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 수심결] ②
거짓 인연 떠나면 곧 변함없는 부처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만 이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이 마음을 닦는 사람이며 미래의 공부인들도 마땅히 이 법에 의지해야 한다. 원컨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밖에서 찾지 말라. 심성은 물듦이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이니 다만 거짓 인연만 떠나면 곧 변함없는 부처이다.
수행이라는 것은 본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일 뿐 그 밖에 특별한 견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선정주의와 고행을 포기하고 다시 기력을 회복한 뒤 보리수 아래서 조용히 호흡을 살피고 마음의 관찰에 들어가 새벽별을 보고 정각을 성취 하였다. 별을 볼 줄 아는 이 마음을 깨친 것이다. 깨닫고 보니 이 마음은 깨달은 부처라고 해서 더한 것도 아니고 미혹한 범부라고 해서 덜함이 없는 것을 알고 일체중생의 허망한 가지가지 변화가 다 이 마음에서 일어남을 철견하였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사람들은 특별한 신통을 구하거나 아니면 수행공력을 들인 만큼 훈훈한 멋과 덕이 나오지 않고 송곳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움만 더할 뿐 마음을 쉬지 못한다.
수련회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수행방법을 접해본 경험이 있었다. 호흡법을 익혀서 오랫동안 등상불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지만 화두는 없고 몸의 기운을 돌리는 것으로 공부를 삼고 삼천배를 자주 한다는 사람들도 절한다는 상에 걸려서 오히려 아만이 높고 또 점하나에 모든 것을 집중하여 일어나는 생각을 없애는 것으로 공부를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무기공에 떨어져 아무 분별도 하지 않는 것으로 공부를 삼고 많은 경전을 사경하고 외우는 사람도 오히려 그것이 장애가 되어 글자하나 없는 신령스런 마음의 광명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모두가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달마대사는 『혈맥론』에서 이르기를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사람들은 공력을 가장 많이 쓰나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거스르므로 종일토록 서둘러서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정신이 어두워 윤회를 면치 못한다’고 하였다.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사경하고 염불을 하고 하루 여섯 번 예불하며 오래 앉아 눕지 않으며 널리 배워 많이 아는 것으로 불법을 알고 있으나 이것은 오히려 부처를 비방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십여 년 전 경기도 도솔암에서 혼자 정진할 때의 일이었다. 큰절에는 어린 동자를 데려다 키웠는데 그 모습이 초라하고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항상 우는 상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큰절에 내려 올 때마다 동자님 손을 잡고 방으로 인도하여 “동자님은 본래 부처님이니 삼배를 올리겠다”고 하면서 절을 했더니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따라서 절을 하였다. 하지만 동자님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로 번지고 있었다. 큰절에 내려 올 때마다 삼배를 올렸더니 어느덧 나도 따라서 부처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자기는 부처가 아니라고 울면서 달아나 버렸다. 알고 보니 주지스님께서 신도들 앞에서 자기가 부처라고 뽐내고 자랑하는 동자님을 건방지다고 크게 나무랐던 모양이다. 천진 부처님을 망쳐놓은 주지 스님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모두는 본래 부처이다. 서로 부처님처럼 섬기고 살아야 한다. 바다가 깊은 밤에도 홀로 깨어 스스로를 정화하듯이 본래 부처를 회복해야 한다.
조주 스님께서는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하고 쇠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니 참 부처는 지금 설법을 들을 줄 알고 할 줄 아는 이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달마대사께서도 불상에 예배할 때는 불상이 어디서 왔는가 바르게 살피고 곧 마음의 그림자 인줄 알아서 불상이 바로 내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불상과 둘이 아닌 줄 알아야 바른 예배라고 하였다. 또한 몸으로 불상에 예불 드리되 자기의 마음에 예불을 할지언정 나타난 그림자인 등상불에게만 공경심을 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절하고 예불할 줄 아는 마음을 등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숲속에는 새들이 옥구슬을 굴리고
졸음에 빠진 바다에 숭어가 뛴다.
거금선원장 일선 스님
[출처 : 법보신문]
☞'수행인을 위한 선어록' 목차 바로가기☜
첫댓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