 잡았으며 경(經)을 듣기 밤낮으로 하여 이레 만에 마음이 정념에 머물렀고 깨끗이 범행을 닦았으며 위의가 본받을 만함이 100납(臘)이나 된 것 같았다.
부처님께서 입고 계신 가사로 그의 정수리를 덮자 광명 비구는 모든 근이 고요해져 일심(一心)에 머물렀다.
이때 공중에서 찬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처님 이제 소원 채워 주시니 광명 비구 다시 부지런하고 용맹하고 견고한 뜻 내어서 다섯 갈래 관찰하니 생사의 수레바퀴 돌고 구르기 다함이 없네.
중생의 모든 행과 온갖 차별 생사 속에 떨어지나 부처님의 바른 법만이 능히 해탈 한다고 이렇게 관하고서 4제법(諦法) 봄에 생과 사 환히 알고 삼계의 탐욕과 애착 멀리 여의어 금을 보기를 흙과 같이 하며 번뇌 끊어 다하고 아라한과 증득하네.
3명(明)과 6통(通) 다 구족하여 짝이 없게 가장 높고 높이 들어 허공을 밟으며 뜻대로 자재하네. 세상의 명성이나 이익 등에 집착하지 않으며 제석천과 범천 등 여러 하늘 다 와서 공양하네.”
[광명 동자의 전생의 인연]
이때에 회중에 여러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의심을 내어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광명 비구는 무슨 인연으로 출가하기 전엔 인간 가운데서 하늘의 수승한 복을 받았으며,
불법에 들어와 이제 출가하였는데 곧 일체의 번뇌를 끊고 아라한을 증득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광명 비구는 전생에 심었던 선근이 이제 성숙하여서 이로움에 이르렀나니, 응한 대로 결정한 것이 바로 지금이다.
그러므로 광명 비구는 숙세의 선한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은 과를 얻었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은 알아야 한다. 모든 업의 과보는 다 스스로 지은 인(因)에서 온 것이지, 다른 데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물ㆍ불ㆍ바람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또한 5온ㆍ12처ㆍ18계에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선하거나 선하지 않거나 다 스스로의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응보를 받는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게송을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의 지은 바 업은
백겁을 지난대도 잊지 않나니
인연이 한 때에 화합하면
과보는 응한 대로 받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광명 비구의 지난 옛적의 인연을 잘 들어라.
과거 91겁 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으니 이름이 비바시(毘婆尸)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었다. 그 부처님께서 620만 비구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만도마지(滿度摩底)의 큰 성 안에 이르셔서 편안히 한 곳에 머무셨다.
그 나라의 왕은 이름이 만도마(滿度摩)였는데, 그 왕은 바르게 믿고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서 국토가 넓고 백성들이 많았으며 편안하고 풍락하여 모든 앓는 괴로움과 흉년 등의 어려움을 여의었으며, 또한 다툼ㆍ원망ㆍ도적의 공포가 없고 인민이 온화하고 순하여 좋은 몸매를 구족하였다.
이때에 그 성 안에는 적재(積財)라는 장자가 있었는데 법을 바르게 믿었으며 집은 매우 부자여서 재산과 보배가 한량이 없어서 비사문천왕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때에 장자는 비바시여래께서 비구들을 데리고 성 안에 오셨음을 알고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부처님과 비구들을 청하여 음식을 공양하고 집으로 청하여서 석 달 동안 안거(安居)하게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머리 조아려 부처님의 두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이때에 비바시부처님께서 곧 장자를 위하여 그에 맞게 법요를 설명하시고 이로움과 기쁨을 보이시고 가르치셨다. 적재 장자는 바른 법을 듣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매만지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과 비구들을 저의 집으로 청하여 음식을 공양하고 석 달 동안 안거케 하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모시고자 하니 부처님께서는 자비하시어 저의 청을 받아 주십시오.’
비바시부처님께서는 곧 잠자코 계셨다.
적재 장자는 부처님께서 잠잠하심을 보고 청을 이미 허락하신 줄 알고 마음에 환희해서 머리 조아려 발에 절하고 곧 부처님의 회중에서 나와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에 마도마왕은 비바시부처님께서 620만 비구들을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 오셨다는 것을 듣고 곧 생각하였다.
‘나는 부처님과 비구들을 나의 궁중으로 청하여서 음식을 공양해야지. 그리고 나의 궁중에서 석 달 동안 안거케 하여서 필요한 일체를 맞는 대로 공급하자.’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신하와 관속들에게 에워싸여 부처님 처소에 갔다. 다 이르자 머리 조아려 부처님의 양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이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맞게 법의 요지를 설명하시고 이로움과 즐거움을 보이시고 가르치셨다.
왕은 법을 듣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매만지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과 비구들을 저의 궁중으로 청하여 음식을 공양하고, 또 저의 궁중에서 석 달 동안 안거하시게 하되, 필요한 모든 것, 곧 음식ㆍ의복ㆍ와구ㆍ의약을 응함에 따라 공급하여서 받들어 모시겠으니 부처님께서는 자비하사 저의 청을 받아주소서.’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벌써 적재 장자의 청을 먼저 받았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궁에 나오셔서 공양을 드소서. 내가 적재 장자에게 알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법으로 보아 먼저 한 청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때에 만도마왕은 머리 조아려 비바시부처님 두 발에 절하고 나서 곧 부처님 회중으로부터 궁궐로 돌아와서 급히 사람을 시켜 적재 장자에게 가서 명을 전하도록 하였다.
‘너는 알아야 한다. 내가 이미 비바시부처님과 비구들을 먼저 청하였으니 너는 다른 날에 공양을 준비하여라.’
적재 장자는 사신에게 아뢰었다.
‘왕께서는 가엾이 살피소서. 내가 이미 비바시부처님과 비구들을 먼저 청하였습니다.’
사신은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다시 보내어 장자에게 말했다.
‘너는 나의 나라에서 산다. 이치로 봐서도 내가 먼저 부처님께 공양해야 된다.’
장자는 사자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말씀하신 왕의 나라에 산다고 해서 왕이 먼저 청하여야 된다는 말씀은 이치에 실로 맞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제 서로 어기고 방해하지 마소서.’
사신은 돌아가서 그대로 아뢰었다.
왕은 다시 보내어 장자에게 말했다.
‘알아둬라. 네가 청한 대도 막지는 않겠다. 그러나 가장 좋은 음식을 준비하는 곳에 부처님께서 가실 것이다.’
그때에 적재 장자는 이 말을 듣고 그날 밤에 향나무로 불을 피워 온갖 맑고 깨끗하고 가장 맛나는 음식을 준비하였으며, 만도마왕도 또한 궁중에서 음식을 장만하였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장자의 집에서는 장엄을 시설하였으며 좋은 평상과 깨끗한 물그릇을 잘 배치한 뒤 사람을 보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음식이 이미 준비됐고 밥 때가 되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오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때에 비바시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데리시고 밥 때가 되자 가사 입고 발우 드시고 공양을 받으시려고 장자의 집으로 떠나셨다. 집에 이르시자 부처님부터 먼저 발을 씻으시고 차례에 의하여 가장 좋은 자리에 앉으셨고 모든 비구들도 각기 발을 씻고 차례대로 앉았다.
적재 장자는 공경히 합장하고 앞에 가서 부처님 발에 절하였다. 예를 마치 고 곧 가장 좋은 음식을 들고 직접 불세존께 바쳤으며 차례로 낱낱 비구들에게도 바쳤다.
이때 부처님과 비구들은 공양을 끝내고 발우를 걷고 깨끗이 손 씻고 차례로 앉았는데 적재 장자도 또한 부처님 앞에 공순히 앉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그때에 비바시부처님께서는 적재 장자를 위하여 응한 대로 법의 요지를 설명하시고 이로움과 기쁨[利喜]를 보이시고 가르치셨다.
장자는 법을 듣고 나니 마음에 환희하여 부처님 발에 절하였다.
적재 장자가 이와 같이 공양을 마치자 부처님께서는 집을 나오셨다.
한편 만도마왕은 궁중에서 음식을 장만하였는데 장자보다 낫기 위하여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 나의 궁중엔 권속과 왕후ㆍ비빈들이 매우 많다. 누가 가장 좋은 음식을 잘 만들어서 저 적재 장자를 이기겠느냐?’
시종이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땔나무[薪]를 아무도 팔지 못하게 하기만 하신다면 저 장자가 저절로 부처님께 공양할 반찬을 장만할 수 없습니다.’
왕은 그 말대로 곧 금지령을 내리기를
‘혹 땔나무를 파는 자는 나의 나라에 살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때 적재 장자는 명을 내려서 땔나무 파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말을 듣고 분한 마음을 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집 안에 향나무가 있으니 어찌 저 땔나무로 불을 피울 필요가 있겠느냐?’
이때 장자는 집 안에서 향나무와 향나무 기름으로 불을 피워 음식을 장만하였는데, 이 향내가 큰 성안에 풍겼다.
만도마왕은 이 향내를 맡고 시종에게 물었다.
‘지금 이 좋은 향기가 어디서 나느냐?’
시종은 아뢰었다.
‘이는 적재 장자가 향나무를 태워서 음식을 만드는데, 거기서 남은 향기가 여기까지 오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서 부처님께서 벌써 장자의 청함에 나아가셨음을 알고 도로 근심이 되어 시종에게 말했다.
‘이 나의 궁중엔 어찌하여 향나무가 없느냐?’
시종은 아뢰었다.
‘시장에 향나무가 없으니 어떻게 있겠습니까?
대왕은 아소서. 저 적재 장자가 집은 비록 큰 부자이지만 자식이 없으니 어느덧 죽기만 하면 후손이 없어서 모든 그의 소유가 왕께로 돌아옵니다.’
이때에 만도마왕은 이 말을 들었으나 역시 만족하지 못하였다.
신하는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근심을 거두소서. 왕께서 다른 날에 부처님을 청해서 공양하시면 됩니다. 만약 왕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저 장자를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신하는 이 말을 끝내자 곧 만도마지의 성 안에 명하여 모든 모래와 자갈과 깨끗하지 못한 물건들을 치우도록 했으며, 전단향의 향수도 깨끗이 씻은 물병을 줄지어 놓았으며, 온갖 좋은 향기를 사두고 진주를 섞어 짠 베를 드리웠으며, 온갖 당기와 번기를 세웠으며 온갖 꽃을 흩었다.
마치 하늘의 즐거운 동산과 다름이 없이 맑고 깨끗하게 장엄하였으며, 온갖 보배를 갖추고 온갖 보배로 된 자리를 깔았으며, 가늘고 연하고 달고 맛나는 갖가지 좋은 맛을 널리 장만함으로써 청정한 음식의 빛이나 향기가 구족하기가 마치 천상의 소타(蘇陀)의 좋은 맛과 같았다.
이와 같은 음식들을 삼계에서 높으신 이가 공양하시도록 이미 잘 차려졌다.
이때 모든 신하들은 함께 왕에게 아뢰었다.
‘이제 이 큰 성의 안팎이 깨끗하고 갖가지로 장엄되었으며 맛난 음식이 다 이미 준비되었으니 왕께서는 부처님을 공양해 청하소서.’
이때에 만도마왕은 이것을 보고는 마음에 환희하여 곧 사자를 시키어 비바시부처님의 처소로 보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음식이 이미 준비되었고 공양 때도 되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오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때에 비바시부처님께서는 공양 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드시고 여러 비구들과 함께 그의 공양을 받으시려고 만도마 왕궁으로 향하셨다.
이르시자 먼저 부처님부터 발 씻으시고 가장 좋은 자리에 앉으셨으며, 모든 비구들도 또한 각각 발 씻고 차례로 앉았다.
이때에 만도마왕은 곧 보배로 된 좋은 병을 잡고 부처님부터 시작해서 깨끗한 물을 돌렸는데,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한 상서로운 용이 저절로 허공에 머물러서 백 개의 일산으로 불세존과 비구들의 정수리를 가렸으며,
왕의 첫째 왕비는 금과 온갖 보물로 겉을 장엄한 좋은 부채를 잡고 부처님 곁에 모시고 섰으며, 나머지 비빈들도 또한 보배 부채를 잡고 비구의 곁에 서 있었다.
이때에 만도마왕은 앞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절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곧 가장 맛나는 음식을 들고 직접 세존께 바친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각각 바쳤다.
그때에 적재 장자는 부처님께서 역시 만도마왕의 청을 받아 가신 줄을 알 고 즉시 사람을 시키어 몰래 왕궁에 가서 차려진 장엄과 음식 등의 일이 어떠한가를 관찰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거기에 가서는 훌륭함을 다 보고 탐내어 머물고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번 사람을 시키어 보냈으나 역시 돌아오지 아니하여서 나중엔 장자가 직접 갔는데 그는 왕궁에 이르러서 장엄과 공양 등의 일을 자세히 보고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왕궁에서는 이렇게도 잘 차렸구나.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가? 그런데 나의 집엔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이가 없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집에 돌아와서 창고지기에게 말했다.
‘너는 모든 금과 보배를 가져다가 문 위에 두어라. 누가 와서 요구하거든 뜻대로 줄 것이며 아무도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 나는 보지 않겠다.’
이때에 적재 장자는 이런 생각을 하고 곧 집의 조용한 곳에 있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때에 제석천왕은 깨끗한 하늘 눈[淨天眼]으로 이것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적재 장자는 비바시부처님께 보시하고 공양했으니 이 이가 우두머리 시주(施主)이며 그의 마음은 깨끗하고 진실하다. 내 마땅히 몸을 변화해서 그의 일을 도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제석천왕의 몸을 숨기고 바라문의 몸을 나투어 적재 장자의 집으로 떠났는데 그의 집에 도착하여서 문지기에게 말했다.
‘너는 들어가 장자에게 말하여 교시가족(憍尸迦族) 바라문이 지금 문밖에서 장자를 뵙고자 한다고 하여라.’
문지기는 말했다.
‘장자께서 누가 오거든 들여서는 안 되며 혹시 요구하는 것이 있거든 뜻대로 주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바라문께서 갖고 싶은 것이 있거든 마음대로 가져갈 것이지 무엇 때문에 장자를 보겠다고 하십니까?’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나는 어떤 물건이든 갖고 싶지 않으나 다만 장자를 보고자 할 뿐이니, 너는 나를 위해 속히 들어가서 아뢰어라.’
이때에 문지기는 곧 들어가 아뢰었다.
‘어떤 교시가족 바라문이 지금 문밖에서 장자를 뵈려고 합니다.’
장자는 말하였다.
‘너는 그 바라문에게 이르기를,
≺만약 구하는 것이 있거든 가져갈 것이지 무엇 때문에 나를 보기를 요구하느냐≻고 하여라.’
이때에 문지기는 곧 나가서 모두 말함에 바라문은 다시 말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구하는 것이 없다. 다만 장자와 더불어 서로 보고 싶을 뿐이다.’
이때에 문지기는 다시 장자에게 아뢰었다. 그때서야 장자는 만나보기를 허락하였다.
바라문은 들어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무슨 근심이라도 있습니까?’
그때 장자는 게송으로 말했다.
나는 근심 말하지 않겠노라.
말한 대도 역시 풀지 못하오.
만약 나로 하여금 풀도록 한다면
나는 곧 당신에게 대답하리다.
이때에 바라문은 말했다.
‘당신은 근심하는 까닭을 모두 말하시오. 내 반드시 당신을 위해 그 일을 잘 풀어주겠소.’
이때에 적재 장자는 까닭을 다 말하였다.
제석천왕은 곧 바라문의 몸을 거두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바로 제석천왕이다. 내 이제 비수갈마 천자(毘首羯磨天子)를 보내어서 그대를 도와 부처님께 공양할 훌륭한 음식을 장만하도록 하겠노라.’
이 말을 마치자 사라져 천궁(天宮)으로 돌아갔으며, 곧 비수갈마 천자에게 명하였다.
‘네가 적재 장자의 집에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을 몰래 도와주면 좋지 않겠느냐?’
이때에 비수갈마 천자는 제석의 명을 받들어서 몰래 장자를 도왔다.
곧 신통력으로써 온 성을 변화시켜 맑고 깨끗하기가 천상의 경계와 같도록 하였으며, 갖가지 좋은 진보와 장엄하게 장식된 기구를 차렸으며, 하늘의 모든 보좌와 하늘의 묘한 음식이 다 갖추었다.
애라박노(愛囉嚩努) 용왕은 저절로 허공에서 흰 일산을 가지고 부처님의 정수리를 가렸으며, 다른 상서로운 용들도 각각 일산을 잡고 모든 비구들의 정수리를 가렸다.
하늘의 동녀는 금으로 장엄한 가장 좋은 보배부채를 들고 부처님 곁에 모시고 섰으며 나머지 다른 천녀(天女)들도 각각 보배부채를 잡고 비구의 곁에 모시고 섰다.
이때에 적재 장자는 곧 갖가지 가장 맛나는 음식을 들고 직접 부처님의 모든 비구들에게 바쳤다.
이때에 만도마왕은 곧 사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몰래 적재 장자의 집에 가서 그 장만한 장엄과 음식의 일이 어떠한지 관찰하라.’
사자는 명을 받들고 곧 몰래 거기에 가서 장엄이 특별한 일 등을 다 보았는데, 보고는 돌아오기를 잊었다.
다시 가까운 신하를 보내었는데 역시 돌아오지 않았으며,
또 태자를 보냈으나 또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끝내는 왕이 몸소 가서 몰래 문 곁에 섰다.
그때 비바시부처님께서 왕이 바깥에 있는 줄 아시고 곧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앞서서 만도마왕 때문에 선하지 못한 구업[語業]을 지었으니 그것이 곧 죄다. 그 왕이 지금 너의 집 문 바깥에 있으니 빨리 나가서 그 허물을 사과하라.’
장자는 곧 나가서 왕을 뵙고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꾸짖었으며, 왕을 맞아 안으로 들어왔다.
왕은 들어와서 갖가지 천상의 묘한 장엄과 음식 등을 보았는데 보자마자 앞의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이내 장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부처님께 공양한 것이 훌륭하기 이러하구나. 만약 날마다 이와 같이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짝할 이 없겠구나.’
이때에 적재 장자는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앞에 나가 부처님 발에 절하고 서원을 말하였다.
‘이렇게 여실하게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보시하여서 지은 선근으로써, 앞으로 태어남에 큰 부(富)를 자재하여 온갖 것을 구족하고 나는 곳마다 인간 중에 나서 하늘 복을 받되 많은 탐냄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탐내는 행을 여의어서 오늘처럼 선한 이익을 얻도록 하며,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서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케 하소서.’
이러한 서원을 마치자 비바시부처님과 비구들은 장자의 집에 머물러 석 달을 안거하였다.”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생각엔 어떠냐? 그때 비바시부처님 법 중의 적재 장자는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지금의 광명 비구이니라.
그는 그때 만도마왕의 처소에서 선하지 못한 구업[語業]을 지었던 그 인연으로 과보가 에누리 없이 5백 생 동안 어머니와 함께 불태움을 당했으며 현재의 생에서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비바시부처님 처소에서 앞서 선근을 심었고 큰 서원을 내었던 것이 이제 있었으므로 큰 부자 장자가 되어 온갖 것이 구족하며, 인간 가운데 나서 하늘의 수승한 복을 받았나니
그가 지은 선한 이익과 위신력 등의 일은 비바시부처님 때와 다름이 없으며
이제 마지막에 나의 법에 출가해서 도를 배우고 모든 번뇌를 끊어서 아라한을 증득하였다.
모든 비구들아, 이러한 인연을 보아서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이 한 검은 업의 인을 짓는다면 결정코 한 검은 업의 과보를 받아야 하며,
만약 하나의 흰 업의 인을 짓는다면 결정코 한 흰 업의 과보를 받아야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검은 업의 인이든 흰 업의 인이든 낱낱 과보가 결정코 실수가 없나니, 이것은 다 자신이 만든 것인 줄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움을 닦아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다 크게 환희하여 믿고 지니고 받들어 행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