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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은 천혜의땅! 안면도로~
안면도는 행정상 안면읍과 고남면으로 나누어져있다.
안면읍은 본래 태안군의 안상면과 안하면 이었으나, 일본 강점기였던 지난 1914년 그들이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두개면을 병합하여 면명을 다시 안면면 이라 개칭해서 서산군의 관할지역으로 편입시켰다. 안면면은 이렇게 서산군에 편입되어 66년간 내려오다 1980년 12월 1일 대통령령 제 10050호에 따라 안면면이 안면읍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83년 1월 10일 대통령령 제 11075호에 따라 보령군 오천면 삽시도리의 관할이었던 내파수도, 외파수도, 외도가 안면읍에 편입됨으로 인하여 안면읍의 면적이 90.99㎢로 확장되었다. 또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 4050호에 의해 태안군이 복군됨에 따라 다시 태안군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운(漕運)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조선조의 인조 때에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하므로써, 이 때부터 안면곶이 섬이 되어 안면도(安眠島)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주소:충남 태안군 안면읍 장터로 149 (승언1리 1015) 041-673-3081
1.안면읍사무소 각부서 연락처 읍장실:673-3085 민원실:673-4001 총무계;673-3081 사회복지관:673-3087
2.안면읍 관공서 소방서 안면119안전센터:673-4119 안면치안센타(파출소):673-4112 안면우체국:673-3800 안면읍보건지소:671-5371 안면읍 예비군 중대본부:673-5113 안면농협:673-4080 안면수협:673-9900 안면새마을금고:673-4146 한국전력:국번없이123 방포선박출항신고소:674-5829 백사장선박신고:673-8092 영목선박출항신고소:673-0952 안면초등학교:673-1013 창기초등:673-5336 안중초등:673-5372 방포초등:673-4836 안면중학교:673-4011 창기중학교:673-3191 안면고등학교: 673-4237 행정실:673-4366
3.안면읍 28개리 이장단 연락처 승언1리임광호010 7327 4475. 승언2리이우기010 5674 0123. 승언3리고봉화010 3733 1286 승언4리나우식010 8851 3475. 승언5리한상선010 5458 8780. 승언6리지계철010 6690 5094 승언7리신현군010 3088 5151. 승언8리이경신010 2299 2011. 정당1리유현식010 4081 4227 정당2리최종석010 6597 2424. 정당3리최일춘010 3076 2282* 정당4리김현달019 6440 4293 창기1리박종성010 9485 5071. 창기2리정창수010 2814 5263. 창기3리권홍규010 2473 4973 창기4리편영태010 2473 3714. 창기5리박삼용017 425 5666. 창기6리변광운010 3024 8208 창기7리박태규017 417 5212. 중장1리이진형010 3446 5200. 중장2리양동목010 5432 5973 중장3리전덕재010 6405 8133. 중장4리김정근010 9810 8892. 중장5리정재봉010 6435 6527 중장6리김흥안010 7192 3571. 신야1리김병택010 3305 5906. 신아2리박의용010 5432 5811 황도리오용접 011 709 8397. **안면읍28개 리장님 연락처중 금년임기만료로 변경된분도 있씀**
2013년 11월현재 안면읍인구는 (남4,710명) (여4,705명) 합계9,415명이라고 합니다.
안면읍사무소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옛건물을 헐고 새청사를 신축하고 있습니다.
추억속으로 사라진 옛건물 사진과 새로 신축하는 건물을 동시에 볼수있도록 올려봅니다.
현재 임시 읍사무소로 사용하는 구농협건물
제가 귀향했을때 2006년 당시의 읍사무소 모습
2006년 안면읍사무소 민원 행정실건물
왼쪽건물 비품창고앞의 제가타고 갔던 승용차도 내구연한이 다되어 봄에 페차하려고 합니다
2010년봄 새로 단장된 읍사무소의전경, 조경공사도하고 장애자도 쉽게다닐수있는 길도 만들었다
쉴수있는 정자도짓고 지붕도 초가로했으며 지붕에 박이 열리도록 저의집 모종을심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심은 백년 가까이 되었다는 명물벗꽃
이젠 사진속에 보이는 읍사무소건물과 옛풍경은 볼수없게 되엇습니다
신축중인 현재모습
늘어나는 행정과 주민복지를위해 새읍사무소 건물을 넓고 크게 짓고있습니다. 읍사무소의 명물인 벗꽃 나무가 현재 서있는곳이 주차장 자리라서 옮겨 심는다는데... 나무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려나 염려가 됩니다.
새로 신축된 넓은 안면읍사무소 전경
안면도 자연휴양림휴양림
자연휴양린내 숙박시설
지난가을풍경
휴양림정상 천수만 중간에 보이는섬 죽도(竹島) 유인도 안면도 천일염생산지 두산염전이 보입니다 바로앞 초원은 두산목장초지 멀리 굴뚝이 보이는곳은 보령 화력발전소 (영목이나 소도에서도 더 가까이보입니다)
안면도 승언6리 독개들판
천수만의 작은 유인도 대섬(竹島)도 보입니다
안면 두산목장 3우사 주변 풍경
멀리 여러개 보이는 굴뚝있는곳은 대천 화력발전소
두산목장의 소먹이 건초
안면도 수목원에 저의집 토종백합(당나리)도 15구 심었습니다.
울타리 안에는 여러색의 작약이 있으며 홑꽃 토종작약도 있답니다.
2002년과 2008년도에 국제꽃박람회 개최장소인 안면도 꽃지해변의 명물 할미 할아비바위앞
안면도에서 피서객이 가장많이 찿는 꽃지해수욕장
콘도 리솜 오션캐슬앞해변
안면도꽃지 할미,할아비바위 전설
신라의 흥덕왕(재위기간 826~836년) 때 당시 바다를 주름잡고 있던 장보고는 청해진靑海鎭(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에 거점을 정하고 해상활동을 펴가는 동시에 서해안의 견승포(안면도)에도 해상 전진기지를 두었던 것이다. 안면도(안면곶)에 전진기지를 설치한 장보고는 이 기지를 관할하는 책임자로 승언이라는 사람을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하루에 두 번 열리는 할미,할아비바위 바닷길 명승제69호)
승언은 이와 같이 아름답고 환경이 좋은 견승포에 부임하게 된 것을 무척 기뻐 하였다. 즉 갈매기떼 날아다니는 푸른 바다와 하늘을 찌를듯한 울창한 산림, 그리고 바닷가의 흰모래등 그 어느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승언은 시간이 허용되는 때면 언제나 아름다운 바닷가를 아내인 미도와 함께 산책하곤 하였다 이렇게 부부가 산책할 때마다 부부의 정은 깊어갔고 따라서 마냥 즐겁고 행복함을 느낄수 있었다. 이와 같이 승언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애처가였던 것이다. 또한 승언은 이따금 쉬는 시간을 활용하여 부하들이 바다에서 맛있는 고기라도 잡아오면 꼭 아내를 생각하여 일찍 집으로 돌아와 함께 생선을 요리하여 맛있게 먹곤 하였다. 이렇게 사랑을 아끼지 않는 남편을 미도는 무척 기쁘고 흐믓해하였다, 승언은 무슨 일이든지 아내를 먼저 생각했고 아내를 위해서라면 기필코 해내고야마는 성격을 지니었다. 이같이 승언은 미도를 사랑하였고 미도 또한 남편을 매우 믿음직 스럽게 여겼다. 승언은 가정에 충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라 일에 조금도 소흘하지 않는 모범적인 충신이었다.
항상 나라 일에 몰두해서인지 그가 관할하는 견승포에는 아무런 사고도없이 잘 다스려지고 있었다. 승언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만큼 부하들도 역시 사랑으로 다스리며 점검을 게을리 하지않았다. 이렇게 견승포를 다스리고 있던 어느날 멀리 청해진으로 부터 전갈이 왔다. 그 내용은 "승언은 군사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진다는게 한없이 안타까웠지만 상사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승언은 즉시 출정준비를 서둘렀다.평소에 훈련이 잘된 군사들은 매우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견승포에 주둔했던 군선을 이끌고 북쪽으로 떠났다.
이때 미도는 바닷가에 나와 멀리 출정하는 남편과 군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편은 늠름한 모습으로 갑판 위에 올라 아내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를 지켜보고 서있는 아내는 이날따라 남편이 몹시 미덥게 여겨졌다. 군선은 포구를 뒤에 두고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내 미도는 높은 바위에 올라가 가물가물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군선을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집에 돌아온 미도에게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쓸쓸함이 휩쓸어 왔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 미도는 기껏해야 앞뜰을 서성거리다가 방에 들어와서 공상에 잠기는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남편의 건강은 어떠한지 내일은 돌아오겠지 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차 있었다.
매일 같이 밤낮으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미도의 심정은 초조해 질수밖에 없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남편을 오늘 내일 하면서 기다린것이 벌써 수일이 지났다. 그러나 남편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초조하게 매일같이 기다리던 미도의 마음이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만히 집에서만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던 미도는 쏜살같이 바닷가로 뛰어나갔다. 지난 날 남편이 출정할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견승포의 높은 바위에 올라가 사랑하는 남편이 돌아오는 군선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한 두척의 어선만이 지나가고 무심한 갈매기만이 날아들 뿐 끝내 군선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속 태우며 초조하게 남편을 기다린지도 벌써 2년여가 지나가고 말았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남편은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한결같이 바위 위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루 해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날씨에 아랑곳없이 한평생을 남편이 돌아오는 군선을 기다리다 마침내 이 바위에서 죽고 말았다.
그뒤 이 바위는 미도가 남편을 기다리며 멀리 바라보고 서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망부석이 된 것이다. 그후 시체가 되어 흘러온 남편 승언도 망부석이된 미도옆에서 바위가 되어 마주보고 서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미,할아비바위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할미,할아비바위의 낙조하는 일몰풍경을 담기위해 전국에서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찿습니다.
안면읍 승언리 꽃지해변 방포항과 연결된 꽃다리앞의 전경
피서철 꽃지해변의풍경
***안면읍 승언리란 유래*** 승언리는 현재 안면읍 관할의 6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승언承彦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면 일찍 통일신라시대에 청해진을 중심으로 서남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 대사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승언이란 장군이 안면도에 상주하면서 해상활동을 전개하여 안면도를 수호하였으므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명을 승언이라 명명한 데서 연유된 것이라 한다.
안면도남쪽 고남면
역사
고남면은 본래 태안군 안하면의 관할지역이었으나, 일본 강점기었던 지난 1914년 그들의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면명을 안면면으로 개칭하고 서산군에 편입시키므로서 오늘의 고남면은 안면면의 관할이 되었다. 그 후 1972년에는 안면면 고남출장소가 설치되어 내려오다, 지난 1986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 11974호에 따라 출장소 설치 후 14년만에 고남출장소가 고남면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3년 후인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 2050호에 의해 태안군이 복군되므로써 고남면은 서산군에서 벗어나 다시 태안군의 관할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
고남면의 소재지는 고남리 1264-4에 자리하고 있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3개 법정리, 54개 반과 38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고남면은 안면도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전도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섬이지만 안면읍과 접해있으므로 북쪽은 연륙되어 있으며 3면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지형
지형을 보면 총면적이 28.233㎢로서 태안군 8개읍면 중에서 제일 작은 면인데, 안면읍 신야리에 있는 국사봉 줄기가 고남면으로 뻗어 내려 봉황산(鳳凰山)을 이룩하였다. 봉황산이 고남면의 주산이지만 모두 100m미만의 야산으로서 56%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해안선이 30.5㎞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고남면에 속해 있는 섬은 계도(닭섬), 분도(솔섬), 하송도(솔섬), 소장고도(작은섬), 대장고도(큰섬), 의점도(섬옷섬), 흑도(촉도), 흑도(독도) 등 모두 8개, 이 중에서 제일 큰 섬은 계도로 서 0.0129㎢이며, 이 섬들은 모두 무인도이다. 그리고 고남에서 군청 소재지까지는 46㎞로서 다른 읍면에 비해 거리가 제일 먼 곳이기도 하다.
주소:충남 태안군 고남면 안면대로 4254-12 (고남리 1063-5) 041-673-7006 고남면사무소 면장실673-7588 총무계673-7006 재무산업계673-7502 민원실673-7403
고남면 관공서 고남우체국673-8000 고남치안센타(파출소)673-7112 해양경찰서영목초소673-0952 예비군중대본부673-6113 방범대673-0999 의용소방대673-7119 수협영목지소673-9904 고남보건지소671-5272 농협고남지소673-7111 안면신협673-7419 안면신협수산673-7219 고남초등학교673-5671,673-5678 농업경영인협의회673-6416 어업경영인협의회673-8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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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정보 ~~
수고하셨어요^^
두물머리지나 남북한강 주변 양평쪽은 포화상태가 되니~
수년전부터 홍천쪽으로 세컨하우스 짓고 수도권에서 왕래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홍천아씨도 전원생활 하시러 가신거지요?
@돌아온팔학골(태안) 작년까진 그랬죠.
직장 명퇴하고 올 봄 서울 정리하고 홍천사람됐어요.
서울이 떠나라고 밀어내네요~~
그 속에서 그동안 어찌 살았는지 ....
@홍천아씨(홍천) 정들면 고향이라구~
정붙이고 몇년 지내다보면 그럭저럭 다 지낼만 헌것 같어유
이젠 완전 홍천분이 되셨네유 우리 서로 구경시켜주기 품앗이 해볼까유?
@돌아온팔학골(태안) 그런 재미를 붙이고 시굴생활 즐겨야겠지요?
찬성에요^^
멋진 벚나무 꽃피니 더욱 근사 합니다.
안면에 안면도 없다가 식구가 거기사니 안 자만 보여도 눈이 번쩍 귀가 쫑긋 하네요.
ㅎㅎ 언제부터 안자에 그렇게 관심두셨나유?
담에 안면도에 또 오실때 형제분 소개시켜줘유
오늘도 꽃지쪽에서 점심 먹는데 고모님댁 상호를 맨날 잊어먹네유
새로 이사 오신분들이 펜션 상호를 바꾸니 동네분들도 잘모르는곳이 많더군요
@돌아온팔학골(태안) 애들 어릴때 안면도 많이 갔죠.
꽃지해수욕장도 여러번 낙조보러가고 꽃지 옆 회센타에도 많이 드나들었던 곳이죠.
흠 또~~어리굴젓사러도~~
안면도하믄 꽃게사러 가는것이 기억납니다.좋은사진과 정보 잘보고 갑니다
꽃게는 인천쪽에서 나오는게 싸다고 합니다.
맛은 안면도게가 좋다고 하네유 봄철은 꽃게, 가을엔 대하 축제가 열리지요.
서울에 살 때엔 맑은 공기,푸른 나무,넘실대는 파도가 그리워서 시간만 나면 엄청 싸댕기던 곳 중 하나가 안면도였어요.
이제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오니 바다도 남해,충무로 가고 산은 집이 산이네요.
돌아댕길 때는 툭하면 시동걸었는데 어쩌다가 일주일에 한 번 나가기도 어려운 지 참~~
삶이란 알 수가 없네요.
서울 아지매가 먼데까지 내려가셨네요
시골에서 생활하니 한가할대가 없는걱 같아유^^
30여년 전의 아득하고 눈물겨운 추억들을 우리 팔학골님께서 떠올리게 하네요.
수의과 대학을 갓 졸업한 초보 수의사의 첫 발령지가 두산그룹 안면도 연구소.
끝없이 덜컹 거리는 버스 속에서 태안에서 승언리 까지의 유일한 포장 도로가 연육교였던 그 때 그 시절.
도대체 이놈의 버스는 한없는 소나무 숲속으로만 들어가고,연육교에 붙어있던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내 사랑 안면도"
10여 명의 수의사가 왔다 갔는데 평균 재임 기간 6개월.
처음에는 거칠고 투박한 환경에 어찌 살꼬 울다가 나중에는 너무나 정이 들어 떠나기 싫어 "울고왔다 울고가는 안면도"
ㅎㅎ 백설님의 젊은시절의 애환이 서려있는곳을 되새겨 보시라구 특별히 신경써서 목장부근을 올려드렸습니다.
2년 열심히 근무했더니 기특하다 하여 미네소타 주립대학 수정란 이식 연수 다녀와서 3년 더 유배 생활.
방포,꽃지의바닷가, 해질녘 염전의 아름다운 물레방아,아름드리 안면송의 수해,340만 평의 넓디넓은 초지.
내 젊은 시절의 꿈과 낭만이 깃들었던 청춘의 푸른 목장.
사는게 바빠서 떠나온 후 한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이젠 서서히 그 시간이 다가옴을 느낌니다.
다행히 그 옛날 인연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고 우리 팔학골님께서 어서오라 재촉하시니 서둘러 볼 생각입니다.
웃으며 가겠지만 헤어지면서 어쩌면 또 다시 울고 올 것 같은 예감입니다.
남들은 6개월쯤 버티다 두손들고 나가던곳을 백설님께선 불굴의 투지로 굳건히 버틴결과 안정받아 유학도 보내주어
선진가술을 이수하셔 당시에는 물론 현재까지 대전 이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수의사님으로서
활동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30여년전에는 우연히 만나뵜지만 이렇게 다시 해후하게되니 실로 감개 무량합니다.
안면도 예날에 초등학교시절에 남면에서 정당리 누님덱에 갈때는 승언리백사장에서 나룻배로 건너서 다니다가 이제는 안면도가 아니라 안면읍으로 고향은 언제나 그립군요. 12월 26일경에 태안 어머님 산소에갈때 시간되면 안면도에도 가봐야겠네요.
고향이 태안 남면이시군요 반가워유~
남면의 신온항에서 나룻배타고 안면도 창기리 백사장항으로 왕래하셨다면 69년도 이전 이야기네유
그뒤로는 안면도에 안다녀 가셨는지요? 승언리는 안면도 중간쯤이며 정당리는 승언리 저의집 이웃 동네입니다.
자형 성함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잘하면 알수도 있겟네요 75세정도 되신 김**도 남면에서 장가 가셨다는데 ....^^*
안면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돌아온팔학골님 덕분에 안면도 구석구석을 구경하네요~~감사합니다~~^^
꽃은 죄가 없지만 일제 강점기 생각하면 벚꽃을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지요...
안면도를 잘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면도 시랑 대단하싶니다
저는 대한민국 어디든 다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