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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기 언어 Latvia , (라)Latvija 동의어 라트비아 공화국, Republic of Latvia
위치 | 발트해 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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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906,743명 (2020년 추계) |
수도 | 리가 |
면적 | 64,589.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라트비아 공화국 (Republic of Latvia) |
기후 | 습윤대륙성기후, 해양성기후 |
민족 구성 | 라트비아계(58%), 러시아계(30%), 벨로루시계 |
언어 | 라트비아어 |
정부/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종교 | 러시아정교, 루터교, 로마가톨릭 |
화폐 | 유로 (€) 환율계산기 |
국화 | 데이지 |
대륙 | 유럽 |
국가번호 | 371 |
GDP | USD 30,260,000,000 (2017) |
인구밀도 | 30명/㎢ |
전압 | 220V / 50Hz |
도메인 | .lv |
요약 유럽 북동부에 있는 국가. 발트 해와 리가 만 연안을 끼고 있으며, 에스토니아(북쪽), 러시아(동쪽), 리투아니아(남쪽)와 경계를 이룬다. 수도는 리가
평평한 저지대와 구릉지대가 어우러진 기복진 평야지대이며 발트 해와 리가 만의 해안선은 매우 단조롭다. 대서양의 탁월풍의 영향을 받아 여름에는 대체로 시원하고 비가 많이 오며 겨울은 12월 중순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3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광물자원은 자갈·모래·백운석·석회암·점토·이탄뿐이다. 쿠를란드 반도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으나 매장량은 확인되지 않았다. 영토 가운데 약 2/3가 삼림·목초지·방목지·습지·황무지 등으로 이루어졌다. 라트비아의 삼림은 여러 종의 나무가 자라는 복합삼림이며 주로 다람쥐·여우·산토끼·살쾡이·흰담비 같은 동물군이 서식한다. 동물보호조치가 실시된 이후 사슴과 말코손바닥사슴이 많아지고 비버도 다시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라트비아의 인구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유지해왔으며, 총 인구 역시 1990년 267만 명을 기록한 이래로 점차 감소해왔다. 2020년 기준 인구는 190만 6,743명이며, 인구밀도는 30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도시거주자 비율은 67%, 15세 이하 인구 비율은 15%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라트비아인이고, 러시아인이 약 30%, 그 밖에 나머지는 벨라루시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리투아니아어이며 도시에서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많다. 레트인이라고도 하는 라트비아인들은 리투아니아어와 함께 발트어군에 속하는 라트비아어를 사용한다.
전체 인구의 79%가 그리스도교이다. 2011년 기준 라트비아 복음주의 루터교는 약 70만 명, 로마 가톨릭교는 약 50만 명, 러시아 정교회는 약 37만 명, 나머지는 무종교로 분포되고 있다.
라트비아는 완전히 공업화된 국가로 기계제작과 금속주조 공업이 발달했다. 라디오와 과학기재 같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많이 생산하며 냉장고·세탁기·모터스쿠터와 같은 내구소비재 제조도 하고 있다. 중공업부문에서는 선박·철도차량·전차·발전기·디젤모터·농기구를, 경공업 부문에서는 섬유·신발·의복 등을 생산한다.
철도·육로·항공·내륙수로 등 다양한 교통시설을 갖추고 있다. 소련의 대외무역량 대부분이 리가와 벤츠필스 항을 통해 이루어졌다. 리가
1990년 이전 라트비아의 정부형태는 4년마다 라트비아 공산당의 지명을 받아 만장일치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되는 최고 소비에트였다. 최고 소비에트는 본회의에 참여하는 간부들과 행정을 담당하는 각료들의 임명권을 가졌다. 1989년 라트비아 의회 투표결과 공산당 일당독재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없애게 되었다. 1990년 다당제 자유총선거에서 라트비아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라트비아 인민전선의 후보자들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은 무상의무교육이다. 학교에서는 라트비아어나 러시아어 또는 이들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라트비아어로 가르칠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러시아어 교육을 하도록 되어 있다. 라트비아 과학아카데미를 비롯한 연구기관들과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의료시설이 아주 잘 갖춰져 있으며 의사 1인당 인구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라트비아는 아마추어 예술이 발달했다. 클럽과 민간기업은 연극단체·성가대·합창단·교향악단·무용단 등을 갖추고 있다. 5년마다 지구와 마을 단위로 노래경연대회가 열리며, 가장 우수한 합창단·교향악단·무용단은 리가에 있는 공원에서 열리는 전국축제에 출전하게 된다. 음악학교와 예술학교를 비롯해서 음악·미술·응용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이 많이 있다. 신문과 잡지는 라트비아어나 러시아어로 발행된다.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초까지 폴란드와 스웨덴 영토로 갈라져 있다가 18세기말 무렵 러시아의 확장정책에 따라 영토 전체가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게르만족 지주들은 라트비아에서 세력을 유지하려 했으나 20세기초에 이르러 라트비아 민족주의의 급속한 성장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했으며 격전의 혼란기를 겪은 후 1920년 소련과 독일로부터 신생독립국으로 승인을 받았다(→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
독립 후 1934년 독재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민주연합세력의 통치를 받았다. 1939년 소련에게 자국 영토 내에 군사기지를 내주었고 1940년 소련군이 라트비아에 진주했으며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소련에 합병되었다. 1941∼44년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었다가 1944년에 다시 소련군의 손에 넘어갔다.
라트비아의 농토는 1949년 강제로 집단농장으로 개편되었으며 소련 경제에 흡수되었다. 소련에서 가장 공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번창했으나 라트비아 주민들은 20년 동안의 짧은 독립기간에 대한 기억을 강하게 간직했다. 1980년대말 고르바초프가 자유화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민족주의 정서가 되살아나면서 모스크바의 간섭을 벗어나 좀더 독자적으로 국내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해체와 더불어 독립했다.
라트비아와 한국은 1991년 10월 22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공식 외교관계 수립 이후에도 공관은 개설되지 않고 주스웨덴 한국 대사관에서 겸하고 있었는데, 2012년 12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주라트비아 한국 대사관 분관이 설치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이 개관했다.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은 발트 3국 중 유일한 한국 대사관이기도 하다. 라트비아의 첫 번째 대한민국 상주 대사는 페테리스 바이바르스(Peteris Vaivars)이다. 한편, 라트비아와 북한은 1991년 9월 26일 수교했다.
한국은 라트비아의 교역국 중 동아시아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 대라트비아 수출품은 승용차, 섬유, 계측기 등이 주를 이루며, 수입품은 목재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라트비아 수출액은 5,453만 달러이며 수입액은 6,582만 달러이다. 양국은 투자보장협정(1996. 10)과 이중과세방지협약(2008. 6)을 체결했으며, 라트비아는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서 유럽연합과 대한민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적용되고 있다. 또한 쉥겐(Shengen) 협정국으로서 양국 간 비자 면제가 적용되고 있다.
양국 간의 관계는 2012년 리가에 주라트비아 한국 대사관 개설을 기점으로 긴밀해졌다. 2014년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행사에서는 양국의 문화를 서로 알리는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매년 라트비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과 유학생 및 교환학생도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기준 라트비아에는 64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33명의 라트비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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