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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입문 하권
제4. 방편문方便門
제30장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춤
식息과 색色 두 문은 도를 닦고 도를 증득하는 법인데, 이 가운데에는 때에 따라 변화하여 알맞은 방편을 쓴 뒤에야 이 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만약 방편을 알지 못하면 마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아서 여러 가지로 삿된 쪽으로 나아가게 되니, 이를 맹인의 수련이라 한다. 그러므로 내외의 방편문을 세운다.
[외방편]
외방편外方便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춤(具五緣),
둘째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림(訶五欲),
셋째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림(棄五蓋),
넷째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함(調五法),
다섯째 다섯 가지 법을 행함(行五法)이다.
[내방편]
내방편에도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 지문止門,
둘째 선악의 근성을 증험함(驗善惡根性),
셋째 마음을 편안히 함(安心),
넷째 병을 치료함(治病),
다섯째 마사를 분별함(辨魔)이다.
무릇 이들의 대강을 앞서 입식문入式門에서 설했던 이유는 수행자로 하여금 미리 알게 하려는 뜻이었다. 지금 이 문에서 조항에 따라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수행자로 하여금 세밀한 마음으로 밝게 분별하여 도를 돕는 방편으로 삼게 하기 위함이다.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는 것(具五緣)이란 무엇인가?
첫째 계를 청정하게 지키고,
둘째 옷과 음식을 갖추며,
셋째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고,
넷째 모든 인연과 업무를 쉬고,
다섯째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첫째, 계를 청정히 지키는 것이다.
재가자인 경우엔 오계五戒를 닦고, 출가자는 십계十戒를 닦되 마치 부낭浮囊을 지키듯이, 기름 담은 발우를 지니듯이 해야 한다.
오계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는 것이다.
십계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않고, 머리를 꽃으로 장식하는 짓 등을 하지 않고, 노래나 춤 등을 멀리하고, 금은보화를 갖지 않고, 식사시간이 아닌 때에는 먹지 않는 것이다.
둘째, 옷과 음식을 갖추는 것이다.
수행자는 바른 생활에 의지하여 음식을 구하며 잘못된 생활에 의지하여 음식을 구하지 않는다. 오직 굶주림과 추위만 면할 뿐 사치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몸과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옷과 음식을 갖추지 못해 선을 닦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한적함’이라 하고, 산만하고 시끄러운 곳을 멀리 피한 것을 ‘조용함’이라 한다.
또 마음속에 일이 없는 것을 ‘한적함’이라 하고, 마음속에 시끄러움이 없는 것을 ‘조용함’이라 한다.
몸과 마음이 한적하고 조용해야 곧 도를 닦을 수 있다.
넷째, 모든 인연과 업무를 쉬는 것이다.
작위적인 어떤 사업도 하지 않고, 또한 속인을 쫓아다니며 왕래하지 않는다. 방술方術과 기예技藝를 익히지 않고 학문과 강론을 숭상하지도 않는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오직 선을 닦는 것에만 집중한다.
다섯째,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선지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밖에서 보호하는 선지식으로서 살림을 꾸리고 공양하여 수행자를 잘 보호하며 서로 괴롭히지 않는 자들이다.
둘째는 함께 수행하는 선지식으로서 같은 도를 함께 닦으면서 서로 채찍질하고 북돋워 주며 서로 어지럽히지 않는 자들이다.
셋째는 가르쳐 주는 선지식으로서 내외의 방편과 선정의 법문을 가르쳐 이롭게 하는 자들이다.
제31장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림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리는 것을 설명하겠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몸에도 적당한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 등의 법은 범부의 마음에 애착을 일으켜 온갖 악업을 짓게 한다.
그때 수행자는 자기 마음으로 이렇게 다스려서 책망한다.
“일체중생은 항상 다섯 가지 욕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구하는 짓을 멈출 줄 모른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은 얻을수록 점점 힘들어지니 마치 불에 땔나무를 더하는 것과 같다.
오욕은 개가 말라빠진 뼈를 씹는 것과 같아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오욕은 새들이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과 같아 다툼만 늘리며,
오욕은 역풍에 횃불을 든 것과 같아 사람을 태운다.
오욕은 모진 뱀을 밟은 것과 같아 사람을 해치고,
오욕은 꿈에서 얻은 것과 같아 실체가 없으며,
오욕은 잠시 빌린 것과 같아 오래 가지 않는다.
어리석은 저 중생은 항상 오욕의 부림을 당하므로 오욕의 노예라고 부른다.
이에 연루되어 (삼악도에) 떨어지면 영영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내가 지금 수도하는 데도 장애가 되니 이것은 큰 도적이다. 서둘러 멀리해야만 하고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제32장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림
오개五蓋란
첫째 탐욕개貪欲蓋,
둘째 진에개瞋恚蓋,
셋째 수면개睡眠蓋,
넷째 도회개掉悔蓋,
다섯째 의개疑蓋이다.
개蓋란 덮고 가린다는 뜻으로 곧 번뇌를 의미한다.
이 다섯 가지가 마음에 있으면 구름이 해를 가리고 물건이 눈을 덮은 것과 같아 마음이 밝고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버려서 없애야 한다.
첫째, 탐욕개貪欲蓋를 버리는 것이다.
수행자가 좌선 중에 문득 탐욕을 일으켜 찰나찰나 이어 가면 착한 마음을 덮어 자라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렇다고 지각하면 곧 버린다.
둘째, 진에개瞋恚蓋를 버리는 것이다.
수행자가 좌선 중에 ‘이 사람은 나를 괴롭힌 자, 나의 친구를 괴롭힌 자, 나의 원수를 찬탄한 자이다’라고 사유하고,
이렇게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사유한다면 이것을 아홉 가지 고뇌라 한다.
고뇌 때문에 화가 나고, 화내기 때문에 원한이 생기며, 원한 때문에 원망이 생기고, 원망 때문에 복수하려고 든다. 이런 각과 관이 마음을 덮으므로 개蓋라 한다.
성냄은 불선법不善法의 근본이고 악도에 떨어지는 인연이며, 법의 즐거움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빼앗아 간다. 그러므로 마땅히 자비와 인욕을 닦아 서둘러 없애고 마음을 청정하고 안온하게 해야 한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를 버리는 것이다.
안으로 마음이 어두운 것을 수睡라고 하고, 사지를 제멋대로 한 채 편안히 누워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을 면眠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명을 증장시키고 도력을 떨어뜨리는 최고의 악법이다.
다른 개는 마음으로 지각해 제거할 수도 있지만 깊은 잠에 빠지면 죽은 사람과 같아 아무런 지각도 없다. 따라서 물리치기 어려우니 항상 경책하여 어둠에 덮이지 말도록 하라.
넷째, 도회개掉悔蓋를 버리는 것이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유희에 빠지는 것을 몸의 들뜸(身掉)이라고 한다.
읊고 노래하기를 즐기고 시비 가리기를 좋아하며, 무익한 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입의 들뜸(口掉)이라 한다.
방종한 마음으로 제멋대로 상상해 문장을 짓고 재주를 부리며, 온갖 나쁜 각과 관으로 생각을 그치지 않는 것을 마음의 들뜸(心掉)이라 한다.
수행자가 마음을 거두어 단속하여도 선정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들뜨고 산란할 때이랴. 마땅히 서둘러 버려야만 한다.
만약 들떴었더라도 후회가 없다면 오히려 개蓋가 되지는 않지만, 만일 그것을 후회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근심과 괴로움이 마음을 덮어 곧 개가 된다.
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항상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듯, 후회의 화살이 마음에 박히면 견고해 뽑을 수가 없다. 모름지기 과실을 알았으면 곧 후회하고, 후회하고 나서는 곧 잊어버려 항상 정신을 맑고 편안하고 걸림이 없게 해야 한다.
다섯째, 의개疑蓋를 버리는 것이다.
의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것은 도의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첫째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요,
둘째는 스승을 의심하는 것이요,
셋째는 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자신을 의심함이란 무엇인가?
가령 어떤 사람이 스스로
“나는 모든 근根이 어둡고 둔하며 죄와 허물 깊고 무거우니 법의 그릇이 못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승을 의심함이란 무엇인가?
스승의 위의를 보면서
“저 사람의 위의와 외모를 보아하니 그럴듯하지 못하다. 스스로도 도가 없는데 어찌 나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릇 사람을 선택할 때는 단지 그 도만 취할 뿐 그 모습을 취해선 안 된다. 냄새나는 가죽 주머니 속에 금이 들었을 때, 속에 금이 있기 때문에 그 주머니를 경시하거나 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분이 비록 누추하고 보잘것없긴 하지만 나는 마땅히 부처님과 같다고 생각하리라.”라고 하고는,
그의 말을 공손히 받아들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복종한 뒤에야 이익이 있다.
법을 의심함이란 무엇인가?
무릇 도를 닦고자 한다면 먼저 법문을 선별하고 그것을 의심 없이 깊이 믿으며 오롯하게 공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법마다 모두 진리요, 문마다 다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의심을 품어
“어떤 법이 더 낫고 어떤 법이 못할까, 과연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라고 하며
머뭇거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법이 마음속으로 젖어들지 못해 법 가운데 있더라도 끝내 얻는 바가 없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의심은 버려야 옳다.
제33장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함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한다는 것은,
첫째 음식을 조절하고,
둘째 수면을 조절하고,
셋째 몸을 조절하고,
넷째 호흡을 조절하고,
다섯째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알맞게 조절해야 비로소 수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다.
첫째,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기氣가 급해지고 몸이 팽만해지며 모든 맥이 통하지 않아서 마음을 막히게 하므로 좌선할 때 생각이 안정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적게 먹으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어질어질해 생각이 견고하지 않게 된다.
더럽고 탁한 음식을 먹으면 사람의 심식이 어둡고 혼미하게 된다.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잠복된 병을 촉발하여 사대가 어그러지기 쉽다.
이들은 모두 선정을 얻는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몸이 편안하면 도가 융성한다.”고 하였다.
둘째, 수면을 조절하는 것이다.
수면은 무명의 법이니 마음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긴 하지만 전혀 자지 않으면 정신이 멍해진다.
반대로 너무 많이 자면 공부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우매하게 하여 선근이 가라앉아 버린다.
무상함을 생각하고 수면을 조복해 정신과 기운을 맑고 깨끗이 하고 마음과 생각을 밝고 깨끗이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이 성인의 경지에 깃들어 삼매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전에
“초저녁이나 새벽녘에도 공부를 그만두지 말지니, 수면의 인연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셋째, 몸을 조절하는 것이다.
선정에 들지 않은 때라도 걷거나 머물거나 나아가거나 멈출 때 모두 자세히 살펴야 한다.
만일 그 행동이 거칠면 기와 호흡도 따라서 거칠어지고, 기가 거칠면 마음이 산란하여 단속하기 어려워져 좌선할 때에 이르러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몸을 편안하고 고요히 유지하여 항상 마음과 호흡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
좌선하려면 반가부좌(半跏)나 결가부좌(全跏)를 하고왼쪽 다리를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몸 가까이 끌어당겨 왼쪽 다리의 발가락은 오른쪽 넓적다리와 가지런하게 하고, 오른쪽 다리의 발가락은 왼쪽 넓적다리와 가지런하게 한다. 이것을 반가부좌라 한다.
여기에서 아래에 있던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는 것을 결가부좌라 한다.
옷과 허리띠를 풀어 느슨히 한다.
손을 포개어 단정히 앉고왼쪽 손을 오른손 위에 놓아 겹친 손이 수평이 되게 한 뒤 왼쪽 다리 위에 놓고는 몸 쪽으로 끌어당겨 마음과 일치시키고 편안케 한다.
신체를 곧게 하며 머리와 목을 바로 하고몸을 곧게 펴서 척추가 일직선이 되게 하는데 구부정하거나 너무 꼿꼿이 세우지 말며,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이지 말며, 숙이거나 쳐들지 말라.
편편한 바닥에 바로 앉아 코와 배꼽을 일직선이 되게 한다.
그리고 입을 열어 기를 내보내 가슴을 시원하게 통하도록 한다. 입을 열어 가슴 속의 더러운 기를 토한다.
토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입을 열어 기를 내보내되 자연히 나오게 하고, 통하지 않던 몸의 여러 맥을 모두 기를 따라서 토해 낸다고 상상한다.
코로 맑은 기운을 들이마셔 몸과 호흡을 조화롭게 하고입을 닫고 코로 맑은 기운을 세 번 들이마신다.
몸과 호흡이 조화로우면 한 번만 들이마셔도 충분하다.
다음엔 입을 다물고 혀를 위에 붙이며입을 다물어 입술과 치아가 서로 맞물리게 하고 혀는 윗잇몸에 붙인다.
반쯤 눈을 감아 외부의 빛을 차단한다. 완전히 감으면 어두워 잠이 오고 완전히 뜨면 산란해 집중이 되지 않으므로 반만 감는다. 마치 발을 치는 것과 같다.
요점만 말하자면 느슨하지도 긴장되지도 않게 신체를 알맞게 조절해야 한다.
넷째,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다.
호흡에는 풍風ㆍ천喘ㆍ기氣ㆍ식息의 네 가지 상相이 있다.
코로 쉬는 숨을 마음으로 지각할 때, 들어오고 나가며 소리가 나는 것을 풍상이라 하고,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가고 들어오는 기운이 맺히고 막혀 통하지 않는 것을 천상이라 하며,
소리도 없고 맺힘도 없지만 들어오고 나감이 미세하지 않은 것을 기상이라 한다.
이 세 가지는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다. 이를 조절하지 않고 좌선하면 병이 쉽게 생기고 마음이 고요해지기 어렵다.
이를 조절하려면 세 가지 법을 사용해야 한다.
첫째, 마음을 가라앉혀 안정시키는 것이고,
둘째, 신체를 느슨히 하는 것이며,
셋째, 온몸의 털구멍으로 두루 호흡해 출입에 장애가 없이 잘 통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세밀하게 하고 호흡을 미미하게 해 호흡이 조절되면 온갖 병이 생기지 않고 그 마음이 쉽게 안정된다.
식상息相이란 소리가 나지 않고 맺히지 않으며 거칠지도 않은 호흡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출입이 면면히 이어져 정신이 안온해지고 마음에 기쁨이 생기도록 돕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풍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산만해지고,
천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맺히며,
기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피로하며,
식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안정된다.
요점을 말하자면 거칠지도 매끄럽지도 않게 항상 조화롭고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을 조복하여 지나치지 않게 하고,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느슨하거나 급하지 않은 네 가지 모습을 얻는 것을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라 한다.
좌선할 때 마음이 어두워져 아무 기억도 나지 않고 머리가 자꾸 밑으로 처지면 이것을 가라앉은 모습(沈相)이라 한다.
이때는 생각을 코끝에 집중하고 마음을 대상 가운데 머물게 하여 산란한 뜻을 없애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가라앉음을 다스릴 수 있다.
‘대상 가운데’란 예컨대 마음을 배꼽에 집중할 때는 배꼽이 대상이 된다.
수식관에서는 호흡의 수를 세는 것이 대상이 되고,
부정관일 때는 관하는 것이 대상이 된다.
다섯 곳이 대상이 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지금 가라앉은 것을 다스리고자 마음을 코끝에 집중하는 것은 (가라앉은 마음을) 높여서 들어 올리려는 것이다. 대상 가운데 머물면 본래의 대상을 잃지 않게 된다.
만약 정신이 산만하게 움직여 생각이 자꾸 다른 대상으로 쏠린다면, 이것은 들뜬 모습(浮相)이다.
이때는 마음을 편안히 하여 아래쪽으로 향하고 대상에 집중하여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을 억제해 마음을 안정시킨다. 들뜸을 다스리기 때문에 아래로 향한다.
마음을 억지로 모으고 끊임없이 생각하고서는 이를 인연해 여덟 가지 선정을 얻기를 바라면 마음과 기가 위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생기는데 이것을 급한 모습(急相)이라 한다.
이때는 그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기가 아래로 흐르는 것을 상상하면 병이 저절로 낫는다.
마음은 기를 통솔한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기가 따르는 법이니, 마치 구름이 용을 따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기를 움직여 온갖 병을 다 치료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마음이 방만하게 늘어지고 몸은 힘 빠진 뱀 같으며 입에서 침을 흘리기도 하고 마음이 혹 캄캄해지는 것을 느낀다면, 이것은 느슨한 모습(寬相)이다.
이때는 몸을 추스르고 생각을 거둬 마음을 대상 가운데 머물게 해야 한다. 무릇 좌선할 때에는 몸과 호흡과 마음 이 세 가지가 조절되고 있는지, 조절되고 있지 않은지를 잘 알아야 한다. 어긋나는 현상이 없도록 하고 융화하여 둘이 되지 않게 하면 숙환을 없앨 수 있고 어떤 방해도 없게 되어 선정의 도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선정에서 나오고 싶을 때에는 마음을 다른 대상에 풀어 놓고, 입을 열어 기를 토하며, 호흡이 모든 맥으로부터 뜻을 따라 흩어지는 것을 상상한다.
그런 뒤에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어깨ㆍ머리ㆍ목ㆍ손ㆍ발을 차례로 운동하여 모두 유연하게 한다. 손으로 모든 모공을 두루 쓰다듬고 두 손을 비벼 따뜻하게 해서 두 눈을 덮은 후에 눈을 뜬다. 몸의 열과 땀이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마음대로 출입해도 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안정된 마음을 얻은 뒤 갑자기 나오면 미세한 법이 흩어지지 않고 몸에 머물게 되어 두통이 생기고, 중풍으로 고생하는 것처럼 뼈마디가 저리고 뻣뻣해진다.
또 나중에 좌선하고자 할 때도 번열에 들뜨고 조급해 안정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선정에서 나올 때 조절하는 법이라 한다.
선정에 들어갈 때는 거친 것에서 미세함으로 들어가고, 선정에서 나올 때는 미세함에서 거친 것으로 나온다. 몸이 거친 모습이고, 호흡이 그 중간이며, 마음이 가장 미세한 것이다. 수행자는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
제34장 다섯 가지 법을 행함
행해야 할 다섯 가지 법은
첫째 법욕法欲,
둘째 정진精進,
셋째 법념法念,
넷째 교혜巧慧,
다섯째 일심一心이다.
이 다섯 가지 법에 빠짐이 없으면 공부가 날로 진전된다.
첫째, 법욕法欲이란,
수행자가 처음 선을 닦을 때 욕계로부터 나와서 초선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의지이고 서원과 즐거움을 성취하려는 마음이지, 심식을 일으켜 희망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희망으로 생각을 일으킨다면 마음이 맑고 고요하지 않으므로 어떤 삼매도 생길 수 없다.
둘째, 정진精進이란 몸으로 하는 정진과 마음으로 하는 정진을 말한다.
십이두타행을 실천하며열두 가지란
첫째 아란야에 거처하는 것,
둘째 항상 걸식하는 것,
셋째 차례대로 걸식하는 것,
넷째 한 번만 먹고 거듭 먹지 않는 것,
다섯째 발우의 음식만으로 만족하는 것,
여섯째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이나 꿀물도 마시지 않는 것,
일곱째 떨어진 옷을 입는 것,
여덟째 옷은 중의重衣ㆍ상의上衣ㆍ내의內衣 세 벌만 가지는 것,
아홉째 묘지에 거주하는 것,
열째 나무 아래 머무는 것,
열한째 노지露地에 앉는 것,
열두째 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모든 불선법不善法을 떨어내고, 두타는 떨어낸다는 뜻이다.
항상 방일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계를 지키고, 오개五蓋를 버리고 초저녁과 새벽녘에도 오로지 정진하며 그치지 않는다.
비유하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때 불이 일어나지 않으면 끝까지 그만두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정진이라 한다.
셋째는 법념法念이다.
욕계는 더럽고 거짓된 속임수며 천하다고 생각하고, 초선은 존중하여 귀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육행관六行觀과 내용이 같다.
육행관이란 아래의 괴로움(苦)ㆍ추함(麤)ㆍ장애(障) 세 가지 법을 싫어하고, 위의 수승함(勝)ㆍ묘함(妙)ㆍ벗어남(出) 세 가지 법을 반연하는 것이다.
아래를 싫어한다는 것은 수행자가 이렇게 사유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보로 욕계의 몸을 받아 굶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질병ㆍ폭력 등 온갖 법의 핍박을 받으니, 이것은 괴로움(苦)이다.
이 몸은 똥ㆍ오줌 등 서른여섯 가지 냄새나고 더러운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것은 추한 것(麤)이다.
이 몸의 바탕은 둔하고 자재하지 못해 산과 강, 돌과 벽에 막히니, 이것은 장애(障)이다.”
위를 반연한다는 것은 수행자가 이렇게 사유하는 것이다.
“색계는 아주 즐거운 곳이다. 이 즐거움을 저 괴로움과 견줘 보면 이것이 수승한 것(勝)이다.
색계의 기이한 몸을 받으면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형체는 있으나 질감이나 걸림이 없으니, 이것은 묘한 것(妙)이다.
오신통을 얻어 장애물의 바깥까지 꿰뚫어 보고 산과 벽 등에 막히지 않으니, 이것은 벗어나는 것(出)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범부의 관법이다. 무릇 욕망을 여의려고 늘 되새겨야 비로소 묘해질 수 있다.
넷째, 교혜巧慧란 욕계의 즐거움과 초선의 즐거움을 가늠하여 어느 것이 이득이고 어느 것이 손해인지, 어느 것이 무겁고 어느 것이 가벼운지를 잘 재어 보는 것이다.
헤아려 보고 나면 싫어하거나 흠모하는 마음이 실제로 생기므로 공부가 더욱 진전된다.
혹자는 “방편을 잘 알아서 적절하게 사용하고, 그 마땅함을 잃지 않아 속히 선정을 얻는 것을 교혜라 한다.”고 하였다.
다섯째는 일심一心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가고자 할 때 어느 길이 막히고 통했는지를 알아 의심이 없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제 교혜로 헤아려 보고 마음 씀씀이에 오류가 없다면 그저 오롯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