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기듯이 원고를 쓴 최명희 / 지선환
- 최명희 -
어느 날 우연히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생각해 내곤,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혼불문학관에 들어갔었다. 최명희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들여다보다가 발견한 그녀의 어록, 그 어록에 담겨 있는 묵직한 언어들을 읽는 내내 내 가슴에는 하나둘 돌덩이가 쌓이고, 마침내 그것들은 천근의 무게로 내 가슴을 짓눌러서 나는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쉰 해를 넘기며 살아온 내 인생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경험으로 내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백지가 되어 버렸다. 정신이 돌아오자 수많은 번민들이 찾아왔다. 깃털처럼 가벼운 내 문학에 대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그 뒤에 찾아 온 글씨기에 대한 두려움에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혼불문학관에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이 피일차일 미루어지는 사이에 서너 달의 시간이 흘렀다. 문학관 방문이 망각의 늪을 건너가고 있을 무렵, 문협 편집실로부터 혼불문학관 탐방기에 대한 부탁을 받았다. 10월로 날을 잡은 후에마침내 남원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전라북도 사도면 서도리 522번지에 자리한 혼불문학관은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이는 건물이다. 최명희 작가의 태생지는 전주시 경원동이고 부친의 태생지가 서도리 560번지다. 문학관은 부친의 고향이자 작품의 주요 무대인 마을의 바로 위편 노적봉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그옆에는 청암부인이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가 있어서 가을의 오색단풍과 어우러져 한결 운치가 있어 보인다. 문학관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관리인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차분히 설득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혼불문학관은 효원의 장례식을 비롯한 디오라마 10장면과 매직비전을 통한 소설『혼불』소개, 작가 생전인터뷰, 작가 집필실 재현, 혼불 배경지에 대한 3D 영상물, 작가 유품, 혼불사건 연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혼불』을 쓴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말하고 있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캐고 싶었다.
1947년 10월 10일(음력)생인 최명희 작가는 수필의 단행본이나 소설 단편집을 발표하지 않고 바로 장편소설인 『혼불』 집필에 들어갔으니, 대중들에게 알려진 작품은 장편소설 『혼불』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전주 기전여고와 전북대학교를 다니면서
응모한 여러 작품들이 수상을 해서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수필 「우체부」는 당시 고등학교 작문교과서에 실렸다.
1967년 5월 전북대학교신문에 일기 「먼지와 햇빛과」를 발표하였으며, 그해 10월 제 1회 전국대학 문화예술 축전의 문학부문에 수필 「냇물」이 우수작으로 당선되었다.1968년 전북대학교 국문학과에 편입한 후 대학신문에 「내 나이, 나의 키 1-4」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였다. 1972년에서 1974년까지 모교인 전주 기전여고 에서 교사로 재직했으며, 1974년에서 1981년까지는 서울의 보성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1980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었고, 이 무렵친구인 극작가 이금림의 권유로 소설 『혼불』을 집필하기 위해서 교사를 그만두었다.1981년부터 집필에 들어간 혼불은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000만원 고료 장편소설공모에 「혼불 1부」가 당선되었다. 장장 16년 동안 집필한 혼불은 1996년에 도서출판 한길사에서 1-5부까지 전 10권이 출간하면서 탈고를 했다. 최 작가는 이듬해인 1997년에 단재상과 세종문화상을 수상했다. 또한,1998년에는 여성동아대상과 호암상 예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에 최명희 작가는 안타깝게도 너무도 젊은 51세의 나이에 지병인 난소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 이토록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거기 거멍굴 사람들의 쓰라린 혼불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으나,나는 아마도 그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 때까지 추일하게 쓰는 심부름을 해야만 할 것 같다.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뒤쫓느라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이 일을 위하여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오래오래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 - 최명희 -
*게시글 용량초과로 작가의 글을 다 올리지 못함을 양해구합니다
(울산문학 제75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